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TAX K-5


요즘 유행하는 단어 중에 '성애자'라는 단어가 있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당연히 변태스러운 뉘앙스이다. 그러나 이 부정적인 단어는 요즘 언론상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매니아'의 좀 더 집착스러운 버전이랄까. 어쨌든 필자는 근래들어 '입력장치(Input Device) 성애자'가 된 기분이다. 일전에 MS에서 나온 Ergonomic Mouse에 대한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다. 그 다음에는 Vortex의 기계식 키보드에 대한 포스팅을 했다. 어디 그 뿐인가. 블로그에 포스팅하지는 않았지만 와컴의 태블릿도 하나 구입한데다가, 애플의 트랙패드, 매직 마우스, 애플 무선 키보드, 레오폴드의 청축 기계식 키보드, 체리에서 나온 유선 마우스, 로지텍의 M905마우스 등 종류도 다양한 입력장치들이 주변에 널부러져 있으니 그럴법도 하다. 


사실 필자는 예전부터 '필기구'에 관심이 많았다. 만년필이나 고급 펜들도 제법 모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출석체크를 할 때를 제외하면 도통 이 펜들을 쓸 일이 드물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노트와 펜을 항상 지니고 다니지만, 급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에 메모를 하게 된다. 그리고 집이나 학교에 가면, 여전히 나는 컴퓨터로 작업을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이 그런 세상이니까. 


키보드는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지만, 마우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이다. 예전 로지텍에서 나온 VX나노 무선 마우스를 만족스럽게 사용하던 중에 커피를 쏟아 고장이 난 것이다. 다시 구입하려고 봤더니 단종이 되어버렸다. 커피를 쏟았기 때문에 AS를 받을 수도 없었다. 울며겨자먹기로 가장 비슷한 마우스를 골라 구입한 것이 로지텍 Anywhere MX(M905) 모델이었다. 그런데 로지텍의 고질적인 '더블클릭' 현상이 구입하고 2년 쯤 후에 발생했다. 버리기엔 아깝고, AS센터를 가져갔더니 (놀랍게도) 새제품으로 교환해주는 것이 아닌가. 공짜로 새제품을 얻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미 그 전에 나는 '트랙볼'이라는 입력장치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교환받은 M905마우스를 맥북에 물려주기로 하고, 맥미니에 쓸 트랙볼을 알아보았다. 켄싱턴 제품은 너무 비쌌고, 유선이라는 점이 걸렸다. 그렇게 찾아 본 것이 바로 로지텍의 M570 트랙볼이다. 


사실, 마우스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장치인가를 깨닫기까지 무척 오랜 시간이 흘렀다. 불혹의 나이가 되면서,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그래서 좀 더 고가의, 몸에 맞는 장비들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마우스는 키보드만큼이나 오래 붙잡고 있는 장치여서 근래들어 손에 편한 마우스를 찾아다녔다. MS의 Ergonomic Mouse를 구입한 이유도 손목 때문이었다. 


그러나 MS의 Ergonomic Mouse는 문제가 있다. 제품은 좋은데 맥과는 상극인 것이다. 일단 윈도우 버튼 하나가 놀게 되고, 전용 드라이버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몇 가지 기능을 쓰려면 Steermouse라는 유료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Steermouse를 구매하느니 차라리 맥을 지원하는 마우스를 하나 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트랙볼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솔직히 필자는 Apple II+ 짝퉁 시절부터 컴퓨터를 했지만, 이상하게도 트랙볼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래서 트랙볼을 한 번 써보고 싶은 마음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이 트랙볼은 언젠가는 사라질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가 비디오에 밀리듯, 터치패드 시스템에 트랙볼도 밀려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평생 트랙볼을 써 볼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ENTAX K-5


그렇게 해서 선택하게 된 것이 바로 로지텍의 M570이다. 트랙볼 계의 지존이라는 켄싱턴 제품을 고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트랙볼이 나와 얼만큼 잘 맞을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10만원이 넘는 고가의 제품을 선뜻 구매할 수는 없었다. 




