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노트라는 어플이 있다. ios 뿐만 아니라 안드로이드, PC, 맥 OSX등 다양한 플랫폼을 지원한다. 노트(note)를 영원히(ever) 기억하자는 의도로 만들어진 이른바 '생산성'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 에버노트를 근래 사용하면서 '몰스킨' 노트가 생각났다. 아티스트들이 애용했다는 그 노트는 단지 '노트'일 뿐이었다. 문방구에서 파는 몇 백원짜리 노트와 다를 바 없지만 몰스킨은 '아티스트'들의 필수품 처럼 여겨졌다. 


에버노트는 디지털 시대의 몰스킨으로 각광받고 있다. IT분야의 다양한 업종에서 에버노트를 활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는 이 에버노트로 책도 쓴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어플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에게 에버노트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소설 자

료들을 스크랩하고, 아이디어를 적어두고,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문장들과 소설 제목들을 저장하는데는 안성 밎춤인 듯 하다. 시대가 변했으니, 우리의 기억은 절대로 잊혀질 일이 없게끔 만들어주는 '툴'아니겠는가. 심지어는 이 에버노트로 소설을 한 편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이라...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보자면 참으로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펜도, 종이도 필요없다. 그저 배터리가 충분히 남아있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된다. 배터리? 가만있어보자. 그렇다면 내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절단나면, 내가 '저장해두었던 기억'도 절단 나는 것이 아닌가. PC로 에버노트를 실행시키면 되겠지만 PC가 없다면? 설령 배터리를 충전하고, PC를 찾아 에버노트를 실행시켰다 한들, 그 사이의 공백만큼이나 내 기억은 소멸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은 완전한 의미의 영원함(ever)은 아닐지도 모른다. 기억을 디지털에 의존해야 하는 세상이, 이리도 일찍 찾아온 것이 당혹스럽다. 스마트폰이나 PC가 없다면 '기억'하지 못한다니. 만약에 크리스토퍼 놀란이 메멘토를 만들 때 에버노트가 있었다면 몸에 새기는 문신 대신 에버노트를 이용하여 영화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디지털 시대는 보다 더 많은 치매환자들을 양산해 낸다. 슬픈일이다. 종이에 펜으로 적는 것과 다를바가 무엇이냐고, 수첩에 만년필로 뭔가를 적던 시절에도 치매는 있었다고 한다면 난 이렇게 말 하고 싶다. 수첩에 메모, 펜의 흔들림, 물기에 번진 잉크는 그 때의 기억의 총체, 즉 내용뿐만이 아닌 당시의 감정조차도 기억할 수 있다고. 잉크를 번지게 만든 것은 눈물이었고, 글자가 흔들린 것은 내가 흐느껴서 그런 것임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종이와 펜 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디지털 시대에 맞게 나도 '편리한 기억'을 해보겠다며 시작한 에버노트 라이프는 그래서 슬프다. 손바닥 크기의 디지털 기기에 내 기억을 맡긴다니. 산소호흡기에 생명을 맡기는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럭저럭 시대의 흐름(디지털)을 잘 쫓아간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전화를 받으면서 펜과 종이를 찾아헤메고(전화를 받으면서는 에버노트를 쓸 수 없으니까)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무엇보다도, 터치(혹은 클릭) 한 번이면 '기억을 삭제'할 수 있다는 점이 나를 가끔은 전율하게 만든다. 노트에 적은 메모를 찢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노트를 찢을 때 손에 느껴지는 '찢겨짐'은 마음의 '찢겨짐'과 동일한 감정상태를 만든다. 찢고 구기고 쓰레기통에 던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마치 자살행위같다. 노트를 찢는 행위는, 클릭 한 번으로 삭제하는 행위와는 감정의 궤를 달리한다. 


그래도 나는 홍순성씨의 '에버노트 라이프'라는 책을 사서 이 어플을 공부한다. 세상에. 프로그램 자체는 무료인데 이 것을 활용하려면 왠만한 교양 과목 교과서와 비슷한 두께의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저자가 쓴 다른 책을 두 권이나 구입했다. 하나의 어플을 이리도 집중적으로 연구한 사람의 책은 돈을 주고 구입해도 아깝지 않다. 그 노력을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버노트 뿐만이 아닌 다른 모든 '생산성' 프로그램들, 일정관리 프로그램들을 나는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것은 머릿속에 그냥 기억해 두고 있다가 그 때가 되면 갑자기 떠오르게 놔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스미트폰 달력에 일정을 넣어두면 그 시간에 맞춰 알림이 뜬다. 우리 머릿속에 기억 해 둔 것이 '갑자기 떠오르는'것도 이러한 알림과 다를바 없지 않을까? 아, 이쯤이면 떠오르는 영화 한 편이 생각난다. 매트릭스? 너무 진부하다. 토탈리콜? 조금 낫긴 하지만 여전히 진부하다. 기억에 대한 메타포들은 널렸다. 우리는 어쩌면 영원히 기억하기 보다는, 때로는 뭔가를 잊기도 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들을 기억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기계가 될 테니까. 우리가 인간이길 원하기에, 뭔가를 잊어버리길 바란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래서 이 어플, 에버노트는 잔인하다. 효율적이고, 능률적인 도구지만, 가끔은 내 자신을 인간이 아닌 '배터리가 충전되어 있는 한 영원히(ever) 기억'하게 하니 말이다. 그렇구나. 방금 전의 문장, '배터리가 충전되어 있는 한 영원히 기억'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로봇, 혹은 컴퓨터를 정의하는 문장 아닌가? 배터리가 떨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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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홍순성 (영진닷컴,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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