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2를 구입하고 내가 활용(?)했던 부분은 '웹서핑', '이북', '일정관리' 정도였다. 그러나, 이 비싼 아이패드2를 이런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아이패드2 활용에 관련된 포스팅을 해보고자 한다. 문제는, 아이패드를 활용하는 팁에 대한 블로그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내 포스팅은 다른 블로거들의 포스팅에 비해 별 메리트가 없다. 그러나 많은 블로거들이 PC를 대체하는 용도로 아이패드2를 활용하는 모험에 도전했고, 나도 동참할 예정이다. 하지만 명심하자. 아이패드, 아이폰은 어디까지나 '스페어', 즉 보조 활용도구일 뿐이다.

소설가들은 늘 글을 쓴다. 혹은 그럴 것이라 일반적인 사람들은 믿는다. 소설가는 딱히 '일정관리' 같은 것도 필요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영혼'들이 작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상상하는 소설가들이란 골방에 처박혀 담배빵이 난 키보드를 두들기는, 혹은 카페에 앉아 전공서적 두께만한 노트북을 열심히 두들기고 있는, 보헤미안적인 삶을 사는 그런 존재들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한때는 '소설가로 돈 벌어먹고 사는 것이 힘든' 세상이었고, 사실 작가들이 그렇게 돈에 집착하지 않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작가들도 최소한 밥벌이는 할 수 있는 직업군으로 떠올랐다. 물론 다른 직업에 비해 '궁핍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약간은 나아진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글을 써서 돈을 벌겠다면, 실은 소설가보다는 다른 '자기계발서'나 혹은 요즘의 트랜드를 책으로 쓰면 소설가들보다는 더 낫다고 본다. 여전히 소설가란 배고픈 직업이고, 설령 한동안 배가 불러도 언제 다시 고파질지 모르는 신세이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사족이 길었는데 하여튼 소설가도 이제는 좀 편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펜과 종이가 여전히 내게는 메인이지만, 대부분의 도구들이 디지털로 변화된 이 시점에, 아이패드 같은 '도구'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아이패드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러면 PC나 종이, 펜등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글쎄...'다.

우리는 답답한 집에서 빠져나와 노트북을 바리바리 챙겨 인근 카페로 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의 '착각'을 하게 되는데 바로 '카페에서 작품 하나를 완성' 시킬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카페에서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는 커녕, 챕터 하나 쓰기도 힘들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 귀에 이어폰을 꼽은 채 음악을 듣는 행위를 무척 꺼려하는데, 글에 집중이 안되고 음악에 집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카페는 사실 최악의 장소나 다름없다.
게다가 들고다녀야 하는 노트북의 무게도 만만찮다. 근처 카페를 가는데 차를 가지고 나가기도 그렇고, 노트북의 무게도 고려해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아이패드'다. 아이패드는 가볍고, 부담이 없다. 그런데 아이패드로 글을 쓴다고 하면, '아이패드로 소설 한 편을 다 써야지' 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아이패드는 어디까지나 보조글쓰기 수단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버스 안이나, 카페등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축내고 싶지 않을때(하릴없이 시간을 축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아이패드는 그 효과를 발휘한다.

블루투스 키보드가 있다면 그 효과는 배로 뛰어오른다. 워드 입력기는 아이패드의 Pages를 추천한다. 4.99달러의 다소 비싼 가격이지만 카라멜 마끼아또 한 잔 값이라 생각하면 감수 할 수 있다. 아이패드의 Pages로 작성된 문서는 iCloud.com에서 MS Word 파일로 내려 받을 수 있다. MS 워드로 소설을 쓰는 분들에게는 더 없이 편리하고 한컴의 한글을 이용하시는 분들에게는 MS워드 상에서 복사 붙여넣기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옮겨적는 것 보다는 편리하다.
잠깐잠깐의 아이디어를 적을 때는 에버노트가 유용하다. 에버노트에는 사진을 첨부할 수 있는 기능과 에버노트 사이트와의 실시간 동기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잠깐 떠오른 아이디어를 저장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창작 업종에 계신 분들은 여행을 자주가는데 시간이나 금전의 제약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구글지도나 다음, 네이버 지도등을 이용한다. 실제 가는 것 만큼의 효과는 없지만 어느정도 여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원하는 지역을 아이패드의 '스크린 샷' 기능으로 저장해두고 사진파일로 만들어서 자료로 이용해도 좋다. 아이폰이나 스마트 폰이 있다면 사진을 틈틈히 찍어 에버노트에 저장, 아이디어와 함께 저장해두면 좋다. 이렇게 모아놓은 자료를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집으로 돌아가 한 편의 소설을 온전히 작성할 수 있다.

