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포스팅에는 소설 1Q84의 스포일러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왜 하루키인가?

하루키의 소설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의 작품에 대한 문학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어도 기본적으로 재미만큼은 보장을 한다. 나 또한 하루키의 작품을 그동안 즐겨읽었다. '상실의 시대'[각주:1]는 30대를 전후로 한 세대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 단순히 일본소설의 범주에서 벗어나 한편으로는 전혀 일본소설 같지 않은 일본소설이었기에 다가오는 감각은 남달랐다. 하루키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상실의 시대'는 그의 정점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이후의 하루키 소설은 개인적으로 실망스러웠다. '태엽감는 새'에서 그 전조가 보였다. 그 이후에 제목도 잘 기억나지 않는 장편 몇 편과 다수의 단편소설들, 그리고 에세이집등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제2의 하루키 폭풍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해변의 카프카'였다.
창피한 일이지만 나는 이 소설의 내용을 대부분 기억할 수 없다. 나오자마자 구입해서 읽었음에도, 당시 읽었을 때는 초반부의 재미가 후반부에서 감소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이내 그 작품을 잊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는 쿨하게 1Q84를 내 놓았다. 일본 내에서 출간 열흘만에 밀리언셀러를 돌파했다고 한다. 그 여파는 한국에까지 밀려와 인세를 얼마나 주었네 하는 이야기들까지 나왔고 서점에서는 하루키의 1Q84코너를 따로 만드는 등 역시 하루키 열풍에 동참했다.

1Q84는 과연 그렇게 대단한 소설인가?

그것은 이 포스팅의 마지막에 언급을 하겠다. 그 전에는 1Q84에 대해 좀 더 알아보는 시간을 갖자.

2. 1Q84의 인물들.

1Q84에는 두 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먼저 아오마메가 있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몸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는 스포츠센터 트레이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치명적인 송곳으로 여성을 폭행하는 남성을 순식간에 죽이는 킬러이기도 하다.
아오마메의 주변에는 의미있는 몇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우선 아오마메의 친구였다가 남편의 폭력을 참다 못해 자살한 오쓰카 다마키가 있다. 증인회 신자로서 세속적인 생활에 익숙하지 않았던 아오마메에게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방법이라던가 화장하는 법, 옷 입는 법, 악세사리를 선택하는 법등을 알려주었다. 그녀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소프트 볼을 했다. 아오마메에게 유일한 친구였고 이러한 오쓰카 다마키의 죽음으로 인해 아오마메는 처음으로 킬러로서의 발을 내 딛는다.
그리고 노부인이 있다. 성폭력으로 상처입은 여자들을 돌봐주고 죽어도 마땅한 남자들을 다른 쪽으로 보내버리기 위해 아오마메를 필요로 한다. 실질적으로 아오마메와 노부인사이에는 부녀지간의 신뢰 같은 것이 존재한다. 노부인 역시 자신의 딸이 성폭력의 희생양이 된 경험이 있다. 그러니 이들 사이에는 어떤 종류의 공통점 같은 것이 존재하고 이러한 공통점이 함께 일을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구심점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마루는 노부인의 이를테면 개인 경호원 같은 인물이다. 한국사람이지만 어릴적에 일본으로 갔다. 자위대 특수부대 소속이고 게이다. 프로중의 프로지만 뒷배경은 더할나위 없이 깔끔하다. 말 수도 적고 아오마메에게 친구와도 같은 호감을 가지고 있다.
아유미는 아오마메가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술집에 갔을 때 만난 여경찰이다. 여자경찰이라고 해봐야 주차딱지 같은 것만 끊는 일을 한다. 붙임성이 좋아 아오마메와 좋은 팀을 이뤄 남자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아유미는 그리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덴고가 있다. 덴고는 1Q84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아오마메가 열 살 때, 반 아이들에게 증인회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실험시간에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비난을 받을 때 덴고가 아오마메의 편을 들어주었다. 아오마메는 어느 날, 교실에 덴고와 단 둘이 남았을 때 그의 손을 잡고 마음속으로 덴고만을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아오마메는 한 번도 남자를 깊이 사귀지 않는다.

