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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지금 이 영화를 끄집어 내는가

스텐리 큐브릭 감독의 적지만 인상적인 열세 편의 필모그래피에 방점을 찍은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은 영화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은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영화는 현대에 이르러 다방면에 언급되고 있는 영화임은 틀림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언급' 정도는 될 지언정 이 영화가 갖는 상징성과 내용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은 사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즈 와이드 셧>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임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고 교묘한 내러티브, 난해한 상징성이 이 영화를 견고한 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잊혀지고 '언급' 정도만 되고 있는 영화이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재발견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는 이 영화를 끄집어 냈다. 그 경위는 우습게도 케이블 티비였다. 아무리 대단한 영화라도 '케이블 티비' 라는 소비적 대중매체를 통해 등장한다면 그 가치는 사실 가벼워 질 수 밖에 없다. 그런의미에서 본다면 <아이즈 와이드 셧>은 헐리우드의 유명 스타부부가 주연을 맡은 성인영화 취급 정도 밖에는 받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오해해에서 <아이즈 와이드 셧>은 분명 구원을 받아야 한다.

<아이즈 와이드 셧>에는 '섹스', '일탈', '결혼' 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존재한다. 지금부터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외출'의 상징성, '결혼'의 부조화



영화 초반부에 두 부부는 외출을 한다. 파티를 가기 위해서이다. 이 외출은 영화의 마지막에도 등장한다. 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기 위함이다.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외출'이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모든 갈등의 발단은 두 부부가 파티를 가기 위한 '외출'에서 시작되고, 이러한 갈등의 끝은 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기 위한 '외출' 로 끝난다. 이 영화에서 '외출'이란 '일탈'과 동일한 의미로 존재한다.
영화 속의 주인공 부부인 '빌 하퍼드(톰 크루즈)'와 '앨리스 하퍼드(니콜 키드먼)'는 권태기에 접어든 부부이다. 부부 생활은 원만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는 지루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잘 나가는 의사인 '빌' 과 갤러리를 운영했지만 실패한 '앨리스' 사이의 간극이 있다. 남편은 바쁘고, 아내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다. 이것은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실제로 이 부분에서 앨리스는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파티에서 만난 '산도르 사보스트' 라고 불리는 헝가리 인과 앨리스는 대화를 나눈다. 이 대화는 앨리스의 현재 심리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앨리스를 유혹하려는 이 남자에게 그녀는 거부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대신에 그와 흥미를 가지고 춤까지 추게 된다. 헝가리인과 춤을 추며, 파티장의 다른 여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는 엘리스를 향해 헝가리인은 "결혼의 매력이라는 것은 상대를 속이는 것에 있지 않나요?" 라고 묻는다. 
그의 이 질문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헝가리 인은 앨리스에게 옛날 여자들이 결혼 한 이유 중에 하나가 '정말로 원하는 다른 남자와 자유롭게 행동하기 위해서' 라고 말한다. 그에 앨리스는 "굉장하군요!" 로 대답한다. 이 대화는 헝가리 인이 앨리스를 유혹하기 위한 말이지만, 그에 대꾸하는 앨리스의 대답에서 그녀의 심리상태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 대화를 통해 앨리스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음과 동시에 영화에서 남편 '빌'의 심리적 붕괴 상황의 시작이 되는 앨리스의 발언에 대한 암시가 나타나 있다. 헝가리 인이 2층의 미술품을 구경하러가자고 엘리스를 유혹한다. 엘리스는 "'지금은' 안되요." 라고 거절하고, 그래도 끊임없이 그녀를 유혹하는 헝가리인에게 앨리스는 "나는 유부녀니까 영영 당신을 만날 수 없어요." 라고 말한다. 그녀의 욕망은, '결혼'에 억눌려 있는 것이다. 사실, 앨리스는 어떤 면에서는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해 나가는 중산층 여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욕망이 존재해 있고, 이 욕망은 주인공 '빌'이 방황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외출'에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빌은 마약 남용으로 죽을 뻔 한 여자를 살려주게 된다. 이 여자는 영화의 후반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빌의 육체적인 일탈, 혹은 욕망은 이 여자와, 중 후반부에 나오는 거리의 창녀로 인해 끝이나게 된다.