다음 편에서는 이러한 도구들을 이용하는 보다 자세한 포스팅을 할 것이다. Pages를 이용해 글을 작성하고 그것을 MS 워드로 불러오는 과정들을 그림과 함께 보여드릴 것이다. 창작, 더 나아가 작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든 뭔가를 기록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메인은 자신의 정든 노트북이나 원고지, 펜이겠지만, 이러한 메인을 보조해줄 보조 수단으로서의 아이패드는 충분히 제 값을 한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의 의지, 언제 어디서든 창작을 하겠다는 의지임을 잊지 말자.
오늘 머리를 다듬으러 미용실을 갔는데, 내 머리를 봐주던 남자 미용사가 내게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 직업이 '작가'라고 대답했다.

미용사에게 내 직업을 '작가'라고 말을 한 이후, 나는 무척 창피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미용사가 머리 괜찮으세요? 라고 물을 때도 그냥 건성건성 대답했을 뿐이다. 미용사가 '어디 가세요?' 라고 물었을 때, 그냥 '데이트요.'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내가 왜 생전 모르는 사람에게 내 직업을 '작가'라고 이야기 했을까? 라는 경솔한 내 발언에 대한 후회 뿐이었다. 대학원생도 있고, 그냥 백수라고 해도 되는데 굳이 '작가' 라고 이야기 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내 첫 출간작품은 상하로 나뉘어진 두 편짜리 SF 소설이었다. 물론 이 소설은 실패했다. 영화 2012의 주인공처럼, 내 소설은 1천부도 채 팔리지 않았다. 출판사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다.
그 이후에 나는 '창비' 신인상에 도전했고, 결과는 본심에서 끝났다. 한동안 나는 내가 '작가'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어느 헌책방 귀퉁이에 내가 쓴 책의, 그것도 '상' 권만 꼽혀 있는 모습을 보고, 내 작가 인생은 청계천의 어느 헌책방에서 끝나는 구나, 라고 체념했다.

우리나라에는 '등단' 제도가 있어서, 어디가서 함부로 '나는 작가요' 라는 말을 하기가 꺼려진다. 그러면 '등단 하셨습니까?' 라는 질문이 돌아오게 마련인 것이다. 일반인들조차 작가란(혹은 '문학'을 하는 작가란) '등단' 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 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지만, 나는 그 책을 내 마음속에서만 기억하고 싶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누구나' 등단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여기에는 여러 주석들이 달려있긴 하지만 어쨌든 마음만 먹으면 '나는 작가요' 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등단제도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듯 해서, 그냥 글을 쓰면 '작가' 라는 직함을 내걸 수 있는 모양이다. 영화 '리미트리스' 의 주인공도 책을 한 권도 내지 못했는데 자신을 작가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는가. 등단이라는 말보다는 그저 '데뷔'라고 이야기하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나 일본의 사정은 좀 다르다. 등단이란 아마추어와 프로를 구분하는 하나의 시험과 같다. 그러니까 비로소 등단이 되었을 때, 우리는 프로작가가 된다. 등단을 하지 못한 작가는, 마치 사법고시생이 '나 변호사요' 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오늘의 경험으로 비추어봤을 때, 나는 내 자신을 분명히 '작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법고시하고는 사정이 약간 다른 것이다. 컴퓨터를 켜고, 하얀색 워드프로세스를 맞이하여 첫 단어를 찍는 순간 우리는 모두 작가가 되는 것이다. 자기합리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자기합리화가 존재하는가? 분명히 단어들과 문장들로 뭔가를 생산해 낸다면, 그것이 팔리든 안팔리든 그 사람은 작가인 것이다. 자동차 영업사원이 자동차를 한 대도 못팔지언정, 그의 직업은 자동차 영업사원인 것이다.

