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hone 6s Plus




  영감이 떠오른다. 한 남자는 테이블에 앉아 냅킨 한 장에 펜으로 예언처럼 떠 오른 그 영감을 열심히 적는다. 미국 드라마 매드맨(Madmen)의 한 장면이다. 바(Bar)에 근사한 여인이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바텐더는 칵테일 한 잔과 메모지 한 장을 들고 여자의 테이블을 찾는다. "저쪽에 앉아 있는 남자분께서 사는 겁니다." 그날 처음 만난 남녀가 함께 밤을 보내고, 남자가 눈을 떴을 때, 여자는 화장실 거울에 립스틱으로 자신의 연락처를 남겨놓고 떠난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은, 어느 로맨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흔한 클리셰지만 우리는 이런 장면들에서 일종의 낭만을 경험한다. 메모지, 펜, 립스틱, 거울. 저물어가는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이 아니던가. 


  이제 우리는 영감이 떠 오르게 되면 더 이상 노트와 펜을 꺼내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다면 메신저의 아이디를 교환한다. 모든 것들은 클라우드 안에, 0과 1이라는 숫자의 조합으로 저장된다. 그리고 이 디지털 메모들은 스마트폰으로, 컴퓨터로, 태블릿으로 언제 어디서나 보고 지울 수 있다. 늘 깔끔한 상태로 메모들을 분류 및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스마트한 사람'이라는, 작위(爵位)를 부여한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에 종이와 펜은 구닥다리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아날로그적 감성을 계승한다며 스마트폰(혹은 태블릿)에 펜을 달고 노트의 기능을 추가했다. 그것은 마치 디지털 음원에 잡음을 집어 넣고 비닐 레코드의 감성을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그런 것들이 종이와 펜에 대한, 일종의 모욕이라 생각한다. 감성은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근래들어 고급 노트와, 고급 펜의 판매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다시 비닐 레코드가 유행하기 시작하고, 필름 카메라를 쓰는 사람들도 늘었다. 당장에는 기쁜 소식이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지친 현대인들의 아날로그로의 귀환이라. 그럴 듯하다. 아니, 오히려 반가워해야 할 상황인가. 


  종이와 펜은, 세상 그 어떤 디지털 매체 보다도 더 오랜시간 살아남아왔다. 아무리 최신 기술의 저장장치라 하더라도, 평생을 쓸 수는 없다. 이론상 광디스크는 거의 반편생 쓸 수 있지만, 지금 CD나 DVD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모든 것은 '파일(File)'화 되어있고, 필요가 없으면 언제나 지워버릴 수 있다. 그러나 종이나 펜은 사정이 다르다. 종이에 펜으로 쓴 메모들은 쉽게 없애버릴 수 없다. 종이에 펜으로 무엇인가를 적는 그 순간 글(text)은 생명력을 얻는다. 찢어버리거나, 지워버리려 해도 흔적은 남는다. 내 손의 감촉, 노트 뒷면에 희미하게 새겨진 자국들이 그렇다. 


  종이에 펜으로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일종의 예의를 갖춰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들은 우리보다 더 오랜시간 살아 남은, 그리고 살아 남을 종(種)이 아니던가. 종이와 펜은, 디지털 라이프에서 지친 인간들의 도피처나 다름없다. 우리는 아날로그를 단순히 호기심, 혹은 유행의 한 부분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실상 아날로그 적 삶은 지금 이 시대에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당장이라도 우리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없으면 마치 질식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하지만, 아날로그, 특히 종이와 펜에는 우리가 얕봐서는 안될, 어떤 아우라 같은 것이 존재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이 종이와 펜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감성을 지는 아날로그 필기구들에게서 깊은 존경심 같은 것을 갖게 된다. 그러니 잠깐 디지털 기기들을 손에서 놓고, 조금은 경건하고, 약간은 예의를 갖추며 종이와 펜을 맞이해보자. 그리고 무엇이든 좋으니 첫 문장을 적어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도 여러분들은 그 문장을 컴퓨터의 파일 지우듯 지우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1. Favicon of http://zoahaza.net BlogIcon 조아하자 2016.04.24 21:53 신고

    저도 메모를 디지털로 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그래도 스케줄러는 아날로그식으로 씁니다. 감성적이라서가 아니라 그게 더 빠르고 효율적이더군요.

