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등단'시즌이 다가왔다. 당장에 7월 달에는 문학사상에서 신인상을, 8월부터는 창비, 문학동네, 겨울에는 신춘문예가 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나는 소설가다. 책을 한 권 출간한 적이 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재미는 있다고들 하는데 팔리지는 않는 소설. 꼭 LG의 스마트 폰 같다. 만들기는 잘 만들었는데 팔리지는 않는다.

글을 쓰는 일은 재미가 있어야하지만, 또 이것을 업으로 삼게 되면 언제까지나 재미를 느낄 수만은 없다. 압박을 받는 것이다. 특히 절박한 입장에 놓여있는 작가들에게 '등단'이나 '공모전'은 그야말로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진다. 영화 <리미트리스>의 블래들리 쿠퍼 처럼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작가에게는 뇌를 100% 쓸 수 있는 알약이라도 주어졌지만, 우리 앞에는 그저 위염을 진정시키는 위장약 밖에는 없다.
그러니 운도 운이겠지만 절벽에 매달린 모험가 처럼, 우리는 밧줄 하나에 남은 인생을 걸어야 한다.

조금 전에 일전에 쓰던 소설을 고쳐쓰다가 갑자기 노트북이 꺼져버렸다. 윈도우 업데이트를 내 허락도 없이 해대더니 업데이트가 끝나자 마치 정시 퇴근하는 샐러리맨 처럼 그냥 꺼져버린 것이다. 재부팅이 되어 한글 프로그램을 다시 실행시켰지만 조금 전에 썼던 그 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안타까운 마음에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셔봤지만 치통만 도질 뿐, 별다른 수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다시 써야 한다. 그런데 조금 전 처럼 즐겁게 후루룩 써내려갈 수는 없다.

2005년도에 창비 신인상 본심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나는 정말 신기했다. 불과 이틀 만에 쓴 단편소설과 옛날에 재미로 썼던 단편 소설이 모두 본심에 오른 것이다. 맙소사. 굉장한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에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본심은 고사하고 <리미트리스>의 주인공처럼 한 글자도 못쓰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등단용' 글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될리가 없다. 예술에 '모범답안'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내가 즐기면서 글을 썼을 때, 사람들은 그 글을 인정해준다는 것을 지난 6년간 몸소 체험했다. 슬럼프라는 것은 그래서 찾아오는 것 같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그러나 내가 깨달은 것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도록 쓰는 것 보다 '내'마음에 들도록 쓰는 것이 더 좋은 글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소설가들에게 '200자 원고지 100장'은 낯선 단어가 아니다. 대부분의 단편소설들이 이 분량을 요구한다. 많은 소설가들은 이 제한적인 틀 안에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 낸다. 게임 심시티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분량에는 제한이 있을지언정 상상력에는 제한이 없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너무 분량에만 집착해 내 상상력도 '200자 원고지 100장'에 제한되어 있었다. 아주 이상한 경험이지만, 오늘 글을 날려먹은 다음에야 이런 것들을 깨달았다. 전화위복 까지는 너무 거창해도 나름대로 얻은 것이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다시 한글 프로그램을 열 것이다. 뭐 어때. 다 날력먹어도, 언제나 자그마한 희망은 있는 법이다. 세상사 모든 일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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