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0여년 전에 처음 소설을 쓴 이후, 내 인생에 완결을 지은 중,단편 소설은 각각 한 편 씩 있었다. KETEL 시절에 썼던 '킬링 타임(Killing Time)' 은 내 인생의 첫 중편 소설이었다. 대략 20여편 분량으로 썼던...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기 그지 없는 소설이었던 이 킬링 타임은 언젠가는 내용을 수정하고 다시 써보고 싶은 소설이기도 하다.
그 이외에는 출간했던 장편소설 한 편을 빼고는 모두 단편 소설을 썼다.

단편소설이란 쓰는 사람에게는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장편소설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RPG 게임 같다면 단편소설이란 단판에 승부가 나는 그런 게임이랄까.

나는 보통 단편소설을 쓰는 시간이 4시간 에서 6시간 사이다. 초창기에는 그 안에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그 소설은 포기해야했다. 이것은 호흡과도 관련이 있는데 그 템포를 놓치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쓰거나 아예 포기를 해야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조금 더 글 쓰는 것이 숙련되었을 때 나는 3일동안 천천히 작업해본 적도 있다. '블라인드' 라는 소설인데 구상하는데 이틀, 직접 쓰는데 하루 정도 걸렸다. 이 단편소설은 러시아 국립영화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셨던 분께서 내게 소스를 제공해주셨고 나는 그 소설을 단편으로 만들어냈다. 이 소설은 내가 쓴 소설중에 가장 공을 들인 소설이기도 하다.
이 러시아 국립영화대학을 나오신 분이 나와 인연이 된 이유는 그 분께서 내 단편소설 '생각의 장난'을 단편영화로 만들고 싶어하셨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프로젝트였지만 나는 잠시동안 흥분했었다. 하긴, 생각의 장난은 내 단편중에 비주얼로 옮기기 무난한 소재였다. 이 소설은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씌여졌고 나 역시 즐기면서 쓴 몇 안되는 소설이었다.

'시간의 종말' 'Invisible Touch' 이 두 작품은 창작과비평 신인문학상 공모 때 출품했던 소설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편 모두 본선에 올라갔었는데 '시간의 종말'은 출품하기 위해 새로 쓴 소설이었고 '인비지블 터치'는 아주 옛날 재미삼아 써 본 글이었다.  인비지블 터치는 제네시스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두 편 모두 완성하는데 들인 시간은 고작 3시간 정도였다.

내가 썼던 소설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이 세 편 있는데 '포스터 속의 여인, 그녀와 칵테일을 마시다' 와 'Lonely Avenue', 'P.M. 9:00, 8번 승강장' 등이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나 다운 소설이 아닐까 싶다. 특히 '포스터...' 와 '론리 애비뉴' 와 같은 소설을 좋아하는데 현실과 몽상의 경계선에 선 주인공들을 쓰는 것이 기분 좋다. 그들은 현실과 그 이면의 자신들은 잘 모르는 또 다른 세계에서 방황을 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팬터지 같지만.
나는 팬터지 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지금은 쓰고 싶지 않다. 쓸려면 제대로 써야지. 게다가 지금은 다른 쓰고 싶은 것도 많이 있다. 아주 아주 한가할때 팬터지 소설을 써 보고 싶다.

나에게 있어 소설이란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환상에 대한 대리 만족이다. 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내 소설속에서 대리 만족을 느낄 것이다. 아마도.

최근들어 글쓰기에 관련해서 슬럼프에 빠졌었던 나는 최근에서야 겨우 그 슬럼프에서 다소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정말이지 글이 머릿속에서 맴도는데 그걸 옮겨적지 못할때의 기분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들정도로 비참하다.

어쨌든 나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프로젝트를 재개 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인간들의 여러가지 감정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 시리즈 'Emotions'를 준비중이다. 첫 편만을 쓰고 잠시 묻어두었는데 우선 두 어편의 단편으로 잠시 그 동안의 공백을 메우고 'Emotions' 에만 한 동안 전념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옴니버스 소설에 관심이 많아서 이번에 준비하는 공모전에 낼 소설 역시 옴니버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 밖에 '창비 신인문학상'에 한 번 더 도전이나 해 볼까 하는 생각에 두 어편의 단편을 더 생각중이다. 한편은 이미 대략의 구상이 끝난 상태이다.

아아. 그러보니 써야 할 소설이 너무 많다. 시간이 모자를 지경이지만 조금씩 천천히 나도 이제 움직일 때가 되었다. 어쩌면 이 포스팅의 의미는 내 자신에게 이제 그만 멈춰있고 다시 움직여봐. 라는 내 스스로의 응원인지도 모르겠다. 이 포스팅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돌이켜보고 나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었으면 싶었으니까.

그런데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기나긴 이별' 에 나오는 한 소설가는 소설가가 자신이 쓴 옛 소설을 뒤적거려 본다는 것은 곧 소설가로서의 인생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요즘 내 옛날 글들을 자주 뒤적거린다.
우울하지만, 멋지고 정확한 대사 같다.


  1. Favicon of http://sueslove.net BlogIcon sue 2007.04.12 10:31 신고

    주변의 변화들 때문에 잠시 미뤄두었던거라 생각해.^^
    미뤄두었다는 것.보다는 그 기간이 길어지지 않을지..그게 걱정되긴 했었어.
    자기 항상 준비된 사람이기 때문에 시작만 하면 그 다음은 어렵지 않겠지? ^^
    날개짓에 몰입해봐.. 쉿...^^

    • Favicon of http://juliantime.net BlogIcon julian 2007.04.15 13:38 신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내 주변 정리가 되면 그때 다시 재기해야지..
      격려 고마워 ^^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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