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댄싱퀸'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어쩔 수 없이 '음모론' 같은 것이 떠오르게 되는데, 영화가 끝나고 가장 먼저 떠 오른 생각은 '왜 하필 이때 정치를 소재로 한 영화가 등장' 했느냐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여야 하는데, 왜 나는 '정치 코미디'로 인식하고 있는가.

그것은 아마도 영화상에 등장하는 '조동일보'같은 사소한 소품들이나, 혹은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억지스러운 자아비판' 같은 장면들에서 불쾌감 비슷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영화의 제목이 '댄싱퀸'이고, 주연이 '엄정화' '황정민' 이라면 두 등장인물들의 비중은 동일해야 할 것인데, 엄정화는 데뷔 이래 가장 근사한 연기를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정민에게 뭍여 버렸다. 사실, 황정민의 연기실력이야 흥행을 하기엔 2% 부족한 구석은 있을지언정 그래도 기본은 하는 배우로서 내게 각인되어 있었는데, 이 영화를 이끌고 나가는 인물은 엄정화가 아닌 황정민이고, 그래서 영화는 정치 코미디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엄정화의 내러티브가 복잡하고, 나름대로 개연성도 있으며, 그럴법하다는 공감대를 이끄는 반면, 황정민의 그것에는 이러한 요소가 결핍되어 있다. 영화가 말해주는 것은 엄정화의 인간승리가 아닌, 황정민의 엄정화에 대한 '용서' 인데, 그렇게 보자면 이 영화는 길을 잘못들어도 한참을 잘못들었다.

관객의 시선은 황정민이 꿈을 이루는 과정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러나 중년의 나이에 아이돌그룹의 가수가 된 엄정화에게는 상대적으로 '남편의 길을 막는' 여인으로 보여졌고, 그에 앞서 황정민의 모습은 과장된, 이 시대가 원하긴 하지만 결코 등장할 수 없는 '유토피아적' 인물을 그리고 있다. 두 인물 사이의 갈등, 그러니까 각자의 꿈을 실행시키기 위한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황정민은 '피해자'로, 엄정화는 '가해자'로 묘사되는데 이래서는 제목을 '댄싱퀸'으로 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영화상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은 다양한 비리들을 저지른, 이 사회가 배척해야 할 인물들이지만 결코 그들이 벌을 받는 일은 없다. 그저 공천에서 탈락할 뿐, 그 조차도 어떤 비리가 밝혀져서 탈락하는 것이 아닌, 황정민이라는 인물의 감동적인 연설 때문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정치' 영화도 아니다. '정치 코미디' 라는 단어가 아주 잘 어울린다.

반면에 엄정화의 아이돌 가수가 되기 위한 여정은 눈물겹다. 다이어트 중에도 참을 수가 없어 남편이 끓여놓은 라면을 먹는 부분에서는 사소하지만 디테일이 강조되어 있다. 다른 멤버의 사생활 부분, 엄정화와 매니저 간의 에피소드들도 재미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2%가 아닌 20% 부족하다. 영화의 상당수를 엄정화에게 할애했어야 하는데 절반도 채 그러지 못한 것이다. 정작 재밌어야 할 부분들은 건성건성 넘어갔고, 딱히 중요하지 않은 뻔한 이야기들에 에너지를 너무 소모한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댄싱퀸을 보고 난 후 불쾌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엄정화는 남편의 길을 막는 나쁜 여자로 전락했고, 황정민은 그런 엄정화를 용서하는 '대인배 정치인'으로 묘사되었다. 이게 어디를 봐서 '로맨틱 코미디'란 말인가. 게다가 영화상의 에피소들은 아무것도 명확하게 설명되지 못했다. 분리수거해야 할 쓰레기를 그냥 검정색 봉투에 한 번에 담아 전봇대 밑에 집어 던진 격이다.
마지막 '갈등의 해결' 부분에서는 너무도 뻔한, 그냥 90년대 로맨틱 코미디를 연상하게 한다. 아니, 오히려 90년대 로맨틱 코미디가 훨씬 더 괜찮았으리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댄싱퀸'의 주연은 당연히 엄정화다. '베스트셀러'에서 정신이 파탄 난 여류소설가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면 '댄싱퀸'에서는 진정 평범한 한 가정주부의 연기를 그럴 듯 하게 해냈다. 황정민 또한 기존의 캐릭터에서 이어지는 그 특유의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아마 지금까지의 황정민 중에 가장 '황정민 다운' 연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황정민은 연기를 '잘' 하지만, '그럴 듯'하지는 못하다. '잘'하는 것과 '그럴 듯'한 것에는 차이가 있다. 이것은 수학의 모든 공식을 암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댄싱퀸'을 홀로 킬링타임용으로 봤지만, 그냥 킬링타임 이상도, 이하도 없었다. 내 인생에 스쳐지나가는 약간은 불편한 영화 중에 한 편이다. 모비딕 이후로 내심 황정민에게 기대를 걸었던 내게는 실망스러운 영화임이 분명하다. 괜찮은 소재의 영화 한 편이, 이런식으로 애매모호하게 포장이 된 것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1. 나기 2012.04.16 22:44 신고

