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무리하다'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모아서 정리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컴퓨터가 그리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대, 우리는 어떤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책이나 신문을 뒤졌다. 그리고 그 자료를 보관하는 방법은 '갈무리', 즉 원하는 정보가 있는 잡지나 신문, 책을 구입하여 보관하던가, 혹은 그 중 원하는 부분만 오려서(때로는 과감하게 찢어서) 별도로 보관하기도 했다. 이렇게 정보들을 잔뜩 모아 놓은 두꺼운 자료집들은 자기만의 보물이었다. 책꽂이 가득 꼽혀 있는 자료집들은 때로는 누군가의 일생을 모아 놓은 총체이기도 했다. 


  바야흐로 '검색의 시대'가 찾아왔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검색해봐" 라는 말이 일상이 되었다. 과거에는 정보를 얻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두꺼운 책들을 몇 시간이고 뒤적여야 했다면, 지금은 초 단위로 정보를 검색해 낼 수 있다. 구글은 검색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라왔다. 그것은 아마 대부분의 포털 서비스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검색이란 이 시대의 기본으로 자리잡았다. 어느 웹사이트를 가도 검색을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초창기 검색엔진은 검색 조건이 별도로 존재했다. 예를 들어 '영화'와 '배우'를 검색하려면 '영화 and 배우'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럴 필요 조차도 없어졌다. 어떤 방식을 이용해서 검색을 해도 결과는 나온다. 


  결과는 나온다. 인터넷에는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의 자료들 조차도 준비되어 있다. 여러분들이 1930년대 동아일보를 보고 싶다면 언제든지 1930년대에 나와있는 동아일보를 볼 수 있다. 여러분들이 한겨레 창간호를 보고 싶다면, 간단하다. 검색만 하면 된다. 


  모든 것이 검색이 되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이것이 과연 우리에게 편리함만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자신의 이름이 인터넷에 검색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돈을 받고 인터넷에 떠 있는 자신의 정보를 대신 지워주는 업체까지 생겨나는 형편이다. 조지 오웰의 <1984> 이후, 사람들은 정말로 '감시당하는 세상'이 올까 의문을 가졌지만 실제로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검색은 곧 검열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우리는 <1984>의 바로 그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정보를 남겨야하고, 때로는 아주 손쉽게 다른 사람들의 정보를 접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어떤 면을 검색 몇 번으로 찾아 낼 수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SNS의 발전이 우리의 삶을 낙관적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긴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검열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제 영화에서는 누군가의 정보를 알기 위해 굳이 그 사람의 컴퓨터를 해킹하거나 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검색하기만 하면 끝이다. 검색의 시대. 우리는 검색을 하는 것인가, 검색을 당하는 것인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플로피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그만큼 삶은 더 지루해지고 재미가 없어졌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요즘같이 재미없는 시대가 또 있을까. 치약 이름 같다며 우리끼리 히히덕 거리던 '펜티엄 프로세서'가 등장한 이후로,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해왔고, 그에 반비례하여 시대는 점점 재미없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컴퓨터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전원 스위치를 넣고, 컴퓨터가 완전히 부팅 될 때까지 기다린 후에, 플로피 디스크를 드라이브에 삽입한 후에, 커서만 깜빡거리던 도스창에 행여 오타라도 날까봐 공을 들여 명령어를 입력하던 시절은 이제 우리에게는 없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침대에 편한하게 기대어서 랩탑의 덮개를 열면 고해상도의 배경화면이 보이고, 그 위로 예쁘장한 아이콘들이 잘 정렬되어 놓여있다. 오타를 낼까봐 조심스럽게 키보드를 타이핑 할 일도 없다. 그냥 마우스나 터치패드로 아이콘만 클릭하면 모든 것들이 해결된다. 영화도, 게임도, 음악감상도. 


