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글에 대한 글이다.
뭐 어쩌겠는가.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이 블로그는 내 블로그니까 내 꼴리는데로 쓰는데.

어쨌든 나는 지금 슬럼프 기간이다. 예전에 썼던 소설을 올리며 근근히 살아가고는 있지만 도무지 새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오후에는 일을 하게 되고 밤에는 '월드컵' 때문이라는 현재 시기상의 문제도 작용한다. 하지만, 그건 핑계일뿐. 정작 내 문제는 지금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이 조금 겁이 나는 이유도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내가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몇 가지 방법중에는 방을 정리하는 것이나 쇼핑을 다니는 것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나는 한국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 존경하는 작가가 전혀 없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최인훈 선생은 정말 존경스럽다 못해 거대해 보이기까지 한다.

내가 우리나라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 덧없는 '자존심' 때문이다.
내가 더 유명한 작가가 된다면 그때 읽어야지. 이런 생각이 든다. 가끔 문예지에 올라온 단편 같은 것을 볼 때가 있는데 우리나라 작가들의 글을 읽고 내가 무슨 소설을 쓰면 마치 그들을 보고 베낀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왠지 모르게 내가 그들에게 주눅드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들에 비해서 혹시 실력이 모자라는 것이 아닐까.

맙소사. 생각만 해도 자살하고 싶어질 정도이다.

이런 노파심이 나를 나약하고 주눅들게 만든다. 나는 절대로 그들에게 밀리지 않는 다는 것을 마음속에서 곱씹으면서도 일단 '등단' 한 작가들의 글을 보면 그 글이 아무리 거지같아도 '등단' 했다는 이유 만으로 한 수 꺾여버리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젊었을때(지금도 물론 젊다. 더 젊었을 때는)는 이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공격적이었고 전투적이었다. 나와 조금이라도 틀린 사람들과 수도 없이 부딪혔다. 그들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짓밟았다.
오만하게도 나 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재능을 가진 인간으로 생각했다.

솔직히. 당신들이 역겨워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생각에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짓밟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나를 비난하고 비판하고 짓밟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 해, 한 달, 하루가 지날 수록 그런 생각은 더욱 더 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는다.

가끔은,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나에게 어울리기나 한 걸까, 라는 생각도 든다. 정말로 내가 글을 잘 쓰기는 하는 걸까? 내가 이걸로 뭔가를 해 낼 수 있을까?
나는 결국 어디 골목 한 구석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인생 아닐까. 어느 골방에서 폐병이나 기타 불치병에 걸려 혼자 개죽음 당하는 건 아닐까?
아무도 나를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누구도 나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내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더 나은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나는 숲에서 길을 잃었고 내 주변에는 수 많은 들짐승들과 독을 가진 벌레들과 내 살을 긁어댈 나무들이 도사리고 있다.
빛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굶어죽을지도 몰라.

나는 내 미래가 두렵다.
부자? 평온한 가정? 안정적인 직장? 그런 것들을 갖지 못해 두려운 것이 아니다.
내가 결정한 미래에 도달하지 못할 까봐 두려운 것이다.

왠지 나는 미래에
늙고
병들어
비참한 후회를 탄식처럼 내뱉을지도 모른다.
확률은 99퍼센트.

지친 나는
이 싸움에서
수건을 던지고
기권하고 싶다.

인생이라는 싸움에서.
  1. Favicon of http://oseb.tistory.com BlogIcon oseb 2006.06.23 23:34 신고

    댓글 알리미를 보고서 다시 들어와 봤습니다.

    지금 죽기 일보 죽전이시군요. 마음이 까딱하면 바로 행동에 옮길 사람처럼 보여집니다. 무척 아니 너무나 힘들어서 그래서 포기할까 하는 마음이 꽉차 있으시네요.

    죽을 것 같은 글쓰기 열정을 다시 가질려면 아마도 계속 그것에 악착같이 집착해서 얻어지기도 하겠지만 명상처럼 주변의 모든 번잡을 끊고서 혼란스런 마음을 차분히 한 다음에 하나씩 용서할 것은 용서하면서 바로 잡아나가면 어떨까요?

    모든 사람들이 죽죠. 빨리 죽던 늦게 죽던 별 차이 없습니다. 전 살아있다는게 참 좋습니다. 따뜻한 체온이 좋더군요. 그 차가운 시체가 된다는 자체 만으로도 죽음은 싫어지더군요. 어느날 주변에 사늘히 식은 주검을 생가해 보십시오.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감정도 없고 같이 할 수도 없는 존재가 된다면 끔찍하지 않습니까?

