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C-LX7


필자처럼 차가 없는 뚜벅이에게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녀야 할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책이요, 다른 하나는 이어폰이다. 

특히 필자는 기차와 버스를 많이 타는 편인데, 이렇게 대중교통 안에 있는 시간들이 적지 않다. 집에서 음악을 듣는 것은 일반적으로 글을 쓸 때 틀어 놓기 때문에 집중해서 음악을 들을 수 없다. 그래서 필자에게 대중교통이란, 음악을 집중해서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필자가 들어봤던 가장 고가의 이어폰은 UE(Ultimate Ears)에서 나온 트리플파이였다. 트리플파이는 세 개의 발란스드 아마추어 유닛(BA유닛)을 장착하여 별다른 에이징 과정이 필요없고, 단단하며 강력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심장이었다. 필자는 음악을 비교적 크게 듣는 편이고, 장르 또한 락장르를 즐겨 듣기 때문에 장시간 음악을 들으면 호흡이 가빠진다던가, 두통이 밀려오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트리플파이의 소리는 강렬한 편이고, 착용감도 좋지 못했으므로 음악을 듣다보면 어느 샌가 신체 이곳저곳에서 고통이 밀려왔다. 

그래서 어느 순간인가 필자는 트리플파이를 정리하고, 같은 브랜드인 UE 600vi를 이용하다가 역시 소리가 피곤했던 관계로 소니의 저가형 이어폰인 XBA-10을 구입해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소니에서 나온 XBA-10은 저렴한 가격에 BA유닛 1개를 채용해 깔끔한 소리를 들려주었지만, 문제는 시원시원하지 못한 음질에 있었다. 듣고 있다보면 어딘가 모를 답답함이 밀려와서 금새 음악 듣기를 포기해야 했다. 

그러던 중에 이마트에서 소비자가 62만원 짜리 젠하이저 IE 80을 29만 9천원에 판매한다는 소식을 보았다. 젠하이저?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브랜드다. 젠하이저나 보스의 이어폰들은 기본적으로 저음이 강조되어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필자가 아이폰을 음악감상용으로 이용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플랫'한 음색(우리는 이쯤에서 '음색'과 '음질'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음색'과 '음질'은 틀리다. '음색'이라고 한다면 쉽게 말해 카메라에서 '색감'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이었다. 필자는 '플랫'한 소리가 좋다. 깔끔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저음이 강조되었다는 이야기는 (필자의 편견이지만) 음악을 듣는데 '둥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뜻이었다. 그런 종류의 소리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저음 = 둥둥거리는 소리, 라는 편견어린 공식을 지니고 있던 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마트에 가서 청음도 하지 않은 채 바로 IE 80을 구입했다. 그래도 고가의 이어폰을 반값에 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터넷의 몇 안 되는 청음기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평을 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색감'과 '음색'은 전적으로 주관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회를 한들 필자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이마트에서 이어폰을 구입하고 이마트 내의 스타벅스에서 간단하게 음악을 들어 본 결과는 의외였다. 저음? 진짜?


'저음은 둥둥거리는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필자에게 IE 80이 들려주는 소리는 생소했다. 분명 저음이 다른 이어폰들에 비해 두드러지긴하는데, 그 밀도가 틀렸던 것이다. 심지어 트리플파이 보다 플랫하게 들리는 곡도 있었다. 이건 거의 실망스러울 정도로 '저음 과다'현상을 느끼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필자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저음의 질과 밀도였던 것이다. 편견과도 같았던 벙벙거림 대신에 마치 근육질의 몸을 보는 듯한 탄탄한 저음이 들렸던 것이다. 방목(放牧)된 소리가 아닌, 울타리 안에 잘 모아 놓은 견고한 저음을 들려주는 것이다. 게다가 기존의 BA유닛에 길들어져 있던 귀는 전통적이라 할 수 있는 '다이나믹 드라이버' 진동판에서 일종의 편안함 같은 것을 느꼈다. 이거 괜찮은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음악들을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사실 이러한 진동판 이어폰이나 헤드폰은 '에이징'이라는 과정을 거치기도 하는데, 필자는 이와 같은 과정을 생략했다. '에이징'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필자가 생각하는 에이징은 '청자가 즐겨듣는 음악을 자연스럽게 듣다보면 저절로 길이 드는 것'이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1. ROCK


필자가 가장 즐겨듣는 락 장르의 음악들을 들어보았다. 일단 필자 취향이 이제 나이도 들고 해서 과격한 헤비메탈 보다는 60-80년대 사이의 올드 락 정도가 되겠다. 간혹 카르카스(Carcass)라던가, 비전 디바인(Vision Divine), 폴 아웃 보이(Fall Out Boy)같은 음악들을 즐겨듣기도 하지만, 메인은 역시 60-80년대 사이의 락음악들이다. 


