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서


다시 팬택 사태를 끌어 올리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겠다. 쌍용차 사태를 봐온 우리들로써는 낯선 풍경도 아니다. 벤처의 신화라고까지 불렸던 팬택의 몰락은, 그래서 사람들에게 호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에서 가려졌다. 하지만 팬택 사태를 곱씹어 볼 필요는 있다고 판단했다. IT강국이라는 수식어가 이제는 희미해져 버린 대한민국에서, 팬택의 몰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도 팬택의 흥망성쇠는 어딘가 익숙하다. 어쩌면 팬택이라는 회사가 대한민국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택은


재기발랄한 회사였다. 다소 컬트적인 면도 있었다. 팬택이 공략해야 할 소비자 층은 10대 학생들부터 20대 초중반 사회 초년생들이 대부분이었다. IT에 관심이 많거나,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들은 애플이나 삼성 제품에 집중되어 있었다. 팬택은 그 틈새시장을 그럭저럭 잘 공략해 나갔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팬택의 한계였다. '스카이'라는 프리미엄 급 브랜드를 버리고, '베가'라는 생경한 브랜드를 들고 나타났을 때부터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던 삼성이나, 스마트 폰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해도 다른 제품들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경쟁사 LG와는 사정이 달랐다. 팬택은 오로지 스마트 폰만 만들었다. 그것이 처음에는 약이 되었고,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성이 성겼는지 오히려 독으로 변해버렸다. 삼성이나 애플의 공세 속에서 팬택이 견뎌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팬택의 스마트 폰에는 부수적인 수입을 유발시키는 그 무엇인가가 없었다. 이를테면 액세서리 같은 것들 말이다. 애플은 아이폰을 산 사람들이 아이패드를, 그리고 아이패드를 구입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맥을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삼성은 갤럭시라는 브랜드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올려 놓았고, 삼성 모바일 프라자 같은 직영점을 지속적으로 운영해왔으며, 심지어는 전용 케이스를(무척이나 비싼 가격에) 팔기 시작했다. 갤럭시 스마트 폰이나 태블릿을 구입하면서, 기왕이면 깔맞춤으로 정품 케이스나 커버를 구입하자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제대로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팬택에는 이런 것들이 없었다. 팬택이 운영해오던 '랏츠'는 사실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다. 팬택 제품들 전용 액세서리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한데 매장만 있다한들 소용이 없는 것이다. 팬택을 컬트적이고, 매니악한 기업으로 만드는 데 일조를 했던 CF조차 그 개성을 잃어버렸다. 이병헌의 '단언컨대'는 전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그 후속 CF가 에러였다. 마치 논문의 자기표절처럼,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답습하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물론 좋지 못했다. 사람들은 '단언컨대'를 외치는 이병헌만 기억했다. 


우리나라 IT의 딜레마, 창조성


스티브 잡스가 입버릇처럼 '혁신'을 물고다니다 보니 국내 기업들조차 '혁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혁신이 아닌 것도 혁신이라고 우기는 판이 된 것이다. 그런데 혁신의 비료는 창조성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나지 않듯 창조성도 고갈되어 있었다. '혁신을 강요하지만 창조성은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앞에 붙어있던 'IT 강국'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져버렸다. 삼성이 전 세계적으로 갤럭시를 쉴새 없이 팔아치우고 있지만, 그런다한들 그것이 IT 강국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빼앗긴지 오래되었다. 팬택의 몰락 또한 이와 같은 우리나라 현실의 분위기에 떠밀려 발생한 일이다. 팬택은 이제 세계 IT 시장에서 곧 난파선이 될지도 모를 우리나라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팬택은 훌륭한 회사였지만, 발전은 더뎠다. 그렇다고 그들이 현실에 안주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신제품을 냈고, 틈새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던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팬택이 더 괜찮은 회사가 될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애초부터 싹수가 노란 것이 아닌, 팬택은 떡잎이 나쁘지 않았던 회사였다. 고음질 하이파이 음악 감상 기기로 회생한 아이리버의 경우와 같이, 팬택도 조금 더 궁리를 했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를 맞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안타까운 점은, 팬택은 충분히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견에 있었다는 것이다. 삼성이나, 엘지와 차별화 되는 부분이다. 삼성이나 엘지가 어떤 시스템에 묶여, 그 안에서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 놓고 내용물만 바꿔 제품을 찍어내는 것과 달리 팬택은 오히려 더 자유로운 영혼에 가까웠다. 그들은 원한다면 삼성이나 엘지, 아니 애플보다 더 창조적인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었고, 그런 기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팬택에서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약간 자만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나라처럼 말이다. 


나는 팬택을 응원한다


고백하건데 팬택의 제품을 구입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팬택을 응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이다. 가끔씩 보여주던 팬택의 게릴라 적인 면모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들이 얼마든지 삼성이나 엘지를 엿먹일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음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안타깝다. 나는 팬택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팬택을 응원하고 싶다. 그들이 세계의 IT를 지배하는 일은 없어도, 매니아들만 팬택을 찾는다해도 팬택은 존재해야한다. 삼성이나 엘지는 이미 글로벌 기업화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팬택은 그렇지 않다. 팬택은 어찌보면 우리나라 IT의 마지막 '가능성'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가능성 조차 사라져버린다면,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IT 회사'를 차리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팬택이제 막 IT업계에 진출하는 사회 초년생들의 이상적인 모델이다. 그러나 팬택의 몰락은 '우리나라에서 IT는 절대로 안돼'라는 비관적인 양상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다. 거대 통신사들의 갑질, 대기업들의 물량공세 속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팬택의 모습은 그래서 우리나라 IT의 어두운 이면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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