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함 때문에 지하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시간의 압박으로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지하철에 익숙하지 않아 방향이 헷갈려서 역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 한 분에게 방향을 여쭤보게 되었다. 그 분은 서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내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을 해 주셨고, 나는 천천히 지하철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아이폰으로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 되는데 굳이 왜 물어봤을까?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어떤 낯선 씁쓸함을 맛보았다. 아이폰으로 확인하면 될 걸 굳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시간을 빼앗아 가며 물어보았다는 사실이 왠지 남한테 폐를 끼친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엔 하다못해 피처폰에도 지하철 노선도가 있는데 왜 굳이 나는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쳐가면서까지 길을 물어보았을까?

혹시 내게 어떤 습관 같은 것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스마트 폰이 대중화되어가면서 모든 것이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해졌다. 버스를 기다리며 담배를 빼어물고 불을 붙였다가 막 타려는 버스가 도착했을 때 아깝디 아까운 장초를 버려야 했던 시절은 지난 것이다. 어플리케이션 하나면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을 알 수 있다. 그 시간의 오차도 매우 적어서 때로는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집에서 불편하게 기차표를 예매해야 하는 일도 없어졌다. 그냥 버스를 타고 가면서 스마트 폰으로 예매를 하고, 서울역에 가서 '무인 승차권 발급기' 같은 기계로 내 정보만 입력하면 바로 표가 나온다. 어디 그 뿐인가? 영화가 보고 싶다면 '앱'으로 예매를 하고 역시 '발급기'로 발급받으면 끝이다. 동영상이 보고 싶어지면 인코딩 노가다를 할 필요도 없다. 밖에서 원격으로 컴퓨터를 켜고, 실시간 인코딩을 하면서 영화를 보여주는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언제 어디서든 배터리가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 편리함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편리함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종류의 건조함을 동반한다.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는 '끈끈한 감수성' 같은 것이 없는 것이다. 예컨대 기차표를 예매할 때, 사람들 틈에서 줄을 서고, 매표소에 있는 직원과 기차 시간을 '의논'하면서 표를 구매하는 일은 이제 차츰 사라져가고 있다. 집에 전화를 걸어서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컴퓨터좀 켜달라고 말 할 일도 없다. 자동 매표기가 있는데 굳이 매표소 직원과 없는 표좀 구해달라고, 다시 한 번 확인해 달라고 실랑이를 할 필요도 없다. '기계의 안내 문구 하나면 포기도 쉬워지는 세상'인 것이다.

낯선 사람과 페이스 투 페이스로 소통을 하는 시대는 이미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타인과 소통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들이 스마트 폰의 편리함으로 사라져 가는 것이다. 버스 노선을 모를 때, 친절하게 어떤 버스를 타서 어디에서 갈아타고 어디서 내리면 된다는 식의 '기본적인 소통'은 한낱 '어플리케이션' 하나로 무너져 내린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소통, 즉 '소셜 네트워크'가 과연 이러한 '페이스 투 페이스' 식의 소통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트위터나 페이스 북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인가? 불특정 다수의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고 '인맥'을 쌓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결국 숫자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상에서 나 홀로 절규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는가? 메신저 어플로 절친한 친구와 시도때도 없이 대화를 나누고, 영상통화로 서로의 얼굴을 본다고 한들, 결국 휴대폰의 배터리가 떨어져 나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꺼진 검정색 화면에서 보여지는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란 사람 대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 '디지털로 걸러지지 않는' 시선과 소리로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소통은 종말을 맞이한 것 같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는, 언젠가 내가 말했듯이 점점 더 '인간처럼' 변해가지만, 인간은 점점 더 '기계처럼' 되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소통은 프로그래밍으로 만들어진 '기계' 혹은 '디지털'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컴퓨터나 스마트 폰을 한 번씩 거쳐가는 것이다. 컴퓨터 대 컴퓨터, 스마트 폰과 스마트 폰의 대화. 우리가 흔히 '소통'이라 부르는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 방식의 대화는 컴퓨터나 스마트 폰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인간의 대화'가 아닌 '기계간의 대화'와 다를바 없다. 영화표나 기차표를 예매할 때, 우리는 편리함때문에 기계를 이용하는데, 그것은 곳 기계와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은 식이다.
아무리 기계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나오고, 아무리 인간이 조작하는 컴퓨터로 대화를 나눈다고 한들, '사람 대 사람'과의 대화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언젠가 '카카오톡'으로 프로젝트 회의 같은 것을 한다는 기사를 언젠가 봤을 때 나는 아연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흥분하며 그 열기를 느끼면서 토론을 하는 모습도 이제 자취를 감추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는 나도 '컴퓨터'를 이용하여 이 글을 쓰고 있다. 이것이 곧 소통이라며. 그러나 가끔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남길 때면, 아까도 말했듯이, 아니 이건 '사람 대 사람'의 대화가 아니니까 '아까'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든 위로 올려 내가 한 말을 볼 수 있으니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허공에 대고 홀로 외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러자면 내 자신이 한없이 불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공감을 하고, 혹은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그들의 그러한 모습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소통은 종말을 고한것 같다. 1990년대, 내가 아직 고등학생이었을 때, 처음 PC통신을 접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비록 그 때도 '디지털을 한 번 거쳐서' 대화를 나누었지만 왠지 그 시절에는 아날로그식의 감성 같은 것이 있었다. 모뎀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전화는 언제나 통화중이었다. 가끔씩 전화를 써야 할 때는 PC통신을 이용하지 못했다. 모니터가 꺼지고, 대화가 멈췄을 때의 여운을 다음 날 혜화동의 어떤 술집, 혹은 카페에서 풀었다. 공허함은 잠시였고,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아직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낡은 컴퓨터와 전화기에서 사람의 냄새가 났던 것도 같다. 진정한 '소셜 네트워크' 식의 소통은 어쩌면 그 시절이 정점이지 않았을까?


  1. 2011.03.01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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