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C-LX7


필자처럼 차가 없는 뚜벅이에게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녀야 할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책이요, 다른 하나는 이어폰이다. 

특히 필자는 기차와 버스를 많이 타는 편인데, 이렇게 대중교통 안에 있는 시간들이 적지 않다. 집에서 음악을 듣는 것은 일반적으로 글을 쓸 때 틀어 놓기 때문에 집중해서 음악을 들을 수 없다. 그래서 필자에게 대중교통이란, 음악을 집중해서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필자가 들어봤던 가장 고가의 이어폰은 UE(Ultimate Ears)에서 나온 트리플파이였다. 트리플파이는 세 개의 발란스드 아마추어 유닛(BA유닛)을 장착하여 별다른 에이징 과정이 필요없고, 단단하며 강력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심장이었다. 필자는 음악을 비교적 크게 듣는 편이고, 장르 또한 락장르를 즐겨 듣기 때문에 장시간 음악을 들으면 호흡이 가빠진다던가, 두통이 밀려오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트리플파이의 소리는 강렬한 편이고, 착용감도 좋지 못했으므로 음악을 듣다보면 어느 샌가 신체 이곳저곳에서 고통이 밀려왔다. 

그래서 어느 순간인가 필자는 트리플파이를 정리하고, 같은 브랜드인 UE 600vi를 이용하다가 역시 소리가 피곤했던 관계로 소니의 저가형 이어폰인 XBA-10을 구입해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소니에서 나온 XBA-10은 저렴한 가격에 BA유닛 1개를 채용해 깔끔한 소리를 들려주었지만, 문제는 시원시원하지 못한 음질에 있었다. 듣고 있다보면 어딘가 모를 답답함이 밀려와서 금새 음악 듣기를 포기해야 했다. 

그러던 중에 이마트에서 소비자가 62만원 짜리 젠하이저 IE 80을 29만 9천원에 판매한다는 소식을 보았다. 젠하이저?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브랜드다. 젠하이저나 보스의 이어폰들은 기본적으로 저음이 강조되어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필자가 아이폰을 음악감상용으로 이용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플랫'한 음색(우리는 이쯤에서 '음색'과 '음질'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음색'과 '음질'은 틀리다. '음색'이라고 한다면 쉽게 말해 카메라에서 '색감'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이었다. 필자는 '플랫'한 소리가 좋다. 깔끔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저음이 강조되었다는 이야기는 (필자의 편견이지만) 음악을 듣는데 '둥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뜻이었다. 그런 종류의 소리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저음 = 둥둥거리는 소리, 라는 편견어린 공식을 지니고 있던 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마트에 가서 청음도 하지 않은 채 바로 IE 80을 구입했다. 그래도 고가의 이어폰을 반값에 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터넷의 몇 안 되는 청음기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평을 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색감'과 '음색'은 전적으로 주관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회를 한들 필자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이마트에서 이어폰을 구입하고 이마트 내의 스타벅스에서 간단하게 음악을 들어 본 결과는 의외였다. 저음? 진짜?


'저음은 둥둥거리는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필자에게 IE 80이 들려주는 소리는 생소했다. 분명 저음이 다른 이어폰들에 비해 두드러지긴하는데, 그 밀도가 틀렸던 것이다. 심지어 트리플파이 보다 플랫하게 들리는 곡도 있었다. 이건 거의 실망스러울 정도로 '저음 과다'현상을 느끼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필자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저음의 질과 밀도였던 것이다. 편견과도 같았던 벙벙거림 대신에 마치 근육질의 몸을 보는 듯한 탄탄한 저음이 들렸던 것이다. 방목(放牧)된 소리가 아닌, 울타리 안에 잘 모아 놓은 견고한 저음을 들려주는 것이다. 게다가 기존의 BA유닛에 길들어져 있던 귀는 전통적이라 할 수 있는 '다이나믹 드라이버' 진동판에서 일종의 편안함 같은 것을 느꼈다. 이거 괜찮은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음악들을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사실 이러한 진동판 이어폰이나 헤드폰은 '에이징'이라는 과정을 거치기도 하는데, 필자는 이와 같은 과정을 생략했다. '에이징'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필자가 생각하는 에이징은 '청자가 즐겨듣는 음악을 자연스럽게 듣다보면 저절로 길이 드는 것'이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1. ROCK


필자가 가장 즐겨듣는 락 장르의 음악들을 들어보았다. 일단 필자 취향이 이제 나이도 들고 해서 과격한 헤비메탈 보다는 60-80년대 사이의 올드 락 정도가 되겠다. 간혹 카르카스(Carcass)라던가, 비전 디바인(Vision Divine), 폴 아웃 보이(Fall Out Boy)같은 음악들을 즐겨듣기도 하지만, 메인은 역시 60-80년대 사이의 락음악들이다. 


