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팸메일과 다를 바 없는 인터넷 신문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언론매체도 변화를 맞이하였다. 자취방에서는 필수 도구로 여겨졌던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은 이제 드물다. 우리 손에는 스마트폰, 패드, 노트북등이 들려있고, 아마도 우리는 하루의 시작을 이러한 디지털 도구들로 인해 뉴스를 접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모 일간지의 인터넷 웹사이트 광고다. [남성전용]으로 시작하는 낯뜨거운 광고의 문구가 보인다. 청소년들도 아무런 제한 없이 접속할 수 있는 '언론' 매체 웹사이트에 저런 광고가 보인다는 자체가 이 사이트는 '성인인증'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포탈사이트에서 기사만 클릭해도 이런 광고를 볼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돈이다. 요즘 시대에 성은 잘 팔리는 상품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가장 먼저 알려야 할 언론의 웹사이트는 이렇게 성과 돈에 물들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터넷 신문들을 읽기란 쉽지 않다. 특히 PC를 이용해서 이러한 뉴스들을 볼라치면 우리는 기사보다 더 많은 광고들을 보아야 한다. 어떤 인터넷 매체는 기사 한 가운데 광고가 버젓이 올라와 있고, 우리는 기사를 읽기 위해 그 광고를 클릭하여 꺼야한다. 그러나 어떤 광고는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광고의 내용이다. 언론매체의 수익구조가 광고에 의존하는 방법 밖에 없다면, 그들의 '광고도배'는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광고의 내용은 다른 문제다. 성과 관련된 광고들이 버젓이 올라오고 있으며, 성형을 유도하는 광고, 다이어트 광고들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광고들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들 언론매체들은 양심을 성에 판 것이다. 성인광고를 올리고자 한다면 그 매체는 당연히 19금 딱지가 붙어야 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19금' 딱지는 붙어있지 않다. 무심히 기사를 읽으며 밑으로 화면을 내리면 보이는 광고들이다. 이러한 성인광고들은 심지어 기사를 읽는 내내 따라다니기도 한다. 이러한 광고는 진보/보수를 따지지 않는다. 대다수의 인터넷 언론들은 이와같은 선정적인 광고를 달고 있다.


 

 

<모 인터넷 언론의 기사창이다. 기사를 읽는 내내 우측의 광고가 따라다닌다.>

그렇다면 해외 인터넷 매체도 우리나라 처럼 이렇게 지저분 한가. 그렇지 않다. 일본이나 미국의 인터넷 언론 매체에도 광고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살아움직이는' 광고는 아니다. 그저 화면 한 쪽에 얌전히 자리를 잡고 있을 뿐이다. '성인용' 광고는 눈에 띄지 않는다.


 

<외국 신문또한 광고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인터넷 매체처럼 복잡하고 지저분하지 않다. 그냥 화면 한 구석에 얌전히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광고 내용 또한 우리나라에 비하면 건전한 편이다.>

성범죄가 난무하고 있는 이 마당에 인터넷 언론 매체의 '선정적 광고'를 집어 넣는 것은 비약이겠지만, 어쨌든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매일 습관적으로 보게 되는 '인터넷 뉴스 매체'에 이런 광고들은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차마 클릭하기도 두려운 성인광고들을 아이들이 뉴스를 보다가 무심코 클릭하기라도 한다면? 이미 인터넷 자체가 '선정성'으로 물들어 있다. 인터넷에 청정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언론만이라도 이런 부분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는 않을까? 성인광고를 넣으려면 어떻게해서든 미성년자들의 접근을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스팸메일을 보내는 이들보다 이러한 언론매체가 더 괘씸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2. 제목으로 낚시하는 기자들

생전듣도보도 못한 인터넷 매체들이 있다. 주로 연예 뉴스 쪽에 많이 보인다. 언제 생겨났는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곳들이다. 이런 매체들의 기사는 하나같이 어딘가 부족하다. 일단 내용부터가 부실하다. 맞춤법이 틀리기는 예사고 기본적인 문장 부터가 안되는 기사들도 왕왕보인다. 최소한 메이저 일간지 기사들을 흉내라도 내보려는 시도 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이들의 기사 내용이 아니라 기사 제목이다. 이른바 '낚시' 기사들이다. 제목으로 사람들을 클릭하게끔 유도하는 것인데 실제로 내용은 별볼일 없다. 연예 프로그램이 방송하면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다가 실시간으로 기사(라고 부를 수 있다면)를 작성하고 올린다. 화면은 컴퓨터 화면을 캡춰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이런 기사를 쓰는 기자들에게 '취재'란 그냥 방에서 TV를 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과연 '기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러한 낚시 기사들은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정치, IT, 연예, 스포츠를 막론하고 낚시 기사는 늘 존재한다. 낚시에 속는 그대들이 병신이라고 주장한다면 할말이 없다. 그러나 아무런 내용도 없이, 선정적인 제목을 내세워야만 사람들이 기사를 읽는다면, 그런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소양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기자란 '언론'인이다. '언론의 양심'이란 말은 어디 외계어처럼 갑자기 나타난 말이 아니다. 70년대 신문들을 읽어보면 기자들이 얼마나 진중하게 기사를 썼는지 알 수 있다. 요즘 기자들은 심지어 '블로거'들 조차도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영화 'State Of Play'를 보면 서양에서 블로거들의 활동을 짐작이나마 할 수 있다. '블로거' 조차도 언론인으로써의 마음가짐을 갖고 취재를 하며 블로깅을 한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진실'이다. 설령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그 취재과정의 성실함을 본다면 그 기사들은 훌륭한 기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편하게 방에서 앉아 연예 프로그램의 줄거리를 화면 캡춰와 함께 올려 놓는다면 그것을 과연 기자가 취재하여 쓴 기사라고 할 수 있을까?