    • Favicon of http://heejune.net BlogIcon Heejune 2016.04.25 07:34 신고

      저도 급할 땐 디지털로 메모를 하지만, 결국에는 수첩에 전부 옮겨 적습니다. 펜을 꺼내서 바로 적는 것이 사실은 가장 빠른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수첩과 펜을 가지고 다닙니다. 좋은 덧글 감사드려요 ^^

  2. Favicon of http://sequestered.tistory.com BlogIcon 이리오시 2016.04.24 23:05 신고

    추억일 뿐, 그 도구만의 감성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날로그 -> 감성으로 이어가는 종류의 글을 볼 때마다 느끼는거죠. 생각해보세요. 종이와 펜 이전의 수단이 있었겠고, 그럼 그 이전에 더 어렵게 기록하고 혹은 외웠었던(예를 들자면) 그 방식이 아날로그이고 종이와 펜이 디지털이라고는 할 순 없는거잖나요. 일부는 공감하지만 처음에 썼다시피 그저 추억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 Favicon of http://heejune.net BlogIcon Heejune 2016.04.25 07:33 신고

      감성이라는 표현은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실 펜이나 종이도 개발되어가는 과정에서 '과학'적인 방법들이 동원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리오시님 말씀대로 '디지털'이라고 말하지는 않지요. '디지털'은 개념이 다릅니다. 그리고 디지털나름의 감성도 존재하고 있지요. 당장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영화 '접속'이나 '후 아 유' 같은 것들이 있겠습니다. 어쨌든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3. Favicon of http://doolytubbies.tistory.com BlogIcon 둘리토비 2016.04.25 00:23 신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로운 설정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구분을 하게 되거든요. 각각의 영역별로 그러기에 종이와 펜도 적절하게 활용하고
    디지털 기기로도 활용하고 그 가운데서 계속적인 영감을 얻고 창의성을 기르면 되겠지요~^^

    • Favicon of http://heejune.net BlogIcon Heejune 2016.04.25 07:30 신고

      시대의 흐름을 거부할 수도 없으니 적절하게 조화를 하면 좋겠지요. 저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적절하게 구분하여 이용하려고 노력중입니다. 다만, 간혹 종이와 펜을 이용할 때, 이들에게 대한 어떤 경외심 같은 것이 느껴져서요. ^^

  4. Favicon of http://booklikedream.tistory.com BlogIcon 다재다능르코 2016.04.25 23:43 신고

    전자책이 나와도 여전히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듯, 알파고가 나와도 여전히 '사람'이 더 가치를 갖듯 ㅎ 아무리 디지털기술이 발달해도 '아날로그'특유의 특성들은 따라오기 힘든것 같아요 ㅎ


오랜만에 서점을 가봤더니


'자기계발' 코너에 '스마트 워킹'과 관련된 책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모바일 시장이 발달하면서 함께 변화한 것이 '자기계발', '업무'와 관련된 분야이다. 이른바 '스마트 워킹'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들은 연말(혹은 연초가 되면) 그 해의 다이어리를 구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새해의 다이어리를 장만하는 것이 일종의 연례행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가방에는 각자의 개성으로 잔뜩 꾸며진 다이어리와 펜이 들어있었다. 전부 과거 일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다이어리'를 이용하는 이들은 차츰 감소하기 시작했다. 뭔가 메모할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수첩 대신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메모를 다른 이들과 손쉽게 공유했다. 그 뿐인가, 업무, 일정등도 손쉽게 공유가 가능했고, 이런 일들은 스마트폰의 발전이 가져온 순기능들이었다.


편리함을 얻은 대신 개성이 사라진 시대


사실 갤럭시 노트가 성공한 이유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절묘한 결합 때문이라 여겨진다. 뭔가를 필기하는 손맛을 느끼고 싶은데 스마트폰의 편리함은 버리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절충안이 노트 형태의 스마트폰인 것이다. 

갤럭시 노트의 성공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근래들어 우리는 무조건 적인 편리함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피로감의 이면에는 스마트폰의 작은 액정, 가독성, 그리고 분단위로 스마트폰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강박 같은 것들이 자리잡고 있다. 