PC통신에 접속할 때 나는 비프음이 안방에까지 들리지 않게 하려고 컴퓨터에 이불을 뒤집어 씌울 필요도 없다. 컴퓨터를 끄기 위해 명령어를 입력할 필요도 없으며, 새로운 장치를 컴퓨터에 장착시키기 위해 컴퓨터를 힘들게 분해하고, ISA 슬롯에 부품을 꼽아야 할 일도 없다. 이제는 메인모드에 모든 장치들이 집적되어 있고, USB에 필요한 장비들을 간편하게 연결시킬 수 있다. 아무런 불편이 없어서 오히려 내 자신이 병신처럼 느껴질 정도다. 



ISA 슬롯에 꼽아 쓰던 모뎀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더 이상 사진 한 장을 내려받기 위해 전화세를 낭비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집에 전화가 없는 집들도 있다. 아니 집에 전화기가 있으면 오히려 구닥다리가 된 기분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하기 위해 전화선에 접속할 필요도 없다. 어떤 장소에서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몇 메가 짜리 사진은 1초 남짓한 시간에 내려받을 수 있다. 참 재미없는 시대가 아닐 수 없다. 


PC통신에 접속하여 미지의 낯선 타인과 공통된 주제로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종말을 맞이했다. 대신에 우리는 SNS를 이용한다. 스마트 폰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웹은 개방되었고, 우리는 소통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순이 하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낯모르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기타 SNS 서비스들, 메시지 서비스들은 내가 원하는 사람하고만 소통을 나눌 수 있다. 오히려 더 폐쇄적으로 변해버렸다고 해야 할까. 

정말로 '졸라' 재미없는 시대인 것이다. 


과거에는 최신 기술을 접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잡지를 구입해 읽거나 용산 전자상가 같은 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잠깐만. 컴퓨터 잡지라고? 종이로 만들어진? 요즘 우리가 어디서 컴퓨터 잡지를 볼 수 있을까? 그것이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최신 정보들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용산을 돌아다녀도, 우리는 최신 부품들을 전부 구경할 수 없던 시대가 있었다. 단돈 천 원을 깎기 위해 용산 전체를 헤집고 다니는 데 하루를 소비해야 하는 시대도 다 옛말이다. 이제는 최신형 컴퓨터라던가, 부품들을 구입하는데 단 5분만 투자하면 된다. 땀을 흘리며, 혹은 추위에 떨며 용산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간단하게 검색하고,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아 결제를 하면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우리는 최신 기술을 접할 수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비디오 있어요 학생." 이라는 말을 뒤로 하고 세운상가를 돌아다니며 백판을 구입하던 시대도 끝이 났다. 집에서 편히 앉아 단돈 몇 백 원에 내가 원하는 음악들을 전부 감상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편리하고, 신기한 기술들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기술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은 아닐까? 낯선 사람이 내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도 딱히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지금의 시대를 대변해준다. 그런데 문득 내 블로그의 글들에 낯선 이들이 덧글을 달아주면, 언젠가부터 그런 것들이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놓으면,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내 사진을 보고 '좋아요'를 클릭해준다. 마치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이러한 일련의 소통들이, 나는 언젠가부터 신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예전같은 흥분도, 재미도 없다. 처음에는 "이거 참 신기한데? 덴마크 사람이 내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주다니" 라고 생각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신기함에 무뎌지는 것이다. 


기술은 너무도 빨리 발전하고 있어서, 최신기술에 놀라기도 전에 더 최신기술이 튀어나오고 있다. 마치 초고속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 슬로모션 처럼 보이듯, 초고속으로 발전하는 기술로 인해 우리의 삶은 슬로모션처럼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문득 1995년에 등장한 <해커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보았다. 문득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재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분명, 처리속도가 오래 걸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어 있을지언정, 지금보다는 더 재미가 있지 않을까?


  1. BlogIcon badride 2014.12.29 16:32 신고

    저도 평소에 항상 비슷한 생각을 해왔습니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을 하는데 인간이 그 속도를 못따라가는게 아쉬울 따름이네요. 문득 하이텔과 용산견이 그리워집니다.