그런의미에서 '키스 크로스 앤드 피터 로스(Keith Cross & Peter Ross)'의 음악들을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약관의 나이에 제 2의 에릭 클랩튼이라는 명성을 얻었던 T2의 기타리스트 키스 크로스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앨범이다. 그 이후로 키스 크로스는 음악계를 떠나버렸다. 이 미스테리한 기타리스트의 명반 'Bored Civilians' 앨범의 '더 라스트 오션 라이더(The Last Ocean Rider)'는 IE 80과 가장 훌륭한 매칭을 들려준다. 특히 곡 후반에 키스 크로스의 기타 솔로는 말 그대로 '편안함'을 제공해준다. 두 대의 일렉기타, 한 대의 어쿠스틱 기타 협연에서 각 악기들의 연주가 확실히 분리되어 들린다. 소리가 뭉치는 일은 없다는 의미다. 


'루시퍼스 프랜드(Lucifer's Friend)'의 '마이 러브(My Love)' 또한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로 악기들의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안정적인 소리를 들려주는데, 한 가지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 이와 같은 락 장르의 음악들에서는 보컬의 목소리보다는 악기 위주의 소리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V자형 이퀄라이저 형태를 보여주는 듯 싶은데, 그것과는 다소 다른 것이 보컬의 목소리가 저 멀리 외따로 격리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한 발자국 정도 뒤에 서서 악기들과 수평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소리의 성향은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의 인상적인 곡 '어 화이터 쉐이드 오브 페일(A Whiter Shade of Pale)'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보컬과 악기가 같은 선상에서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명곡이라 할 수 있는 '텔레그래프 로드(Telegraph Road)'에서도 역시 비슷한 성향이다. BA유닛이 정돈된 악기의 소리들을 들려준다면, IE 80의 다이나믹 드라이버 유닛은 날 것 그대로의 소리들을 들려주는 느낌이다. '텔레그래프 로드'의 후반에 마크 노플러의 기타 솔로가 그렇다. 마크 노플러는 피크 대신 핑거 피킹 주법으로 유명한데, IE 80은 이러한 마크 노플러의 주법을 잘 살려서 들려준다. 드럼소리는 박력이 넘친다. 이 곡을 듣는 내내 저음이 강조되어 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다. 그러니까 '둥둥'거린다거나 '벙벙'거리는 대신 밀도있는, 말 그대로의 '저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2. 여성 보컬


컨트리 밴드로 유명한 유니온 스테이션(Union Station)과 앨리슨 크라우스(Alison Krauss)의 앨범 '앨리슨 크라우스 & 유니온 스테이션'의 '페이퍼 에어플레인(Paper Airplane)'은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에 하나다. 보틀 넥 주법의 기타 연주와 음악 전반에 깔려있는 감미로운 어쿠스틱 기타 소리를 바탕으로 앨리슨 크라우스의 절제된 보컬이 미덕인 이 곡에서 IE 80이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이어폰으로 들어도 훌륭하지만 IE 80에서는 전체적으로 보컬과 악기 소리들이 꽉 차게 들리는 것이다. 마치 속이 알차게 꾸며진 샌드위치를 먹는 기분이 든다. 


'애슬린 데비슨(Aselin Debison)'의 '문라이트 쉐도우(Moonlight Shadow)' 또한 같은 느낌이다. 중간에 들리는 바이올린 솔로와 애슬린 데비슨의 보컬과는 구색이 잘 맞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여성 보컬에 있어서는 거부감이라던가 부담이 없는 음색이다. 


