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머리를 다듬으러 미용실을 갔는데, 내 머리를 봐주던 남자 미용사가 내게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 직업이 '작가'라고 대답했다.

미용사에게 내 직업을 '작가'라고 말을 한 이후, 나는 무척 창피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미용사가 머리 괜찮으세요? 라고 물을 때도 그냥 건성건성 대답했을 뿐이다. 미용사가 '어디 가세요?' 라고 물었을 때, 그냥 '데이트요.'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내가 왜 생전 모르는 사람에게 내 직업을 '작가'라고 이야기 했을까? 라는 경솔한 내 발언에 대한 후회 뿐이었다. 대학원생도 있고, 그냥 백수라고 해도 되는데 굳이 '작가' 라고 이야기 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내 첫 출간작품은 상하로 나뉘어진 두 편짜리 SF 소설이었다. 물론 이 소설은 실패했다. 영화 2012의 주인공처럼, 내 소설은 1천부도 채 팔리지 않았다. 출판사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다.
그 이후에 나는 '창비' 신인상에 도전했고, 결과는 본심에서 끝났다. 한동안 나는 내가 '작가'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어느 헌책방 귀퉁이에 내가 쓴 책의, 그것도 '상' 권만 꼽혀 있는 모습을 보고, 내 작가 인생은 청계천의 어느 헌책방에서 끝나는 구나, 라고 체념했다.

우리나라에는 '등단' 제도가 있어서, 어디가서 함부로 '나는 작가요' 라는 말을 하기가 꺼려진다. 그러면 '등단 하셨습니까?' 라는 질문이 돌아오게 마련인 것이다. 일반인들조차 작가란(혹은 '문학'을 하는 작가란) '등단' 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 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지만, 나는 그 책을 내 마음속에서만 기억하고 싶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누구나' 등단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여기에는 여러 주석들이 달려있긴 하지만 어쨌든 마음만 먹으면 '나는 작가요' 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등단제도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듯 해서, 그냥 글을 쓰면 '작가' 라는 직함을 내걸 수 있는 모양이다. 영화 '리미트리스' 의 주인공도 책을 한 권도 내지 못했는데 자신을 작가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는가. 등단이라는 말보다는 그저 '데뷔'라고 이야기하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나 일본의 사정은 좀 다르다. 등단이란 아마추어와 프로를 구분하는 하나의 시험과 같다. 그러니까 비로소 등단이 되었을 때, 우리는 프로작가가 된다. 등단을 하지 못한 작가는, 마치 사법고시생이 '나 변호사요' 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오늘의 경험으로 비추어봤을 때, 나는 내 자신을 분명히 '작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법고시하고는 사정이 약간 다른 것이다. 컴퓨터를 켜고, 하얀색 워드프로세스를 맞이하여 첫 단어를 찍는 순간 우리는 모두 작가가 되는 것이다. 자기합리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자기합리화가 존재하는가? 분명히 단어들과 문장들로 뭔가를 생산해 낸다면, 그것이 팔리든 안팔리든 그 사람은 작가인 것이다. 자동차 영업사원이 자동차를 한 대도 못팔지언정, 그의 직업은 자동차 영업사원인 것이다.

작가란 내 재주를 '파는' 직업이다. 그러니 어쩌면 '작가'라는 직업은 영업사원과도 비슷하다. 능력제인 것이다. 작가란 대중에게 '이야기'를 판다. 얼마나 재밌는 이야기를 파는가는 작가의 능력이다. 그러니 당장에는 돈이 안들어오고, 내 글이 대중들 앞에 나오지 않더라도 나는 '작가'다. 다만, 이야기를 파는 내 능력이 신통치 않을 뿐이다.

나는 등단을 하기위해 글을 쓴다. 이것은 내 고집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글을 쓰는 것이 내 삶이다. 나는 일곱살 때 첫 동시를 지어서 한정된 '대중'에게 보여주었고, 나름의 평가를 받았다. 나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사 줄 때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생산해 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등단'을 해야 한다. 서양이 어떠니 해도, 대한민국에서 내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보여지려면, 등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글을 쓴다.
나는 '작가'다.
  1. 나기 2012.04.15 06:24 신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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