3. '정신적 일탈' 과 '육체적 일탈'의 이중적 상징성



파티가 끝나고 앨리스는 남편인 빌과 거울 벌거벗은 채 거울 앞에서 키스를 한다. 이 장면은 <아이즈 와이드 셧>의 포스터에도 나오는 만큼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포스터에서 앨리스가 향하고 있는 시선은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다. 그녀의 욕망은 '거울 속'에 갇혀 있다. 거울 밖에는 남편인 빌이 있지만 거울 속에는 '결혼'이라는 '거울' 속에 갇혀 있는 '일탈'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탈'은 사실 외부로 나타나지 않는 '정신적 일탈'이다. 그러니 앨리스의 정신은 '거울'이나 마찬가지다. 반면에 남편인 '빌'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잘나가는 의사이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일탈'을 즐길 수 있다. 그러니 빌의 일탈은 '육체적 일탈'이다. 이는 빌의 의사 일과 앨리스의 집안일을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앨리스는 집에서 딸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딸과 외출을 하고, 남편을 기다린다. 반면에 빌은 의사로서의 하루를 보낸다. 미모의 환자를 치료하며 알몸을 보기도 한다. 이 두 가지의 일상에서 빌과 앨리스의 생활이 드러난다. 앨리스는 정체되어 있는 삶이고, 빌은 언제 무슨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삶이다. 이러한 두 개의 일상은 곧 충돌하게 된다.


앨리스는 빌에게 파티에서 함께 있던 여자들과 섹스를 했느냐고 묻는다.


빌은 당연히 안잤다고 이야기를 하고, 대신에 그는 앨리스와 함게 춤을 춘 남자가 누구냐고 묻는다. 얼핏 보면 이 대화는 질투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앨리스가 자신의 욕망을 분출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항변이다.
빌은 앨리스에게 함께 춤을 춘 남자가 무엇을 원했느냐고 묻는다. 앨리스는 그가 자신고 자고 싶어한다고 이야기 하고, 빌은 (어쩌면 관대하게) 앨리스가 예쁘니까 그 남자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앨리스는 왜 그 남자를 이해할 수 있냐고 묻고, 빌은 그것이 남자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앨리스는 빌에게 "그렇다면 당신도 함께 있던 여자들과 자고 싶었느냐고 묻고, 빌은 자신이 앨리스가 '있기' 때문에 그런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앨리스는 빌에게 솔직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작년 여름 휴가 때 잠깐 봤던 '해군장교'를 이야기한다. 그녀는 그와 자고 싶었다고. 만약에 기회가 된다면 '가족을 포함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와 잤을 것이라고.

이 대화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앨리스는 자신의 감정, 즉 일탈의 본성에 충실했다. 그러나 빌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앨리스 앞에서 '위선'을 떤 것이다. 그 역시 자신의 욕망, 일탈등의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앨리스 때문에' 막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화나게 만든다. 마치 남편인 '빌'을 신경쓰지 않고 마음 속으로 '해군 장교'와 일탈을 저질렀던 앨리스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은 빌의 발언이 그녀에게는 마땅찮은 것이다.

이후에 빌은 계속 해서 앨리스와 해군 장교가 섹스를 하는 상상을 한다. 그런데 이 상상은 나홍진 감독의 <황해>를 연상시킨다. 빌이 상상하는 앨리스와 해군 장교의 섹스 장면과 구남이가 상상하는 아내의 섹스 장면은 각각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잘 나타내 준다.

앨리스의 생각지도 못한 고백과 동시에 빌은 방황하기 시작한다. 대화 도중에 마침 그가 돌보던 환자 한 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 환자의 딸이 주인공 빌을 사랑했다고 고백을 하는 것이다. 환자의 딸에게는 약혼자가 이미 있기에 빌은 그녀의 그런 고백에 당황해 한다. 두 명의 여자에게 들은 두 개의 고백. 즉 아내는 다른 남자와 자고 싶다는 고백을 했고, 아내가 아닌 여자는 빌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한 것이다.
이러한 상충된 고백속에서 빌은 혼란에 빠지고 차츰 자아가 무너져 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파티장에서 만났던, 지금은 피아노 연주자인 의대 동기가 있는 술집을 찾아가 그를 만나고, 어떤 비밀 클럽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친구에게 사정해 그 비밀 클럽을 가게 된다.