'그레이스 존스(Grace Jones)'의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에서는 그레이스 존스의 보컬이 상당히 맛깔나게 들리며,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그 위대한 '더 그레이트 기그 인 더 스카이(The Great Gig In The Sky)'에서는 당대 최고의 백킹 보컬리스트였다는 클레어 토리의 광기어린 보컬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듯 싶다. 


한국의 여자 보컬로는 '거미'를 좋아하는데, 빅브라더와 함께 만든 '온리 원(Only One)'의 경우 '거미'의 음색을 비교적 잘 살려주는데, BA유닛을 쓴 UE 600이라던가 소니의 XBA-10​과는 다소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 다른 느낌이란 XBA-10의 경우 '거미'의 보컬이 다소 '간지럽게'느껴지는 반면, IE 80에서 '거미'의 보컬은 그보다는 박력이 느껴졌다. 


여성보컬에 있어서 전체적인 느낌은 다소 '어두운'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OST에 수록된 '라나 델 레이'의 '영 앤 뷰티풀' 같은 곡 또한 마찬가지다. 위에서 언급했던 음악들의 성향이 대체로 그렇긴 하지만 IE 80은 어쨌든 여성 보컬이 발랄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슈퍼버스(Superbus)'의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와 같은 곡은 예외로 두자. 


3. 재즈


'리 릿나워(Lee Ritenour)'의 '리오 펑크(Rio Funk)'를 IE 80으로 꼭 들어 보길 권한다. 저음이 아닌 제대로 된 베이스 기타 음을 감상할 수 있다. 리 릿나워의 깔끔한 기타 연주 또한 일품이다. 기타줄을 튕기는 소리 하나하나를 전부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제껏 들어 본 이어폰 들 중에서는 리오 펑크를 이처럼 잘 소화하는 이어폰은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곡 중간의 베이스 기타 솔로는 곡 자체 뿐만이 아니라 IE 80의 압권이라고 볼 수 있다. 감동스러울 정도.


물론 '데이브 브루벡'의 잘 알려진 '테이크 파이브'의 출중한 피아노 연주, 그리고 섹소폰 연주를 듣고 있자면 IE 80이 사실은 재즈 전용 이어폰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샘 쿡'의 '롱 롱 어고' 같은 흑은 뮤지션의 곡에도 잘 어울리는데 IE 80은 전체적으로 재즈 음악에 최적화가 잘 되어 있는 모양새이다. 밀도있는 저음이 적당한 흥겨움을, 고음과 중음이 이러한 저음 주변을 맴돌면서 곡에 맛을 더한다. 


4. 클래식


필자가 클래식에 조예가 깊지 못해 어떻게 평가하기가 난감하다. 단순히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던가, 말러, 그리고 클래식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러브 아이디어' 같은 곡들을 빠른 시간에 들어보았고, 그로인해 어떤 결론을 도출해내긴 힘들었다. 왜냐하면 클래식은 가장 민감한 장르 중에 하나이며, 그 종류도 다양해서 쉽게 어떤 느낌이다, 라고 말하기가 모호한 것이다. 

그러나 얼핏 들어본 느낌으로는 IE 80의 저음 성향이 클래식이라는 장르에 미치는 영향이 적잖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독주, 그것도 현악기 같은 경우는 상쾌할 정도의 느낌을 주지만, 피아노 독주곡 같은 경우 이 '저음'이 너무도 '무겁다'는 느낌이 든다. 음이 뭉치는 것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무거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필자의 경우는 조금 더 들어봐야 명확히 어떨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글렌 굴드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5번의 경우, 건반을 누르는 소리가 다소 육중하게 느껴지고 무게감이 있어서 IE 80이 피아노 독주곡에서는 조금 피곤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언급했다시피 필자는 클래식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할 만큼 얕으므로, 좀 더 공부를 해 본 후에 판단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BA유닛을 이용한 소니의 XBA-10의 경우 피아노 독주곡이 가볍게 들린 반면, IE 80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진중하게 느껴져서 어느 쪽이 더 옳은지 판단할 수가 없다. 전문가 분들이 이는 판단해 주실 거라 믿는다. 


