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평소 카메라로 친분이 있는 교수님 한 분과 모비딕을 봤다.
내가 보자고해서 본 영화였는데, 영화가 끝나고 교수님을 볼 낯이 서지 않았다. 제목도 '모비딕'이며, 타이틀도 '음모론'을 내세워 한껏 거창하게 포장했지만 그 속은 결코 모비딕 만큼의 스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개성없는 캐릭터, 용두사미의 스토리, 기대했던 배우들의 겉도는 듯한 연기는 보는 내내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필모그래피가 몇 개 되지 않은 박인제 감독은, 그러나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했지만 너무도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은 나머지 대부부의 이야기들이 어느 외국 영화에서 봤을법한 이야기들로 얼버무리고 만다.
황정민의 연기는 자연스럽지 못하고 과장되어 보인다. 몇 년 전과 같았다면 연기 참 잘하네, 싶었겠지만 근래에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황정민의 연기는 꾸며져 있고, 억지스럽기까지 보인다. 차라리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김민희나, 불미스러운 일로 잠시 우리 기억속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난 이경영의 연기들이 더 그럴듯해 보였다. '한 연기' 한다는 진 구 조차도 이 영화에서는 빛을 보지 못한다.

특히 이 영화는 최근에 유행하는 '열린결말' 식의 엔딩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 엔딩에도 무리가 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 법한 엔딩인가 싶다. 열린 결말이라 하면 관객들에게 어느정도 정보를 제공해주고, 생각할 여지를 만들어 놓아야하는데 이 영화는 이러한 정보들이 너무 부족하고, 진행 방식도 매우 불친절하다. 너희 들이 쫓아 올 수 있으면 쫓아와봐! 식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그러면서 결말은 여러분들이 생각하십시요, 라는 식이다.

애매모호한 결말은 흥행에 도움이 된다. 일단 결말이 뭔지가 궁금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그렇게 해서 입소문이라는 것이 퍼진다. 나홍진 감독의 '황해'나 크리스 놀란의 '인셉션',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는 생각해 봄직한 결말들이 있었다. 그러나 박인제 감독은 이 영화를 너무도 거칠게 진행시킨 나머지 모든 것들이 뭉개져서 정작 보여야 할 모습이 모호하게 지워져 버린 꼴이 되었다. 나는 이런 영화들이 사실 제일 안타깝게 느껴진다.

가슴 졸이는 스릴러도, 호쾌한 액션도 아닌 킬링타임용이긴 하지만 그래도 9000원 값은 하게 만드는 영화가 모비딕이다. 어떤 영화를 보러 갔다가 그 영화가 시간이 안되면, 차선책으로 선택할 정도는 된다. 박인제 감독은 그러나 가능성이 보이는 감독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소재의 스릴러를 맛깔스럽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 박인제 감독은, 이러한 류의 스릴러 영화를, 맛집에 소개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먹을 만하게 요리했다. 황정민은, 딱 감독이 요리한 만큼만 맛을 냈다.
마지막으로 황정민에 대해서 딱 한 번만 더 이야기를 하자. 
내 기억속의 황정민은 역시 부당거래에서 봤던 황정민이다. 지적인 모습과 마초적인 모습이 가장 절묘하게 조화된 모습이 부당거래에서 등장하는 '최철기'다. 황정민은 딱 그 맛이다. 모비딕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은 많은 부분 부족해보였다. 스프가 들어가지 않은 라면을 먹고 있는 기분이랄까? 딱 그렇다. 그의 차기작 '댄싱퀸'에서는 꼭 그 맛을 보여주었으며 좋겠다.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