덴고는 학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수학을 가르치는 인기학원강사이자 소설가 지망생이다. 소설을 써서 신인상에 매년 보내보지만 언제나 최종심에만 오르고 결국은 낙방을 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부터 수학의 천재였고 다른 과목에서도 우수했다. 건장한 체격 때문에 아이들은 덴고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그러나 덴고는 항상 환영을 본다. 그가 한 살 반쯤 되었을 때 자신의 옆에서 다른 남자를 품고 있는 어머니의 환상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정말 친 아버지가 맞는지에 대한 의심을 한다. 게다가 NHK수금원이었던 덴고의 아버지는 일요일만 되면 덴고를 수금하는데 데리고 다닌다. 아오마메의 어머니가 증인회 전도를 하러 다닐 때 아오마메를 언제나 데리고 다녔던 것 처럼 말이다.
고마쓰는 덴고에게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그는 유능한 잡지사 편집장이다. 고마쓰와 덴고 사이에는 어떤 종류의 신뢰감 비슷한 것이 있다. 아오마메와 다마루간의 끈끈함 같은 것은 아니다. 고마쓰는 속내를 모르는, 그러나 언제든지 빠져나갈 구멍 같은 것을 만들어 놓는 얍삽하지만 나름대로 자신을 인정주기 때문에 함부로 인연을 끊을 수 없는 인물로 나온다. 출판업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다. 고마쓰는 후카에리라는 열일곱 살 미소녀 작가의 미완의 소설을 완벽하게 수정해 달라고 덴고에게 요청한다. 후카에리에게는 난독증이 있어서 글을 잘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
후카에리는 종교단체인 선구에서 탈출한 소녀이다. 그녀의 아버지이자 선구의 리더이기도 한 후카다의 오랜 친구인 학자 에비스노의 집으로 간 후카에리는 에비스노의 친딸인 아자미와 함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리틀피플이 등장하는 '공기 번데기'를 쓰게 되면서 덴고와 인연을 맺는다.
덴고에게는 금요일마다 만나는 유부녀 걸 프렌드가 있다. 덴고보다 열 살 정도 연상이다. 열 살 연상의 유부녀 걸 프렌드는 금요일마다 덴고를 찾아와 섹스를 나누고 재즈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아오마메가 있다. 열 살의 덴고에게 손을 잡고 뭔가 강렬한 것을 남겨주었던 소녀 아오마메를 덴고는 기억한다. 일요일마다 증인회 신자로서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전도활동을 했던 아오마메에게 덴고는 일종의 동질감을 느낀다. 아오마메가 아무도 없던 교실에서 자신의 손을 잡았을 때 덴고가 느꼈던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덴고는 이후에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아오마메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덴고 또한 아오마메에 대한 기억 때문에 다른 여자들과 진지한 관계를 갖지 못한다.

아오마메 편에서 아오마메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다마루이다. 그 둘은 신뢰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후에 그 신뢰관계는 피로 연결된 관계로 발전된다. 그리고 그 둘을 이어주는 강력한 매개체가 바로 '총' '고무나무'이다. 아오마메는 선구의 리더를 암살하러 가기 전에 다마루에게 총을 하나 구해달라고 말한다. 잡히느니 자살을 하는 편이 더 좋기 때문이다. 다마루는 걱정을 하면서도 아오마메에게 총을 구해 준다. 그 대신에 아오마메는 다마루에게 자신의 '고무나무'를 맡아 키워달라고 한다. 다마루는 아오마메게 생명을 앗아가는 물건(권총)을 주고 아오마메는 다마루에게 생명(고무나무)을 준다. 아오마메는 생명을 앗아가는 일을 하고, 다마루는 (어떻게 보면)생명을 지키는 일을 한다. 다마루는 아오마메에게 권총을 주지만 그녀의 생명을 지켜주려고 노력을 한다.[각주:2] 한국독자들에 대한 배려인지 다마루는 이 소설에서 꽤 멋지게 묘사되어 있다. 과묵하고, 자신의 일에 프로이며, 인정도 있다. 아오마메는 그러한 다마루를 깊이 신뢰하게 된다.

