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년기

나는 유치원은 다녀본적도 없다. 그 대신 개인 교사 한 명이 기억이 난다. 그 외에는 학습지와 아버지의 '조기교육'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내가 할 수 없는 뭔가를 하고 놀던 나이...6살인가 7살무렵에 나는 내 최초의 창작품을 만들었다. 그것은 동시였고 제목은 아마도 '가을' 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회사에 그 시를 자랑했고 회사 사람들은 나에게 배구공을 선물로 주었다.

물개 종류의 동물이 나오는 5분 만화가 있었는데 나는 그 만화만 보면 울었다.

그리고 스누피가 나오는 만화를 보면 울음을 그쳤다.

나는 병약했다. 의사는 내가 몇 년 못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백일기침 같은 것이었고 나는 어릴적 내내 기침만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다른 아이들보다 일년 늦게 들어갔다. 그것이 초등학교 시절 내 컴플렉스였다. 어쨌든 나는 1년동안 아팠다. 어머니는 내게 오만가지 약들을 먹였다. 의사는 틀렸다. 나는 꽤 오래 살고 있다.

- 초등학교

나는 공부를 잘했다.
그리고 욕심이 많았다. 공부잘하는 아이는 수업시간에 어떤 자세로 공부하는지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 아이가 쓰는 문제집, 연필, 필통, 지우개를 샀다. 그래도 나는 반 일등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초등학교때 많이 까불었다. 6학년때 담임선생님은 내가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 나는 방송반에 가입했다. 그 곳에서 20년지기를 만났다. 초등학교 시절 유일한 좋은 추억.

- 중학교

공부를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중학교는 만만치 않았다. 나는 중학교에 올라가서 처음 본 시험에서 반에서 11등을 했다. 아버지는 반나절 동안 나랑 말도 하지 않으셨다.

비디오를 처음 구입했다. 그리고 내가 비디오 가게에 달려가서 가장 먼저 빌려온 영화는 '백야'. 이 영화는 아마 내 인생 최고의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와 그레고리 하인즈의 실루엣, 그리고 라이오넬 리치의 노래.

중학교 3학년이 되어 나는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 지금은 페이퍼의 기자로 있는 '김양수' 씨가 케텔 백일장란에 올려놓은 '재즈' 라는 소설을 보고 나도 소설이 써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락' 이라는 단편을 썼다. 김양수씨도 칭찬해주었고 무엇보다도 그 시절 '아틀란티스 광시곡' 이라는 소설로 유명했던 이성수씨도 나를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수 많은 습작을 쓰기 시작한다.

- 고등학교

음악을 알기 시작했다.
일렉트릭 기타도 구입했다.
절의 학생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종교에 관대한 편이다. 중학교는 기독교 미션스쿨이었고 고등학교는 천주교 미션스쿨이었다. 그러나 내 종교는 불교였다. 불교 학생회에서 3년간을 활동했다. 도선사와 화계사 두곳. 화계사는 2년을 넘게 활동했다. 즐겁지만은 않았던 시절.
기타 레슨을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받으러 다녔다.
소설을 열심히 쓰기 시작. 나는 그 시절에 다작을 했다. 그러나 어느날 누군가가 내게 '다작은 졸작을 낳는다' 라는 말을 했다. 그 이후 나는 다작을 자제했다.

내 고등학교 성적은 거의 바닥.

다른 아이들이 열심히 문제집을 보고 있을 때 나는 소설을 읽고 쓰고 독서토론 모임을 다녔고 기타를 배웠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재미가 없었다.

- 20대

내 20대는 우울하기 그지 없다. 재수, 대학, 군대, 재수, 대학, 재수, 재수, 대학의 패턴을 밟았다. 내 20대는 이런 재미없는 일들로 얼룩졌다.

처음으로 1시간짜리 라디오 프로에서 초대손님으로 나왔다. SBS가 아직 AM이었을 무렵.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 대표 자격으로.

많은 것에 관심을 갖고 많은 것에 시들해졌다.

종교에 대한 가치관이 바로 잡혔다. 내 생각에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교를 믿으며 그들은 연약하다. 먼저 자신을 믿을 수 있어야 종교를 올바르게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신에게 소원을 비는 짓은 헛짓거리에 불과하다.

나는 고민이 생겼을 때 절에 가는 버릇이 생겼다. 대웅전에서 절을 세번 하고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마시고 부처님께 질문한다.
"내가 이런 고민이 있는데 부처님은 이럴때 어떻게 하셔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내 고민이 정리 될 뿐.

대인관계가 학창시절보다 원만해지다.

유년시절에 의사가 몇년 못살거라는 말과는 다르게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왔다. 그것도 11사단이라는 부대로. 그 부대가 행군만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허약체질임에도 불구하고 행군은 잘했다.

그러다가 군대에서 무릎수술을 받았다. 안받으니만 못한 수술이었다고 생각한다.

- 30대

내가 서른이 되던 해. 나의 첫 번째 책을 썼다.

내 생전 처음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주변의 누구도 내가 법대를 입학하고 법대를 졸업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지방대지만.

내 생전 처음으로 취직을 했다. 대학에 조교로 취직을 했는데 국민연금, 고용보험, 의료보험이 빠지는걸 보면 아르바이트는 아닌 모양이다.

주변의 누구도 내가 '취직'을 할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취직했다는 말을 듣고 아마도 내가 오래 버티지 못할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지금, 꽤 잘 개기고 있는걸 보고 놀라는 사람들도 있겠지.

사랑하는 여자를 회사에서 만났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즐겁다. 불완전하게 조각나 있는 나를 하나 둘 씩 맞춰준다. 그녀가 나를 완성시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를 마음의 안정을 갖게 된다.

그녀와 함께 거실에 서재를 만드는 꿈을 꾼다.

장사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장사를 하면서 사람들에 대한 여러가지를 배우게 되었다. 인간의 본성과 믿음에 대한 것들. 내 생각에 사람을 보는 눈이 냉정해진것 같다.
장사는 내게 돈의 가치를 알게 해준다.
돈의 흐름과 시장경제의 상황이 대충 느껴지기 시작한다. 장사란 새로운 형태의 사회학이다. 경제와 인간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다.
장사꾼들은 모두 경제학에 도통한 사람들 같다.

처음으로 공모전 본심에 진출해보았다.

아직도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내 인생의 절반은 어쩌면 무의미하게 흘렀을수도 있다.
그러나 그 무의미의 이면에는 어떤 중요한 메시지도 담겨있다.
그것을 느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지난 32년은 아깝지 않다.
한때 비참했던 마음을 정리해가는 기간이다. 나는 이제 강해졌다. 복수심에 이를 갈던 시절은 지났다. 사물을 삐뚤게 보던 시절도 지났다. 내 미래를 준비하는 것만이 눈앞에 남아있다. 나의 성공이 곧 복수라는 것을 깨닫기 까지 오랜시간과 비참한 삶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준비를 하는 과정에 들어섰다. 회사에 취직해서 이제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내 또래들이 아직도 적은 연봉으로 허덕거리고 있을 때, 그리고 얕은 꿈을 꾸면서 삶을 지속시키고 있을 때 나는 보다 깊은 꿈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이다.

그러고 보니 내 손에 쥐어진 내 인생의 마지막 패를 던질 때가 다가온것 같다.
빠른 시일안에, 나는 내 꿈속으로 잠수를 할 것이다.
그 깊은 꿈속에서 보물 상자를 찾았을 때.
나는 다시 내 나머지 절반의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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