3. 마치며

나는 현재 인터넷 언론의 병폐 두 가지를 언급했다. 갑자기 몸이 안좋아져서 이정도 선에서 글을 마무리 할 수 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조금 더 조사를 하고, 인터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몸이 좀 건강해진다면, 충분히 다시 한 번 이 주제로 블로깅을 해 볼 예정이다.

나는 블로거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블로그'도 언론이라고. 1인 언론이다. 블로거들은 다른 메이저급 언론보다 제약이 더 많다. 일단 취재부터가 쉽지 않다. 블로그를 '용돈벌이'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블로거들도 '언론의 양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우리 블로거들은 자유롭다. 메이저 언론사들은 의외로 여러가지 제반사항들에 영향을 받는다. 정권이 바뀌면, 언론도 바뀐다. 그러나 블로거들이 제약을 받는 것이라고는 고작 '정식 언론매체'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점 밖에는 없다. 그런데 그 '정식 언론매체'들의 실상은 어떠했는가. 광고는 선정적이고, 기사들은 성의가 없다. 나는 이들을 '정식 찌라시'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진실은 TV 캡춰 화면에 있을 뿐.

보다 자유롭고, 보다 진실하며, 보다 용기있는 블로거가 되는 것이 내 바람이다. 블로그 하나 운영하는 주제에 너무 거창하다고? 이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글로써 세상에 뭔가를 보여주는 이들의 기본 마음가짐이다. 이 조차도 생각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우습다고 느껴지는 이들의 글은 그저 상업주의에 물든 찌라시 정도밖에는 되지 않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1. BlogIcon ㅇㅇ 2012.08.23 12:31 신고

    블로그는 신의 한수였습니다

얼마 전에 옥주현 나가수 탈락 관련 기사가 인터넷 포털 메인에 떴다. 기사를 읽으면서 뭔가 어색함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자세히 읽어보니 이건 무슨 개인의 일기를 읽는 기분이었다.

옥주현은 인터뷰에서 "...." 라고 했다. 

그는 이어서 "...." 라고 했다. 

옥주현은 또 "..." 라고 했다.

그는 이어서 "...." 라고 했다.

옥주현은 또 "...." 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 라고 했다. 

 
기사는 시종일관 이와 같은 식으로 적혀 있다. 명색이 기자라면, 비문학 관련해서 으뜸가는 글쟁이들 아닌가? 촌철살인의 글솜씨로 독자들을 휘어잡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기자라는 직업이다. 그런데 위의 구성은 단순히 대학생들 레포트 수준 밖에 안되는 문장력이다. 이래서 어디 기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 기사에서 잘못된 점은 일단 하나, 혹은 둘로 묶을 수 있는 옥주현의 인터뷰 내용을 여러부분을 나누었다는 것이다. 정리가 안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라고 했다'가 남발이 된다. 

오늘 메인 포탈에 뜬 또 다른 기사를 보면 맞춤법이 여러개가 틀린 기사를 볼 수 있었다. 급하게 써서 오타가 나는 경우랑은 틀리다. 기사 내용도 급한 속보 같은 것이 아닌, 기획 기사인듯 싶었다. 맞춤법이 틀려버리니 댓글에서는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것이 기자의 소양이다.

요즘 우스개 소리로 '기자 아무나 한다' 는 말들이 있다. 맞다. 기자는 아무나 하는 모양이다. 인터넷 취업 사이트에 보면 기자를 구한다는 구인광고가 잔뜩있다. 자격 요건도 제한 사항은 거의 없다. 일단 기자가 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스킬 같은 것은 보지 않는 모양이다. 어쩌면 신문사나 잡지사에서 '맞춤법 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요즘 기사들을 보면 읽는 맛이 없다. 아무리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기자라 할지라도(그런데 실제로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기본적인 문장력은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제목이 좀 과격했다. 그래도 나는 이 글은 꼭 쓰고 싶다. 아마 대다수의 인터넷 매체들은 자신들만은 '찌라시'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론'을 펼치고 있으며, 대중에게 공정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솔직히 누구나 착각은 한다. 그것이 '인터넷 언론 매체' 일지언정.

