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같은 게임기를 만들어라."

2009년 2월 즈음 각 언론사에 뉴스로 보도된 李대통령의 발언이다. 이 발언으로 말미암아 당시 게임업계는 들썩거렸는데, 우리나라도 드디어 '게임기 강국'이 되느냐는 기대감과, 닌텐도가 하루아침에 생긴 것도 아닌데, 라는 비아냥들이 뒤섞였다. '창의력'은 언제나 기본 소양이 아닌 세컨드 스킬 정도로 취급받던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게이머'들은 그냥 '중독자'취급을 받던 이 나라에서 절대로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발언을 李대통령이 한 것이다.
그 발언 이후 꼭 3년이 흘렀다.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에 이어 교육과학기술부까지도 게임규제에 발벗고 나섰다. 각 정부부처가 서로 규제하고 나선 것이다. 없던 규제가 순식간에, 그것도 세 개나 생겨나버린 것이다. 거기에 "닌텐도 같은 게임기를 만들라"는 李대통령도 게임업계를 비난하고 나섰다. 도대체 '게임'이 무슨 문제가 있길래 다들 이러는 것일까?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에 등장한 '메이플 스토리'라는 게임이 있다. 대형 서점에 가면 이 게임을 만화로 옮긴 책들을 손에 들고 행복하게 부모 손을 잡고 다니는 어린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살한 중학생은 잠도 못자고 이 게임을 해야했다. 정부가 생각하기에, 게임, 그것도 온라인 게임은 청소년들의 폭력을 조장하는 사회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커져버린 온라인 게임시장을 없애버릴 수는 없으니, 규제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 '게임'이란 그 학생이 당한 가혹행위의 일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어떤 프로에 임요환이 출연한 적이 있었다. 진행자는 임요환에게 교묘한 질문을 했다. "스타 크래프트를 할 때, 누굴 죽이거나 누구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느냐"고. 아주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당시의 임요환 대답은 "상대방이 어디있는지 모르니 불안하다"는 요지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게임은 '범죄의 모의 시험' 같은 것으로 취급받는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국내 개봉하는 영화의 90%는 개봉을 해서는 안 된다. 범죄 행위를 그냥 '보는' 것과, 실제로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정부의 누군가는 항변하겠지만 실질적으로 체감에 와닿는 폭력성은 오히려 '영화'와 '책', '만화'등이 더 심각하다.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을 조종하는 것보다, 사람이 직접 범죄행위를 하는 것을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게임은 "이게 게임이니까" 라는 자각이 있지만, 영화나 책, 만화는 "사람이 저럴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쨌든 본질은 모두가 망각하고 있다. 게임을 규제하면 학교폭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논리는, 책상 서랍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고 책상 서랍을 없애버리는 격이다.
현재, 정권말기의 대한민국은 혼란스럽고, 다양한 문젯거리들을 내뱉고 있는데, 이 와중에 정부의 각 부처들이 서로 게임을 규제하겠다고 나섰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학교폭력, 청소년 문제에는 수 많은 '문제거리들'이 있는데, 가장 건드리기 쉬운 것이 바로 '게임'은 아닐까. 모든 '학부모'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 '게임'은 아닐까? 학교나 청소년 관련 정부부처의 내부적인 시스템 문제는 쉽게 건드릴 수 없다. 왜냐하면 너무 복잡해지며 이해관계들이 얽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는 이해관계가 있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창의적'인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죄인'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무조건 타겟은 게임, 영화, 소설 등의 분야로 겨냥된다. 그런데,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온가족이 저녁식사를 하는 8시 즈음 했던 드라마의 소재가 불륜 아니었던가? 드라마에서 '섹스'는 안되고 '불륜'은 방치해두는 것 조차 이해할 수 없는 것 처럼, 이번 게임규제도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대한민국이 이제 중국에도 뒤쳐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야구로 따지면 8:1의 스코어로 이기고 있었는데 이제 9:8로 역전당한 것이다. 그것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인데 말이다.
규제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는 현직 공무원 및 국회의원들의 하루 음주량을 맥주 기준 '4잔', 소주 기준 '2잔'으로 규제를 하고, 위스키는 아예 마시지도 않으며, '룸' 이용시간은 20분으로 제한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적어도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가는 분들인데, 이정도 규제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정부의 논리로 치면 '공무원 비리', '국회의원 성추행' 같은 사건들의 주된 원인은 '술'이니까, 규제를 하면 사라지지 않을까?
참으로, 거꾸로 퇴화하는 대한민국이 아닐 수 없다.
  1. Favicon of http://cafe.daum.net/Dongmyeong BlogIcon 헌누리OUT 2012.02.08 18:53 신고

    여성부는 문화콘텐츠계에 각종 범죄의 책임을 돌리면서도 올해 성범죄 관련 정책에 들어갈 예산을 크게 깎았고, 문화부는 여성부의 뻘짓에 짜고친 고스톱으로 일관했으며, 교육부도 무엇보다 중요한 인간성 함양 교육에는 소홀했다. 이러면서도 문제가 터지면 매양 문화콘텐츠계에 책임을 떠넘기고, 이미 실시되고 있는 규제의 영향과 실효성에 대한 질적인 평가를 하기 전에 또 다른 규제를 구상하기에 바쁘다. 또한, 게임사냥 정권은 청소년 보호라는 미명하에 신데렐라 이야기식 악법에 관련된 회의가 열릴 때마다 기금 조성안을 거론함으로써 결론적으로 재정 확보가 진짜 목적이 아니냐는 의혹만을 드높이고 있다. 그리고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치러지는 상황에서 정부와 정계가 학부모들의 표심을 노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이렇게 정부는 정책 실패를 문화콘텐츠계의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최근 여성부의 수박 겉 핥기식 실효성 조사 결과와는 달리, 신데렐라 이야기식 악법은 도리어 주민등록번호 도용 및 해킹툴 양산과 같은 사이버 범죄를 늘리는 계기만을 제공한 채 질적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 게임계의 후퇴를 야기할 뿐이었다. 학교폭력을 막겠다면 탁상행정을 제쳐 두고, 각급 학교 및 일부 대학 학부에서 사랑의 매라는 미명으로 행해지는, 교사 혹은 선배 학우의 구타 및 가혹행위를 척결함과 동시에, 훌륭한 인간성을 기르는 교육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출처 : 신동명천제단(다음까페)

  2. Favicon of http://bobzip.tistory.com BlogIcon 밥집아저씨 2012.02.09 00:14 신고

    정말 구구절절 맞는 말씀을 하시네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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