    전쟁에는 병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요. 옛날에는 병사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글쓰는 사람이 격려문을 올려서 사람들의 마음을 모았다고 하더군요. 글의 힘이 칼보다 강하다는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저 자신도 슬럼프에서 계속 허우적 거리는 놈이라 뭐라 말씀은 못드리지만 Julian님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글쓰기가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게 왜 노벨상이라는 대상까지 되는지 아시잖습니까?

    모르는 사이지만 들렸다가 그냥 가기가 뭐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남기고 갑니다. 제가 글을 잘못 읽어서 오해하는 것이라는 댓글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월드컵이 빨리 쑤그러지게 오늘 한국 축구 지게 기원해 드릴까요? (웃자고 한 농입니다. ^^)

    • Favicon of http://www.juliantime.net BlogIcon julian 2006.06.24 00:36 신고

      안녕하세요. 먼저 제 블로그를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보다 님께서 더 흥분한 것 같아 보이시네요. ^^

      아마 사람들이 자기 마음먹은 대로 죽을 수 있다면 이 지구상은 지금처럼 포화상태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전쟁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환경오염이 생기지도 않았겠죠. 왜냐하면 살아남은 사람들이 별로 없을테니까요. 이념도 없고, 철학도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가장 우울해질 때는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다는(혹은 그럴 용기도 없는)사실을 알았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죽는다면 그것은 차라리 낫거든요. 내가 과연 뜻한 대로 죽을 수 만 있다면 세상 사는 게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거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런다는것이(죽는 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이쯤 되면 그동안 살아온 절반의 인생(혹은 절반 약간 못미치는 인생)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요.

      제가 답답하고 우울한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랍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지난 세월을 낭비했고 그 시간이 아까우며 앞으로 남은 시간들이 마치 초시계가 제 귀 바로 옆에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바둑을 둘 때 옆에서 누군가 시간을 읽어주는 것 처럼요. 마음이 조급해지고. 현재 제 상황은 '정체' 되어 있어서 무엇을 섣불리 건드리기가 힘들어지는 상황. 만약에 제가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이제는 더 이상 20대 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점.

      이런 것들은 때로는 죽는 다는 것보다는 더 힘들고 괴로운 일이랍니다.
      내 삶은 교착(膠着)상태에 빠져 있고 그 상태를 어떻게든 움직이게 해야하는데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움직이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이 시기가 너무도 답답한 거랍니다.

      사람은요. 누구나 자신이 잘 하는 것, 그리고 배우고 싶은 것, 잘 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잘하는 것을 갈고 닦는 과정에서 항상 어떤 벽에 막히게 됩니다. 처음 배울때 부터 그 벽까지는 순탄하지만 일단 그 벽에 막히게 되면 우리는 슬럼프에 빠지게 되고 그것을 극복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대로 무너지게 되는 거지요. 그 동안 쌓아오고 배워왔던 모든 것들도 한 번에 무너지게 되는 거랍니다.
      이런 무너지는 것이 싫었다면 애초부터 '도전' 이란 없었어야 하는 거겠죠.

      제가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하고 모든 상황이 현재처럼 정체되어있는 상태로 멈추기를 바란다면, 그러니까 이제껏 해왔던 모든 것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죽음보다도 제게는 더 가혹할지도 모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만둔다' 라는 것은 제가 어렸을 적 부터 해왔던 (즐겨왔던) 그런 모든 것들을 '포기' 한다는 것이지 삶을 '포기' 한다는 것은 아니랍니다.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심지어는 제게는 너무도 사치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군요.

      그러니. 님께서 제가 '자살' 할 것이 걱정되셨다면 그 문제에 있어서는 마음을 놓으셔도 되겠네요. 그러나 제 주변 사람들은 그것에 안심을 하겠지만 어쩌면 제게는 그것이 더 큰 슬픔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디선가 그랬듯이 혹은 누군가가 말했듯이. 몸과 정신이 살아있다면. 기회가 올지도 모르지요. 저는 아직 모든 카드를 다 버린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가지고 있는 카드를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뿐이고. 시간은 자꾸 흐르고. 저는 조급해지고. 이 상태에서 언제 벗어나게 될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지만. 누구도 모르겠지요?
      앞으로 자주 찾아 뵐게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음을 다시 한 번 말씀드려요.

    • Favicon of http://oseb.tistory.com BlogIcon oseb 2006.06.24 03:16 신고

      헉, 제 주특기 헛다리 짚기 였군요. 고맙습니다. :)
      아래 단편도 이 참에 읽어 봤습니다. 10원짜리 인생도 참 멋진 거란 걸 느꼈습니다. 가치없는게 없긴 하죠. 덕분에 몇년만에 단편 읽어보네요. 잘 읽고 갑니다. (워낙 책을 안 읽어서요...)