작가란 내 재주를 '파는' 직업이다. 그러니 어쩌면 '작가'라는 직업은 영업사원과도 비슷하다. 능력제인 것이다. 작가란 대중에게 '이야기'를 판다. 얼마나 재밌는 이야기를 파는가는 작가의 능력이다. 그러니 당장에는 돈이 안들어오고, 내 글이 대중들 앞에 나오지 않더라도 나는 '작가'다. 다만, 이야기를 파는 내 능력이 신통치 않을 뿐이다.

나는 등단을 하기위해 글을 쓴다. 이것은 내 고집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글을 쓰는 것이 내 삶이다. 나는 일곱살 때 첫 동시를 지어서 한정된 '대중'에게 보여주었고, 나름의 평가를 받았다. 나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사 줄 때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생산해 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등단'을 해야 한다. 서양이 어떠니 해도, 대한민국에서 내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보여지려면, 등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글을 쓴다.
나는 '작가'다.
  1. 나기 2012.04.15 06:24 신고

    화이팅

블로그에 광고를 넣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사실, 블로그에 광고를 넣어봐야 더 지저분해 보일 뿐, 돈이 들어와봐야 십원 이십원이겠지 싶기도 하고, 나름대로 '작가'의 자존심 같은 것도 있어서 한동안은 광고없이 운영을 했다. 말이 운영이지 운영했다고 해봐야 몇 주에 한 번씩 글을 쓴 정도였으니 내가 무관심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를 넣었다. 
인형에 눈깔을 쳐박으면 얼마나 주더라? 이십원 삼십원? 빈 백지에 글자를 박아넣어봐야 1원도 안들어온다. 말하자면, 돈 안 되는 글쓰기를 나는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근래 들어 특별한 직업 없이 글을 쓰고, 공부만 하는 내게, 최소한 커피믹스 값 정도는 내가 벌어와야 하는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이, '글쓰는 스킬'을 요구하는 직장이 참 적다는 것이다. 지역적인 한계 때문인 것도 있지만, 글쓰는 재주를 요구하는 직장들이 드문 것이다. 요컨대 글쓰는 재주 하나만 가지고는 이 세상을 살기가 정말 힘들다. 그런데 나는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이 길을 택해야 했을까? 인형 눈깔박는 것만도 못한 이 직업을 택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분명.

그 괜찮다는 직장 몇 개를 아버지 앞에서 호기롭게 거절하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처음으로 글을 팔았던 것이 2000년도였으니 꼭 십 년 전이다. 당시 돈으로 150만원. 나는 그 돈으로 씽크패드 노트북을 구입했다. 그리고 몇 번의 계약들이 더 있었지만, 장편소설 하나 내겠다고 모두 거절해다. 그 장편소설은 계약금 백만원에 출판하여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니 나는 글을 팔아서 총 250만원의 수입을 얻은 것이다. 십 년 동안.

그런데 나는 글쓰기를 멈출 수 없다. 이미 발을 빼기도 어려울 정도로 깊이 담근 탓도 있겠지만, 나는 이 직업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조금만 헛디뎌도 나락으로 굴러떨어질 것을 뻔히 아는데. 알고도 이런 길을 가는 나는 병신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괜찮아. 이 사회에는 나같은 병신도 필요한 법이다. 
작가들이 힘들게 산다는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꾸준히 들어왔지만, 정말로 그런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나는 꾸준히 백지에 글자를 박는다. 

글을 팔아서 먹고 살만해지면, 다시 이 블로그에 광고는 없을 것이다. 핑계 참 잘 댄다고? 아...백지에 눈깔좀 박아보겠다는데. 이런걸로 핑계대는 바보는 없겠지.

