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을 할 때 가장 무서운 것은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이 내 성격이 어떻다고 뒷담화까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인간이 무능한 인간인가 유능한 인간인가를 판단하는 그들의 잣대가 무서운 것이다.
함께 일하는 학생들이 "조교 선생님. 이것이 이상합니다." "조교 선생님. 이게 잘못된 것 같은데 왜 이럴까요." 라고 물어볼때 나는 겁을 먹는다. 왜냐하면 나는 그 학생들에게 왜 그런 문제가 생겼으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명쾌하게 알려줘야 하는데 학생들이 말하는 그 '문제' 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보기전까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학생들에게 문제의 해결책을 알려주고 고치라고 말한다. 그들은 나를 믿고 내 말대로 한다. 그래. 저 새끼는 조교야.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겠지.
나는 어린 학생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하며 아무런 문제없이 일처리를 해야한다.
나는 윗사람이나 교수를 실망시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일을 한다. 내가 욕을 내뱉건, 종이컵을 구겨던져버리던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내 '성격'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그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일들을 얼마나 '만족'스럽게 해내느냐 이다. 내가 그 일을 만족스럽게 해내면 그들은 내 성격이 좆같건 천사같건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일을 만족스럽지 못하게 하거나 아예 못하면 그들은 내 성격이나 나라는 인간의 존재탓을 해댄다.

나는 그들에게 무능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
어린 학생들에게도, 내 윗사람들이나 교수들에게도. 나는 건방지고, 차갑고, 도도하며, 쌀쌀맞고 가끔 웃긴 농담 한 번쯤은 할 줄 아는,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을 잘하고 그 일에 관하여서라면 어떤 것이든 척척해내는 그런 인간으로 보이기를 원한다.

내 페이스를 유지한다는 것은 힘이 든다.
그 보다 더 힘이 드는 것은 이런 알량한 자존심과 마치 적진 한 복판에 홀로 내팽겨쳐진,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면서 점점 무너져 가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다.
나는 세속적인 인간이 되어가고 교활해져가며 날카로워지고 있다. 그것이 누구의 탓이란 말인가? 내가 누구를 탓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누군가를 탓한다 한들 상황이 얼마나 좋아질 수 있단 말인가? 살아남기 위해서 교활해지고 세속적이 되어지고 날카로와 진다 한들 또한 누가 나를 탓할수 있을까?
밀려드는 파도에 무너지는 백사장의 모래탑처럼, 나는 점점 무너지고 있다. 나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철저히 무너진 내 자신을 보이고 싶지 않다.

피곤함과 굶주림과 스트레스는 나 자신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는 것에 비하면 고통도 아니다.
서른 셋. 나는 지우개로 지금까지의 내 자신을 박박 지워버린다. 남는 것은 과거의 내 모습이 뭉뚱그려진 자잘한 찌꺼기들.
노트위의 지우개 가루 처럼 입으로 훅 불면 언젠가는 날아가 버릴 내 자신의 찌꺼기들.

가끔 그 찌꺼기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1. Favicon of http://sueslove.net BlogIcon sue 2007.05.11 01:10 신고

    나도 그 찌꺼기들이 그리워, 특히 요즘엔 더욱..

    지금까지는 지워질 수 있는 '연필'로 써왔다면,
    지금부터는 지워지지 않는 '네임펜'으로 써지는게 아닐까.
    그래서 더 힘든것 같아.
    그리워할 찌꺼기마저도 생기질 않을테니까..

    오늘 자기글에 나또한 많은 공감을 하게되었어.
    이기겠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이기게되어있어.
    자기는 반드시 자기가 원하는 '프로'가 되어 있을거야.
    화이팅.

    • Favicon of http://juliantime.net BlogIcon julian 2007.05.11 10:10 신고

      응원해 줘서 고마워 자기야....^^; 나이를 먹어가면서 책임감도 늘어나지만...많은 고심을 하게 되고 생각을 하게 되는거 같아. 특히 일적으로...아무튼 고마워 아가~

우리 일 좀 제대로 하자고.
사람 일을 두번하게 만드네. 정말...
효율적으로 미리미리 잘 설명했으면 이런 일은 없잖아.
아...스트레스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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