  2. 피노키오 2006.06.24 00:07 신고

    어떤 위로도 소용없겠네요.
    익숙해진다는 건 어쨌든 두려운 일입니다.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하거든요.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치면 모두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평생 같은 문제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 그것만큼 허무한 일이 또 있을까요.

    • Favicon of http://www.juliantime.net BlogIcon julian 2006.06.24 00:39 신고

      피노키오님과 제가 알고 지낸지도 꽤 되었네요. 그래서 그런지 피노키오님은 제가 어떤 부분에서 힘들어하는지를 조금은 알고 계시는 것도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 그런건지요.
      어쩌면, 피노키오님은 저보다 남은 삶이 더 길기에 저보다 더 혼란스러우실 수도 있겠네요. 선택을 해야하고, 그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언젠가 한 번 이상은 느끼실 것이고. 그것이 두려우실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저를 보고 저와 같은 실패는 하지 않으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뵈요.

  3. 피노키오 2006.06.24 08:09 신고

    글쎄요 정말 줄리안 님은 실패한 걸까요......

    외람되지만, 얼마간 '한 번 죽어볼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진심으로. 제가 선택한 길이 옳고 그르다는 문제를 떠나서 '굳이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삶이 의무가 아닌 권리인 이상 죽음을 택하는 것 역시 권리의 일부라고 믿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로 맞는 죽음. 물론, 허무하겠죠. 무의미하기도 하겠구요. 그러나 그런 건 제 삼자들이나 하는 생각일 뿐, 정작 당사자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는 순간 모든 게 끝이 나니까. 구질구질하게 남 신경쓸 거면 죽으나마나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저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죽는 게 두려웠던 건지 아니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건지는 잘 분간이 되지 않지만, 무언가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합니다. 집중해서 생각해보니, 그 무언가는 저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인간 그러니까 키 크고 몸 매 좋고 예쁜 데다가 공부도 잘하는 스무 살의 여대생이었습니다. 저는 마치 '언브레이커블'의 엘리야 프라이스처럼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심한 열등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자신과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것(그것이 현실이든 공상이든 간에)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충격이죠.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수도, 열등감으로 인해 삶의 궤도가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위험하지만 그만큼 흥미진진한 일이기도 하죠. 저는 한번 가정해보았습니다. '그녀는 과연 나처럼 죽고 싶을까'라고. 그랬더니 왠지 그럴 것 같지 않더군요. 내겐 없는 많은 것들을 가진 여자가 자살을 한다는 것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 고 애써 스스로를 설득해도 마음 한구석의 꺼림칙함은 어쩔 수가 없었죠.
    아직도 그 꺼림칙함은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정말 난감하네요. 자살하면 도피가 되고 계속 살아 있으면 이를 인정하는 꼴이 되니 말이죠. 결국 그토록 진지했던 자살문제가 장난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거 원 쪽팔려서.

    줄리안 님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수 천만 종류의 사람들과 수 억만 종류의 경우들이 존재하고 있고, 이들 중에서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판가름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요. 왕자나 거지나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마크 트웨인은 말했습니다. 좀 과격하게 의역하자면 좆방망이 휘두르는 건 누구나 같다는 말이 되겠지요.

    힘내세요. 저 역시 나름대로 분투하고 있습니다^^

    • Favicon of http://www.juliantime.net BlogIcon julian 2006.06.24 16:55 신고

      때로는 진지함이 장난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요. 그것이 비록 자신의 삶을 뒤흔들 정도의 진지함이라 할지라도 말이지요.
      키 크고 몸매 좋고 예쁜데 공부까지 잘 하는 여대생이라 할지라도 열등감 하나쯤은 있을 것이고 제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그런 아가씨도 때로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겠지요.
      아마 자신보다 더 잘난 사람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그만큼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라면 말이지요.
      피노키오님은 아직 여러가지 무기들을 가지고 있고 그 무기들의 사용법을 배우는 중이니. 저처럼 이리저리 돌고 도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씀을 드린거네요. ^^

      주말 잘 보내셔요.

  4. 나츠야 2006.06.24 15:22 신고

    포기할꺼라면 모든 걸 던져서 도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들었어.

    그게 아마 내가 살고있는 방식이겠지만

    • Favicon of http://www.juliantime.net BlogIcon julian 2006.06.24 16:56 신고

      나도 알아.
      그게 가끔 힘들때가 있어.
      망설여 지는거야.
      정말 여기서 이런 패를 내놔야 옳은 건가. 하고.
      망설임이 많아졌지. 요즘엔.

      주말 잘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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