 
  1. lodlin 2010.12.11 13:20 신고

    지금 너의 상황을 잘 말해주는 것 같네. 재미있는 수필처럼 아주 즐겁게 읽었네. ^^

  2. 김대성 2010.12.24 11:57 신고

    오늘 처음 왔는데 공감가는 글들이 보이네요. 힘네세요. 광고가 인형 얼굴에 눈알 박기 ^^

  3. Favicon of http://woosang84.tistory.com BlogIcon 심우상 2012.09.07 12:13 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시는 열정을 높이 사고 싶네요. '성공한'이란 표현이 썩 좋지는 않지만, 세간에 말로 표현하자면, 성공한 사람들은 한가지 일에 몰두한 것이 특징이란 얘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느끼고도 있고요. 전 한가지 소신을 갖고 글을 쓰시는 필자분이 멋있다는 생각입니다. 돈을 위한 글쓰기가 아닌 진정한 글쓰기를 하고 계신다면 부나 명예는 추후에 따라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10년동안 여는 사람처럼 빠르게 성공에 도달한게 아닐 뿐, 그 시기는 더 늦게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저도 어린나이라 많은 것은 모르나, 자신의 재능을 찾고 그것에 열정을 담는 모습이 멋져 보여서 이렇게 몇 자 남기고 갑니다. 저도 블로거지만, 글 잘쓰는 재주를 매우 부러워하는 사람중 하나랍니다.

엊그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뉴스에서 요시모토 바나나가 나왔다. 한국에 자신의 소설을 출간한 기념으로 방한을 했다는 것이다. 하루키가 방한 한 것도 아니고, 요시모토 바나나가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인기가 있던 존재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뉴스에 나올 정도로 말이다.

모 대형서점 가판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한국 소설이 재미 없다구요? 읽어보세요'

국내 대형서점 조차도, 우리나라 소설이 재미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띄워주지는 못할망정 아예 처음부터 '재미없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한다. 평소에는 아무생각도 하지 않던 사람들 조차 '한국 소설이 그렇게 재미가 없었던가?' 라고 생각하게 될 법한 문구다.

사실, 국내 소설이 이렇게 천대받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대형서점을 탓할 것만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작 일본작가는 뉴스에서도 띄어주면서 우리나라 작가는 겨우 라디오방송에서나 만나볼 수 있다. 최근들어 '무릎팍 도사'에서도 작가들이 왕왕보이긴 하는데 그들은 이른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그런 대단한 작가들인 것이다.

한때 신경숙의 소설이 백만부가 팔렸다고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신경숙. 요즘 유행하는 광고로 따지면 이런 것이다.

'삼성이니까. 확실하니까.'

그렇다. 신경숙이니까. 확실하니까. 대한민국 문학판은 확실한 작가들은 확실하게 밀어준다. 이름만 대면 기본은 팔아재끼는 작가들. 그렇다고 이 작가들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이 작가들은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구축했다. 실제로 대한민국 문학계의 주축돌이라 할 수도 있다. 흔히들 대한민국 국민은 먹고 살기 바빠서 책 안읽는다고들 하는데 그런 나라에서 백만부를 팔았으니 확실히 존경할만 하다.

반면에 어느 잡지 기사에서 모 평론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 평론가가 말하기를 김연수도 책팔아서 먹고 살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연수. 나름대로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박민규도 만만찮다. 이 두 작가는 사실 대한민국 문학계의 현재이자 미래이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위에서는 돌덩이들이 굴러 떨어져 그들의 손을 찍어대고 있다. 그렇게 힘겹게 기어올라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문학판의 주류에 올라서더라도 백만부를 팔지는 못한다. 신경숙은 팔았는데. 황석영은 무릎팍 도사에도 나왔는데.