분명 스마트폰을 이용한 업무나 시간관리는 간편하고 효율적이며 편리하다. 예전 '자기계발', '시간관리', '업무'와 관련된 책들에서는 수첩과 펜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도구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모든 디지털 기기들이 유기적으로 연동되고, 집, 회사, 외부 어디에서든 인터넷과 전원이 남아 있다면 편리하게 내 업무를 이어서 진행하거나 시간관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으로 인터넷과 전원이 있는 곳에서까지 일을 연장해야 하고,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따라온 것도 사실이다. 때로는 일정이 빼곡이 적혀 있는 수첩이나 다이어리를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실제로도 수첩을 이용하면 그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쉴새 없이 울려대는 알람, 전원을 꺼버려도 언제 부재중 연락이 올지 모르는 불안감 같은 것들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편리하게 시간을 관리하고 업무를 하고자 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극심한 피로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마치 24시간 내내 일을 해야만 하는 로봇과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도 스마트폰으로 이용하는 수첩 어플리케이션이나 다이어리들은 자신의 취향대로 꾸미기 어렵다는 단점들이 있다. 다이어리나 수첩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개성을 대변했다. 다른 사람들이 유니크하게 꾸며놓은 다이어리나 수첩들을 펼쳐볼 때면 자극을 받거나, 혹은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되는 계기가 되곤 했지만, 스마트폰용 어플은 그런 소소한 재미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유지비용


스마트폰 어플의 장점은 매년 새로운 다이어리나 수첩을 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냥 처음 구입한 어플을 꾸준히 이어서 쓰면 되는 것이다. 펜의 잉크를 교환할 필요도, 속지를 교체할 필요도 없다. 

공간절약이라는 측면에서 이점도 있다. 지난 수첩이나 메모들을 별도의 공간을 할애하여 보관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과연 종이로 된 수첩이나 다이어리, 펜이 비효율적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취향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위에 적어놓은 내용 전부가 취향의 문제이다. 기분에 따라 다양한 질감의 종이를 쓴 수첩이나 노트로 교환을 해보고, 다양한 필기감의 펜을 써보는 것은 자기관리나 업무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아날로그 적인 면이 업무나 자기계발 적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듯, 꾸민다는 측면에서 시각적인 만족감(혹은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우리는 효율적으로 살고 있는가, 구속되어 살고 있는가


자기관리나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중요한 일을 하면서 스스로를 '효율성'이라는 틀 안에 너무 구속시키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노트와 펜의 미덕은 자율성이다. 배터리의 잔량이나 무료 와이파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훨씬 더 창의적인 사고를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손끝에서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 잉크의 흐름, 펜의 필기감 같은 것들은 작은 화면의 키보드를 터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쾌적한 느낌을 제공한다. 아시다시피, 능률은 쾌적함에서 나온다. 물론 디지털의 편의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적절히 절충한다면 훨씬 '즐거운' 자기관리(혹은 자기계발)과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절충방법은 후에 다시 포스팅해보기로 하겠다. 








필자는 과거에,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들, 그것도 주로 '백인 중산층'을 모델로 한 CF에 관하여 글을 적은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 CF에 한국 연예인은 없다)


대기업의 CF일수록 한국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TV로 대기업의 CF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국적 불명의 기업의 광고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물론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리 생활과는 무척 동떨어진, 백인 중산층들(로 보이는)을 모델로 한 광고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한국인'으로 살기보다는 서양의, 그것도 백인들의 삶을 선호한다. 우리나라의 모 스마트폰 광고는, 아예 메시지 내용조차 영어로 나오는데 그것이 과연 우리나라에 어울리는 광고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단지 TV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CF에 등장하는 미남, 미녀들의 모습에만 촛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제품들을 보면서, 이 상품을 만든 회사는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회사구나, 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기도 한다. 


이와 같은 '외국인들 모델 CF'는 앞서 언급했던 포스팅에도 나와있겠지만, 연예인들을 모델로 쓰는 것보다는 훨씬 더 저렴하게 먹힐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이런 CF들이 불쾌하다. 한국 기업이,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제품의 CF에, 늘씬한 백인 모델들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나는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약간 보수적인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인 것은 상관없다. 다만, 굳이 한국의 선남, 선녀들을 놔두고 굳이 (주로) 백인들을 모델로 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백인 우월주의나, 인종에 대한 편견들은 이미 우리 안에, 마치 방사능처럼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CF를 보면서 현재를 고달프게 살아가는 '한국인들'이다. 자국의 회사 조차도 우리와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자괴감 같은 것이 (적어도 나는) 들었다. 


이런 CF들을 보니, 간혹 기가막힌 아이디어로 CF를 만들던 팬택이 생각이 난다. 어쩌면, 그들도 백인 남녀를 모델로 조금은 허세스럽게 CF를 만들었다면 지금처럼 위기에 빠지진 않았겠지? 이런 생각도 든다.




