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출처 : 다음 영화>

 

영화 평론가들(혹은 비평가들)의 몫은, 완벽한 영화일수록 그 영화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반박하는데 있다. 대한민국에 영화 평론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하나같이 영화 안에 사회/인문학적 용어들과 이론들을 주입시키고, 그 공식에 대입하여 영화를 해석하려 노력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라는 것이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관객 동원수, 상영관 확보와 함께 투자했던 거대자본을 다시 확보하여 또 다른 '엔터테인먼트'를 양산해 내야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예술의 한 분야로 종속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본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예술이기도 하다. 영화 한 편에 오만가지 용어를 집어넣어 해석한들, 그래서 영화 한편을 완벽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놓는다 해도, 자본이 없다면 다음 '예술'은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영화감독들은 필연적으로 예술과 흥행사이의 딜레마에 빠진다. 그들은 흥행을 염두해 두고 예술을 만들어야 하며, 그래서 대체적으로 돈과 예술성 사이를 절충한다.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없었다면, 박찬욱은 지금 헐리우드에서 히치콕에 비견될 수 있을 만큼 거장이 될 수 있었던가. 배트맨 시리즈가 없었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재능있는 영화감독 정도로 분류되어 이런저런 잡다한 영화나 만들며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낭비했을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영화란 사회적/인문학적 이론을 넘어서는 복잡다단한 자본주의적 구조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은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아주 절묘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다수의 평론가들은 베를린을 '웰메이드 급' 영화로 분류하지만, 거기에는 늘 뭔가가 부족함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평론가들의 지적이 과연 옳은가. 베를린은 정말로 2% 부족한 영화였던가.

이제 막 개봉한 베를린에 대해 수많은 평론가들은 '본 시리즈'를 언급하기도 하고 어딘가 부족함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러한 그들의 편견에서 앞으로 베를린을 감상하게 될 관객들을 구해내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베를린은 결코 '본 시리즈'와 닮지도 않았으며, 2% 부족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베를린'은 근래 내가 본 한국영화 중에 가장 '잘' 만들었으며, '제대로' 만든 영화이다.

 

'베를린'을 '본 시리즈'와 비교하는 것에 대해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일단 이야기의 진행방식이 '본 시리즈'와 다르다. '본 아이덴티티'부터 시작해서 '본 얼티메이텀'으로 끝나는 일련의 시리즈 물을 관통하는 주제는 '자아'와 관련되어 있다. 실제로 '본 아이덴티티' 와 '본 수프리머시'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제기 할 수 있다. '본'은 스파이가 맞는가? 그가 CIA에서 만들어진 인물일지라 하더라도 그의 활동이 조직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스파이 활동이라기 보다는 생존을 위한 움직임에 더 가깝다.

'베를린'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베를린은 우선 각 조직들의 이익(이해)관계가 얽혀있다. 국정원, 북한, 그리고 CIA와 모사드 까지. 엄밀히 이야기하면 국정원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북한'이라는 조직을 '관찰'하는 입장에 놓여있음이 더 정확하다. 그러니 베를린은 '북한' 스파이들의 이야기다.

 

'베를린'은 첩보물 중에서도 '에스피오나지(Espionage)' 형식의 구성이다. '에스피오나지'란 이른바 '현실적 첩보물'을 이야기한다. 영화중에서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굿 쉐퍼드', 3부작 '더 컴퍼니' 같은 작품들이 이쪽 계통에 속해있다고 볼 수 있다. 007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보통 '에스피오나지'와 다르게 분류한다.

'베를린'에서는 물론 다양한 국가의 첩보원들이 등장하지만 이 영화가 전통적인 스파이물, 그러니까 '에스피오나지' 식 구성을 적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만하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에스피오나지'식 스파이물에는 필연적으로 '이념'이 등장해야하는데 '베를린'에서는 이념적인 내용들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다. 단지 '북한'이 등장하고 '국정원'이 등장한다해서 영화 전반에 걸친 이념적 소재들이 등장할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베를린'은 '자본'에 관련된 영화이다. 이는 류승완 감독이 '백억'이라는 예산을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을 반영하는 듯 싶다.