4. 가면에 가려진 '섹스'
 


선택된 자만이 참여할 수 있는 이 비밀스러운 집단에서 빌은 광기어린 집단 섹스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문제는 빌이 선택된 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이 가려진 쾌락에 발을 디딜 수 없다. 빌의 친구인 닉은 눈을 가리고 연주하며 모든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있다. 이 가면의 의미는 '표출되지 않은 욕망'이다. 그들은 이 클럽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표출하지만, 서로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익명성은 내재된 욕망을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빌 또한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품고 있지만 빌은 결코 그 욕망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앨리스'가 있기 때문. 초대받지 못한 빌에게 위험하니 탈출하라고 경고를 해 준 여자는 다름아닌 그가 처음 파티에서 살려준 마약에 중독된 여자였다. 그 여자는 정체가 탄로난 빌 대신 자신이 벌을 받겠다고 하고, 후에 그녀가 죽었다는 기사를 빌은 보게 된다.

빌이 비밀스러운 집단에서 도망 나와 집으로 돌아가자, 앨리스는 나쁜 꿈을 꾸었다고 빌에게 말한다. 이 꿈은 앨리스가 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버려진 도시속에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 옷이 없어졌죠. 당신은 옷을 찾으러 갔고, 그런 당신이 없어서 나는 무척 기뻤어요. 그때 해군 장교가 나타났고, 우리는 키스를 하고 사랑을 나누었죠. 그런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고, 나는 그들과도 섹스를 했어요. 그런데 당신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나는 당신을 목청껏 비웃어줬지요.

앨리스의 이 꿈이야기는 빌이 경험했던 비밀 집단의 모습과 흡사하다. 빌은 그 자리에 앨리스가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이 꿈은 앨리스가 평소 생각하고 있던 빌의 이미지. 그리고 잠재된 욕망의 모습이다.

빌은 언제든 '일탈'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빌이 방황하던 중에 그는 한 창녀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그녀의 이끌림에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둘이 섹스를 하려던 순간에 엘리스가 빌에게 전화를 걸고, 전화통화가 끝나고 빌은 그냥 그 집을 나와버리게 된다. 그의 일탈을 막는 것은 여전히 앨리스였다. 그러나 앨리스의 일탈을 막는 것도 빌이다. 빌을 유혹했던 창녀는 알고보니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여자였고, 결정적으로 빌은 앨리스에 의해 에이즈에 걸릴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이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빌은 일탈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앨리스는 정 반대의 상황에 놓여있다.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것과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5. '눈을 꼭 감아라'

빌은 자신이 클럽에 쓰고 갔던 '가면'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그 가면은 '앨리스'가 찾아 놓는다. 이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한 장면에 영화의 모든 주제가 담겨 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가면,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아내. 가면은 침대 그의 자리에 놓여 있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다. 빌은 이 모습을 보고 아내에게 울면서 '모든 것을 다 말해줄게' 라고 말한다. 그의 일탈에 관한 '위선적인 가면'이 아내 앨리스에 의해 벗겨지는 순간이다.
빌은 앨리스에게 그간의 모든 일을 말하게 되고, 앨리스는 이러한 일들이 빌과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오히려 빌의 이러한 경험, 즉 하룻밤의 일탈을 반가워한다. 왜냐하면 이제 그녀 자신도 그러한 일탈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마지막 장면에서 딸이 인형들을 구경하는 동안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빌의 말에 '섹스를 하자'고 한다. 그녀에게 빌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남편이 아닌 것이다. 가면을 벗은 빌은 그녀에게 '낯선 남자'로 느껴졌을 것이고, 그래서 빌과의 섹스는 '낯선 남자와의 섹스' 즉 일탈을 의미하는 것이다.
빌이 눈을 감아야 하는 이유는 비밀 집단 뿐만이 아닌, 자신의 가면을 벗기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는 눈을 감음으로써, 가면을 벗게 된다. 가면을 쓴다는 것은 남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행위지만, 눈을 감는 것은 내가 남들을 보지 않는 행위다. 그는 눈을 감음으로써 아내의 정신적 일탈을 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다. 눈을 감게 되면, 자신의 일탈을 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일탈은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제목인 '아이즈 와이드 셧'은 결국 이런 의미가 아닐까.