  2. BlogIcon 크리슈나 2015.01.14 11:17 신고

    더럽게 공감합니다.^^
    노력이나 시행착오가 많을수록 기쁨이나 재미가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도 편리한 시대가 되었네요 ㅠㅠ

1. 스팸메일과 다를 바 없는 인터넷 신문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언론매체도 변화를 맞이하였다. 자취방에서는 필수 도구로 여겨졌던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은 이제 드물다. 우리 손에는 스마트폰, 패드, 노트북등이 들려있고, 아마도 우리는 하루의 시작을 이러한 디지털 도구들로 인해 뉴스를 접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모 일간지의 인터넷 웹사이트 광고다. [남성전용]으로 시작하는 낯뜨거운 광고의 문구가 보인다. 청소년들도 아무런 제한 없이 접속할 수 있는 '언론' 매체 웹사이트에 저런 광고가 보인다는 자체가 이 사이트는 '성인인증'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포탈사이트에서 기사만 클릭해도 이런 광고를 볼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돈이다. 요즘 시대에 성은 잘 팔리는 상품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가장 먼저 알려야 할 언론의 웹사이트는 이렇게 성과 돈에 물들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터넷 신문들을 읽기란 쉽지 않다. 특히 PC를 이용해서 이러한 뉴스들을 볼라치면 우리는 기사보다 더 많은 광고들을 보아야 한다. 어떤 인터넷 매체는 기사 한 가운데 광고가 버젓이 올라와 있고, 우리는 기사를 읽기 위해 그 광고를 클릭하여 꺼야한다. 그러나 어떤 광고는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광고의 내용이다. 언론매체의 수익구조가 광고에 의존하는 방법 밖에 없다면, 그들의 '광고도배'는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광고의 내용은 다른 문제다. 성과 관련된 광고들이 버젓이 올라오고 있으며, 성형을 유도하는 광고, 다이어트 광고들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광고들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들 언론매체들은 양심을 성에 판 것이다. 성인광고를 올리고자 한다면 그 매체는 당연히 19금 딱지가 붙어야 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19금' 딱지는 붙어있지 않다. 무심히 기사를 읽으며 밑으로 화면을 내리면 보이는 광고들이다. 이러한 성인광고들은 심지어 기사를 읽는 내내 따라다니기도 한다. 이러한 광고는 진보/보수를 따지지 않는다. 대다수의 인터넷 언론들은 이와같은 선정적인 광고를 달고 있다.


 

 

<모 인터넷 언론의 기사창이다. 기사를 읽는 내내 우측의 광고가 따라다닌다.>

그렇다면 해외 인터넷 매체도 우리나라 처럼 이렇게 지저분 한가. 그렇지 않다. 일본이나 미국의 인터넷 언론 매체에도 광고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살아움직이는' 광고는 아니다. 그저 화면 한 쪽에 얌전히 자리를 잡고 있을 뿐이다. '성인용' 광고는 눈에 띄지 않는다.


 

<외국 신문또한 광고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인터넷 매체처럼 복잡하고 지저분하지 않다. 그냥 화면 한 구석에 얌전히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광고 내용 또한 우리나라에 비하면 건전한 편이다.>

성범죄가 난무하고 있는 이 마당에 인터넷 언론 매체의 '선정적 광고'를 집어 넣는 것은 비약이겠지만, 어쨌든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매일 습관적으로 보게 되는 '인터넷 뉴스 매체'에 이런 광고들은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차마 클릭하기도 두려운 성인광고들을 아이들이 뉴스를 보다가 무심코 클릭하기라도 한다면? 이미 인터넷 자체가 '선정성'으로 물들어 있다. 인터넷에 청정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언론만이라도 이런 부분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는 않을까? 성인광고를 넣으려면 어떻게해서든 미성년자들의 접근을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스팸메일을 보내는 이들보다 이러한 언론매체가 더 괘씸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2. 제목으로 낚시하는 기자들

