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한다면, 대한민국의 구조상 '한국의 스티브 잡스'는 나오기 힘들 것 같다.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같은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지만, 그 책을 아무리 읽어보고 똑같이 따라 한다 해도 결국 '대한민국 구조의 현실'에 부딪혀 그냥 뼈빠지게 일하는 IT업계 프로그래머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구조의 현실'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일단 스티브 잡스와 같은 사람이 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한데 첫번째가 '창의력', 두번째가 '그 창의력을 지지해주는 회사'다. 우리나라는 '창의력을 지지해주는 회사'가 없기 때문에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다. 창의력을 지지해주는 회사들이 있다고 한들, 대기업의 자본에 밀려 그냥 그런 회사로 전락하거나 없어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 삼성에서는 갤럭시 S의 화이트, 핑크버전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분명한 삼성의 실수다. 만약에 갤럭시 S가 더 많이 팔리길 바랐다면, 애초부터 세가지 색상의 갤럭시S가 나왔어야 했다. 아이폰 4가 나올 시점에서 그것과 대항하기 위해 내놓았다면, 이야기는 끝난거다. 갤럭시S를 사용하고 장단점이 이미 다 알려진 상황에서, 핑크색, 화이트색을 따로 발매한다고 더 잘팔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여러가지 색상으로 울궈먹기 전에, 아이폰 4에 대항하는 뭔가를 새로 '개발' 했어야 옳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과 애플의 사이에는 더 큰 갭이 존재한다. 회사와 개발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창의력으로 중무장한 젊은 엔지니어들이나 프로그래머들은, 대기업에 입사하자마자 무장해제 당해버린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IT업계에 뛰어든 젊은이들은, 어느샌가 과거의 자신처럼 부푼 꿈을 안고 들어온 젊은 신입사원들을 갈구고 있는 관료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대단한 것은 '비전'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는 IT업계의 메시아를 자청한다. 내가 이런 것을 만들었으니 앞으로 이런 것들이 주류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애플=스티브 잡스가 되는 것이다. 애초에 스티브 잡스가 '아이북'을 들고 복귀했을 때, IT업계의 경쟁은 이미 스티브 잡스 VS 다른 회사들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IT업계의 비전을 제시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의 모든 젊은이들이 '창의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교육시스템에서 일단 그 창의력이 봉인된다. 사회에 나가서 그 창의력은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삼성과 KT에서는 안드로이드 OS를 기반으로한 태블릿 PC를 내놓았다. 아직 아이패드가 국내에 정식으로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만들어냈다. 기술력은 정말 대단하다. 문제는 그 태블릿 PC를 누구에게 팔것이냐하는 문제다. 애플이 아이패드를 만들었으니, 우리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만든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 애플과 대항하고 싶다면, 애플보다 더 발전하고 싶다면 애플이 만들었던 것을 다른 방식으로 재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애플이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RIM의 블랙베리가 대단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이다. 액정도 작고, 어플리케이션도 그리 많지 않은 이 스마트 폰이 전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왜 스마트 폰하면 블랙베리를 먼저 떠올리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게다가 일관성있는 제품 철학을 떠올려보자. 물론 블랙베리도 터치 제품이 나오지만, 블랙베리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조건 어플리케이션이 많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블랙베리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삼성에서 '바다' OS를 만든다고 했다. 사실, 그 바다 OS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자체 OS로 스마트 폰을 구동시킨다는 것은 괜찮은 도전이다. 그런데 요즘에 바다OS에 대한 이야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바로 구글의 안드로이드 때문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하면 애플과 싸워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건 오산이다. 애초부터 아이폰과 구글 탑재폰의 싸움의 승패는 결정난 것이다.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휴대폰은 전세계적으로 널리고 널렸다. 모토로라에서도, 삼성에서도, 대만의 HTC에서도, LG에서도 만든다. 그런데 이 모든 회사들이 다 합쳐서 싸워야 하는 것이 아이폰이다. 애플에서 만든 단 한 종류의 스마트 폰. 그 하나를 이기기 위해 여러 회사들이 연합해서 싸우고 있다.

애플은 매년, 새로운 기술을 발표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에 환호하고, 마치 콘서트를 연상시킨다. 스티브 잡스는 IT업계의 락스타다. 매년 새로운 곡을 발표하고, 전세계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우리가 아이폰에 열광하는 것은, 곧 스티브 잡스에 열광하는 것과 같다. 만약에 삼성에서, 그리고 LG에서, 팬택에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CEO가 나타나 매년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고, 그 기술을 바로 상용화 시킨다면, 사람들은 그 CEO에 열광할 것이고, 그것은 곧 삼성, LG, 팬택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애플 타령은 그만 할 때가 됐다.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싶다면, 그에 맞는 비전을 제시하면 된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모셔오고 싶다면, 창의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내가 비록 IT업계에 몸담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 위에 내가 적은 이야기들은 IT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뭐가 문제인지는 아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폰의 등장은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분명 치명타가 되겠지만 결국에는 약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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