5. 결론


29만 9천원이라는, 결론적으로는 절반의 가격에 할인을 하는 바람에 구입한 이어폰이지만 그 성능이 과연 62만원이라는 가격에 적합한 소리인가는 논란 거리로 남겨두고 싶다. 개인적으로 더 들어봐야 하겠지만 솔직히 느낀 감정으로는 IE 80이라는 이어폰의 적정가는 사실 29만 9천원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필자가 62만원이라는 금액을 주고 구입했다면 약간 후회를 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BA 유닛에 익숙해진 귀라서 다이나믹 드라이버 유닛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IS 80의 가치는 그 무렵에 다시 재평가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 이어폰을 추천하겠느냐고 묻는다면 62만원을 주고 구입할 것이면 한 번 더 생각을 해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며, 29만 9천원, 혹은 그 언저리에 구입할 수 있다면 충분히 그 가격은 하고도 남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직접 청음을 해보는 것이다. 필자처럼 청음없이 구입하는 모험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물론 필자의 경우 성공적인 모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말이다.



 

내가 블로그를 하면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사진을 찍는 일이다.
이래서는 어디 제대로 된 블로거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어쨌든 인터넷만 검색하면 나오는 사진인데, 굳이 찍을 필요가 있겠느냐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블로그니까,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겠다는 생각에 아이폰으로 사진 한 장을 찍어보았다.

 

iPhone 4


사진이 좀 개떡같이 나왔는데 이해하시라. 이 모든 것들이 귀차니즘 때문이니.

일전에 포스팅은 하지 않았지만, Ultimate Ear의 UE600을 구입했다. UE700을 팔고 한동안 애플 번들 이어폰만 썼는데, 그도 나쁘지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외부에서 음악을 들으면 음악이 전부 새어나가서 민폐를 끼치게 된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래서 예전 얼티밋 이어의 좋은 기억으로 인해 이번에는 UE600을 구입했다. 나중에 따로 포스팅 하겠지만, U600은 UE700보다 한 단계 '레벨이 낮은' 이어폰으로 치부하기에는 뭔가가 더 있다. UE700이 좀 곱상한 소리를 들려준다면 UE600은 좀 더 원시적인 사운드를 내 준다고나 할까. 뭔가 마초적인, 나쁜남자 같은 분위기다.

아무튼, 그래봐야 이어폰일 뿐. 근래들어 클래식과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뭔가 좀 더 고상하게 음악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2만원짜리 로지텍 PC형 스피커를 유니버셜 독에 연결해서 들어보았더니 나름대로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 '고상하지'는 못했다. 그냥 어디 카페 같은데서 흘러나오는 배경음 정도랄까.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뭔가 몰입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던 것은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슈처의 SRH440을 구입하게 된 배경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위에 언급했던 것 처럼 '고상하게' 음악을 감상하고 싶었다. 그러니 '고상하고 우아한' 소리가 나는 리시버가 필요했고, 그럴려면 우선 헤드폰이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으며, 검색을 해 본 결과 슈어의 SRH440이 '가성비'로는 저리가라 할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내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내 귀로 직접 듣지 않으면, 도통 사람들의 사용기 같은 것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내게는 소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공간감'이니, '저음'이니, '타격음'이니, '해상력'이니 이런 건 모른다. 알아봐야 골치만 아프니, 알고 싶지도 않다. 내게 있어서 '좋은 소리' 란 '내 귀에 좋은 소리' 인 것이다. 요즘엔 음질 측정 사이트도 있어서 그래프까지 나타내가며 음질을 설명해주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냥 '내 귀에 좋은 소리' 만 나면 된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더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있는 소리 그대로' 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즘 용어로 '플랫' 한 소리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음이 꽝꽝 울려대는', 소리를 좋아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런 소리를 싫어한다. '음장'도 싫어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꽝꽝 울려대는 저음' 과 '음장'은 일종의 '미원' 같다고 본다. 미원을 잔뜩 넣은 음식은 처음에는 맛이 좋다. 그러나 그 뒤에 '미원'이 들어있지 않은 음식을 먹었을 때는, 그 본래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 이미 '미원'으로 인한 과장된 맛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꽝꽝 울려대는 저음' 이나 '음장'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애플의 기기들이 만족스럽다. 이것도 전자기기이기 때문에 '완벽한 생음'을 들려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비교적 애플 제품들의 디바이스는 내가 원하는 '플랫'한 음을 들려준다.

