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점을 가봤더니


'자기계발' 코너에 '스마트 워킹'과 관련된 책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모바일 시장이 발달하면서 함께 변화한 것이 '자기계발', '업무'와 관련된 분야이다. 이른바 '스마트 워킹'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들은 연말(혹은 연초가 되면) 그 해의 다이어리를 구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새해의 다이어리를 장만하는 것이 일종의 연례행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가방에는 각자의 개성으로 잔뜩 꾸며진 다이어리와 펜이 들어있었다. 전부 과거 일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다이어리'를 이용하는 이들은 차츰 감소하기 시작했다. 뭔가 메모할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수첩 대신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메모를 다른 이들과 손쉽게 공유했다. 그 뿐인가, 업무, 일정등도 손쉽게 공유가 가능했고, 이런 일들은 스마트폰의 발전이 가져온 순기능들이었다.


편리함을 얻은 대신 개성이 사라진 시대


사실 갤럭시 노트가 성공한 이유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절묘한 결합 때문이라 여겨진다. 뭔가를 필기하는 손맛을 느끼고 싶은데 스마트폰의 편리함은 버리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절충안이 노트 형태의 스마트폰인 것이다. 

갤럭시 노트의 성공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근래들어 우리는 무조건 적인 편리함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피로감의 이면에는 스마트폰의 작은 액정, 가독성, 그리고 분단위로 스마트폰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강박 같은 것들이 자리잡고 있다. 

분명 스마트폰을 이용한 업무나 시간관리는 간편하고 효율적이며 편리하다. 예전 '자기계발', '시간관리', '업무'와 관련된 책들에서는 수첩과 펜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도구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모든 디지털 기기들이 유기적으로 연동되고, 집, 회사, 외부 어디에서든 인터넷과 전원이 남아 있다면 편리하게 내 업무를 이어서 진행하거나 시간관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으로 인터넷과 전원이 있는 곳에서까지 일을 연장해야 하고,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따라온 것도 사실이다. 때로는 일정이 빼곡이 적혀 있는 수첩이나 다이어리를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실제로도 수첩을 이용하면 그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쉴새 없이 울려대는 알람, 전원을 꺼버려도 언제 부재중 연락이 올지 모르는 불안감 같은 것들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편리하게 시간을 관리하고 업무를 하고자 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극심한 피로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마치 24시간 내내 일을 해야만 하는 로봇과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도 스마트폰으로 이용하는 수첩 어플리케이션이나 다이어리들은 자신의 취향대로 꾸미기 어렵다는 단점들이 있다. 다이어리나 수첩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개성을 대변했다. 다른 사람들이 유니크하게 꾸며놓은 다이어리나 수첩들을 펼쳐볼 때면 자극을 받거나, 혹은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되는 계기가 되곤 했지만, 스마트폰용 어플은 그런 소소한 재미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유지비용


스마트폰 어플의 장점은 매년 새로운 다이어리나 수첩을 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냥 처음 구입한 어플을 꾸준히 이어서 쓰면 되는 것이다. 펜의 잉크를 교환할 필요도, 속지를 교체할 필요도 없다. 

공간절약이라는 측면에서 이점도 있다. 지난 수첩이나 메모들을 별도의 공간을 할애하여 보관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과연 종이로 된 수첩이나 다이어리, 펜이 비효율적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취향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위에 적어놓은 내용 전부가 취향의 문제이다. 기분에 따라 다양한 질감의 종이를 쓴 수첩이나 노트로 교환을 해보고, 다양한 필기감의 펜을 써보는 것은 자기관리나 업무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아날로그 적인 면이 업무나 자기계발 적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듯, 꾸민다는 측면에서 시각적인 만족감(혹은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우리는 효율적으로 살고 있는가, 구속되어 살고 있는가


자기관리나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중요한 일을 하면서 스스로를 '효율성'이라는 틀 안에 너무 구속시키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노트와 펜의 미덕은 자율성이다. 배터리의 잔량이나 무료 와이파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훨씬 더 창의적인 사고를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손끝에서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 잉크의 흐름, 펜의 필기감 같은 것들은 작은 화면의 키보드를 터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쾌적한 느낌을 제공한다. 아시다시피, 능률은 쾌적함에서 나온다. 물론 디지털의 편의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적절히 절충한다면 훨씬 '즐거운' 자기관리(혹은 자기계발)과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절충방법은 후에 다시 포스팅해보기로 하겠다. 



아이폰을 구입하고 기존에 사용하던 몰스킨 다이어리를 책상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아이폰에서 모든 일정관리가 다 되기 때문이다. 다음이나 구글 캘린더와 동기화를 시키면, (다음이나 구글이 망하지 않는 이상) 거의 영구적으로 일정들을 보관할 수 있다. 참으로 신기한 세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서랍속의 몰스킨 다이어리를 다시 꺼내게 되었다.
뭔가를 찾기 위해서 꺼냈는데 역시나 내가 적어 둔 메모가 보여 반가웠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스마트 폰으로 일정을 관리 한다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일 수 있을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아무리 다양한 기능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결국 메인은 종이와 펜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나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보조기구'로서의 역할일 뿐이다. 배터리가 없거나, 스마트 폰을 잃어버렸을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펜으로 종이에 적은 메모를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안심이 된다. 굳이 동기화를 시킬 필요도 없고, 그냥 꺼내서 적으면 그만인 것이다. 디지털 기기의 한계란 그런 것이다. 아날로그를 이겨 낼 수가 없다. 우리는 디지털이 만능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그 디지털 기기를 만들어 낸 것은 인간이 아니던가. 인간의 손으로 디자인을 하고, 설계를 한 것이 디지털 기기인 것이다. 

펜과 종이에는 낭만도 있다. 내가 예전에 적어 둔 글들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 좁고 답답한 스마트 폰 키보드로 열심히 뭔가를 끄적거려봐야 능률이 오르기는 커녕 오히려 더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펜과 종이가 있다면, 메모의 재미가 배로 증가한다. 예컨대 기분에 따라 펜을 고를 수가 있고, 노트나 메모지도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가격은 스마트 폰에 비해 저렴하다. 컴퓨터가 발명되었어도, 꾸준히 종이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 김훈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아직까지는 종이책이 전자책보다 더 많이 애용된다. 장담컨대 종이책이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PDF가 종이를 대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어쨌든 나는 스마트 폰을 메인으로 일정관리 하는 짓은 그만두었다. 그래서 몰스킨 다이어리를 다시 꺼내서 일정들을 쭉 적어두고, 그에 대한 보조수단으로 스마트 폰을 이용하기로 했다. 일이 두배가 되어 다소 번거롭기는 하다. 다이어리에 한 번 적고 그걸 스마트 폰으로 옮겨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스마트 폰이 간편한 것은 있어서 간단하게 일정을 살펴보는데는 유용하다. 그러니까 스마트 폰은 그런 용도인 것이다. 간단하게 일정을 보는 정도. 그 이외에는 차분하게 책상에 앉아 노트에 그 날이나 그 달의 일정들을 적어두는 것이 꽤나 합리적이고 재미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의미에서 오늘은 펜과 노트를 정리하고, 오랜만에 커피를 마시며 뭔가를 열심히 필기해 봐야 겠다, 고 생각했다. 역시 종이에 뭔가를 펜으로 끄적일 때는 커피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스마트 폰으로 뭔가를 정리하다가 커피를 쏟게되면, 그것만큼 난감하고 거추장 스러운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오늘은 처박아둔 펜과 종이를 꺼내 하루를 계획해보자. 뭔가 신선한 기분이 들 것이다. 내가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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