한때 채팅방에 들어가면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이' 이러면 버릇없다고 채팅방에서 강퇴당하던 90년대 초반이다. 그 때도 물론 난잡하게 활동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안에서도 일종의 예의라는 것이 있었다.
그 시절의 '사용기'나 '감상기', '소개기' 등은 지금 생각해봐도 세련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정하고, 느낀점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표현하려 함과 동시에 개성도 있었다. 그 때는 정말로 '정보'를 얻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읽고 있는 글 하나하나는 모두 '정보' 였던 것이다. 그런 글들을 '캡춰' 해두고, 메모장에 복사해 두고두고 읽은 적도 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기사거리라고 클릭해서 봤는데 맞춤법 틀리는 것은 예사다. 오타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다. 급하게 쓰다보면 오타정도야 있을 수 있겠지. 그런데 맞춤법이 틀린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것뿐인가? 문장의 문맥이 어색해서 이 기사를 쓴 사람이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눈꼽만큼이라도 배웠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정보또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기 힘들다. 어디 외국 매체를 번역해왔는데 그 번역이 오역이 되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차라리 그 기사에 딸려 있는 '덧글'이 더 읽을만 하다.
낚시성 제목에 내용은 뭣도 없는 기사들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든다. 마치 예고편의 화려한 액션을 보고 그 영화를 보러 갔는데 예고편의 액션이 전부인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이 경우는 돈이 아깝겠지만 낚시에 걸려들어 읽은 기사를 보고 난 후에는 시간이 아깝다.

이런 영양가 없는 기사들은 인터넷 난독증을 양산한다. 제대로 된 글이 없으니, 제대로 읽지를 못하는 것이다. 명색이 다수의 대중들에게 알려야 하는 글이라면 세련미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 기본조차 되어있지 못하니 대중들은 점점 난독증에 걸려서 이게 무슨 글인지 이해를 못하게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기사들 조차 이해할 수 없는 글들이 태반이니까. 최대한 옳게 이해하려 해도, 그 범위는 한정되어 있어서 내 생각에 '이해' 라는 조각을 그저 억지로 끼워맞춘 것에 불과하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인터넷 얼론 매체들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공정성? 기대하지도 않겠다. 제발 낚시성 기사나 이해불가 기사들은 좀 지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소한 기본적인 정보전달의 기능만은 충실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글들을 읽은 사람들은 나중에 그것에 익숙해져서 결국 제대로 된 글 조차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앞으로 인터넷 매체들은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일자리 창출에는 기여할지 몰라도 질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우울해진다. 정확한 정보전달이야말로 언론이 가져야 할 미덕이자 모토여야 한다. 독자들도 주의해야 한다.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걸러서 읽어야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아니다 싶으면 얼른 버리는 것도 좋다. 인터넷이 발전되어 더 많은 정보와 더 편리해질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깨진지 오래다. 인터넷은 마치 옛날 난지도 쓰레기장 같다. 정보의 무덤이 바로 인터넷이다. 그러니 우리는 무덤속에서 보물을 찾아 헤매는 것과 다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보물을 찾아 모험을 하기에는 글쎄, 너무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닐까?
루저라는 이름의 태풍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심지어는 아이폰을 쓰지 않으면 루저라는 말도 돌고 있다.[각주:1]
그러고 보니 그룹 AyreonThe Human Equation 이라는 앨범에도 루저라는 곡이 있었지.



                                                          * Ayreon - Loser

루저라는 단어가 하나의 사회적 용어로 떠오르면서, 남들보다 뒤쳐진다 싶으면 일단 루저라는 단어부터 쓰고 보게 된다.
위에 잠시 언급한 아이폰도 그러한 예 중에 하나일 것이다. 사전적의미로 Loser는 패배자를 뜻한다. 그러니 남들보다 뒤쳐지면, 혹은 남들이 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또는 남들과 다르면 일단 루저가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인생을 이제 절반 정도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최근처럼 세상이 재밌고 변화무쌍하게 돌아간적은 또 없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주변을 좀 더 둘러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이러한 루저 열풍은 한동안 계속 지속될 듯 하다. 어쨌든 가뜩이나 힘든 사람들은 거기에 루저라는 딱지하나 더 붙이고 살게 되는 셈이다. 사실, 이 시점에서 언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가만히 보면 언론에서는 이 루저라는 단어가 마치 하나의 기회인양 여기저기 써먹고 다니는 것이다. 위에 언급했던 아이폰 기사도 그렇다. 일단 헤드라인 부터가 '아이폰' 안지르면 루저? 다. 가만히 읽어보면 루저 이야기는 맨 첫 줄에 한 번 나오고 끝난다. 굳이 루저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될 제목인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기자의 가벼움 에서도 말했듯이 요즘에는 기자들의 소양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하여튼 언론들은 이때다 싶어서 루저를 이리저리 마구 써먹는 중이다. 그 말에 상처를 입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텐데, 아랑곳 하지도 않는다. 그저 기사만 쓰면 된다. 이것은 솔직히 미디어의 횡포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루저라는 단어를 문제시 삼고 있는 척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도 이 단어를 잘 써먹고 있는 것이 언론 아니던가?