    우와 댄싱퀸을 이렇게 분석하셨군요 난 엄정화의 연기에 만족하며 재밌는 영화네라고만 생각했는데..^^ 엄정화 연기, 정말 그럴사하게 잘 한듯~


어제 평소 카메라로 친분이 있는 교수님 한 분과 모비딕을 봤다.
내가 보자고해서 본 영화였는데, 영화가 끝나고 교수님을 볼 낯이 서지 않았다. 제목도 '모비딕'이며, 타이틀도 '음모론'을 내세워 한껏 거창하게 포장했지만 그 속은 결코 모비딕 만큼의 스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개성없는 캐릭터, 용두사미의 스토리, 기대했던 배우들의 겉도는 듯한 연기는 보는 내내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필모그래피가 몇 개 되지 않은 박인제 감독은, 그러나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했지만 너무도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은 나머지 대부부의 이야기들이 어느 외국 영화에서 봤을법한 이야기들로 얼버무리고 만다.
황정민의 연기는 자연스럽지 못하고 과장되어 보인다. 몇 년 전과 같았다면 연기 참 잘하네, 싶었겠지만 근래에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황정민의 연기는 꾸며져 있고, 억지스럽기까지 보인다. 차라리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김민희나, 불미스러운 일로 잠시 우리 기억속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난 이경영의 연기들이 더 그럴듯해 보였다. '한 연기' 한다는 진 구 조차도 이 영화에서는 빛을 보지 못한다.

특히 이 영화는 최근에 유행하는 '열린결말' 식의 엔딩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 엔딩에도 무리가 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 법한 엔딩인가 싶다. 열린 결말이라 하면 관객들에게 어느정도 정보를 제공해주고, 생각할 여지를 만들어 놓아야하는데 이 영화는 이러한 정보들이 너무 부족하고, 진행 방식도 매우 불친절하다. 너희 들이 쫓아 올 수 있으면 쫓아와봐! 식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그러면서 결말은 여러분들이 생각하십시요, 라는 식이다.

애매모호한 결말은 흥행에 도움이 된다. 일단 결말이 뭔지가 궁금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그렇게 해서 입소문이라는 것이 퍼진다. 나홍진 감독의 '황해'나 크리스 놀란의 '인셉션',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는 생각해 봄직한 결말들이 있었다. 그러나 박인제 감독은 이 영화를 너무도 거칠게 진행시킨 나머지 모든 것들이 뭉개져서 정작 보여야 할 모습이 모호하게 지워져 버린 꼴이 되었다. 나는 이런 영화들이 사실 제일 안타깝게 느껴진다.

가슴 졸이는 스릴러도, 호쾌한 액션도 아닌 킬링타임용이긴 하지만 그래도 9000원 값은 하게 만드는 영화가 모비딕이다. 어떤 영화를 보러 갔다가 그 영화가 시간이 안되면, 차선책으로 선택할 정도는 된다. 박인제 감독은 그러나 가능성이 보이는 감독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소재의 스릴러를 맛깔스럽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 박인제 감독은, 이러한 류의 스릴러 영화를, 맛집에 소개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먹을 만하게 요리했다. 황정민은, 딱 감독이 요리한 만큼만 맛을 냈다.
마지막으로 황정민에 대해서 딱 한 번만 더 이야기를 하자. 
내 기억속의 황정민은 역시 부당거래에서 봤던 황정민이다. 지적인 모습과 마초적인 모습이 가장 절묘하게 조화된 모습이 부당거래에서 등장하는 '최철기'다. 황정민은 딱 그 맛이다. 모비딕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은 많은 부분 부족해보였다. 스프가 들어가지 않은 라면을 먹고 있는 기분이랄까? 딱 그렇다. 그의 차기작 '댄싱퀸'에서는 꼭 그 맛을 보여주었으며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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