리시버도 그렇다. 어떤 리시버는 저음이 튜닝 되어있고, 어떤 리시버는 고음이 더 튜닝이 되어 있고, 이런 식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리시버도 비교적 플랫한 것을 좋아한다. 특히 '저음을 꽝꽝' 울려주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은 질색을 하는 편이다.

이러한 조건을 '대략' 만족시켰던 이어폰은 역시 UE600이었다. '보컬 백킹' 이라는 현상도 UE700보다 덜했다. 그렇다면 헤드폰은 어떤가.
헤드폰의 경우, 기본적으로 '베이스'가 강조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내 편견이었다. 물론 이러한 편견은 이번에 소개하게 될 SRH440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졌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헤드폰이란 곧 '웅장함'을 이야기하는 것인줄 알았다.
그래서 필자는 SRH440의 윗버전인 SRH840을 한 번 청음해 본 뒤로는 아예 염두해두지 않았다. SRH840은 그러니까 SRH440의 플랫함에 '베이스를 더한' 제품이다. 그런데, 내 귀가 병신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SRH840에서 들리는 베이스는 어딘가 어색하게 들렸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베이스라기보다는 너무도 확연히 "이건 베이스가 울리는 거야" 라고 알려주는 식으로 들렸다.
보스의 신형 OE2는 베이스가 너무 울려서 제외시켰다. 그렇다면, SRH440은 과연 어떤 매력이 있는가? SRH840이나, 보스 OE2가 내 영혼을 짓밟는 듯한 사운드를 내주었다면, SRH440은 내 영혼을 정교하게 도려낸 듯한 음을 들려주었다.

1. 클래식

청음은 아이패드로 하였다. 어디서 주워 듣기로는 아이패드가 아이폰4보다 음질이 아주 미세하게 더 좋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 어플중에는 "프리미엄 클래식"이라는 어플이 있어서, 이 어플은 와이파이 상에서 클래식 음악을 애플 로스리스(Apple Lossless) 형식의 무손실 음원으로 다운 받을 수 있게 해준다. 물론 플레이는 어플 내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니 애플 로스리스 무손실 음원으로 클래식을 들어보았다.

먼저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들어보았다. 프리츠 라이너 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화의 장대한 사운드트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웅장한 서사시는 사실, SRH440에서는 압도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히 '통쾌한' 음을 들려준다. 소리 자체에 밀도가 있고, 그래서인지 어떤 감동같은 것이 밀려온다. 고작 12만 4천원짜리 헤드폰에서 '압도적'인 사운드 자체를 기대할수는 없지만, 사실 이 정도의 느낌을 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UE600같은 이어폰과는 스케일부터가 틀린 것이다.

다음으로 들어본 곡은 글렌 굴드가 연주한 바하의 Sinfonia No. 9 in F minor BWV 795. 이 정적인 피아노 독주곡은 바로 옆에서 피아노 연주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먼지 한톨 없는 청명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이러한 맑은 음질은 아마도 SRH440의 특징인 플랫함에서 오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곡의 명확함을 그대로 전달해주는데, 이 곡은 이런 느낌이라는 것을 옆에서 설명해주는 것과 같은, 정교함이다.

다음은 클래식은 아니지만, 영화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주제음악인 'A Love Idea' 라는 곡을 들어보았다. 무손실 음원은 아닌, 내 기억에 아마도 320k 음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크 노플러가 작곡을 하고, 데이비드 놀란의 바이올린이 일품인 아름다운 곡이다. 본인이 개인적으로 근래들어 심취해 있는 음악인데, 특히 가장 좋아하는 소절, 즉 54초부터 1분까지의 부분에서 들려주는 감동을 그대로 전달해 준다.

2. 락/메탈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Telegraph Road를 들어보았다. 9분 32초 이후에 나오는 기타 솔로를 중점적으로 들어보았다. 마크 노플러의 기타 연주는 피크를 이용한 것이 아닌, '핑거 주법'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인데, 그래서 그의 기타 연주는 솔로 연주마저 리드미컬 하다. 이러한 '핑거 피킹'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피킹과 핑거링의 절묘한 조화를 한껏 살린 이 곡은, SRH440 특유의 플랫함과 클린함으로 인해 한결 더 경쾌하게 들린다.

