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320

새해에 이상 전집을 한 질 더 마련했다. 김주현 교수의 주석이 달린 <정본 이상 문학전집>이 그것이다. 
물론 도서출판 뿔에서 나온 권영민 교수 판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어떤 사람을 연구하려면 해석본은 다양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증보'라는 딱지가 붙어있으니 안살래야 안살수가 없었다. 
조금 읽어보니 과연 권영민 교수의 주석과는 다시 차이점이 있고 엮는 방식도 다르다. 

그런데 논문을 수정해야 해서 구입하긴 했지만 전집을 두질이나 가지고 있는 것은 좀 부담스러운 점도 있다. 최근에 책값만 거의 수십만원이 나갔는데 책을 구입하는데 있어 '전집'이라는 단어는 확실히 구매욕을 자극시킨다. 필요에 의해서 구입을 했지만, 이상에 대한 책은 모두 갖고 싶다는 개인적인 열망도 어느정도 작용을 했다.

이제 저녁 내내 다시 논문과 씨름을 해야할텐데. 한 편으로는 기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올해 또 나갈 책값을 생각하니 걱정도 된다. 뭐 어때. 책 한권으로 마음이 즐거울수만 있다면야. 차라리 밥 한끼를 굶고 말지.

최근에 이상(李箱)의 새로운 시가 발굴되었다.[각주:1] 『가톨릭少年』1936년 5월호에 '해경'[각주:2]이라는 이름으로 올린 <목장>이라는 동시가 바로 그것이다. 이상은 『가톨릭少年』1936년 5월호에 <목장>을 올리면서 잡지의 표지도 직접 그렸다는 것이 특징이다.

<목장>[각주:3]

- 해경

송아지는 저마다
먼산바래기

할말이 잇는데두
고개 숙이구
입을 다물구

새김질 싸각싸각
하다 멈추다

그래두 어머니가
못잊어라구
못잊어라구

가다가 엄매-
놀다가두 엄매-

산에 둥실
구름이가구
구름이오구

송아지는 영 영
먼산바래기

이상은 1937년 4월 17일, 도쿄에서 그 생을 마감하였다. 그러니 이상이 생을 마감하기 대략 1년 전 쯤에 씌여진 글이다. 이 아름다운 동시는 이상의 빼어난 글 솜씨를 그대로 보여주는데 기존의 이상 시(詩)와는 다른 스타일의 정갈함과 정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동시 <목장>의 7연에 이르는 연들은 2-3-2-3-2-3-2와 같이 2행연과 3행연이 질서 있게 교체되어 나타난다. 그렇게 작품 전체인 7개연이 질서 있게 행수를 교체해 리듬의 묘미를 살려나간 점 이외에도 동시 <목장>의 형태에는 주목할 만한 점이 여럿 나타난다. 3음보 또는 4음보로 다듬어진 음보의 가락, 세 번에 걸친 3행연에서의 동음 반복, "싸각싸각", "엄매", "둥실" 등 자연스러운 의성어, 의태어의 활용, 1연, 7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른바 수미쌍관(首尾雙關)의 시문장 등이 그렇다.[각주:4]
 
이러한 이상의 <목장>은 사실상 이상의 처음이자 마지막 동시인데 과연 이 동시를 지은 '해경'이 이상과 동일 인물임에는 어찌 알 수 있을까?

"가톨릭소년 二號 표지화와 동시 <목장>의 작가인 김해경 선생님이 어디 게십니까? 그리구 무얼 하시는지 퍽 알구 싶은데 알으켜 주실수 없을가요?"

"(記者) 김해경 선생님이 바루 李箱 先生님입니다. 詩人으로 이름 높으시구 또 그림으로도 몰으는 이가 없을 많큼 이모저모로 유명하신 선생님이심니다. 지금 서울에 게신데, 하시는 일은 퍽 여러가지 방면에 애쓰시는 어룬이시십니다. 가장 잡지출판에 애를 쓰시는 가운데두 우리 『가톨릭少年』출판에 땀을 많이 흘리심니다"[각주:5]

독자의 질문에 출판사가 한 대답으로 미루어 볼 때 이상의 작품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동시가 발굴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상을 좋아하고 연구하는 국문학도들에게는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시가 발표 된 것은 1936년 5월이고 이상은 1937년 4월 17일 도쿄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발표된 이 동시는 우리에게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기존의 난해하고 어두운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상'이라는 필명을 버리고 '해경'이라는 본명을 사용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각주:6]
개인적으로 이상을 존경하고 연구하고 싶은 국문학도로서, 이번 이상 시의 발굴은 개인적으로 크게 다가온다. 시를 읽을 수록, 그 기분이 달라지는 것은, 여느 이상의 시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1937년 이상의 죽음은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우리는 <목장>과 같은 아름다운 시들을 더 많이 만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이상이 썼다는 이유로 이 동시는 아직도 해석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상의 시를 해석하는 것은 곧 즐거움이다. 애틋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이 아름다운 동시에 대한 설명은 문학사상 11월호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해보자.

  1. 문학사상 11월호 참고 [본문으로]
  2. 이상(李箱)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다. [본문으로]
  3. 『문학사상』,2009년 11월호 , 22페이지. [본문으로]
  4. 앞의 책, 33면, 권오만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본문으로]
  5. 앞의 책, 35면. [본문으로]
  6. 앞의 책, 31면. [본문으로]
  1. Favicon of http://garimtos.tistory.com/ BlogIcon 가림토 2009.11.18 22:23 신고

    이상의 동시라뇨. 처음 들었습니다. 아주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송아지', '먼 산', '구름', '어머니'로 이어지는 향토적 서정은 기존 이상의 시와 너무 달라 생경합니다. 도시적 에고이즘이라 할 수 있는, 이상의 작품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 필명이 아닌, 실명으로 시를 발표한 것도 신기하구요. 호오~ 신기합니다.

    • Favicon of http://juliantime.net BlogIcon juliantime 2009.11.18 22:33 신고

      그렇죠 ^^ 아무래도 생소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래서 더 흥미롭기도 합니다. 역시 이상이 천재였다는 것을 증명해 주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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