이제와서


다시 팬택 사태를 끌어 올리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겠다. 쌍용차 사태를 봐온 우리들로써는 낯선 풍경도 아니다. 벤처의 신화라고까지 불렸던 팬택의 몰락은, 그래서 사람들에게 호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에서 가려졌다. 하지만 팬택 사태를 곱씹어 볼 필요는 있다고 판단했다. IT강국이라는 수식어가 이제는 희미해져 버린 대한민국에서, 팬택의 몰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도 팬택의 흥망성쇠는 어딘가 익숙하다. 어쩌면 팬택이라는 회사가 대한민국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택은


재기발랄한 회사였다. 다소 컬트적인 면도 있었다. 팬택이 공략해야 할 소비자 층은 10대 학생들부터 20대 초중반 사회 초년생들이 대부분이었다. IT에 관심이 많거나,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들은 애플이나 삼성 제품에 집중되어 있었다. 팬택은 그 틈새시장을 그럭저럭 잘 공략해 나갔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팬택의 한계였다. '스카이'라는 프리미엄 급 브랜드를 버리고, '베가'라는 생경한 브랜드를 들고 나타났을 때부터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던 삼성이나, 스마트 폰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해도 다른 제품들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경쟁사 LG와는 사정이 달랐다. 팬택은 오로지 스마트 폰만 만들었다. 그것이 처음에는 약이 되었고,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성이 성겼는지 오히려 독으로 변해버렸다. 삼성이나 애플의 공세 속에서 팬택이 견뎌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팬택의 스마트 폰에는 부수적인 수입을 유발시키는 그 무엇인가가 없었다. 이를테면 액세서리 같은 것들 말이다. 애플은 아이폰을 산 사람들이 아이패드를, 그리고 아이패드를 구입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맥을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삼성은 갤럭시라는 브랜드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올려 놓았고, 삼성 모바일 프라자 같은 직영점을 지속적으로 운영해왔으며, 심지어는 전용 케이스를(무척이나 비싼 가격에) 팔기 시작했다. 갤럭시 스마트 폰이나 태블릿을 구입하면서, 기왕이면 깔맞춤으로 정품 케이스나 커버를 구입하자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제대로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팬택에는 이런 것들이 없었다. 팬택이 운영해오던 '랏츠'는 사실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다. 팬택 제품들 전용 액세서리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한데 매장만 있다한들 소용이 없는 것이다. 팬택을 컬트적이고, 매니악한 기업으로 만드는 데 일조를 했던 CF조차 그 개성을 잃어버렸다. 이병헌의 '단언컨대'는 전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그 후속 CF가 에러였다. 마치 논문의 자기표절처럼,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답습하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물론 좋지 못했다. 사람들은 '단언컨대'를 외치는 이병헌만 기억했다. 


우리나라 IT의 딜레마, 창조성


스티브 잡스가 입버릇처럼 '혁신'을 물고다니다 보니 국내 기업들조차 '혁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혁신이 아닌 것도 혁신이라고 우기는 판이 된 것이다. 그런데 혁신의 비료는 창조성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나지 않듯 창조성도 고갈되어 있었다. '혁신을 강요하지만 창조성은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앞에 붙어있던 'IT 강국'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져버렸다. 삼성이 전 세계적으로 갤럭시를 쉴새 없이 팔아치우고 있지만, 그런다한들 그것이 IT 강국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빼앗긴지 오래되었다. 팬택의 몰락 또한 이와 같은 우리나라 현실의 분위기에 떠밀려 발생한 일이다. 팬택은 이제 세계 IT 시장에서 곧 난파선이 될지도 모를 우리나라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팬택은 훌륭한 회사였지만, 발전은 더뎠다. 그렇다고 그들이 현실에 안주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신제품을 냈고, 틈새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던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팬택이 더 괜찮은 회사가 될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애초부터 싹수가 노란 것이 아닌, 팬택은 떡잎이 나쁘지 않았던 회사였다. 고음질 하이파이 음악 감상 기기로 회생한 아이리버의 경우와 같이, 팬택도 조금 더 궁리를 했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를 맞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안타까운 점은, 팬택은 충분히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견에 있었다는 것이다. 삼성이나, 엘지와 차별화 되는 부분이다. 삼성이나 엘지가 어떤 시스템에 묶여, 그 안에서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 놓고 내용물만 바꿔 제품을 찍어내는 것과 달리 팬택은 오히려 더 자유로운 영혼에 가까웠다. 그들은 원한다면 삼성이나 엘지, 아니 애플보다 더 창조적인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었고, 그런 기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팬택에서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약간 자만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나라처럼 말이다. 