덴고의 편에서는 중요 인물이 전반부와 후반부에 따라 변화된다. 전반부에는 고마쓰가 덴고에게는 중요인물이다. 고마쓰는 일련의 복잡한 사건들로 덴고를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덴고는 고마쓰를 깊이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의 능력만은 인정하게 된다. 사실상 덴고에게는 열 살 연상의 유부녀 걸 프렌드와 함께 몇 안 되는 인간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에 고마쓰는 어딘가로 사라진다. 그리고 덴고의 옆에는 후카에리가 있다. 후카에리도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데 이 이야기는 이후에 하도록 하자.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쿨 한 인물들이다. 특히 주인공들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을 구상할 때 특별히 주인공에 대해서는 힘들이지 않아도 될 정도 인 듯 싶을정도로 비슷한 인물들이다.
하루키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금전적인 문제에 시달리지 않는다. 항상 예금 같은 것을 착실히 해둔다. 어느 정도는 혼자서 먹고 살 정도의 재력이 있다. 어디선가 주기적으로 (많지는 않지만)돈이 들어온다. 비록 돈이 없더라도 없으면 없는대로 어떻게 되겠지 라는 낙천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요리를 즐긴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밖에 나가 요리할 것들을 사가지고 와서 집에 들어와 손수 요리를 하고 그렇게 요리를 하는 행위를 즐긴다. 요리를 하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기본적으로 음악과 문학과 영화에 어느정도 조예를 가지고 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매니아 정도는 되는 것이다. 매니아 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 사람들보다는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맥주를 마시고, 위스키를 마시고 와인을 마신다. 언제나 여자(혹은 남자)가 주변에 몇 명씩은 있고 섹스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해 보이는 삶을 사는 것이다.
1Q84 도 이러한 평소의 하루키적인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대부분의 경우, 주인공들은 아마도 하루키 자신을 묘사한 것일지도 모른다. 느긋한 사고관과 경제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았던 하루키의 삶이 그의 소설에도 그대로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연들 이면에는 왠지 모를 조연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언제나 수수께끼 같은 말들을 남기고 때로는 말없이 사라졌다가 때로는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그들은 주인공에게(혹은 독자들에게) 질문을 남기고 답은 주지 않는다. 답을 찾아내는 것은 주인공(혹은 독자들)이다.

이러한 하루키식 인물들은 하루키를 인기작가로 발돋음 시킨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하루키를 몰락시킬 수도 있다. 주인공들의 생활패턴은 대부분의 소설에서 비슷하다. 성격도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의례 아, 하루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이런 사람들이었지, 라는 생각이 독자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거기에는 어떠한 변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어느정도 먹고 살만한 재력에, 요리를 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사건에 휘말려 들고, 그걸 대부분은 운명으로 받아드리고는 맥주나 와인 같은 것을 마시면서 그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읽기 편리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1Q84에서의 주인공들은 후반부에서 약간 다른 행동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루키식 쿨함이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예컨대 아오마메가 마지막 장에서 멋지게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자신의 입속에 권총을 쑤셔넣고 자살을 하려고 하는 장면[각주:3]이나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소설을 고쳐쓰는 역할을 맡는 덴고의 경우가 그렇다. 이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건조했던 그들의 움직임에 약간의 조미료가 첨가된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하루키의 인물들은 너무도 뻔한 설정들이다. 주인공은 사는데 별 지장없는 평범하지만 쿨한 인물들이고 조연들은 어딘가 모르게 신비로운 구석이 있는 인물들이다.

3. 1Q84속의 문제의식

1Q84에서는 적지않은 사회적 문제들이 나온다.
아오마메 편에서는 처음에 성폭력을 주제로 삼고 있다. 성폭력의 희생자들에 대한 복수를 해주는 아오마메를 통해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타낸 것이다.
덴고의 경우에는 이른바 '만들어진 스타'를 이야기하고 있다. 17살 후카에리의 소설을 덴고가 수정함으로써 '공기 번데기'를 한 순간에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버린다.
중요한 것은 덴고나 아오마메는 자신들의 일이 결코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옳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고 그 누군가가 바로 자신이라는 일종의 자기 합리화와도 같다.
아무튼, 이들은 이런식으로 사회적 문제랄 수 있는 사건들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그러다가 그 둘의 사회문제는 결국 신흥종교조직으로 모아지게 되는데 이러한 사회적 문제는 마지막에 들어서 아오마메와 덴고의 애틋한 로맨스의 시작을 알리며 흐지부지 되어 버린다. 아오마메가 신흥종교 집단인 선구의 리더를 암살함으로써 신흥종교에 대한 문제의식도 함께 사라져버린다. 그 이후부터 독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아오마메와 덴고가 만날 수 있는가이다. 혹은 두 권의 소설에서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몇몇 등장인물들의 신상 같은 것이다. 리더를 암살함으로써 리틀 피플도 얼마간 조용하게 되고, 아직 후계자를 찾지 못한 선구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을 건드려보기는 하지만 깊이 찔러보지는 않는다. 그냥 이 사회에는 이런 문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런 문제들이 계속 되지는 않을겁니다. 식의 공익광고 같다.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에서 이러한 문제의식들의 일부분을 양념처럼 뿌려넣고는 있지만 거기에는 어떤 설득력도 없다.
아오마메와 꽤 가까워진 아유미는 어느 러브호텔에서 수갑을 찬 채 목이 졸려 죽임을 당하게 된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성폭력에 대한 통렬한 뭔가를 감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리틀 피플에 의한 죽임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김이 빠져버리게 된다.
하루키의 소설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문제를 던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끝인것이다. 나머지는 여러분들이 알아서...와 같은 식이다.