다음은 Fall Out Boy의 Beat. 이 곡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보컬이다. 마치 스튜디오에서 보컬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그대로 청음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확트인 기분이 든다. 기타 솔로에서는 기타의 '벤딩(초킹)'의 강도 정도까지 '모니터링' 될 정도다. 결정적으로 본인이 청음샵에서 청음했던 곡이 이 곡인데, 강렬한 락에도 발군의 '해상력(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을 보여준다.

다음은 New Trolls의 The Knowledge 를 들어보았다. 아시다시피, 이 그룹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클래식컬한 맛과 락의 힘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주목할 점은 비토리오 데 스칼지의 플룻 연주인데, 다른 악기들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이어서 나오는 Dance With The Rain 의 인트로 부분에 나오는 어쿠스틱 기타 음은 또렷하게 들린다. 비토리오 데 스칼지의 보컬 또한 이어폰에서 들을 수 없는 '풍성한 감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

SRH440의 특징이라면 역시 보컬에 있다. 보컬 묘사가 섬세해서 듣는 맛이 남다르다.

3. 가요

롤러코스터의 '라디오를 크게 켜고' 는 이 SRH440 헤드폰의 진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데, 여성 보컬의 목소리가 연주와 절묘하게 조화가 되어 어색함이 없다. 중간에 들려오는 기타 스트로크 연주부문에서는 다소 맥이 없이 들리지만, 곡의 특성상, 이 정도는 무난하다고 보여진다.

이문세의 '밤이 머무는 곳에'는 마치 어린시절 들었던 느낌을 그대로 되살려주는데, 보컬의 감정을 잘 살려주고는 있지만, 이 곡에 있어서는 별다른 특징도 찾아 낼 수 없는 '그저 무난한 정도' 로 해석할 수 있다.

4. 랩

본인은 사실 랩이나 힙합을 잘 듣지 않는데, 유일하게 듣는 음악이 바로 타이니 템파의 'Written In The Stars' 이다. 이걸 햅이나 힙합이라고 말한다면, 진정한 매니아들이 비웃을 수 있으나, 그저 글쓴이의 취향정도라고, 애교로 넘어가주면 감사하겠다.
이 곡은 최초의 에릭 터너의 보컬로 시작되는, '락'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역시 SRH440의 특성상 '신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비교하자면, 그냥 타이니 템파가 '클래식 풍으로' 힙합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마 타이니 템파 와 무슨무슨 오케스트라가 협연,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특유의 신나는 느낌은 거의 '상실' 된 수준이고, 그냥 명료한 '랩'을 듣는 기분이다.
만약에 '힙합'을 줄 듣는 분들이라면, SRH440은 꼭 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취향의 문제라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 Written in the stars가 '신나는' 곡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랩, 혹은 힙합 장르를 들으면 다를 수 있겠으나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신나게 몸을 흔들고 즐기는 것이 아닌, 그냥 팔짱끼고 앉아 '감상'하는 수준에 멈추는 심심함이 엄습해 올 것이다. 

본인이 많은 곡을 들어보지는 못했다. 심지어는 '재즈'도 감상해보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결국은 이정도 선에서 마무리지으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찬사 일색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단점은 존재한다.
만일 '신나는' 음악을 감상하기를 원한다면 SRH440은 적당하지 않다는 점이다. 몸을 흔들정도의 '즐길 수 있는' 음악에서는 SRH440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예컨대 메탈리카의 공연을 보러가서 그냥 가만히 다리꼬고 앉아 '감상'하는 수준에서 멈출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메탈리카의 공연에서는 몸을 흔들어야 하는데, SRH440은 몸을 '흔들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다만 '차분히' 감상을 요하는 곡에서라면 역시 이 헤드폰은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데, 악기들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경우, 특히 더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착용감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는데, 본인이 처음이라서 그런지 오래 쓰고 있으면 머리가 좀 아파오는 느낌이다. 아마도 위에서 누르는 현상 때문인 것 같은데, 글을 쓰면서 들으니 더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는 약간 무거운 것 빼고는 착용감은 양호한 수준이다.

