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은 살면서 각자의 목표치를 정한다. 십대에는 이거, 이십대에는 저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궁금해진다. 돌이켜보건대 내가 십대에 가졌던 관심사는 오로지 음악과 책, 그리고 여자였으며, 이십대에 가졌던 관심사는 '4년제 대학' 이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본 것은 20대부터였던 것 같다. 4년제 대학에 가야지만 어디가서라도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수능시험을 세 번이나 더 봐야했다.

저물어가는 삼십대, 그러니까 내 나이 서른여섯이고, 내 년이 되면 서른 일곱이 되는데, 나는 삼십대에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뭘 했더라? 정말 무의미한 시간들의 연속. 정신을 차려보니 서른여섯.

2. 그렇게 무의미하게 살다보니, 갑자기 주변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어머니, 아버지, 나를 응원해주었던 친구들, 지도교수님, 동료들. 나는 왜 지금까지 이렇게 게을렀는가 자책하게 된다. 근래들어 그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3. 변명같지만, 나도 고생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들 고생스러웠던 시절이 없었으랴.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불과 몇 년 전, 노점장사를 할 때였다. 3년 좀 넘게 했는데, 몸이 힘든 건 둘째치고,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하루에도 몇백 명의 사람들을 상대해야했던 노점장사는 정말 고달펐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4.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노점장사를 하던 당시의 내게는 '치열함'이라는 것이 있었다. 삶에 대한 강한 집착. 오기. 독기.
나만 치열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개중에 덜 치열한 편이었다. 같이 장사하는 사람들의 생에 대한 치열함은 감히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다.

5. 지금의 내게는 그 치열함이 상당수 사라졌다. 대신에 입만 살았다. 나 글쓰는데요. 나 소설써서 성공할 건데요. 비록 노점장사에서 벗어나 그 때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휴식기를 거쳤다 해도, 그 휴식기가 너무 길었다. 이쯤에서 휴식은 접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입을 다물고.

6. 그러다보니, 근래들어 치열함이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생존본능이라고나 할까. 집착이 생겼다. 절에 다니는 불자로서, 집착은 좋지 않은 것이지만 현실은 종교랑은 좀 틀리다. 때로는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에 집착해야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나'와 '가족'을 위해서다.

7. 고생하는 어머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사실, 굳이 따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은 그냥 베이스로 깔려있어야 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는 하는 것은 '나' 다.
지금까지 내 자신을 너무 방치해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자신을 너무 아껴왔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생각해보자. 나는 내 자신을 얼마나 버려두었는가. 헌신짝처럼.

8. 그래. 슬슬 오기가 발동한다. 슬슬 주변에서 나를 약올리는 인간들이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다. 노점장사 할 때하고는 또 다르다. 장사꾼들에게는 '인간미'라도 있었지. 몇 년 전의 나는 이런 도전들에 주눅들지 않았다. 본때를 보여줘야지. 내가 가진 무기는 돈도, 학벌도 아니다. 그저 내가 가진 약간의 재능. 이게 전부다. 하지만, 장담컨대 이 재능을 그냥 파묻고 싶지는 않다. 일곱살 때부터 지금까지, 끈적하게 가져온 재능이니까.

9. 그래서 결심한다. 병신같은 짓은 이제 그만두자고. 모든 것은 내가 일어선 후에 즐겨도 된다고. 지금은 오로지 '집착'과 '치열함'을 살려야한다는 것을. 아쉬울 것도 없다. 내 마음껏, 쓰고싶은대로 쓰고, 읽고싶은대로 읽으면 되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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