4. 1Q84가 말하고자 하는 것

1Q84에서 하루키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치유일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상처를 안고 살며 그러한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노력한다. 덴고의 경우는 NHK수금원이었던 아버지와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에게서 그러한 상처를 받았고 아오마메는 증인회 신자였던 부모님에게서 그와 같은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그 둘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그러한 상처를 반찬고 붙이듯이 일시적으로 응급처치를 해보지만 그들의 상처는 감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결코 치유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중요한 인물들에게서 간접적으로 마음의 상처에 대한 응급처치를 받게 되는데 아오마메의 경우는 다마루가 그런 역할을 해주고 덴고에게는 후카에리가 그런 역할을 해주게 된다.

그러나 만약 하루키가 말하고 싶은 것이 치유의 문제라면 과연 그들은 왜 끝까지 치유가 되지 않는 것일까?
덴고는 마지막에 혼수상태에 빠진 자신의 아버지와 화해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 어느정도 그의 마음이 풀어지기는 하였지만 완벽한 치유는 없다. 덴고는, 아마도 아오마메를 찾을 수 있다면 자신이 완벽하게 치유 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2권까지에서 덴고와 아오마메가 만나는 일은 결코 없다.
아오마메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그녀는 덴고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러기 위해 선구의 리더를 치유한다. 리더를 죽이는 일이 리더가 바라는 일이며 곳 그것이 치유인 것이다. 그러니까 아오마메에게는 결국 죽음이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자신의 아픔을 치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셈이다.

5. 1Q84의 배경은 정말로 1984년인가?

실제로 이 소설에서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20세기의 제품들이 많이 나온다. 예컨대 후지쯔의 워드프로세서 기계라던가 TDK 카세트 테입이라던가, 자동차의 모델들, 옷차림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런데 가만히 읽고 있으면 우리는 이 세계가 20세기인지 21세기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 언급한 아이템들을 제외하면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와 별반 다른 모습이 아닌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서 MP3플레이어와 컴퓨터와 기타 몇 가지 가전제품들을 써놓지 않는다면 하루키가 묘사한 1984년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지금도 알마니가 있고 미소니가 있으며 페라가모, 켈빈 클라인이 있는 것이다. 지금도 와인은 인기있는 음료이다.

물론, 일본인들은 피부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하루키가 자신이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 싶다면, 일본인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서양을 아우르는 것이 필요하다. 그걸 일본인들만 느껴서는 안되는 것이다. 외국어의 남발, 주인공들의 생활패턴들은 어디를 봐도 1984년 같지는 않다. 그저 21세기의 쿨한 일본인의 모습일 뿐이다. 역사적 사실들이나 1980년대의 사건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1Q84의 무대가 1984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6. 그 밖에 1Q84에서 모호한 몇 가지 부분들

현재 3권을 집필중이라는 하루키의 1Q84에서는 많은 부분을 이른바 '열린 결말' 식으로 놓아두었다. 애초에 하루키는 이 소설을 3부작으로 구상했을수도 있다. 그 근거는 이 소설에서 아직 1984년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우리가 가장 궁금해하는 아오마메는 방아쇠를 당겨서 자살을 했을까?
내 생각에 그녀는 자살을 하지 않았다. 그 근거는 덴고의 마지막 장에 나타난다.
소녀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한없이 깊고 자연스러운 잠 같다. 호흡도 아주 미약할 뿐이다. 그녀의 심장은 남의 귀에 들리지 않을 만큼 아련한 고동밖에 울리지 않았다. 그 눈꺼풀을 들어올릴만한 힘은 그녀 안에는 없었다. 아직 그때가 오지 않은 것이다. 그녀의 의식은 이곳이 아닌 어딘가 먼 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덴고가 입에 올린 말은 그녀의 고막을 희미하게 떨리게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이름이었다.
아오마메는 그 부름을 먼 곳에서 듣는다. 덴고, 하고 그녀는 생각한다. 분명하게 그렇게 또렷이 소리내어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이 공기 번데기 안에 있는 소녀의 입술을 움직이게 하는 일은 없다. 그리고 덴고의 귀에 와 닿는 일도 없다.[각주:4]
아오마메의 마직막 장에서 아오마메는 덴고의 이름을 부르고 방아쇠에 힘을 준다. 하지만 그러한 아오마메의 주변에는 두 가지 변수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벤츠 쿠페를 타고 아오마메를 지켜보고 있는 여인과 공기번데기 안의 아오마메이다. 게다가 후카에리는 아오마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며[각주:5] 아오마메가 덴고를 찾는다고 말한다.[각주:6] 그러니 아마도 3권에서는 아오마메와 덴고가 서로 만나기위한 일련의 일들을 풀어놓지 않을까 싶다.

