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뉴스에서 요시모토 바나나가 나왔다. 한국에 자신의 소설을 출간한 기념으로 방한을 했다는 것이다. 하루키가 방한 한 것도 아니고, 요시모토 바나나가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인기가 있던 존재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뉴스에 나올 정도로 말이다.

모 대형서점 가판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한국 소설이 재미 없다구요? 읽어보세요'

국내 대형서점 조차도, 우리나라 소설이 재미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띄워주지는 못할망정 아예 처음부터 '재미없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한다. 평소에는 아무생각도 하지 않던 사람들 조차 '한국 소설이 그렇게 재미가 없었던가?' 라고 생각하게 될 법한 문구다.

사실, 국내 소설이 이렇게 천대받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대형서점을 탓할 것만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작 일본작가는 뉴스에서도 띄어주면서 우리나라 작가는 겨우 라디오방송에서나 만나볼 수 있다. 최근들어 '무릎팍 도사'에서도 작가들이 왕왕보이긴 하는데 그들은 이른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그런 대단한 작가들인 것이다.

한때 신경숙의 소설이 백만부가 팔렸다고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신경숙. 요즘 유행하는 광고로 따지면 이런 것이다.

'삼성이니까. 확실하니까.'

그렇다. 신경숙이니까. 확실하니까. 대한민국 문학판은 확실한 작가들은 확실하게 밀어준다. 이름만 대면 기본은 팔아재끼는 작가들. 그렇다고 이 작가들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이 작가들은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구축했다. 실제로 대한민국 문학계의 주축돌이라 할 수도 있다. 흔히들 대한민국 국민은 먹고 살기 바빠서 책 안읽는다고들 하는데 그런 나라에서 백만부를 팔았으니 확실히 존경할만 하다.

반면에 어느 잡지 기사에서 모 평론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 평론가가 말하기를 김연수도 책팔아서 먹고 살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연수. 나름대로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박민규도 만만찮다. 이 두 작가는 사실 대한민국 문학계의 현재이자 미래이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위에서는 돌덩이들이 굴러 떨어져 그들의 손을 찍어대고 있다. 그렇게 힘겹게 기어올라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문학판의 주류에 올라서더라도 백만부를 팔지는 못한다. 신경숙은 팔았는데. 황석영은 무릎팍 도사에도 나왔는데.

대한민국은 대대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라다. 확실한 것은 제대로 밀지만 불확실한 것은 철저히 배제해 버리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심스럽고 안전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안전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신경숙 다음에는? 황석영 다음에는? 차세대 신경숙이나 차세대 황석영을 키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현재 안전한 길로 가는 것이다. 표지판을 따라, 지도를 보고 가장 최적의 길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을 켠 채 언제나 영원할 것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삼성이나 LG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차세대 삼성, 차세대 LG를 키워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이후까지 몇 수 앞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문학판이 정체되어 있다는 가장 큰 예는 바로 장르문학의 부재이다.
나는 도대체 국내에서 제대로된 스릴러 소설, SF소설, 팬터지 소설을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은 일단 서가 저 안쪽에 찌그러져 있다. SF소설은 단편집에나 몇 번 실릴 뿐이다. 팬터지 소설은 대본소 만화 찍어내듯 기본이 열 권이고 그나마도 어디서 많이 봐왔던 설정이다.
내가 책을 출판하면서 몇 가지 알아낸 것이 있는데 서점마다 책을 위치하는데 돈이 든다는 것이다. 가판대에 책을 얹어놓으려면 책꽂이에 꼽아두는 것 보다 돈을 더 지불해야한다.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이것도 서점을 탓할바는 아니다. 문제는 가장 사람들이 많이 발길을 멈추는 가판대에 우리나라 작가의 소설들이, 그것도 장르소설이 몇 권이나 진열되어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이영도의 소설들이 눈에 띄었지만 최근에는 그 조차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순수문학을 진열해 놓은 가판대에는 '한국 소설 재미 없죠?' 따위의 말이나 적혀있다. 일본소설 코너가 한 복판에 따로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예 코너를 따로 빼놓는다. 스릴러 소설 코너에는 서양의 소설들이 즐비하다. 대부분 다빈치 코드 유사품들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발을 붙일 틈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경숙의 백만부 돌파는 한편으로는 의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외국 작가들을 재낀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더 많은 작가들, 더 젊은 작가들의 책들이 50만부, 백만부를 팔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루키 코너를 따로 빼내는 대신, 김훈이나 신경숙 같은 잘 팔리는 작가들의 코너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국내 장르소설 코너가 따로 있어야 하고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더 많이 광고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현실은 그야말로 시궁창이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전한 것, 확실한 것. 나이먹은 사람들과 말싸움을 해 본 적이 있으신가? 나는 있다. 몇 년 전에 노점장사를 할 때였다. 오리지날 노스페이스 점퍼를 '메이드 인 차이나' 라는 이유만으로 가짜라고 우기신다. 아니라고 합리적으로 설명을 드렸다. 어르신들은 이렇게 합리적으로 대들면 마지막에 꼭 결정타를 날리신다.

