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기에 인간관계란,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필요에 의한 관계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비즈니스 관계'가 그렇다. 직장에서 필요에 의해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계는, 처음에는 서로가 서로의 껍데기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돈이 많다거나, 돈이 없다거나, 일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혹은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등등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비즈니스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집단이 바로 '군대'이다. 군대는 남자들이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 처음으로 밟는 코스다. 게임으로 치면 '튜토리얼' 같은 식이다. 우리는 군대에서 수많은 인간관계를 경험하게 되는데, 대체로 군대에서 '인생의 소중한 친구'를 만나기란 어렵다. 대신에 '제대하면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남자들만이 거의 '필수'적으로 경험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우게 된다. 사실, 군대만큼 겉모습을 중요시 하는 집단도 없기에 '비즈니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겉모습'에 대해 배우려면 군대만한 곳이 없다.
이러한 비즈니스 관계가 '인간적인 관계'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을까? 사실,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관계의 진전이 발견된다. 요즘 유행하는 '롤모델' 부터 시작해서, 직장에서 남녀간의 애정, 동질감을 느끼는 입사 동기들과의 관계. 그런데 이러한 관계들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 하면, 보통은 회사를 관두거나, 아니면 다른 흥미거리를 공유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금새 깨지게 마련이다. 복숭아의 껍질은 깍되, 안의 '씨'까지는 근접하지 못하는 것이다. 

두번째 관계는 바로 한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는 관계이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인간관계란 이런 것이다.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대상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 판단은 그 이후에 하는 것이다.
보통 한 명의 '호감이 가는 대상'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겉모습'을 보고 호감을 갖게 된다. 예쁘다던가. 성격이 좋다던가. 멋지게 생겼다던가. 돈을 잘쓴다던가. 어쨌든 처음에 호감을 갖게 되는 경우는 다양하다. 문제는 이 다양한 호감의 시작에서 어떻게 다음 단계로 진행을 시키는가, 혹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어떻게 아느냐가 문제가 된다.
어쨌든,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사람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혹은 그녀는 본질적으로 어떤 인간인가? 그는 본질적으로 착하거나 선한 사람인가? 아니면 싸이코패스인가? 이러한 것들은 겉모습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문제이다. 오로지 한 인간의 '본질'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근래들어 인간관계를 맺을 때, 후자의 부분을 선택한다. 일단 처음에 판단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방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도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했다가 낭패를 본 일이 꽤 있었기에 섣부른 판단이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욕할지는 몰라도, 나는 인간관계를 '비즈니스 관계'와 '본질에 접근하는 관계'로 나누어 상대한다. 물론 '본질에 접근하는 관계'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친구'가 될 수 있는 관계이다. '비즈니스 관계'는 그 비즈니스가 끝나면 당분간(혹은 영원히)끝나는 관계이다. 이렇게 관계를 나누었을 때, 내가 상처를 받는 일이 상당히 적어진다는 것을 경험에 의해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인간관계는 어렵다. 그렇다고 혼자 살 수도 없다. 계산하지 않는 관계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계산하게 되고, 내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 진정한 인간관계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나보다고, 판단했다. 가족관계가 있지 않냐고?
글쎄. 그것도 모두 옛날이야기 아닐까?
  1. 김대성 2010.12.24 12:18 신고

    종이컵 vs 머그컵. 그런데 둘로 나눈다는 것이 쉽던가요? 종이컵이 머그컵이 되는 것도 드물고, 머그컵이 종이컵이 되는 것도 드물기는 하지만..

사람은 나이를 먹을 수록 인간관계에 대다수의 정력을 쏟아붇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주기적으로 그들과 연락을 해주고, 만나서 일상을 이야기하고...기타등등.

내가 인격적으로 덜 성숙이 되었는지, 나의 대인관계관 자체가 이따위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간관계는 대단히 한정적이다. 이러저러한 모임들은 당연히 참석도 하지 않으며 내게 연락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나도 연락하지 않는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인간관계.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나와 같이 근무를 섰던 부사수가 내게 한 말이 있다. 그는 내게 친구가 몇이나 되냐고 물었다. 나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라고 대답했다.(현재는 더 줄어있다.) 나는 그 부사수에게 그럼 너는 친구가 몇 명이나 있는데? 라고 물었다. 그 녀석은 아주 자랑스럽게 '백명' 이라고 말했다.

맙소사. 친구가 백명?

제대로 된 친구 한 명 만나기도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라는데 백명이나 되다니. 그 수많은 친구들을 사금 골라내듯이 거르고 거르면 한 서너명 남으려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단 한 명도 제대로 된 친구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 백명의 친구들이 아직도 그 부사수 주변에 남아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제대한지 꽤 됐고 지금쯤 사정은 바뀌었겠지.

그런면에서 인간관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믿음'이라고 볼 수 있다. 믿음이 없는 인간관계란 애초부터 성립되지 못한다. 인간관계에서 믿음이 없다면 그건 인간관계가 아니라 그냥 스쳐지나가는 관계 정도겠지. 당신이 애인과 데이트를 즐기는 것과 '원 나잇' 상대와 데이트를 즐기는 것과의 차이점 정도랄까?

'인간관계의 원 나잇 상대들'을 우리들은 의외로 많이 가지고 있다. 술 마실 때 필요한 친구, 영화 볼 때 필요한 친구, 수다 떨 친구, 섹스하고 싶을 때 필요한 친구. 모두다 어떤 '용도' 때문에 만나게 된다. 애석하게도 그 용도가 아니면 그 사람들은 보통 만나지 않는다. 이런 것이 인간관계라면 인간들 자체가 참 이기적이고 우스꽝스럽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신경써주고 걱정해주고 뭐 이딴 것들이다. '진정한' 친구 란 경험에서 비추어보건데 얼굴만 봐도 저 친구가 뭘 말하고 싶어하는지를 꿰뚫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주변을 둘러보라. 그런 친구가 어디 한 명이나 있던가?

인간관계는 그래서 필요에 따라 이루어지는 관계이다. 여기에는 '융통성' 이라는 스킬이 필요하다. 내 눈에 아무리 좆같아 보이고 싸가지 없는 인간이라도 일단은 그 사람에게 자신이 그를 좆나게 싫어한다는 내색을 보이면 안된다. 그가 비록 개새끼 일지라도.
이런 이중인격적인 가면이 없이는 인간관계는 성립하지 못한다. 속으로는 걱정도 안되고 귀찮지만 겉으로는 정말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어야지만 인간관계는 성립한다.

나는 선천적으로 내가 싫은 사람을 보면 아예 안보는 성격이었으나 최근 그 성격을 약간 수정했다. 나도 얼굴에 가면 하나를 걸쳤다. 어차피 부딪혀야 할 인간들이라면 서로 꼴아보면서 언제 붙을까 이런 인식을 심어주기 보다는 나의 가식적인 친절함과 아량에 방심하게 만들어야 한다.
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것이 인간관계라는 것을.

애써서 불필요한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엮어진 관계를 때려치우는 것도 어떻게 보면 병신같은 짓이다. 결국 사람은 같은 조건과 같은 생각으로 만난다. 서로에게 가식적인 친절함을 배풀면서 속으로는 상대방을 어떻게 하면 내가 유리하게끔 이용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필수 인간관계.

그런다고 해서 방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좀 더 세밀한 가면이 필요한 세상.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