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위기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애플의 주가가 떨어졌다느니, 아이폰 5가 별로라느니, 혁신이 사라졌다느니, 중역들의 퇴진. 

이즈음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더라면?


애플의 주가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는 산악인처럼 끊임없이 오르고 있었을 것이며, 아이폰 5가 한 줄 길어지는 일도 없었을테고, 여전히 혁신적인 비전들을 내보였을 것이며, 스콧 포스탈 같은 핵심 멤버가 사퇴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만약 부처나 예수가 살아있었더라면?


전 세계는 지금 극락이나 천국과 같을까? 평화만이 존재하고 악은 없는, 말 그대로 살만한 세상이 도래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악마도 등장했을 것이고 전쟁도, 살육도, 사기나 범죄들도 나름대로 존재했을 것이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더라도 애플은 여전히 위기설에 휩쌓였을 것이다. IT업계의 '부처'나 '예수'였던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한 인간으로 남아 세상을 떠났지만, 만약 그가 살아있었더라도 애플은 늘 위기에 처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바꿔서 생각해보자. 만약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는데 애플의 위기설이 등장했다면 모든 비난은 스티브 잡스에게로 돌아갔을 것이다. 


모든 이들이 애플의 '혁신'을


기대한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 사랑했던 것은 무엇일까. 애플의 팬보이들이 정녕 추앙했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늘씬한 몸매의 잘빠진 맥북 에어나 태블릿 붐을 일으킨 아이패드, 3.5인치의 작은 화면을 가지고도 당돌하게 스마트 폰 업계를 지배했던 그 아이폰일까?


애플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마도


스티브 잡스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랄프 로렌' 옷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옷'을 구입하는 것이 아닌 '랄프 로렌'이라는 디자이너를 구매하는 것이다. 애플의 제품이 그렇다. 우리는 아이폰, 맥북, 아이패드를 구매하는 것이 아닌 '스티브 잡스'를 구매했다. 우리 손에 쥐어진 애플의 기기들은 각각 고유의 이름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 이름들은 모두 '스티브 잡스'라는 이름으로 통일된다. 예컨대 디자이너의 이름을 보고 옷을 구매하는 것처럼, 우리는 스티브 잡스라는 이름을 보고 애플의 기기를 구입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지금


이 생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슬픈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자. 가브리엘 샤넬이 죽었다고 해서 샤넬의 가방이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가방으로 전락하진 않았다. 우리가 샤넬 가방을 구매하면서 샤넬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해하지 않고, 샤넬의 주가가 떨어졌다한들, 그것을 샤넬의 죽음 탓을 하지 않는 것처럼 애플의 제품들에 혁신이 없고, 설령 오히려 품질이 조금 후지게 변했다 한들, 장인의 손으로 한땀한땀 빚은 수제 핸드폰이 아닌 이상 우리는 (죽던 살았던) 스티브 잡스의 이름을 보고 애플의 기기들을 구입한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들었다. 이들은 IT업계의 돌체 앤 가바나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세월이 흘러 돌체와 가바나중 누구 한 명이 세상을 떠난다 한들, 돌체 앤 가바나는 여전히 명품의 반열에 있을 것이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애플이 명품인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결코 애플을 '명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수많은 IT회사 중 하나일 뿐이다. 돌체 앤 가바나도 그렇지 않은가? 수많은 의류 메이커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명품 이미지는 고객들이 만들어낸다. 언젠가 애플이 '명품 이미지'를 가진 적도 있었다. 지금처럼 애플의 제품들이 흔치 않을때였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패션'의 한 자리에 애플 제품을 가져다 놓는다. 왜 똑같은 책상인데 맥북을 올려 놓으면 예술가의 작업실처럼 보이고, 타사의 노트북을 올려놓으면 사무용 책상으로 보일까. 그 이미지는, 즉 패션의 어느 한 조각으로써의 '애플'을 만들어 놓은 것은 사실 스티브 잡스나 스티브 워즈니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애플의 제품들을 구매한 '고객'들의 작품이다. 