생전듣도보도 못한 인터넷 매체들이 있다. 주로 연예 뉴스 쪽에 많이 보인다. 언제 생겨났는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곳들이다. 이런 매체들의 기사는 하나같이 어딘가 부족하다. 일단 내용부터가 부실하다. 맞춤법이 틀리기는 예사고 기본적인 문장 부터가 안되는 기사들도 왕왕보인다. 최소한 메이저 일간지 기사들을 흉내라도 내보려는 시도 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이들의 기사 내용이 아니라 기사 제목이다. 이른바 '낚시' 기사들이다. 제목으로 사람들을 클릭하게끔 유도하는 것인데 실제로 내용은 별볼일 없다. 연예 프로그램이 방송하면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다가 실시간으로 기사(라고 부를 수 있다면)를 작성하고 올린다. 화면은 컴퓨터 화면을 캡춰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이런 기사를 쓰는 기자들에게 '취재'란 그냥 방에서 TV를 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과연 '기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러한 낚시 기사들은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정치, IT, 연예, 스포츠를 막론하고 낚시 기사는 늘 존재한다. 낚시에 속는 그대들이 병신이라고 주장한다면 할말이 없다. 그러나 아무런 내용도 없이, 선정적인 제목을 내세워야만 사람들이 기사를 읽는다면, 그런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소양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기자란 '언론'인이다. '언론의 양심'이란 말은 어디 외계어처럼 갑자기 나타난 말이 아니다. 70년대 신문들을 읽어보면 기자들이 얼마나 진중하게 기사를 썼는지 알 수 있다. 요즘 기자들은 심지어 '블로거'들 조차도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영화 'State Of Play'를 보면 서양에서 블로거들의 활동을 짐작이나마 할 수 있다. '블로거' 조차도 언론인으로써의 마음가짐을 갖고 취재를 하며 블로깅을 한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진실'이다. 설령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그 취재과정의 성실함을 본다면 그 기사들은 훌륭한 기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편하게 방에서 앉아 연예 프로그램의 줄거리를 화면 캡춰와 함께 올려 놓는다면 그것을 과연 기자가 취재하여 쓴 기사라고 할 수 있을까?

3. 마치며

나는 현재 인터넷 언론의 병폐 두 가지를 언급했다. 갑자기 몸이 안좋아져서 이정도 선에서 글을 마무리 할 수 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조금 더 조사를 하고, 인터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몸이 좀 건강해진다면, 충분히 다시 한 번 이 주제로 블로깅을 해 볼 예정이다.

나는 블로거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블로그'도 언론이라고. 1인 언론이다. 블로거들은 다른 메이저급 언론보다 제약이 더 많다. 일단 취재부터가 쉽지 않다. 블로그를 '용돈벌이'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블로거들도 '언론의 양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우리 블로거들은 자유롭다. 메이저 언론사들은 의외로 여러가지 제반사항들에 영향을 받는다. 정권이 바뀌면, 언론도 바뀐다. 그러나 블로거들이 제약을 받는 것이라고는 고작 '정식 언론매체'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점 밖에는 없다. 그런데 그 '정식 언론매체'들의 실상은 어떠했는가. 광고는 선정적이고, 기사들은 성의가 없다. 나는 이들을 '정식 찌라시'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진실은 TV 캡춰 화면에 있을 뿐.

보다 자유롭고, 보다 진실하며, 보다 용기있는 블로거가 되는 것이 내 바람이다. 블로그 하나 운영하는 주제에 너무 거창하다고? 이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글로써 세상에 뭔가를 보여주는 이들의 기본 마음가짐이다. 이 조차도 생각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우습다고 느껴지는 이들의 글은 그저 상업주의에 물든 찌라시 정도밖에는 되지 않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1. BlogIcon ㅇㅇ 2012.08.23 12:31 신고

    블로그는 신의 한수였습니다


내가 학창시절 때, 수학 공식이 '왜' 그렇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칠판에 공식을 적고, "그냥 외우면 돼."라고 말씀하셨고, 그냥 외워서 적용을 해보려 했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나는 수학이 언제나 꼴찌였다.

일렉트릭 기타를 구입하고, TAB악보를 보며 기타를 연주하다가 어느날 '코드'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어느 학원에 가도 그 코드가 '왜' 그렇게 이루어지는지 설명해주는 곳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F라는 코드가 있다면, 왜 6개의 줄을 그런 식으로 잡아서 연주를 해야하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학원 선생은 그랬다. 일단 코드부터 '외우'라고. 왜 코드가 그런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평생을 가도 좋은 연주자가 될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기타를 포기했다. 그 땐, 눈물이 났다.