그런의미에서 '키스 크로스 앤드 피터 로스(Keith Cross & Peter Ross)'의 음악들을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약관의 나이에 제 2의 에릭 클랩튼이라는 명성을 얻었던 T2의 기타리스트 키스 크로스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앨범이다. 그 이후로 키스 크로스는 음악계를 떠나버렸다. 이 미스테리한 기타리스트의 명반 'Bored Civilians' 앨범의 '더 라스트 오션 라이더(The Last Ocean Rider)'는 IE 80과 가장 훌륭한 매칭을 들려준다. 특히 곡 후반에 키스 크로스의 기타 솔로는 말 그대로 '편안함'을 제공해준다. 두 대의 일렉기타, 한 대의 어쿠스틱 기타 협연에서 각 악기들의 연주가 확실히 분리되어 들린다. 소리가 뭉치는 일은 없다는 의미다. 


'루시퍼스 프랜드(Lucifer's Friend)'의 '마이 러브(My Love)' 또한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로 악기들의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안정적인 소리를 들려주는데, 한 가지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 이와 같은 락 장르의 음악들에서는 보컬의 목소리보다는 악기 위주의 소리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V자형 이퀄라이저 형태를 보여주는 듯 싶은데, 그것과는 다소 다른 것이 보컬의 목소리가 저 멀리 외따로 격리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한 발자국 정도 뒤에 서서 악기들과 수평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소리의 성향은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의 인상적인 곡 '어 화이터 쉐이드 오브 페일(A Whiter Shade of Pale)'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보컬과 악기가 같은 선상에서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명곡이라 할 수 있는 '텔레그래프 로드(Telegraph Road)'에서도 역시 비슷한 성향이다. BA유닛이 정돈된 악기의 소리들을 들려준다면, IE 80의 다이나믹 드라이버 유닛은 날 것 그대로의 소리들을 들려주는 느낌이다. '텔레그래프 로드'의 후반에 마크 노플러의 기타 솔로가 그렇다. 마크 노플러는 피크 대신 핑거 피킹 주법으로 유명한데, IE 80은 이러한 마크 노플러의 주법을 잘 살려서 들려준다. 드럼소리는 박력이 넘친다. 이 곡을 듣는 내내 저음이 강조되어 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다. 그러니까 '둥둥'거린다거나 '벙벙'거리는 대신 밀도있는, 말 그대로의 '저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2. 여성 보컬


컨트리 밴드로 유명한 유니온 스테이션(Union Station)과 앨리슨 크라우스(Alison Krauss)의 앨범 '앨리슨 크라우스 & 유니온 스테이션'의 '페이퍼 에어플레인(Paper Airplane)'은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에 하나다. 보틀 넥 주법의 기타 연주와 음악 전반에 깔려있는 감미로운 어쿠스틱 기타 소리를 바탕으로 앨리슨 크라우스의 절제된 보컬이 미덕인 이 곡에서 IE 80이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이어폰으로 들어도 훌륭하지만 IE 80에서는 전체적으로 보컬과 악기 소리들이 꽉 차게 들리는 것이다. 마치 속이 알차게 꾸며진 샌드위치를 먹는 기분이 든다. 


'애슬린 데비슨(Aselin Debison)'의 '문라이트 쉐도우(Moonlight Shadow)' 또한 같은 느낌이다. 중간에 들리는 바이올린 솔로와 애슬린 데비슨의 보컬과는 구색이 잘 맞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여성 보컬에 있어서는 거부감이라던가 부담이 없는 음색이다. 


'그레이스 존스(Grace Jones)'의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에서는 그레이스 존스의 보컬이 상당히 맛깔나게 들리며,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그 위대한 '더 그레이트 기그 인 더 스카이(The Great Gig In The Sky)'에서는 당대 최고의 백킹 보컬리스트였다는 클레어 토리의 광기어린 보컬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듯 싶다. 


한국의 여자 보컬로는 '거미'를 좋아하는데, 빅브라더와 함께 만든 '온리 원(Only One)'의 경우 '거미'의 음색을 비교적 잘 살려주는데, BA유닛을 쓴 UE 600이라던가 소니의 XBA-10​과는 다소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 다른 느낌이란 XBA-10의 경우 '거미'의 보컬이 다소 '간지럽게'느껴지는 반면, IE 80에서 '거미'의 보컬은 그보다는 박력이 느껴졌다. 