다음으로 모호한 것은 소설 마지막 부분에 덴고와 함께있는 후카에리가 머더이냐 도터이냐의 문제이다. 내 생각에 그녀는 도터이고 그러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중략) "내가 퍼시버고 당신은 리시버."[각주:7]
아오마메가 선구의 리더를 죽이기 전에 리더가 아오마메에게 퍼시버와 리시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각주:8] 또한 마지막에 덴고와 함께있는 후카에리는 임신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에 도터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고 3권에서 명확히 해결 될 것이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어쩌면 선구의 후계자는 덴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 리시버로서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선구의 리더가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렇다면 3권에서는 아마도 선구에서 덴고를 리더의 후계자로 삼기 위한 공작(?)을 펼칠지도 모르고 그 안에서 아오마메의 목숨을 걸고 협상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쨌든 하루키의 주인공은 스스로는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모르는 대단한 뭔가가 있어서 언제나 주변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7. 마치며.

1Q84는 그저 과거의 하루키소설과 별 다를바 없어보인다. 아오마메의 장은 일견 레이먼드 챈들러 풍의 느와르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그래서 아오마메의 장에는 일종의 비정함 같은 것이 서려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을 제대로 표현해 놓은 것에는 정말 감탄할 만 하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하루키의 소설은 언제나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한다. 그러한 재미위에 느와르 풍의 짙은 어두움과 하루키 특유의 주인공들과 모호함, 환상이 어울려 괜찮은 형식의 소설로 빚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뿐이다.

이 소설이 명품이긴 하지만 최고의 명품은 아닌 것이다.
이 소설을 세계적인 문학사 어딘가에 집어 넣을 굉장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느냐면 그 정도 수준 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굳이 하루키 소설을 그렇게 까지 넓은 범주에 넣어두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 재밌으면 되지 않느냐. 고 말하신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하루키는 우리도 알다시피 일본이라는 국가 하나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에게는 이미 '세계적인' 이라는 수식어가 예전부터 붙어있었다. 만약에 하루키의 소설이 노벨상 후보에 오른다면 그것은 해변의 카프카나 1Q84가 아니라 상실의 시대, 혹은 그 이전의 소설들이어야 한다.
1Q84는 분명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설이다. 나는 이 소설을 거의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사람을 흥분속에 몰아넣을 수 있는 소설을 만나기란 극히 드문일이고, 1Q84는 극히 드문 소설인 것이다.
그러나 재미 이외에 뭔가를 찾으려 한다면 차라리 예전의 하루키 소설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1Q84는 솔직히 말해서 돈값은 한다. 그러나 왠지 아쉬운 부분도 있다. 현재의 하루키는 발전도 아닌, 그렇다고 역행하지도 않는 정체된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아쉽게도, 하루키의 최근작들을 보면 바람의 노래가 들어라가 자꾸 생각날 뿐이다. 그때의 하루키는, 정말이지 얼마나 굉장했던가.

덧)1Q84에는 작가의 인삿말도, 머릿말도 후기 같은 것도 없다. 이러한 것들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3편이 나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1. 원제는 비틀즈의 곡에서 따온 '노르웨이의 숲'이지만 이 포스팅에서는 편의상 '상실의 시대'로 지칭하기로 한다. [본문으로]
  2. 무라카미 하루키, 1Q84, Book 2, 문학동네, 440쪽. [본문으로]
  3. 위의 책, 564쪽. [본문으로]
  4. 위의 책, 594쪽. [본문으로]
  5. 위의 책, 543쪽. [본문으로]
  6. 위의 책, 544쪽. [본문으로]
  7. 위의 책, 541쪽. [본문으로]
  8. 위의 책, 327쪽. [본문으로]
  1. Favicon of http://www.hyongo.com/ BlogIcon 포도봉봉 2009.12.11 08:47 신고

    아악 ㅠㅠ 줄리안님 막 읽고 싶은데 읽으면 안될거 같고 ㅠㅠ 아 미칠거 같아요.
    첨에는 1Q84 별 기대 없었는데 점점 리뷰보면서 아 이거는 꼭 봐야겠다라고 생각해서 꼭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려놓은 상태거든요 ㅠㅠ 줄리안님 글 읽다가 아 이거 더 읽으면 안되겠다 하지만 읽고 싶다 ㅠㅠ 아 죽갔어요.

