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나 허구입니다.


영화가 처음 시작하면 등장하는 문구이다. 그러나 이 문구는 모순적이다. 이 영화가 실화이기도 하면서 허구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영화 <변호인>은 '실화'와 '허구'사이의 경계선에 간신히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양우석 감독은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나 허구입니다'라는 대전제를 깔아둠으로써 '정치적'이라는 공격에 대한 방어막을 미리 쳐놓았다. 그러나 영화를 본 사람들이면 누구나 이 영화가 '실화'일 것임을 알 수(혹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허구라는 것은 등장인물들에 국한된다. 이 영화의 실제 사건은 1981년 '부산 학림사건(부림사건)'이다. 부림사건의 시초는 1980년 '학림사건'이다.(예상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여기 등장하는 '학림'은 대학로의 '학림다방'을 이야기한다.) 이 영화에서 허구란, 그렇다면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고문책임자 '차동영(곽도원)'의 존재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과연 '허구'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대부분의 상황은 부림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문제는 영화가 시작 전 등장한 바로 저 문구이다. 

실화와 허구사이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영화는 <노무현 프리퀄>이다


<변호인>을 보고 느낀 것이 있다면, 이 영화는 결국 '노무현'의 '프리퀄'이라는 것이다. <변호인>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실화'이다. 그러나 등장인물 '송우석(송강호)'은 '허구'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변호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거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변호인>을 실화로 보는 이들에게는 '노무현 프리퀄'이며, <변호인>을 허구로 보는 이들에게는 그저 '속물 변호사의 영웅담'정도로 생각될 것이다. 

어쨌든 이 영화의 근본 서사는 '영웅담'이다. 


돈을 밝히는 속물 변호사 -> 돈을 많이 벌고 성공 -> 어떤 계기로 인해 인권에 눈을 뜸 -> 주변에서는 비웃음 -> 하지만 굴복하지 않고 꾸준히 투쟁 -> 결국 영웅이 됨


이와 같은 서사는 일반적인 영웅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이다. 물론 악당도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악당의 종말을 볼 수 없다. 악당 '차동영'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영화는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이것이 일반적인 '영웅담'과 다른 점이다. 


악당은 여전히 존재한다


<변호인>의 주제는 바로 '여전히 악당은 존재한다'가 아닐까? '차동영'은 마지막 법정신을 끝으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어떻게 되었다는 언급도 없다. '차동영'은 그냥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과연 사라져 버린 것일까? 어쩌면 '차동영'이라는, 그 시대를 대변하는 '악'의 존재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변호인>은 사실 '노무현'의 영웅담이라거나, 과거의 이야기를 되새김질 하는 것이 아닌, 아직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악'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양우석 감독이 생각하는 이 영화의 '주제'는 아닐까.


다시 한 번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허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화 = 노무현'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정치적'이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변호인>은 '노무현'이라는 한 변호사의 이야기, 그러니까 '노무현 비긴스' 라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실화'라는 것은 사실 이러한 '노무현 영웅담'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변호인>에서 '실화'란 이 영화에서 '허구'로 등장하는 캐릭터 '차동영'이다. '차동영'은 사라져버렸지만 어떤 종류의 처벌을 받거나 결말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 시대 어딘가에는 '차동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의 종말을 목도하지 못했으므로.   

그래서 이 영화를 '정치적'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우리는 숙고해봐야 할 것이다. 


<변호인>은 노무현을 미화하지 않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트릴로지>는 배트맨의 이야기지만 배트맨을 미화시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배트맨은 '자경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배경은 부림사건을 하고 있으며 노무현을 모델로 하고 있지만, 결국 노무현이라는 한 인간에게 포커스를 맞췄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변호인>이 이야기하고 싶은 인물은 '차동영'이기 때문이다. 

<변호인>은 뻔한 영화다. 사실 내 기준에서 본다면 영화적 재미도 좀 별로였다. 송강호의 원맨쇼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이돌' 임시완과 곽도원의 연기가 일품이었다는 점 빼고는 여느 한국영화와 크게 다를 바 없어보였다. 그러나 <변호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것은 '차동영은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라지지도 않았다. '차동영'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해 있는 것이다. '차동영'이 보였던 그 폭력이 '유형'에서 '무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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