요즘에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디지털 찌라시들이 그렇다. '기자'라는 양반들은 '왜' 그런 기사들을 쓰는지, '왜' 낚시질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까 기자란, 펜과 종이를, 검과 망또삼아 정의를 이루는 사람들 아니었던가? 그러나 내가 인터넷으로 보는 기사들 중에, 정말로 정의로운 글을 쓰는 '언론'인들은 거의 없었다. 언론의 양심? 그런건 일찌감치 사라져버린지 오래다.

우리가 흔히 '조중동'이라 부르는 보수 언론들이 있다. 근래들어 '낚시기사'를 남발하는 기자들을 보고 있자면(심지어 그들은 맞춤법도 틀리고, 문맥도 맞지 않는 글을 쓰는데) 이 '조중동'은 글 참 잘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들도 나름대로 정의가 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의. 우리가 보기엔 정의가 아닌 것 같은데,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종이에 휘갈겨 쓰는 그 기사들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걸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어느쪽에 발을 들여놓든, 그건 자신들의 신념이고, 개인의 신념을 무너뜨릴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다.

근본도 모르겠는 '디지털 찌라시'들의 홍수 속에, 간혹 읽을만한 기사들이 보인다. 맞춤법도, 글의 구성도, 문장력도 훌륭하다. 이러한 기사들은 보통 '오 마이 뉴스'에서 나오더라. 납득하긴 어렵지만 간혹 '조중동'에서도 잘쓴 기사들이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언론'이라는 전쟁터 속에서 나름대로 자신들의 스킬들을 갈고 닦았으리라. 어디가서 무시당하지 않도록. 찌라시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려면 그만큼 피나는 노력을 해야했으리라.

어느 날, 어떤 기사 중에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 파더'에 대한 정진영의 인터뷰가 실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는 제목을 보고 상당히 놀랐는데, 제목은 이랬다.

정진영 "'심형래 영화, 왜 봐?'..그게 바로 관객 모독"

도대체 이 제목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제목만 봐서는 정진영이 심형래 감독의 영화를 대놓고 씹은 것 처럼 보인다. 그런데 내용은 그렇지 않다. 내용은 심형래 영화를 '왜 봐?'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관객들을 모독하는거니 그런 말은 쓰지 말자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제목을 저렇게 써놨다. 나는 이 기사를 쓴 기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의도로 이런 제목을 썼을까? 이 제목은 분명 낚시인데, 기자의 아슬아슬한 조크였나? 싶었다.

그 이외의 '낚시'기사들이 요즘들어 늘어나고 있다. 기자가 단순히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심산치고는 너무 재미가 없다. 실은 아침에 이런류의 낚시기사를 보면 기분이 불쾌하지기까지 한다. 이런 농담들은, 동료기자들끼리나 내뱉는 것 아닌가? 안타깝게도, 이런류의 기사들은 옛날 '종이신문' 시절을 돌이켜보게 한다. 정반대의 이념을 가진 기자들이, 각자의 신념을 독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썼던 그 기사들 말이다. 한겨례 신문과, 조선일보를 동시에 펼쳐놓고 같은 내용의 기사를 읽고 있으면, 그 어떤 소설보다도 재밌었던 시절들. 이젠 그런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단순히 흥미위주의 기사들, TV 쇼프로그램을 캡춰하고 내용이나 알려주던 기사들, 낚시 기사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TV쇼프로그램을 캡춰해서 내용을 간단히 알려주는 기사는, 예전에 'TV편성표'에 잠깐씩 나왔던 방송 소개보다 더 질이 나쁘다. 이런 기사들은, 어찌보면 종로 길바닥에 떨어져있는 성인 광고 전단지보다도 더 선정적이고, 더 재미가 없다.

그래서 최근에는, 기사를 골라 읽기 시작한다. 그러고보니 내가 종이 신문을 읽어본게 언제였더라?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집밖으로 나가 '한겨례' 신문과 '조선일보'를 사서 어디 카페에 앉아 비교하며 읽어봐야겠다. 읽다가 분통이 터진들, 낚시기사 보다 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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