    • Favicon of http://heejune.net BlogIcon Heejune 2009.12.11 12:48 신고

      읽어보셔요. 어느 날 하루 날 잡아서 보시면 몰두하시면 하루에도 보실 수 있을겁니다. ^^ 틈틈히 읽어보시는 것도 좋구요 ^^

  2. Favicon of http://mocacopy.com BlogIcon 모카 2009.12.11 10:46 신고

    pro9 사용기 때문에 우연히 블로그에 들렀는데,
    좋은 글들 많이 읽고 갑니다. ^^
    저는 네이버에 기거하지만.. 이웃 추가해서 자주 올게요~ ㅎㅎ

  3. 똥개 2010.01.20 13:46 신고

    와.. 대단하시네요.
    정말 1Q84를 잘 분석하신 것 같아요!!
    1Q84를 다 읽고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이곳에 이르렀는데, 오게 되어
    정말 영광이네요^^
    좋은 분석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4. 잘 읽었습니다. 2010.03.25 14:30 신고

    글쎄 다른건 잘 모르겠고 마지막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부분은 깊이 동감하네요. 저도 하루키 소설은 하드보일드와 원더랜드 부터 상실의 시대, 어둠의 저편 최근의 1q84등 거의 다 읽어보았지만 저도 역시 베스트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라고 생각합니다.

엊그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뉴스에서 요시모토 바나나가 나왔다. 한국에 자신의 소설을 출간한 기념으로 방한을 했다는 것이다. 하루키가 방한 한 것도 아니고, 요시모토 바나나가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인기가 있던 존재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뉴스에 나올 정도로 말이다.

모 대형서점 가판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한국 소설이 재미 없다구요? 읽어보세요'

국내 대형서점 조차도, 우리나라 소설이 재미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띄워주지는 못할망정 아예 처음부터 '재미없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한다. 평소에는 아무생각도 하지 않던 사람들 조차 '한국 소설이 그렇게 재미가 없었던가?' 라고 생각하게 될 법한 문구다.

사실, 국내 소설이 이렇게 천대받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대형서점을 탓할 것만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작 일본작가는 뉴스에서도 띄어주면서 우리나라 작가는 겨우 라디오방송에서나 만나볼 수 있다. 최근들어 '무릎팍 도사'에서도 작가들이 왕왕보이긴 하는데 그들은 이른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그런 대단한 작가들인 것이다.

한때 신경숙의 소설이 백만부가 팔렸다고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신경숙. 요즘 유행하는 광고로 따지면 이런 것이다.

'삼성이니까. 확실하니까.'

그렇다. 신경숙이니까. 확실하니까. 대한민국 문학판은 확실한 작가들은 확실하게 밀어준다. 이름만 대면 기본은 팔아재끼는 작가들. 그렇다고 이 작가들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이 작가들은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구축했다. 실제로 대한민국 문학계의 주축돌이라 할 수도 있다. 흔히들 대한민국 국민은 먹고 살기 바빠서 책 안읽는다고들 하는데 그런 나라에서 백만부를 팔았으니 확실히 존경할만 하다.

반면에 어느 잡지 기사에서 모 평론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 평론가가 말하기를 김연수도 책팔아서 먹고 살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연수. 나름대로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박민규도 만만찮다. 이 두 작가는 사실 대한민국 문학계의 현재이자 미래이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위에서는 돌덩이들이 굴러 떨어져 그들의 손을 찍어대고 있다. 그렇게 힘겹게 기어올라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문학판의 주류에 올라서더라도 백만부를 팔지는 못한다. 신경숙은 팔았는데. 황석영은 무릎팍 도사에도 나왔는데.