나이도 어린 것이...

나이도 어린 것이 어르신에게 대들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제대로 된 이유라도 말이다. 어르신들의 생각을 바꾸려고(혹은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면 싸가지 없는 어린 것이 되는 세상이다.
이것은 버르장머리 없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주변에 어르신 붙잡고 우리 모두 핸드폰은 어디것을 사시겠느냐고 물어보시라. 대답은 한결 같으실 것이다.

삼성이니까. 확실하니까.

노키아나, 모토로라나 애플의 제품들을 권해보시라. 그 분들은 겁부터 먹으신다. 확실하지 않은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노키아, 모토로라, 애플의 간판을 본 적이 없으신 것이다. 그 분들을 비난 할 수 없다. 세상이 그러니까.

다시 문학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나조차도 우리나라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창피하지만 사실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핑계거리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욕심이 있다. 내가 미처 찾아내지 못했던 단어, 내가 미처 구사하지 못했던 문장을 다른 작가들이 쓴 것을 보면 질투가 나는 것이다. 내가 힘들게 고생하며 겨우 써낸 문장을 다른 작가들이 이미 써놨다면.

저 새끼 표절한거 아냐?

이런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반대로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문장이 있는데 그걸 차마 표현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작가가 써놓은 것을 보면 솔직한 심정으로 그 문장을 훔치고 싶다.
그럼 또 이런 소리가 들리겠지.

저 새끼 소설 누구누구랑 비슷한데?

나는 그래서 우리나라 작가들, 특히 동시대 작가들의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비겁한 변명이라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다. 글쓰는 분들이라면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질투심이다. 저건 내 문장인데. 마치 내 여자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 년간은 우리나라 작가들의 소설을 꽤 많이 읽은 것 같다. 문예지에 단편소설들이 실려있으면 꼼꼼히 챙겨보는 편이다. 그들의 장점을 겸허하게 수용하되 자존심은 잃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단점을 집요하게 찾아내서 내 장점으로 만들기도 한다. 치사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공부니까.
아무튼, 최근 작가들의 글을 보자면 사실 좀 심심하기도 하다. 박민규의 소설은 흥미진진하고 김연수의 소설은 감각적이지만 다른 작가들의 소설들은 한마디로 지루한 것이다. 문장도 멋지고 구성도 훌륭한데 결론적으로 재미는 없다. 그러니 대형서점에서 한국문학 재미 없죠? 따위의 말을 할 법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재미없는 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대한민국의 문학계가 요구하고 있는 것을 쓸 뿐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대한민국에서 변화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다.

다른 나라로 꺼지세요, 영어로 쓰시던가, 일본어로 쓰시던가.
라고 말씀을 하신다면 역시 할 말이 없다. 나는 찌그러질 뿐이다. 내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겨우 소설 한 편 내고 그것도 얼마 안가 사장되었는데.

반면에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우리나라의 애정은 대단하다.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하겠지만 1Q84는 재미는 있으나 그렇게 열광적인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겨우 1권의 절반을 읽었을 뿐이지만, 기존의 하루키 소설의 진행상황을 보면 뻔하다. 사실 하루키의 소설은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이전의 소설들이 백미였다. 노르웨이의 숲이 절정에 이르렀다면 그 이후부터의 하루키는 이전의 하루키가 아닌 것이다. 요즘에 여기저기서 즐겨쓰는 용어로 말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 시즌 2 정도랄까? 그러다가 해변의 카프카에서 비로소 무라카미 하루키 시즌 3가 시작되는데 대부분 아시다시피 시즌 1을 능가하는 것은 없는 법이다. 게다가 이 대단한 소설이 읽다보면 왜 이리도 오타가 많은지.

