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 대한 추억이 있다.
1996년.
처음 전문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는 기차를 타고 학교를 갔다. 사실, 기차를 타고 학교를 통학한다는 것이 될법한 일인지나 의심스러웠다. 학교는 천안에 있었고, 그래서 나는 어머님에게 학교 근처에서 자취나 원룸을 시켜달라고 해보았지만 당시로서는 가당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차를 타고 다녔다. 비둘기호, 통일호, 무궁화호...새마을호는 학생이 타고 다닐 기차가 아니었다. 무궁화호도 사실 비쌌다. 비둘기호는 너무 낡았다. 통일호가 그나마 타협점이었다. 아직 동시상영관이 남아있었던, 그런 시절이다.

나는 지금도 기차를 탄다.
일주일에 두 번. 많으면 세 번도 탄다. 기차의 속도는 내가 체감하는 나이와, 시간 만큼이나 빨리 달린다. 처음 KTX를 탔을 때, 시속 300km를 달리면서도 별 감흥이 없었던 것은, 이제 서른의 중후반에 들어선 나의 시간이 고속열차보다도 빨랐기 때문은 아닐까.
과거 기차역에는 사람들, 이야기들, 그리고 로맨스와 낭만이 있었다. 내가 기차를 기다리며 서 있던 자리에서, 아마 어떤 연인들이 키스를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서, 꿈에 부풀어 서울에 상경하는 젊은이가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 낡디낡은, 정거장마다 다 정차하는 기차의 창가에 앉으면, 낯선 시골의 모습들이 신기했다. 기차는 느릿느릿, 마치 밖의 풍경을 천천히 감상해보라는 듯 움직였고, 기차의 맨 뒷칸에 서서 멀어져가는 풍경을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었다.
졸다가 정차역을 못내려 신탄진에서 내린 기억이 있다.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다음 기차시간을 기다리며 어딘가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가 레포트를 썼다. 기차가 너무 흔들려 객실에서는 글씨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기차에 올라탄 적도 있었다. 기차의 경적 소리는, 젊은 시절의 포효였다.

오늘이었던가. 나는 문득 기차역에 서서 외로움을 느꼈다.
바람이 불었고. KTX는 몇 분 지연도착을 한다며 방송을 했다. 사람들이 서 있었고...그 사람들의 표정도 아마 나와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도 나를 보며, 공허한 뭔가를 느꼈겠지.
우리나라와는 지리적인 여건이 틀린 미국의 경우에 비행기가 기차의 역할을 대신 하고 있을 것이다. 조지 클루니가 주연을 맡았던 '업 인 디 에어'를 봤을 때, 나는 묘한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다. 시간에 맞춰 기차표가 있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당황한다. 포인트를 적립하고, 사람들이 서 있는 승강장에 서서, 내가 타야할 기차가 언제 도착하는지를 기다린다. 때로는 천안에서, 때로는 아산에서, 때로는 대전에서.
나는 항상 기차를 탄다.

비둘기호와 통일호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기차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과자와 계란과 귤과 음료수가 가득 담겨 있던 카트를 끌던 승무원도 점점 사라져간다. 내가 서서 기차를 기다리던 자리에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나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모두가 기차 안에서 스마트 폰과 노트북을 들고 주식을 살펴보거나 웹서핑을 한다. 기차가 너무 흔들려, 레포트를 못 쓸까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요즘의 기차에서는 잊혀져가는 것들이 많다.

오늘 기차를 기다리며, 뭔가를 잊고 사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문득 여기에 내가 왜 서 있는지를 곱씹어보았다. 왜 나는 기차를 타야 하는지. 나는 이 기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 것인지. 이 기차가 나에게 어떤 목적을 주는지를 생각해본다.
그러자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차가운 겨울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할 무렵 저 쪽에서 기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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