그러니 세상 참 개판이다. 별의 별 일들이 다 벌어지는 것이다. 언론은, 그것이 나쁘다고 말하면서도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 있는자와 없는자를 나누기 바쁘다.
그래서 말하건데.
언론사들이나 기자들 중에서도 루저들이 있겠지?



  1. http://news.hankyung.com/200911/2009112537367.html?ch=news [본문으로]
예전에는 언론고시라는 말이 있었다. 기자되기 얼마나 어려웠으면 언론고시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 만큼 기자가 되기위해서는 사회전반에 걸친 학식이 있어야 하고 맡은 분야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뜻일것이다.

이삼 일 전 윈도우 7 과 관련해서 주로 포스팅을 올리던 한 블로거와 IT관련 사이트의 기자와 마찰이 있었다. 윈도우 7과 관련해서 그 블로거에게 꽤 많은 정보를 얻어가고 있던참에 본 씁쓸한 사태였다. 오해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기에는 썩 유쾌하지 못한 모양새였다.

블로그가 생겨나고, 거기에 팀블로그로 까지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다. 요컨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기자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적인 면을 제외하면, 사실 열정만 있다면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특정분야에 특화된 블로그의 팀원들은 종종 기자라는 직함을 달고 다닌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쉽게 기자처럼 행동하면서도, 그 기자라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데 바로 보도윤리라는 것이다. 단지 기자라는 이름만으로 아무렇게나 펜을 휘갈기면 그것으로 진정한 기자로서의 자기 소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어렵지 않게,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기자라 칭한다면, 적어도 기자라는 이름에 걸맞는 행동을 보여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고 있자면 참으로 한심스러운 기자들이 많다. 과연 그들이 기자가 맞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럽기조차 한데 어쨌든 이름만 들으면 다 알만한 일간지의 기자들 조차도 그러니 하물며 인터넷 상에서 팀블로그 하나 만들어 놓고 기자라 칭하는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나는 기자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메이저의 기자들이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것들을 블로거들이나 여타 군소사이트의 기자들이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경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마이 뉴스도 사실 그렇게 시작했던게 아닐까?
그런데 최근에는 기자들이 정보전달의 의무에 앞서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기자일까? 아니면 개인 블로거인가? 개인 블로거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겠지만 한 매체의 기자라는 직함이 있다면 그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고발이라는 차원에서 기자의 소임을 다 했다고 본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기사를 터트리기 전에, 이 기사가 과연 공정한 것인지, 옳고 그름이 확실한 것인지의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능력이 바로 기자의 능력이다.
사회의 어떤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면, 그 부조리에 대한 정확한 사전 조사가 밑바탕이 되어야 가능할 것인데 최근에는 너무도 쉽게 기사를 써 내려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기사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한 채 일파만파 논란만 커져갈 뿐이다. 정확하지 못한 소스를 근거로 개인의 판단해 의존하여 쓰는 글은 기사가 아닌 그저 개인 포스팅에 멈출 뿐이다. 그래서 기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확실한 소스, 즉 정보다.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근거를 독자들이 수긍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저 인터넷을 떠돌아 다니는 또 하나의 찌라시가 될 뿐이다.

기자가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은, 일반인이 알지 못하는 사회의 부조리를 꿰뚫을 수 있는 통찰력이다. 그리고 그 통찰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보를 바탕으로 해야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또 기자였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발로 뛰면 그래도 괜찮은 기삿거리를 포스팅 할 수 있는 요즘 세상에, 넘쳐나는 기자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종류의 가벼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기자들이 늘어날수록 정보의 양도 늘어나지만, 반면에 그 정보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
그저 그 기사를 읽는 개인개인이 알아서 걸러 받아들이는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제대로 된 기자가 쓴 제대로 된 기사를 걸러서 볼 수 있는 통찰력을 독자들이 키워야 하는 것이다. 노력해야 할 것은 기자보다는 독자들이니, 참으로 재미있는 시대가 아닌가?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