대한민국은 대대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라다. 확실한 것은 제대로 밀지만 불확실한 것은 철저히 배제해 버리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심스럽고 안전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안전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신경숙 다음에는? 황석영 다음에는? 차세대 신경숙이나 차세대 황석영을 키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현재 안전한 길로 가는 것이다. 표지판을 따라, 지도를 보고 가장 최적의 길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을 켠 채 언제나 영원할 것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삼성이나 LG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차세대 삼성, 차세대 LG를 키워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이후까지 몇 수 앞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문학판이 정체되어 있다는 가장 큰 예는 바로 장르문학의 부재이다.
나는 도대체 국내에서 제대로된 스릴러 소설, SF소설, 팬터지 소설을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은 일단 서가 저 안쪽에 찌그러져 있다. SF소설은 단편집에나 몇 번 실릴 뿐이다. 팬터지 소설은 대본소 만화 찍어내듯 기본이 열 권이고 그나마도 어디서 많이 봐왔던 설정이다.
내가 책을 출판하면서 몇 가지 알아낸 것이 있는데 서점마다 책을 위치하는데 돈이 든다는 것이다. 가판대에 책을 얹어놓으려면 책꽂이에 꼽아두는 것 보다 돈을 더 지불해야한다.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이것도 서점을 탓할바는 아니다. 문제는 가장 사람들이 많이 발길을 멈추는 가판대에 우리나라 작가의 소설들이, 그것도 장르소설이 몇 권이나 진열되어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이영도의 소설들이 눈에 띄었지만 최근에는 그 조차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순수문학을 진열해 놓은 가판대에는 '한국 소설 재미 없죠?' 따위의 말이나 적혀있다. 일본소설 코너가 한 복판에 따로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예 코너를 따로 빼놓는다. 스릴러 소설 코너에는 서양의 소설들이 즐비하다. 대부분 다빈치 코드 유사품들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발을 붙일 틈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경숙의 백만부 돌파는 한편으로는 의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외국 작가들을 재낀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더 많은 작가들, 더 젊은 작가들의 책들이 50만부, 백만부를 팔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루키 코너를 따로 빼내는 대신, 김훈이나 신경숙 같은 잘 팔리는 작가들의 코너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국내 장르소설 코너가 따로 있어야 하고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더 많이 광고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현실은 그야말로 시궁창이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전한 것, 확실한 것. 나이먹은 사람들과 말싸움을 해 본 적이 있으신가? 나는 있다. 몇 년 전에 노점장사를 할 때였다. 오리지날 노스페이스 점퍼를 '메이드 인 차이나' 라는 이유만으로 가짜라고 우기신다. 아니라고 합리적으로 설명을 드렸다. 어르신들은 이렇게 합리적으로 대들면 마지막에 꼭 결정타를 날리신다.

나이도 어린 것이...

나이도 어린 것이 어르신에게 대들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제대로 된 이유라도 말이다. 어르신들의 생각을 바꾸려고(혹은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면 싸가지 없는 어린 것이 되는 세상이다.
이것은 버르장머리 없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주변에 어르신 붙잡고 우리 모두 핸드폰은 어디것을 사시겠느냐고 물어보시라. 대답은 한결 같으실 것이다.

삼성이니까. 확실하니까.

노키아나, 모토로라나 애플의 제품들을 권해보시라. 그 분들은 겁부터 먹으신다. 확실하지 않은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노키아, 모토로라, 애플의 간판을 본 적이 없으신 것이다. 그 분들을 비난 할 수 없다. 세상이 그러니까.

다시 문학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나조차도 우리나라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창피하지만 사실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핑계거리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욕심이 있다. 내가 미처 찾아내지 못했던 단어, 내가 미처 구사하지 못했던 문장을 다른 작가들이 쓴 것을 보면 질투가 나는 것이다. 내가 힘들게 고생하며 겨우 써낸 문장을 다른 작가들이 이미 써놨다면.

저 새끼 표절한거 아냐?

이런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반대로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문장이 있는데 그걸 차마 표현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작가가 써놓은 것을 보면 솔직한 심정으로 그 문장을 훔치고 싶다.
그럼 또 이런 소리가 들리겠지.

저 새끼 소설 누구누구랑 비슷한데?

나는 그래서 우리나라 작가들, 특히 동시대 작가들의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비겁한 변명이라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다. 글쓰는 분들이라면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질투심이다. 저건 내 문장인데. 마치 내 여자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 년간은 우리나라 작가들의 소설을 꽤 많이 읽은 것 같다. 문예지에 단편소설들이 실려있으면 꼼꼼히 챙겨보는 편이다. 그들의 장점을 겸허하게 수용하되 자존심은 잃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단점을 집요하게 찾아내서 내 장점으로 만들기도 한다. 치사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공부니까.
아무튼, 최근 작가들의 글을 보자면 사실 좀 심심하기도 하다. 박민규의 소설은 흥미진진하고 김연수의 소설은 감각적이지만 다른 작가들의 소설들은 한마디로 지루한 것이다. 문장도 멋지고 구성도 훌륭한데 결론적으로 재미는 없다. 그러니 대형서점에서 한국문학 재미 없죠? 따위의 말을 할 법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재미없는 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대한민국의 문학계가 요구하고 있는 것을 쓸 뿐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대한민국에서 변화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다.

다른 나라로 꺼지세요, 영어로 쓰시던가, 일본어로 쓰시던가.
라고 말씀을 하신다면 역시 할 말이 없다. 나는 찌그러질 뿐이다. 내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겨우 소설 한 편 내고 그것도 얼마 안가 사장되었는데.