대한민국은 대대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라다. 확실한 것은 제대로 밀지만 불확실한 것은 철저히 배제해 버리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심스럽고 안전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안전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신경숙 다음에는? 황석영 다음에는? 차세대 신경숙이나 차세대 황석영을 키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현재 안전한 길로 가는 것이다. 표지판을 따라, 지도를 보고 가장 최적의 길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을 켠 채 언제나 영원할 것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삼성이나 LG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차세대 삼성, 차세대 LG를 키워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이후까지 몇 수 앞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문학판이 정체되어 있다는 가장 큰 예는 바로 장르문학의 부재이다.
나는 도대체 국내에서 제대로된 스릴러 소설, SF소설, 팬터지 소설을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은 일단 서가 저 안쪽에 찌그러져 있다. SF소설은 단편집에나 몇 번 실릴 뿐이다. 팬터지 소설은 대본소 만화 찍어내듯 기본이 열 권이고 그나마도 어디서 많이 봐왔던 설정이다.
내가 책을 출판하면서 몇 가지 알아낸 것이 있는데 서점마다 책을 위치하는데 돈이 든다는 것이다. 가판대에 책을 얹어놓으려면 책꽂이에 꼽아두는 것 보다 돈을 더 지불해야한다.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이것도 서점을 탓할바는 아니다. 문제는 가장 사람들이 많이 발길을 멈추는 가판대에 우리나라 작가의 소설들이, 그것도 장르소설이 몇 권이나 진열되어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이영도의 소설들이 눈에 띄었지만 최근에는 그 조차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순수문학을 진열해 놓은 가판대에는 '한국 소설 재미 없죠?' 따위의 말이나 적혀있다. 일본소설 코너가 한 복판에 따로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예 코너를 따로 빼놓는다. 스릴러 소설 코너에는 서양의 소설들이 즐비하다. 대부분 다빈치 코드 유사품들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발을 붙일 틈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경숙의 백만부 돌파는 한편으로는 의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외국 작가들을 재낀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더 많은 작가들, 더 젊은 작가들의 책들이 50만부, 백만부를 팔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루키 코너를 따로 빼내는 대신, 김훈이나 신경숙 같은 잘 팔리는 작가들의 코너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국내 장르소설 코너가 따로 있어야 하고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더 많이 광고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현실은 그야말로 시궁창이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전한 것, 확실한 것. 나이먹은 사람들과 말싸움을 해 본 적이 있으신가? 나는 있다. 몇 년 전에 노점장사를 할 때였다. 오리지날 노스페이스 점퍼를 '메이드 인 차이나' 라는 이유만으로 가짜라고 우기신다. 아니라고 합리적으로 설명을 드렸다. 어르신들은 이렇게 합리적으로 대들면 마지막에 꼭 결정타를 날리신다.

나이도 어린 것이...

나이도 어린 것이 어르신에게 대들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제대로 된 이유라도 말이다. 어르신들의 생각을 바꾸려고(혹은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면 싸가지 없는 어린 것이 되는 세상이다.
이것은 버르장머리 없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주변에 어르신 붙잡고 우리 모두 핸드폰은 어디것을 사시겠느냐고 물어보시라. 대답은 한결 같으실 것이다.

삼성이니까. 확실하니까.

노키아나, 모토로라나 애플의 제품들을 권해보시라. 그 분들은 겁부터 먹으신다. 확실하지 않은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노키아, 모토로라, 애플의 간판을 본 적이 없으신 것이다. 그 분들을 비난 할 수 없다. 세상이 그러니까.

다시 문학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나조차도 우리나라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창피하지만 사실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핑계거리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욕심이 있다. 내가 미처 찾아내지 못했던 단어, 내가 미처 구사하지 못했던 문장을 다른 작가들이 쓴 것을 보면 질투가 나는 것이다. 내가 힘들게 고생하며 겨우 써낸 문장을 다른 작가들이 이미 써놨다면.

저 새끼 표절한거 아냐?

이런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반대로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문장이 있는데 그걸 차마 표현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작가가 써놓은 것을 보면 솔직한 심정으로 그 문장을 훔치고 싶다.
그럼 또 이런 소리가 들리겠지.

저 새끼 소설 누구누구랑 비슷한데?