어쨌든 하루키 소설은 변화가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대단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하루키니까. 확실하니까.

확실히 본전은 뽑는 작가니까.

이 포스팅의 요지는 이제 우리나라 문학판도 좀 변화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을 보다 더 띄워줘야 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대한민국 국민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책을 읽지 않는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신경숙이 증명해보였다. 요즘에 버스나 지하철이나 기차를 보면 책을 손에 든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책 한 권의 가치가 드디어 조금씩이나마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오늘도 기차 안에서 신경숙의 소설을 읽고 있는 학생을 보았다. 바로 내 옆에 앉아있었다. 젊은 학생이 PMP로 영화나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젊은 작가들의 재미있는 소설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비록 한국 소설 재미 없으시죠? 따위의 문구가 적혀있어도 한국 작가들을 위한 별도의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출판사들은 차츰 문학상의 숫자도 늘리고 있으며 액수도 커져가고 있다.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거기에 더해 이제는 젊은 작가들을 좀 밀어주어야 할 때도 된 것이다. 일본에서 김연수의 소설이 백만부 팔렸다는 소식을 TV뉴스로 보는 날이 온다면 나는 비록 내가 쓴 소설이 아닐지언정 행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는 날이 올거라는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윗분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미국도 변화를 택했다. 흑인이 대통령을 했고 그 사실을 우리는 마구마구 찬양하지 않았던가? 우리도 변화가 필요하다.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글쟁이는 가난하다고. 나는 그 말을 부정하고 싶다. 글쟁이도 먹고 살아야 글을 쓰지 않겠는가? 비록 돈벌이는 안되어도,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울고 웃어준다면 그 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으리라.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울고 웃어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에 있다. 한국작가들이 많이 팔리면, 후배들은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어줄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얻게 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처럼 외국을 배회하면서 느긋하게 클래식이나 재즈를 연주하는 바에 앉아 와인이나 마시면서 인생을 즐기는 작가들이 우리나라에도 생긴다면, 많은 후배들이 더 용기를 가지고 도전을 할 것이다. 선배 글쟁이 부터가 글쟁이는 배고파요. 투잡해야해요. 노가다 뛰어서 한끼 식사 해결하고 대필해서 애들 학교 보냈어요. 같은 말을 한다면, 후배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기가 죽을 것이다.

변화. 사실 최근의 대한민국에 가장 요구되는 단어이다. 우리에게는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 각 분야에서 변화는 긴급하게 수혈해야 할 피다. 그런데 이 변화라는 피는 어느샌가 희귀 혈액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 문학계도 변해야 한다. 고품질의 SF와 한 여름날 오금이 저릴 정도의 서스펜스가 살아있는 스릴러 소설과 눈만 감으면 다른 세계에 있을 것 같은 환상적이고 독창적인 팬터지가 필요하다. 백만부 작가가 하나 둘이 아닌 수십명이 나와야 한다. 문학이라는 예술을 탐미하는 젊은이들이 더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 분들은, 그들의 롤모델이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변화되기만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기보다는 우리가 변화를 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변화해야 한다. 좋은 글을 쓰고 변화의 선봉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무슨 새마을운동 선전 문구같다.
결론은 이렇다.

용기를 잃지말고 죽기살기로 글을 쓰자.




  1. Favicon of http://www.gomuband.com BlogIcon gomuband 2009.12.07 20:19 신고

    오랜만에 술술 읽히는 글을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2. Favicon of http://ourvillage.tistory.com BlogIcon 촌스런블로그 2009.12.07 22:32 신고

    좋은 지적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정체된 우리 문화계에 변화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3. Favicon of http://www.hyongo.com/ BlogIcon 포도봉봉 2009.12.08 13:29 신고

    정말 공감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만 밀어주다가 그 다음은? 그 다음도 생각해야 하는 것인데..
    줄리안님 잘 보고 갑니다.

  4. 으아 2011.03.20 16:29 신고

    제대로 된 판타지 소설 내겠습니다.
    이영도라는 작가 분이 있는데 괜찮더라고요.
    수고하세요.

  5. 푸른목성 2011.03.21 05:42 신고

    화나면서도 서글퍼지네요..
    아무래도 글은 누군가 읽었을 때 의미가 있는 법인데
    그러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라는 생각이 드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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