스티브 잡스가 설령 살아있었더라도


지금과 다를 바는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미지다. 이제 세상은 '이미지'를 구입하는 시대로 변했다. 어차피 비슷한 기능이면 보다 예뻐보이고, 보다 있어보이는 제품을 원한다. 예술가들이 맥을 선호하는 이유는 맥이 예술하기에 더 편해서일까? 물론 실용적인 부분이 일반 윈도우즈 PC보다 더 탁월한 부분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이미지' 때문이다. 전문작업에서는 '맥'이 더 훌륭하다는 이미지. 혹은 예술가들은 '맥'을 써야할 것 같은 이미지. 마치 작가들은 전부 만년필로 글을 쓸 것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아이폰 5가 허접해


졌더라도 여전히 아이폰은 아이폰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편견'일지도 모른다. 애플의 기기들이 전부 패셔너블하고, 세련되었다는 편견. 실제로 사용해보면 딱히 실용적이지도 못하고, 디자인만 예쁜 값비싼 디지털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샤넬의 가방이나 돌체 앤 가바나의 세련된 옷들도 생각보다 실용적이지는 않다. 실용성을 생각해서 구입한다면 우리는 기백만원을 들여 샤넬같은 명품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애플의 제품들이 '명품'은 아니다. 다만, 애플은 '실용성'이전에 디자인을, 그러니까 패션의 어느 부분을 차지해왔다. 초창기 아이맥을 본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우리의 눈에 확 들어온 것은 아이맥의 실용성이 아닌 디자인이었다. 


그러니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더라면? 같은 생각은


이제 버리는 것이 낫겠다. 애플은 이미 '스티브 잡스'의 이미지를 판매하고 있다. 샤넬이 40년 전에 죽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한달 월급보다도 비싼 샤넬의 가방이나 제품들에 지갑을 연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탓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대신에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있다. 누누히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이미지'를 구입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 '이미지'를 남기고 갔다. 그 이미지는 끊임없이 애플이라는 회사에 의해 재생산되어지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고객들의 소비성향을 파악하고 있으며, 여전히 매력적인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예컨대 이제 혁신의 싸움은 지났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에서 '번뜩이는'이라는 말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혁신이란 이렇게 세상이 물 흐르듯 흐르는 와중에 갑자기 등장한다. 그것이 애플일지도 모르고 삼성일지도 모르며 엘지가 될지도 모른다. 다만 그 '혁신'이 등장하기 전에는 계속해서 미약하게나마 발전을 해야한다. 오늘까지 등장할 혁신은 그럭저럭 다 등장한 셈이다. 이제 내일부터는 더 새로운 혁신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미지'를 구입하게 된다. 상향평준화된 IT 업계에서, 기왕이면 좀 더 보기좋고, 좀 더 쓰기 편한 것을 우리는 원한다. 아직까지는 애플의 제품들이 그렇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모니터와 키보드가 분리도 되고, 합체도 되는 노트북 형 태블릿이 나온다 한들, 그 과정 자체를 번잡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혁신은 그런식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것이 혁신이다. 


자, 이제


고민할 필요는 없어졌다. 아니, 꼭 고민을 해야겠다면 '내게 어울리는' 메이커를 찾는 것이겠다. 애플도 좋고 삼성도 좋다. 그러나 죽은 '스티브 잡스'만은 이제 그만 내버려두자. 그는 IT업계의 혁신적인 디자이너였다. 그걸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몫을 했다. 후배들의 설자리를 위해 은퇴하는 선배 야구선수처럼,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환호를 받으며, 혹은 눈물로 은퇴를 했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시간에, 우리는 이미 혁신 하나를 놓쳐버렸는지도 모른다. 혁신적인 기기들을 가지고, 새로운 혁신을 놓쳐버린다면 값비싼 낚싯대를 가지고 물고기를 놓쳐버리는 격이 아닐까?


  1. Favicon of http://companyjit.tistory.com BlogIcon 컴퍼니제이 2012.12.21 17:02 신고

    글 쓰시는 방식이 너무 재미납니다!!ㅋ 특히 예수와 부처가 살아있더라면 하는 그부분도..ㅋㅋ 잡스가 살아있을때도 분명 위기는 존재 했습니다. 아마 이 모든 위기를 잡스의 부재로만 돌리는 여론은 너무한 겁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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