나는 그래서 우리나라 작가들, 특히 동시대 작가들의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비겁한 변명이라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다. 글쓰는 분들이라면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질투심이다. 저건 내 문장인데. 마치 내 여자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 년간은 우리나라 작가들의 소설을 꽤 많이 읽은 것 같다. 문예지에 단편소설들이 실려있으면 꼼꼼히 챙겨보는 편이다. 그들의 장점을 겸허하게 수용하되 자존심은 잃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단점을 집요하게 찾아내서 내 장점으로 만들기도 한다. 치사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공부니까.
아무튼, 최근 작가들의 글을 보자면 사실 좀 심심하기도 하다. 박민규의 소설은 흥미진진하고 김연수의 소설은 감각적이지만 다른 작가들의 소설들은 한마디로 지루한 것이다. 문장도 멋지고 구성도 훌륭한데 결론적으로 재미는 없다. 그러니 대형서점에서 한국문학 재미 없죠? 따위의 말을 할 법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재미없는 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대한민국의 문학계가 요구하고 있는 것을 쓸 뿐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대한민국에서 변화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다.

다른 나라로 꺼지세요, 영어로 쓰시던가, 일본어로 쓰시던가.
라고 말씀을 하신다면 역시 할 말이 없다. 나는 찌그러질 뿐이다. 내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겨우 소설 한 편 내고 그것도 얼마 안가 사장되었는데.

반면에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우리나라의 애정은 대단하다.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하겠지만 1Q84는 재미는 있으나 그렇게 열광적인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겨우 1권의 절반을 읽었을 뿐이지만, 기존의 하루키 소설의 진행상황을 보면 뻔하다. 사실 하루키의 소설은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이전의 소설들이 백미였다. 노르웨이의 숲이 절정에 이르렀다면 그 이후부터의 하루키는 이전의 하루키가 아닌 것이다. 요즘에 여기저기서 즐겨쓰는 용어로 말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 시즌 2 정도랄까? 그러다가 해변의 카프카에서 비로소 무라카미 하루키 시즌 3가 시작되는데 대부분 아시다시피 시즌 1을 능가하는 것은 없는 법이다. 게다가 이 대단한 소설이 읽다보면 왜 이리도 오타가 많은지.

어쨌든 하루키 소설은 변화가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대단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하루키니까. 확실하니까.

확실히 본전은 뽑는 작가니까.

이 포스팅의 요지는 이제 우리나라 문학판도 좀 변화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을 보다 더 띄워줘야 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대한민국 국민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책을 읽지 않는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신경숙이 증명해보였다. 요즘에 버스나 지하철이나 기차를 보면 책을 손에 든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책 한 권의 가치가 드디어 조금씩이나마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오늘도 기차 안에서 신경숙의 소설을 읽고 있는 학생을 보았다. 바로 내 옆에 앉아있었다. 젊은 학생이 PMP로 영화나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젊은 작가들의 재미있는 소설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비록 한국 소설 재미 없으시죠? 따위의 문구가 적혀있어도 한국 작가들을 위한 별도의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출판사들은 차츰 문학상의 숫자도 늘리고 있으며 액수도 커져가고 있다.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거기에 더해 이제는 젊은 작가들을 좀 밀어주어야 할 때도 된 것이다. 일본에서 김연수의 소설이 백만부 팔렸다는 소식을 TV뉴스로 보는 날이 온다면 나는 비록 내가 쓴 소설이 아닐지언정 행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는 날이 올거라는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윗분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미국도 변화를 택했다. 흑인이 대통령을 했고 그 사실을 우리는 마구마구 찬양하지 않았던가? 우리도 변화가 필요하다.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글쟁이는 가난하다고. 나는 그 말을 부정하고 싶다. 글쟁이도 먹고 살아야 글을 쓰지 않겠는가? 비록 돈벌이는 안되어도,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울고 웃어준다면 그 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으리라.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울고 웃어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에 있다. 한국작가들이 많이 팔리면, 후배들은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어줄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얻게 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처럼 외국을 배회하면서 느긋하게 클래식이나 재즈를 연주하는 바에 앉아 와인이나 마시면서 인생을 즐기는 작가들이 우리나라에도 생긴다면, 많은 후배들이 더 용기를 가지고 도전을 할 것이다. 선배 글쟁이 부터가 글쟁이는 배고파요. 투잡해야해요. 노가다 뛰어서 한끼 식사 해결하고 대필해서 애들 학교 보냈어요. 같은 말을 한다면, 후배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기가 죽을 것이다.