나는 팬택을 응원한다


고백하건데 팬택의 제품을 구입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팬택을 응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이다. 가끔씩 보여주던 팬택의 게릴라 적인 면모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들이 얼마든지 삼성이나 엘지를 엿먹일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음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안타깝다. 나는 팬택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팬택을 응원하고 싶다. 그들이 세계의 IT를 지배하는 일은 없어도, 매니아들만 팬택을 찾는다해도 팬택은 존재해야한다. 삼성이나 엘지는 이미 글로벌 기업화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팬택은 그렇지 않다. 팬택은 어찌보면 우리나라 IT의 마지막 '가능성'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가능성 조차 사라져버린다면,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IT 회사'를 차리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팬택이제 막 IT업계에 진출하는 사회 초년생들의 이상적인 모델이다. 그러나 팬택의 몰락은 '우리나라에서 IT는 절대로 안돼'라는 비관적인 양상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다. 거대 통신사들의 갑질, 대기업들의 물량공세 속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팬택의 모습은 그래서 우리나라 IT의 어두운 이면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iPhone 5s


나는 지금도 아이폰 5S의

 

홈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언제부턴가 아이폰 5S의 홈버튼이 약간씩 움직이는 것이 걸리적거렸다. 내 아이폰의 홈버튼이 누르는 동작을 제외한 다른 형태의 동작, 그러니까 약간의 유격으로 인해 조금씩 움직이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일이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내 아이폰은 혹시 '불량'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마치 모차렐라 치즈처럼 끈덕지게 내 의식 속에서 머물러 있다.

 

놀랍게도 아이폰 AS센터 직원의 아이폰도 홈버튼이 흔들거렸다. 더 놀라운 것은 직원조차도 "고객님 때문에 흔들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 아이폰 홈버튼은 흔들거려. 해봐." 라고 이야기하면, 열에 아홉은, "그게 뭐?" 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니까 내 주변에서 이런 문제로 신경을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전자제품을 구매하면 작동상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그냥 쓴다. 외관에 눈에 띌 만한 흠집이 있다던가, 혹은 액정에 스크레치라던가,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문제가 아닌 이상, 특별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특별한 현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디지털 기기에 과한 관심을 주고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스마트폰에 스크래치가 생길까봐 이중 삼중으로 보호한다. 우선 액정에 필름을 붙이고, 뒷면에도 필름을 붙이며, 케이스까지 씌운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앞뒷면으로 필름을 붙이고 케이스까지 씌우는데 투자하는 금액이 미칠정도로 비싸다는 것이다. 사실 보호 용도 이외의, 그러니까 개성을 나타내기 위해 케이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일지라 하더라도, 단순히 플라스틱 조가리 하나가 몇만 원을 호가하는 현 상황은 때로 납득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다른 문제도 있다. 언젠가 '오줌액정'이라는 용어가 국내에서 널리 쓰이게 되던 때가 있었다. 기억하기로는 닌텐도 DS 게임기가 등장했던 무렵이었던 것 같다. '오줌액정'이란 액정의 화면이 다소 '누렇게'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오줌액정'이라는 용어는 후에 아이폰에도 쓰이게 되는데, 누구의 액정은 푸르스름하고, 누구의 액정은 누렇게 보이는 편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오줌액정을 지닌 아이폰이 불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여러분들이 이용하고 있는 모니터의 색 온도의 표준이 6500K라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들의 모니터 색 온도 설정이 9300K로 설정되어 있다면 지금 바로 6500K로 바꿔보라. 모든 모니터는 이 색온도를 변경시킬 수 있는 설정이 있는데, 색온도를 6500K로 바꾸면 모니터가 '오줌액정'으로 변한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스마트 기기들에 대해 보이는 과한 애정을 일종의 '결벽증'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는 대부분 '디지털 결벽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약간의 흠집이나 결함은 인정하지 못한다. 왜 사람들은 이러한 디지털 결벽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스마트 기기들을 단 한 순간도 손에서 놓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스마트폰으로 시작되어 스마트폰으로 끝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 아침식사시간에 신문을 들춰보거나 잠들기 전 책을 읽는 것들은 이제 고루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초단위로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거나 이메일을 보낸다. 이렇게 스마트폰이 손에서 떨어질 일이 없으니 어쩌면 스마트폰이나 기타 모바일 디바이스들에 대한 강한 애착도 사실 나름 이해는 간다. 


