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처음으로 소설을 출간했을 때 일이다.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럴 듯한 SF소설 한 권 쯤은 있어야겠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외국 작품처럼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쨌든 출판제의가 들어왔고 계약금은 정말로 적었지만 나는 수락했다. 그때의 들뜬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제목을 정하고 글을 쓰고 책표지를 막 상상할 무렵, 출판사 담당직원이 내게 책 제목을 바꾸자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서태지도 처음에는 쇼프로그램에서 춤췄어요.

누구나 처음부터 자신의 뜻대로 뭔가를 이루기란 힘들다는 뜻인것 같았다. 어쨌든 책은 망했고(그래도 2012년 주인공보다는 많이 팔렸으리라 생각한다. 영화를 본 분들은 무슨 뜻인지 알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후부터 나는 내 소설의 근본을 뜯어고치는 작업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소설을 쓴다고 하면 내게 다양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꼭 하는 말이있다.

소설가들은 다 그러잖아요.

사실, 소설가들의 편견이란 대한민국의 정치와도 같아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바로 잡을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이 포스팅을 통해서,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 자신이 생각하는 소설가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싶다. 덧붙여서 시멘트 못 처럼 강하게 박혀있는 소설가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눈꼽만큼이라도 흔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소설가는 언제나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소설가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속에 많이 집어 넣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전에도 포스팅했던 이상일 것이다. 이상의 소설을 보면 알겠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메인테마로 삼는다.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만을 쓰다보면 글에서 삼고자 하는 주제가 한 방향으로 치우치기 십상이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만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정치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그 소설에는 분명히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잘 드러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쓴 정치소설을 한 쪽만 읽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 소설을 읽고 서로 상반된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수긍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으리라.
그래서 소설가는 객관성을 유지하는 시선. 즉 건축가가 조감도를 보듯, 사회전반을 아울러서 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이 내 소설을 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소설가가 가져야할 가장 큰 미덕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이렇나 객관석이 없다면 내가 쓴 글은 어느 한 쪽에서는 환영받을지 몰라도 다른 한 쪽에서는 환영받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일에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일이다. 그렇기에 소설가들만 할 수 있는 일, 즉 소설 안에 장치를 넣어두는 방법도 있다.  겉보기에는 객관성을 유지하는 듯 싶어도 행간에 자신의 의견을 살짝넣어두는 것이다. 너무 이중적이라고? 그럴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소설가들처럼 이중적인 인간들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들은 조금은 이중적인 성향이 필요하다. 허구의 세계를 창조해야하기 때문이다. 내 삶이나 이념, 사상을 그대로 소설화시킨다면 그것이 일기와 뭐가 다르겠는가?

어쨌든 객관적인 척 하려고 해도 객관적인 시각을 기본적으로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힘들다. 그러니 소설가들은 언제나 객관적이 되려고 최소한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2. 완벽함을 추구해야 한다.

이 소제목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데?
물론이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란 없다.
그러나 소설가들은 자신의 글이 완벽해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비록 완벽함에 도달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을지라도, 그 완벽함을 향해 나아갈수는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내 소설도 처음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글을 계속해서 쓴다는 것은, 보다 완벽한 글을 쓰기위한 과정이다. 그렇게 쓰다보면 어느새 차츰차츰 완벽에 가까워지는 나의 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심하자.
그렇다고 해도 완벽한 소설이란 있을 수 없다. 설령 그런 소설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저 내 글이 완벽하다고 느껴지는 것 뿐이다.

3. 나는 소설가다.

헤더 리치 & 로버트 그레이엄의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해보자.

작가가 하는 일이란 사실 단순하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채 종이나 화면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단어는 차례로 등장한다. 그 중에 몇 단어는 지우고, 때로는 이미 써놓은 단어를 쳐다보기도 하면서 한 줄 한 줄 써나간다. 작가는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각주:1]

마지막 문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가는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굳이 책을 출판하지 않았더라도, 글을 쓴다고 마음먹고 실제로 글을 쓰고 있다면 우리는 모두 작가다. 일반적으로 작가라고 하면 책도 몇 권 쓰고 어느정도 이름도 있는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위의 책은 이런 것이 그저 하나의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누구라도 작가가 될 수 있다. 다만 대중에 발표되지 않았을 뿐.

내가 경험해봐서 아는데 계속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는 길이 생기게 마련이다.

4. 계속해서 글을 쓰자.