변화. 사실 최근의 대한민국에 가장 요구되는 단어이다. 우리에게는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 각 분야에서 변화는 긴급하게 수혈해야 할 피다. 그런데 이 변화라는 피는 어느샌가 희귀 혈액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 문학계도 변해야 한다. 고품질의 SF와 한 여름날 오금이 저릴 정도의 서스펜스가 살아있는 스릴러 소설과 눈만 감으면 다른 세계에 있을 것 같은 환상적이고 독창적인 팬터지가 필요하다. 백만부 작가가 하나 둘이 아닌 수십명이 나와야 한다. 문학이라는 예술을 탐미하는 젊은이들이 더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 분들은, 그들의 롤모델이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변화되기만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기보다는 우리가 변화를 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변화해야 한다. 좋은 글을 쓰고 변화의 선봉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무슨 새마을운동 선전 문구같다.
결론은 이렇다.

용기를 잃지말고 죽기살기로 글을 쓰자.




  1. Favicon of http://www.gomuband.com BlogIcon gomuband 2009.12.07 20:19 신고

    오랜만에 술술 읽히는 글을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2. Favicon of http://ourvillage.tistory.com BlogIcon 촌스런블로그 2009.12.07 22:32 신고

    좋은 지적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정체된 우리 문화계에 변화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3. Favicon of http://www.hyongo.com/ BlogIcon 포도봉봉 2009.12.08 13:29 신고

    정말 공감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만 밀어주다가 그 다음은? 그 다음도 생각해야 하는 것인데..
    줄리안님 잘 보고 갑니다.

  4. 으아 2011.03.20 16:29 신고

    제대로 된 판타지 소설 내겠습니다.
    이영도라는 작가 분이 있는데 괜찮더라고요.
    수고하세요.

  5. 푸른목성 2011.03.21 05:42 신고

    화나면서도 서글퍼지네요..
    아무래도 글은 누군가 읽었을 때 의미가 있는 법인데
    그러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라는 생각이 드네요 ㅠㅠ

내가 20여년 전에 처음 소설을 쓴 이후, 내 인생에 완결을 지은 중,단편 소설은 각각 한 편 씩 있었다. KETEL 시절에 썼던 '킬링 타임(Killing Time)' 은 내 인생의 첫 중편 소설이었다. 대략 20여편 분량으로 썼던...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기 그지 없는 소설이었던 이 킬링 타임은 언젠가는 내용을 수정하고 다시 써보고 싶은 소설이기도 하다.
그 이외에는 출간했던 장편소설 한 편을 빼고는 모두 단편 소설을 썼다.

단편소설이란 쓰는 사람에게는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장편소설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RPG 게임 같다면 단편소설이란 단판에 승부가 나는 그런 게임이랄까.

나는 보통 단편소설을 쓰는 시간이 4시간 에서 6시간 사이다. 초창기에는 그 안에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그 소설은 포기해야했다. 이것은 호흡과도 관련이 있는데 그 템포를 놓치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쓰거나 아예 포기를 해야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조금 더 글 쓰는 것이 숙련되었을 때 나는 3일동안 천천히 작업해본 적도 있다. '블라인드' 라는 소설인데 구상하는데 이틀, 직접 쓰는데 하루 정도 걸렸다. 이 단편소설은 러시아 국립영화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셨던 분께서 내게 소스를 제공해주셨고 나는 그 소설을 단편으로 만들어냈다. 이 소설은 내가 쓴 소설중에 가장 공을 들인 소설이기도 하다.
이 러시아 국립영화대학을 나오신 분이 나와 인연이 된 이유는 그 분께서 내 단편소설 '생각의 장난'을 단편영화로 만들고 싶어하셨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프로젝트였지만 나는 잠시동안 흥분했었다. 하긴, 생각의 장난은 내 단편중에 비주얼로 옮기기 무난한 소재였다. 이 소설은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씌여졌고 나 역시 즐기면서 쓴 몇 안되는 소설이었다.

