PENTAX K-5



정확하지 않은 시계, 오토매틱



  사실 시계가 필요없는 세상이라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가장 정확한 시계를 가지고 있다. 온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시간을 모르고 지낼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내 기억에 남아있던 어떤 시절에는 낯선 사람들이 시간을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몇 시 쯤 됐소?" 라고 물으면,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때는 시간을 묻는 것이 이상한 일도, 경계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시간의 홍수'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내가 손목시계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수업시간 때문이었다. 학생들 앞에서 수시로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저렴하더라도 손목시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손목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십여 년 전쯤, 면세점에서 스와치의 '오션 세컨드'라는 손목시계를 구입한 적이 있다. 그 시계는 지금도 차고 다니기는 하지만, 시계를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무렵에는 내가 스와치의 '오션 세컨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구입한 것이 같은 스와치 브랜드인 '스와치 시스템51 아이러니' 라는 시계였다. 생전 처음 구입한 오토매틱 시계였는데, 시간에 오차가 생겨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이 시계도 '오션 세컨드'와 함께 기분에 따라 차고 다닌다.

  문제는 처음으로 경험한 오토매틱 시계가 갖는 모순적인 매력이었다. 오토매틱 시계는 근본적으로 시간이 맞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시간에 오차'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시계란, 시계를 구동시키는 동력이 유지되는 한 시간은 정확하게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계가 갖는 기본적인 기능이며 미덕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오토매틱 시계는 그렇지 않았다. 하루 10초 정도의 오차면 '훌륭한' 것이 바로 오토매틱 시계였다. 오차가 당연시되는 시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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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쏘를 만나다


  시계에 급이 있다는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소위 말하는 '등급'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계에 대해 알아보는 동안, 나는 몇 가지 사실을 접하고는 당혹스러움을 느껴야했다. 우선 들어보지 못한 시계 메이커들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그런 시계들 중에는 몇 천 만 원이 넘는 시계들도 있었다. 내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고급시계'는 이쪽 세계에서는 더 이상 '고급시계'가 아니었다. 천 만 원을 가볍게 넘는 시계들을 몇 개 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백 만 원이 넘는 시계는 아무렇지도 않게 구입한다. 

  이 보다 나를 더 당황하게 만든 것은 시계가 연령층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티쏘의 PRC200은 '고등학생들'이나 혹은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한 20대가 차는 시계였다. 너무 흔해서 '국민시계'라고 불린다. 시티즌, 태그호이어, 오메가, 헤밀턴 정도가 30대가 차고 다닐 정도의 시계 메이커였다. 이런 시계들은 저렴하게는 2~30만원 대부터, 보통 100만원 언저리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나의 첫 오토매틱 시계인 스와치 시스템51 아이러니가 20만원 대 초반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시계를 선물 받게 되었다. 선택은 내 몫이었고, 나는 신중하게 티쏘의 트래디션 오픈하트 모델을 선택했다. 앞서 언급했듯, 티쏘라는 브랜드 자체가 '너무 흔한', '젊은 사람들의 입문용' 브랜드였다. 나는 사십 대에 접어들었고, 그래서 티쏘가 '나이에 걸맞는' 브랜드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나는 이 모델이 마음에 들었다. '오픈 하트'라니. 

  내가 구입한 시계는 '로즈 골드' 색상으로 도색이 되었으며, 가죽 밴드였다. 일 오차는 처음 구입했을 때 대략 1~2초 정도 빨랐으며, 지금은 하루 5~10초 정도 빠르다. 보통 오토매틱 시계가 갖는 정확성의 척도라 할 수 있는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은 시계는 4~6초 정도의 오차를 갖는다고 한다. 트래디션 오픈 하트는 그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정확도를 가지고 있으므로 정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오픈 하트 형태의 시계는 다른 브랜드들에도 존재한다. 전면에 시계의 내부가 보이는 오픈 하트 시계는 보통 쉽게 질린다는 평들이 있지만 나는 딱히 질리거나 하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이라면 날짜창이 없다는 정도랄까. 그러나 날짜창이 없어지면서 시계의 심플함은 더 살아나서 미적 측면에서는 날짜창이 없는 것이 더 괜찮아 보인다. 

  남자에게 '로즈 골드' 색상의 시계가 어울릴까 싶었는데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나름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밴드가 가죽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정장이나 캐주얼 복장에도 잘 어울린다. 그러니까 갖춰 입으면 그 나름대로의 품위가 느껴지며, 가볍게 입으면 캐주얼하게 보여지는 것이 이 시계의 디자인 적 장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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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형식이긴 하지만 뒷면 버클(뭔가 다른 용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잊어버렸다) 덕분에 밴드가 쉽게 헤지거나 상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익숙해지기 어려웠으나 적응이 되니 상당히 간편한 시스템이었다. 

  파워리저브 시스템으로 80시간 정도는 별도로 태엽을 감아주거나 움직여주지 않아도 시계가 작동을 한다. 정확히 시간을 재 본 것은 아니나 이틀 정도 방치를 해 두어도 시계가 멈추지 않는 것을 보면 이런 부분도 나름 마음에 든다. 

  티쏘의 트래디션 오픈 하트는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다. '오토매틱 시계 치고는' 시간이 잘 맞으며, 대부분의 복장이나 스타일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전면에 보이는 시계 내부의 움직임은 묘한 기분이 들게 하며, 미적으로도 심플하다. 해밀턴의 경우 거의 '절개' 수준으로 내부를 보여주는데, 그 보다는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다. 단점이라면 전술했듯 날짜창이 없다는 정도. 불편하지는 않지만 아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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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매틱 시계의 가치


  사실 시계에 대해 알아보면서 나는 여러 측면에서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 분명히 '시계'는 그 공정이나 부품, 기술력으로 인한 '등급'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등급을 사람에게까지 부여한다는 사실에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사람들이 시계에 투영하는 자신들의 자존심, 가치에 대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했다. 

  티쏘는, 이쪽 세계(시계의 세계)에서는 그 역사에 비해 평가절하되는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계가 갖는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의 적확성, 미적 측면보다는 시계의 다이얼에 새겨진 브랜드의 이름에 더 집착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하게 '흔하다'는 이유만이라면 티쏘는 좀 더 대접을 받아도 괜찮은 브랜드가 아닌가 싶다. 

  사십 대의 어느 시점에서 구입한 (개인적으로 고가의) 시계가 티쏘라는 점에서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나타낼지도 모르겠다. 더 좋은 제품이 있는데, 조금만 더 투자하면 '조금 더 품위있는' 시계를 구입할 수 있었을텐데, 라고. 그러나 나에게 있어 티쏘의 트래디션 오픈 하트는 충분히 품위가 있고 가치있는 시계이다. 물론 더 고급 제품을 선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선택의 순간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고, 끌렸던 제품은 다름아닌 이 시계였고, 그것만으로도 이 시계가 갖는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잠이 들기 전이나, 혹은 마음이 심란할 때, 시계의 초침소리를 듣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오토매틱 시계의 초침소리는 묘하게도 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디지털 시대에, 심지어 '스마트 워치'가 대중화 된 이 시대에 아날로그 시계가 주는 매력은 바로 부품들과 태엽들이 맞물려 내는 초침소리가 아닐지.

  언젠가는 나도 또 다른 시계, 혹은 더 고급스러운 시계들을 구입할 날이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 내 귓가에서 똑딱거리는 이 시계의 초침소리만큼 내게 '무엇인가를 전달해주는' 시계는 없지 않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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