여성보컬에 있어서 전체적인 느낌은 다소 '어두운'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OST에 수록된 '라나 델 레이'의 '영 앤 뷰티풀' 같은 곡 또한 마찬가지다. 위에서 언급했던 음악들의 성향이 대체로 그렇긴 하지만 IE 80은 어쨌든 여성 보컬이 발랄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슈퍼버스(Superbus)'의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와 같은 곡은 예외로 두자. 


3. 재즈


'리 릿나워(Lee Ritenour)'의 '리오 펑크(Rio Funk)'를 IE 80으로 꼭 들어 보길 권한다. 저음이 아닌 제대로 된 베이스 기타 음을 감상할 수 있다. 리 릿나워의 깔끔한 기타 연주 또한 일품이다. 기타줄을 튕기는 소리 하나하나를 전부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제껏 들어 본 이어폰 들 중에서는 리오 펑크를 이처럼 잘 소화하는 이어폰은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곡 중간의 베이스 기타 솔로는 곡 자체 뿐만이 아니라 IE 80의 압권이라고 볼 수 있다. 감동스러울 정도.


물론 '데이브 브루벡'의 잘 알려진 '테이크 파이브'의 출중한 피아노 연주, 그리고 섹소폰 연주를 듣고 있자면 IE 80이 사실은 재즈 전용 이어폰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샘 쿡'의 '롱 롱 어고' 같은 흑은 뮤지션의 곡에도 잘 어울리는데 IE 80은 전체적으로 재즈 음악에 최적화가 잘 되어 있는 모양새이다. 밀도있는 저음이 적당한 흥겨움을, 고음과 중음이 이러한 저음 주변을 맴돌면서 곡에 맛을 더한다. 


4. 클래식


필자가 클래식에 조예가 깊지 못해 어떻게 평가하기가 난감하다. 단순히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던가, 말러, 그리고 클래식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러브 아이디어' 같은 곡들을 빠른 시간에 들어보았고, 그로인해 어떤 결론을 도출해내긴 힘들었다. 왜냐하면 클래식은 가장 민감한 장르 중에 하나이며, 그 종류도 다양해서 쉽게 어떤 느낌이다, 라고 말하기가 모호한 것이다. 

그러나 얼핏 들어본 느낌으로는 IE 80의 저음 성향이 클래식이라는 장르에 미치는 영향이 적잖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독주, 그것도 현악기 같은 경우는 상쾌할 정도의 느낌을 주지만, 피아노 독주곡 같은 경우 이 '저음'이 너무도 '무겁다'는 느낌이 든다. 음이 뭉치는 것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무거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필자의 경우는 조금 더 들어봐야 명확히 어떨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글렌 굴드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5번의 경우, 건반을 누르는 소리가 다소 육중하게 느껴지고 무게감이 있어서 IE 80이 피아노 독주곡에서는 조금 피곤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언급했다시피 필자는 클래식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할 만큼 얕으므로, 좀 더 공부를 해 본 후에 판단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BA유닛을 이용한 소니의 XBA-10의 경우 피아노 독주곡이 가볍게 들린 반면, IE 80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진중하게 느껴져서 어느 쪽이 더 옳은지 판단할 수가 없다. 전문가 분들이 이는 판단해 주실 거라 믿는다. 


5. 결론


29만 9천원이라는, 결론적으로는 절반의 가격에 할인을 하는 바람에 구입한 이어폰이지만 그 성능이 과연 62만원이라는 가격에 적합한 소리인가는 논란 거리로 남겨두고 싶다. 개인적으로 더 들어봐야 하겠지만 솔직히 느낀 감정으로는 IE 80이라는 이어폰의 적정가는 사실 29만 9천원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필자가 62만원이라는 금액을 주고 구입했다면 약간 후회를 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BA 유닛에 익숙해진 귀라서 다이나믹 드라이버 유닛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IS 80의 가치는 그 무렵에 다시 재평가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 이어폰을 추천하겠느냐고 묻는다면 62만원을 주고 구입할 것이면 한 번 더 생각을 해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며, 29만 9천원, 혹은 그 언저리에 구입할 수 있다면 충분히 그 가격은 하고도 남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직접 청음을 해보는 것이다. 필자처럼 청음없이 구입하는 모험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물론 필자의 경우 성공적인 모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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