류승완 감독은 스포츠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백억원이라는 예산이 가져다 준 부담감에 대해 토로했다. '베를린'은 제작부터가 (대한민국에서) 거대예산이었고, 내용도 '자본'과 관련되어 있다. 심지어 영화 후반부에서는 대한민국과 북한이 표종성(하정우)을 담보로 하는 사업체결 내용까지 등장한다. 이 영화 어디에서도 이념은 찾아볼 수 없다. 국정원의 정진수(한석규)만이 옛날 스파이들의 향수 같은 것을 몸에 지니고 있을 뿐이다.

'베를린'을 다른 첩보 영화와 굳이 비교를 해야겠다면 '본 시리즈' 보다는 '미션 임파서블 1편'과 연관지어야 옳다. 기억하다시피 조직에 배신당한 첩보원이 누명을 벗기위해 몸부림치는 내용이 '미션 임파서블 1편'이 아니었던가.

 

배우들의 연기력은 '최고'라고 말 할 수 있다. 어느 평론가가 한석규의 영어발음을 문제시 했는데, 나는 이 평론가에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영화에서 한국인이 본토발음을 유창하게 한다는 것은 일종의 '판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베를린에서 한석규의 외국어 발음은 '해외에 파견나간 국정원 직원이 할 법한' 발음이다. 충분히 납득이 간다. 오히려 등장인물들의 영어발음이 유창했다면 나는 오히려 영화에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한석규의 어눌한(그러나 의외로 납득이 가는) 외국어 발음은, 개인적으로 충분히 공감이 갔다.  

베를린에서 가장 '완벽한' 연기를 한 배우는 역시 류승범이다. 그는 이익을 뒤쫓는 악역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그의 악역에서 어떤 '광기'같은 것을 느꼈다면, 그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나는 배우 류승범을 이제껏 딱히 좋아한 편은 아니었지만, 베를린의 류승범은 '업그레이드'되었음이 분명히 느껴졌고, '이 배우가 등장하면 꼭 봐야 할 영화' 리스트 맨 윗줄에 류승범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전지현은 정말로 북한 여성처럼 등장을 했으며, 이경영 또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냈으나 약간 아쉬운 배우가 있었다면 그것은 하정우라고 볼 수 있다. 하정우의 연기는 베를린에서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는데, 그 이유라면 '그의 연기가 너무도 정석적'이어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정우는 그 자체로 '북한 스파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도 완벽히 역할을 소화하려 했기에 두드러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액션은 의외로 적은 편이다. 그러니까 '류승완 치고는' 적은 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를 문제시 삼는 관객들이나 평론가들도 있으리라.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액션들이 '꼭 필요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액션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당위성' 같은 것이다. 우리는 어떤 장면을 볼 때, 그 장면이 나오는 이유를 납득해야하는데, 액션의 경우 뜬금없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서 '왜 이런 액션장면이 이 부분에서 필요할까?'라고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류승완의 '베를린'은 꼭 필요한 시점에 계산적으로 액션을 넣었고, 그러다보니 액션장면의 수가 비교적 줄어들기는 했지만 반면에 밀도가 더 높아져서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영화 베를린을 감상하면서, 그 전에 읽었던 수많은 평들이 생각났다. 웰 메이드 영화지만 어딘가 부족해보인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것은 류승완 감독에 대한 편견 때문이리라. 액션 키드가 만든 첩보물에는 분명 오우삼 스타일의 가차없는 액션들이 수시로 등장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기에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당거래' 를 기억해보자. 헤비메탈 그룹 기타리스트들도 충분히 재즈나 팝을 연주할 수 있는 것처럼, 류승완 감독도 충분히 '드라마' 와 '스릴러'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이다. '액션'이 그의 전공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기존 평론가들의 베를린에 대한 평에 공감할 수 없다. 베를린에서는 본 시리즈의 냄새도 맡을 수 없었고, 에스피오나지식 감성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류승완 식의, 현대적 첩보물이 가야할 길, 그리고 한국액션 영화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는 점만으로도 베를린의 가치는 충분하다. 배우들의 연기력, 액션등은 부록정도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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