나는 소설을 18년간 꾸준히 써왔다. 누가 봐주던 안봐주던 PC통신 게시판이나 인터넷 게시판에 꾸준히 소설을 올렸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게임스토리 작가도 해봤고 컨텐츠 업체에서 의뢰도 들어오고 책도 낼 수 있었다.
글을 계속해서 쓴다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당신이 소설가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야구에서 벤치에 앉아있는 백업선수가 끊임없이 배트를 휘두르며 기다리는 것과 같다. 그렇게 연습하고 있다보면 언젠가는 대타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고 연습의 결과로 홈런이나 멋진 안타를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주전도 할 수 있다.
소설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벤치멤버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만일 앞으로 다가올 기회를 무시한 채 손을 놓고 있다가 정작 기회가 다가왔을 때 내 놓을 글이 없다면 그것 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다.

5. 소설가는 여자를 좋아한다?

사실 과거의 우리나라 문학계에 대한 루머들을 보면 어느정도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 글쓰기에 열중하는 사람들은 보통 가정적인 사람들이 많다. 만일, 당신의 남자친구가 소설가인데 지나가는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면 뺨을 날리기 전에 왜 봤는지 물어보기나 해보자. 어쩌면 그 남자친구는 지나가는 여자를 여자가 아닌 소설에 써먹을 대상으로 보고 관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간혹가다가 소설가들은 경험을 해야 한답시고 여러 불건전한 사고들을 치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꼭 직접적인 경험만이 소설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에 대해서는 다음에서 다시 살펴보자.

6. 경험

경험은 많이하면 많이 할 수록 좋다. 그러나 안좋은 경험을 일부러 할 필요까지는 없다. 예를 들어 나는 노점장사를 3년을 했다. 본의아니게 하게 됐지만 내게는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노점장사를 할 필요가 없음에도 단지 소설가는 경험을 많이 해야하기 때문에 노점일을 할 것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오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만 그 고생의 대상이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거나 혹은 자신에게 상처로 돌아올 것 같으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나는 노점일을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고 이 상처는 아직도 치유중이다. 이러다 죽는거 아냐? 싶을 때도 몇 번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했기에 내가 약이 되었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작가라고 모든 경험을 다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경험은 잊지 말도록 하자. 그 경험이 당신과 당신의 글을 바꿔 놓을 것이다.

7. 소설가들은 술을 많이 마신다?

나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한다. 술이 들어가야 글 좀 쓸 수 있다는 작가도 있는데 이것은 사람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간혹가다가 소설가라면 술 좀 마시고 췻기에 좋은 문장이 나오는 법 아냐? 라고 생각하고 일부러 술을 마시면서 글을 쓰라고 권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별로 좋은 방법은 되지 못한다.
그래도 작가들마다 습관은 있는 것 같은데 내 경우에는 그 습관이 바로 담배와 커피다.
나는 평소에는 담배를 그리 많이 피우지는 않는데 꼭 글만 쓰려고 앉으면 담배를 한 갑은 피우는 것 같다. 지도 교수님 말씀으로는 처음에만 그렇고 막상 끊고나면 담배는 글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그래서 최근에는 담배의 힘을 빌려보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다.
커피는 좀 다르다.
커피나 차 종류는 글을 쓸 때 확실히 도움을 준다. 이런 따뜻한 음료는 나를 안락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기분은 심적인 요소가 많이 반영이 되지만 어차피 소설이란 마음과 정신을 옮겨적는 행위이기 때문에 따뜻한 차 종류는 도움이 많이 된다.


소설가들 처럼 핑계가 많은 사람들도 없다. 그리고 소설가들처럼 자기합리화가 강한 사람들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 조차도 편견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핑계나 자기합리화는 나쁘다기 보다는 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때로는 노동에 버금가는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7번에도 언급했듯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안락하고 편안한 기분으로 즐기며 글을 쓴다면, 이보다도 즐거운 일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사실, 이 포스팅을 하면서 내 자신에게도 보다 더 좋은 글을 써보자고 다짐을 하게 된다. 내 자신이 슬럼프에 빠졌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일종의 슬럼프 상태라면, 이 포스팅이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1.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 헤더 리치 & 로버트 그레이엄, 베이직 북스, 361면. [본문으로]
  1. 으아 2011.03.20 16:05 신고

    수고하십니다.
    이런 비주류 소설가들이 많다는건 알고 있었습니다.
    저도 비주류 전선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오늘이 죽기 마지막 날에 할 그 일을 하려고 합니다.
    줄리안님도 그런 일을 하고 계신 거겠죠?

  2. 2014.02.11 03:33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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