'시간의 종말' 'Invisible Touch' 이 두 작품은 창작과비평 신인문학상 공모 때 출품했던 소설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편 모두 본선에 올라갔었는데 '시간의 종말'은 출품하기 위해 새로 쓴 소설이었고 '인비지블 터치'는 아주 옛날 재미삼아 써 본 글이었다.  인비지블 터치는 제네시스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두 편 모두 완성하는데 들인 시간은 고작 3시간 정도였다.

내가 썼던 소설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이 세 편 있는데 '포스터 속의 여인, 그녀와 칵테일을 마시다' 와 'Lonely Avenue', 'P.M. 9:00, 8번 승강장' 등이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나 다운 소설이 아닐까 싶다. 특히 '포스터...' 와 '론리 애비뉴' 와 같은 소설을 좋아하는데 현실과 몽상의 경계선에 선 주인공들을 쓰는 것이 기분 좋다. 그들은 현실과 그 이면의 자신들은 잘 모르는 또 다른 세계에서 방황을 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팬터지 같지만.
나는 팬터지 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지금은 쓰고 싶지 않다. 쓸려면 제대로 써야지. 게다가 지금은 다른 쓰고 싶은 것도 많이 있다. 아주 아주 한가할때 팬터지 소설을 써 보고 싶다.

나에게 있어 소설이란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환상에 대한 대리 만족이다. 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내 소설속에서 대리 만족을 느낄 것이다. 아마도.

최근들어 글쓰기에 관련해서 슬럼프에 빠졌었던 나는 최근에서야 겨우 그 슬럼프에서 다소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정말이지 글이 머릿속에서 맴도는데 그걸 옮겨적지 못할때의 기분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들정도로 비참하다.

어쨌든 나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프로젝트를 재개 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인간들의 여러가지 감정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 시리즈 'Emotions'를 준비중이다. 첫 편만을 쓰고 잠시 묻어두었는데 우선 두 어편의 단편으로 잠시 그 동안의 공백을 메우고 'Emotions' 에만 한 동안 전념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옴니버스 소설에 관심이 많아서 이번에 준비하는 공모전에 낼 소설 역시 옴니버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 밖에 '창비 신인문학상'에 한 번 더 도전이나 해 볼까 하는 생각에 두 어편의 단편을 더 생각중이다. 한편은 이미 대략의 구상이 끝난 상태이다.

아아. 그러보니 써야 할 소설이 너무 많다. 시간이 모자를 지경이지만 조금씩 천천히 나도 이제 움직일 때가 되었다. 어쩌면 이 포스팅의 의미는 내 자신에게 이제 그만 멈춰있고 다시 움직여봐. 라는 내 스스로의 응원인지도 모르겠다. 이 포스팅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돌이켜보고 나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었으면 싶었으니까.

그런데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기나긴 이별' 에 나오는 한 소설가는 소설가가 자신이 쓴 옛 소설을 뒤적거려 본다는 것은 곧 소설가로서의 인생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요즘 내 옛날 글들을 자주 뒤적거린다.
우울하지만, 멋지고 정확한 대사 같다.


  1. Favicon of http://sueslove.net BlogIcon sue 2007.04.12 10:31 신고

    주변의 변화들 때문에 잠시 미뤄두었던거라 생각해.^^
    미뤄두었다는 것.보다는 그 기간이 길어지지 않을지..그게 걱정되긴 했었어.
    자기 항상 준비된 사람이기 때문에 시작만 하면 그 다음은 어렵지 않겠지? ^^
    날개짓에 몰입해봐.. 쉿...^^

    • Favicon of http://juliantime.net BlogIcon julian 2007.04.15 13:38 신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내 주변 정리가 되면 그때 다시 재기해야지..
      격려 고마워 ^^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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