<영화 Paris under watch(국내 개봉명 '해커즈')의 주인공이 사용하는 켄싱턴 트랙볼. 아마도 '슬림 블레이드'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4만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한 M570트랙볼은 결론적으로 대만족이다. 일단 필자의 시스템은 좌 트랙패드, 우 마우스 시스템이다. 일단 맥에서는 트랙패드만큼 편한 것은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교한 작업을 할 때는 마우스가 필요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애플의 매직 마우스를 쓰거나 혹은 로지텍의 M905마우스를 이용했다. 



iPhone 6 Plus


트랙패드는 맥을 제어하는데(주로 슬라이드) 종종 이용하고, 평소 웹 서핑에는 마우스를 이용한다. 그런데 이 로지텍 트랙볼의 장점은 마우스를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옆에 마우스패드를 깔 필요도 없다. 그냥 볼만 움직여주면 된다. 무엇보다도 M570의 그립감이 만족스럽다. 마우스를 움직일 필요가 없으니 당연히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을뿐더러 손으로 잡고 있는 모양도 인체공학적(마소의 어고노믹 마우스와 흡사하다)이어서 손에 부담이 없다. 그러나 어떤 유저들은 엄지손가락으로 볼을 굴리는 것이 부담스럽고 엄지손가락에 무리가 간다고 호소하고 있다. 필자는 아직 엄지손가락에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처음에 마우스를 움직이는 형식이 아니어서 좀 어색할지도 모르는데, 의식적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금새 익숙해진다. 흡사 씽크패드의 빨콩을 움직이는 기분이다. 아니, 터치패드의 아날로그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더 편할지도 모른다.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그야말로 손가락 뿐인것이다. 


외관은 싸구려 같다는 말들이 많지만, 실제로 보면 그렇게 싼티가 나지는 않는다. 볼은 빨간색이 더 이쁘다는 평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파란색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딘가 보급형스러워 보이는 외모가 살짝 불만스럽긴하다. 이것도 아마 정들면 이뻐 보이겠지. 

선이 없어서 만족스럽고 배터리는 대략 18개월 정도 간다고 한다. 실제로 그 정도의 배터리타임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해도 최소한 배터리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어보인다. 

볼의 움직임은 부드럽다기보다는 약간 '뻑뻑한' 편인데, 자꾸 움직이다보면 부드러워진다. 버튼의 클릭감은 딸깍 거린다는 느낌보다는 '틱틱' 거린다는 느낌이 더 정확한 듯 싶다. 조금 심심하다고나 할까. 

무엇보다도 이 M570 트랙볼은 맥을 공식 지원한다.




Steermouse는 바로 삭제해버렸다. 로지텍의 '맥지원 드라이버'는 파인더까지 뒤로가기가 가능하다. 필자는 이 점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일단 휠이 아주 거지같다. 휠을 돌리는 감촉이 마치 휠에 종이가 낀 듯 퍼석거린다. 휠 버튼도 쉽게 눌려지지 않고 약간 힘을 줘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휠을 이용하여 좌우로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은 어차피 트랙패드가 보완해주겠지만, 저렴한 가격은 아닌데 이런 기능이 빠져있다는 점은 아쉽다. 그러나 휠조차도 없는 트랙볼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납득할 수는 있다. 

필자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볼에 먼지가 끼어 종종 청소를 해줘야 한다는 점도 단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전 볼마우스 시절 한껏 뭉쳐 있던 때를 벗겨내던 것을 기억해보자. 그 것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줬던 분들이라면 단점이라기 보다는 아마 장점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아직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로지텍의 고질적인 '두번 클릭'현상도 염려스럽긴 하다. 그러나 이런 현상 없이 몇 년을 잘 쓰는 유저들도 있고, AS가 기본적으로 3년, 그것도 새제품 교환임을 감안하면 신경쓸 필요는 없어보인다. 


로지텍의 트랙볼을 두고 쓰레기라고 말하는 유저들이 있다. 진정한 트랙볼은 엄지가 아닌 검지나 중지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는 유저들도 있다. 어찌되었든 트랙볼의 명가라는 켄싱턴의 트랙볼은 일단 가격대가 높아 초보자들이 진입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로지텍의 M570은 나온지 제법 되었지만, 여전히 트랙볼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초보자들에게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맥을 정식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편의성도 좋은 편이다. 또한 3년의 무상 AS는 큰 메리트가 아닐 수 없다. 


로지텍의 트랙볼은 인터넷으로는 3만원 중후반대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프라인에서는 4만원에서 5만원 사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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