 

대량생산시대

 

이기 때문에 완벽한 제품은 없다. 제품의 불량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것이다. 불량률이 높다보니 자연스럽게 '양품'에 '희소성' 같은 값어치들이 매겨진다. 누군가 커뮤니티에 자신의 전자제품에 대한 문제들, 이를테면 오줌액정이라던가 외관의 스크레치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 "제 것은 '양품' 인데요." 라는 덧글을 달았을 때 느껴지는 일종의 승자와도 같은 심리들이 작용하는 것이다. 완벽한 인간이 없듯, 완벽한 공산품도 없다. 외관상의 결점들은 어느 제품이나 조금씩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구입한 제품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가'의 여부인 것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경험한 대부분의 광시야각 패널을 가진 액정들은 불균형한 하얀색을 보였다. 나는 지금가지 액정의 모든 부분이 전부 '고른 하얀색'을 가진 '양품'을 갖지 못했다. 집에서 쓰는 LG 광시야각 모니터도, 아이패드 에어도, 심지어 레티나 맥북 프로까지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량생산품의 가격들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아이폰 뿐만이 아니라 타사 스마트 기기들의 가격은 기본적으로 백만 원 언저리에서 자리잡고 있다. 손바닥만한 기계의 가격이 백만 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사실 망각하고 있다. 약정, 할부 같은 제도들이 우리로 하여금 백만 원이라는 금액에 대한 인식을 무뎌지게 만드는 것이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이 값비싼 기계에 자신의 영혼을 심어 놓은 듯, 애지중지 아끼기도 한다. 그도그럴것이 생활의 대부분이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스마트폰이라던가 모바일 기기들이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킨 것도 있지만, 그에 반비례해서 우리들은 차츰 사회와 격리되어가기도 한다. 그것도 스스로 격리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가장 큰 착각은 SNS 같은 것으로 더욱 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을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자신들의 SNS 친구 목록이 길면 길수록 더욱 더 활발한 소통을 한다고 믿는 것인데 이 목록에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거짓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알고리즘화 된 문자로, 손바닥만한 화면에서 대화를 주고 받는다 해서 그것을 소통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슬픈 감정이 든다. 결국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디바이스가 필요한 것이다. 어떤 시대에는 이런 물건들이 없어도 정상적으로 소통이 가능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이 몇 십 년, 몇 백 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몇 년 전의 이야기이다.


디지털 결벽증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 전자제품의 미덕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외관부터해서 모든 면이 완벽한 물건은 없다. 약간의 흠 정도는 여유있게 넘어갈 수 있는 관용이 필요한 시대다. 물론 제품을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 기업의 책임 또한 당연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디바이스에서 한 발 물러서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늘 스마트폰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누군가와 끊임없이 소통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여러분들은 그럼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조차 갖지 못한다. 늘상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이 스마트 디바이스들 속에 자신을 투영시키고, 그래서 약간의 흠 조차도 커다란 결점으로 보여지는 것은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자신에게 흠이 있을 수록, 자신이 늘상 소지하고 다니는 것들은 흠이 없는 완벽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전자제품은 유한하다. 교체되는 속도는 빠르고 신기술은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개발되어 있다. 우리는 바쁜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속도의 시대. 그 안에서 우리는 스마트 디바이스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고 있다. 자신들의 시간을 뺏어가는 손바닥 크기의 전자제품을 아끼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스마트폰의 흠집을 찾아내는 시간에, 그리고 그 흠집으로 인해 교환받거나 환불해서 재구입을 하는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일들을 해보면 어떨까. 어차피 이 세상에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의 외관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생긴 1cm도 채 되지 않는 생채기들 보다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상처들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1. Favicon of http://freaking.tistory.com BlogIcon 지식전당포 2014.02.22 14:54 신고

    잘 보고 갑니당~ 좋은 하루 되세요 ^^

  2. BlogIcon 임은석 2014.04.16 06:23 신고

    좋은글들이 많은것을 깨닫게 해주네요!
    잠시 내려놓고 소중한 시간에 가치있는일에 매진하는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ㄴ다.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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