2001년 니콜 키드먼과 톰 크루즈의 파경과 이 영화는 왠지 무관해 보이지 않느다. 어쩌면 그들이 <아이즈 와이드 셧>이라는 영화 속에서 나는 대화들은 대본이 아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즈 와이드 셧>은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영화이다. 단순한 부부간의 갈등에 대한 드라마가 아닌, 인간의 내재된 욕망과 본능에 대한 충실한 교과서일지도 모른다.
본 포스팅에서 <아이즈 와이드 셧>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아직도 모호한 상징적 의미들이 넘쳐난다. 마치 어려운 암호의 첫 문장을 해독한 것과 같다. 그래서 <아이즈 와이드 셧>은 매력적인 영화다. 캐면 캘 수록 뭔가가 계속 나오는 영화만큼이나 좋은 영화가 어디 있을까?
  1. 2011.07.26 08:37

    비밀댓글입니다

  2. 지나가는 2011.09.14 04:40 신고

    어떤 일이든, 그것이 사랑이든 결혼이든 직업이든, 권태가 찾아오게 마련이고 일탈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을 참아내느냐 못참아 내느냐의 차이가 중요하지, 그런 욕망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할포드가 위선이라고 했지만, 그건 그의 의지가 강한것이지 위선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바 욕망에 충실해야만 순수한것이고, 당연한 것인가? 서구식 욕망의 분출에 대한 자극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내적 욕망을 도덕적인 범위 내에서 해소하고, 그 안ㅇ서 행복을 찾을 줄 아는것이 현자 아닌가 싶다. 욕망찾아 이끌리는데로 살면..그게 걸레지..ㅋㅋ 아..아니군..뭐 그렇게 산다고 나쁠것도 없지.남에게 피해만 안주면.

  3. 잘보고갑니다 2012.01.10 06:33 신고

    윗님 의견도 이해가 갑니다. 욕망을 해소하는 것이 위선적이지 않다라... 글쎄요. 이런면에서는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선 확실히 상상하기 힘드네요. 그렇지만 글쓴분의 멋진 리뷰와 해석 잘 보고 갑니다~^^

  4. Favicon of http://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3.07.19 09:14 신고

    어제 이영화를 보게 되었는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참 난해하다고 느꼈습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하구요. 톰-니콜 부부에게는 안타까운 생각이 드네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릴 시기였는데 말이죠. 스턴리 큐브릭 감독이 남긴 다른 작품도 어떤지 알아보고 싶네요.

  5. BlogIcon 신풍 2014.06.28 03:34 신고

    영화보고 반해서.. 이글도 찾게되었네요! 자세한 설명 잘보았습니다!

  6. 1111 2015.08.28 19:51 신고

    욕망 개인의 욕망 그것은 자연적인 것으로 말미삼아 자연적인 정도에.그치면 그게.최고의 자연적인 욕망인듯

얼마 전에 케이블 티비에서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을 해주길래 정신없이 본 적이 있었다.
아이즈 와이드 셧은 국내에 개봉 했을 때 본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십년쯤 전에나 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아이즈 와이드 셧을 십년 전에 처음 봤을 땐 그저 이것이 무슨 영화인가 싶었는데 얼마 전에 케이블 티비에서 보니 어느 정도 영화가 이해가 가는 듯 싶었다. 십 년이라는 세월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 세월 동안 내 지식, 생각 등이 조금이나마 업그레이드 되었기 때문이리라.
아이즈 와이드 셧을 고전 영화 반열에 올려 놓는 다는 것은 좀 애매한 감도 있다. 세기말에 등장한 이 파격적인 영화는, 그래도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고전영화의 장점이 여기에 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갑자기 모든 것들이 일사천리로 발전해 버렸다. 디지털, 사람들의 가치관들이 그렇다. 그런데 고전영화에는 아직도 발전하기 전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존 쿠삭이나 아네트 베닝,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의 젊었던 시절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무선 전화기 크기의 휴대폰, 오래된 맥 컴퓨터 같은 것들도 볼 수 있다. 안젤리나 졸리가 해커로 나왔던 '해커스'를 보면 역시 오래전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과는 다른 그 시대 해커들의 마인드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로버트 드 니로가 단 두 장면 등장했던 SF '브라질(우리나라에는 '거미여인의 음모')'을 다시 한 번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즐겁다.
고전 영화에서는 또 다른 스타일이 있다. 커피 마시는 스타일, 옷 입는 스타일, 그 시대 삶의 스타일들이 고전 영화에 모두 담겨 있다. 게다가 재미까지 있다. 요즘 나오는 감각적이기만 한 영화들과는 또 다른 '감각'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 영화 몇 편을 구해보았다. 이가 좋지 않아 팝콘을 씹지는 못하더라도, 커피나 한 잔 마시면서 일요일의 밤에는 고전 영화 한 편을 보다가 잠이 들고 싶다. 그 영화를 비디오에 비디오테입을 넣고 감상 할 수만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는데. 언젠가 시간이 나면 비디오테입이나 구경하러 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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