중요한 것은 SRH440의 가격이 단지 13만원 밖에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가격대에서 이러한 감동을 주는 리시버는 개인적으로 드물지 않을까 싶다. 본인은 헤드폰을 그렇게 많이 사용해보지 않았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거의 십 몇 년 만에 이런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감상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감동이 더할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이어폰(UE600밖에 없으니)으로 듣는 음악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음악 그 자체만을 감상한다고 하면, 그리고 주머니가 가볍다면 대안은 SRH440 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SRH840은 어떤가.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서 SRH840의 베이스는 어딘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진다. 너무도 명확하게 울려주기 때문이다. 본래부터 태생이 플랫한데, 거기에 베이스를 조금 더 집어 넣을 뿐인 느낌이다. 본인은 서두에서도 강조했듯이 플랫한 성향을 좋아한다. 소스가 웅장하면, 웅장하게 들릴 것이고, 소스가 가볍다면 가볍게 들릴 것이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솔직한 소리'를 내 주는 것이 바로 SRH440의 정체성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이어폰을 DSLR카메라에 비유하자면 '크롭바디' 정도로 비교 할 수 있다. 그리고 헤드폰은 '풀프레임 바디'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본인의 편견에 의하면, 아무리 성능이 좋은 크롭바디라 할지라도, 풀프레임 바디의 깊이는 따라 갈 수 없다. 이어폰과 헤드폰도 마찬가지다. 이어폰의 음질이 아무리 좋은들, 헤드폰의 깊이를 따라 갈 수 없는 것이다. 이어폰을 시냇물로 본다면, 헤드폰은 강물 정도 되겠다. 스피커는? 바다?

음악을 감상하는데 있어, 장비보다는 음악 자체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장비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오디오 시스템을 구성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역시 헤드폰 밖에는 길이 없다. 본인의 아이패드는 이퀄라이저를 이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안타깝지만, 만일 여러분들이 사용하는 음향기기에 이퀄라이저 기능이 있다면, 원하는 소리를 모두 만들어 조합해낼 수 있는 헤드폰은 SRH440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에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보다 즐겁고, 풍성하게 음악을 감상 할 수 있겠다.

  1. Favicon of http://www.nemokan.net BlogIcon DGK 2011.12.22 12:49 신고

    저랑 같은 느낌으로 들으셨네요. 840은 베이스가 좀 더 업된거 같아서 440으로 골랐는데 음악 들을때마다 웃음밖에 안나와요. 너무 좋아가지고요. 320kb이상으로 들어줘야 듣는 느낌이죠. 최근에 아이유의 '너랑 나'랑 케샤의 'take it off' 들었는데 전율이...

  2. Favicon of http://everain86.blog.me/ BlogIcon 저녁비 2012.01.01 20:53 신고

    저음이나 공간감이 별로라고해서 440으로 정해 놓고 자꾸 840에 미련을 뒀었는데...
    후기보고 440으로 결정했습니다.

  3. hole 2012.01.03 21:45 신고

    님 블로그 처음왔는데 재미있네요..

  4. Favicon of http://gem87.tistory.com BlogIcon 몽상가 2012.01.15 21:53 신고

    헤드폰 찾다가 잘 보고 갑니다. 입문인데 뭐가 적당할지 찾고있어요ㅋ

  5. 타키제로 2012.01.18 12:01 신고

    고음 특화 헤드폰 찾다가 들렀습니다.
    입문인데 도움됬네요.

  6. 2012.01.23 15:56

    비밀댓글입니다

  7. 아인헨더 2013.09.09 18:59 신고

    이런저런 헤드폰으로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을 440으로 시작해서 종착역도 440으로 돌아오더군요

  8. GARAGE Inc 2013.09.15 11:47 신고

    글 잼있게 잘봤습니다
    저도 840이랑 440 둘다 청음해봤더니 440에 더끌리더라구요
    매장에서 계속 듣고 있는데 진짜 좋아서 웃음만 나오더라두요
    님 포스팅보고 맘굳혀서 구매하러 갑니다 ^^

  9. 김지훈 2013.12.28 17:20 신고

    저도 ue600이랑 슈어끼고있는데.. 똑같은거 쓰시네요 근데 저는막귀수준이라 그냥일반이어폰 헤드폰보다 조금낫다고느끼는정도.. 이렇게 상세하게는 느낄수가없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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