반면에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우리나라의 애정은 대단하다.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하겠지만 1Q84는 재미는 있으나 그렇게 열광적인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겨우 1권의 절반을 읽었을 뿐이지만, 기존의 하루키 소설의 진행상황을 보면 뻔하다. 사실 하루키의 소설은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이전의 소설들이 백미였다. 노르웨이의 숲이 절정에 이르렀다면 그 이후부터의 하루키는 이전의 하루키가 아닌 것이다. 요즘에 여기저기서 즐겨쓰는 용어로 말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 시즌 2 정도랄까? 그러다가 해변의 카프카에서 비로소 무라카미 하루키 시즌 3가 시작되는데 대부분 아시다시피 시즌 1을 능가하는 것은 없는 법이다. 게다가 이 대단한 소설이 읽다보면 왜 이리도 오타가 많은지.

어쨌든 하루키 소설은 변화가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대단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하루키니까. 확실하니까.

확실히 본전은 뽑는 작가니까.

이 포스팅의 요지는 이제 우리나라 문학판도 좀 변화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을 보다 더 띄워줘야 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대한민국 국민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책을 읽지 않는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신경숙이 증명해보였다. 요즘에 버스나 지하철이나 기차를 보면 책을 손에 든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책 한 권의 가치가 드디어 조금씩이나마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오늘도 기차 안에서 신경숙의 소설을 읽고 있는 학생을 보았다. 바로 내 옆에 앉아있었다. 젊은 학생이 PMP로 영화나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젊은 작가들의 재미있는 소설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비록 한국 소설 재미 없으시죠? 따위의 문구가 적혀있어도 한국 작가들을 위한 별도의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출판사들은 차츰 문학상의 숫자도 늘리고 있으며 액수도 커져가고 있다.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거기에 더해 이제는 젊은 작가들을 좀 밀어주어야 할 때도 된 것이다. 일본에서 김연수의 소설이 백만부 팔렸다는 소식을 TV뉴스로 보는 날이 온다면 나는 비록 내가 쓴 소설이 아닐지언정 행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는 날이 올거라는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윗분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미국도 변화를 택했다. 흑인이 대통령을 했고 그 사실을 우리는 마구마구 찬양하지 않았던가? 우리도 변화가 필요하다.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글쟁이는 가난하다고. 나는 그 말을 부정하고 싶다. 글쟁이도 먹고 살아야 글을 쓰지 않겠는가? 비록 돈벌이는 안되어도,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울고 웃어준다면 그 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으리라.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울고 웃어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에 있다. 한국작가들이 많이 팔리면, 후배들은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어줄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얻게 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처럼 외국을 배회하면서 느긋하게 클래식이나 재즈를 연주하는 바에 앉아 와인이나 마시면서 인생을 즐기는 작가들이 우리나라에도 생긴다면, 많은 후배들이 더 용기를 가지고 도전을 할 것이다. 선배 글쟁이 부터가 글쟁이는 배고파요. 투잡해야해요. 노가다 뛰어서 한끼 식사 해결하고 대필해서 애들 학교 보냈어요. 같은 말을 한다면, 후배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기가 죽을 것이다.

변화. 사실 최근의 대한민국에 가장 요구되는 단어이다. 우리에게는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 각 분야에서 변화는 긴급하게 수혈해야 할 피다. 그런데 이 변화라는 피는 어느샌가 희귀 혈액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 문학계도 변해야 한다. 고품질의 SF와 한 여름날 오금이 저릴 정도의 서스펜스가 살아있는 스릴러 소설과 눈만 감으면 다른 세계에 있을 것 같은 환상적이고 독창적인 팬터지가 필요하다. 백만부 작가가 하나 둘이 아닌 수십명이 나와야 한다. 문학이라는 예술을 탐미하는 젊은이들이 더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 분들은, 그들의 롤모델이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변화되기만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기보다는 우리가 변화를 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변화해야 한다. 좋은 글을 쓰고 변화의 선봉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무슨 새마을운동 선전 문구같다.
결론은 이렇다.

용기를 잃지말고 죽기살기로 글을 쓰자.




  1. Favicon of http://www.gomuband.com BlogIcon gomuband 2009.12.07 20:19 신고

    오랜만에 술술 읽히는 글을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2. Favicon of http://ourvillage.tistory.com BlogIcon 촌스런블로그 2009.12.07 22:32 신고

    좋은 지적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정체된 우리 문화계에 변화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3. Favicon of http://www.hyongo.com/ BlogIcon 포도봉봉 2009.12.08 13:29 신고

    정말 공감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만 밀어주다가 그 다음은? 그 다음도 생각해야 하는 것인데..
    줄리안님 잘 보고 갑니다.

  4. 으아 2011.03.20 16:29 신고

    제대로 된 판타지 소설 내겠습니다.
    이영도라는 작가 분이 있는데 괜찮더라고요.
    수고하세요.

  5. 푸른목성 2011.03.21 05:42 신고

    화나면서도 서글퍼지네요..
    아무래도 글은 누군가 읽었을 때 의미가 있는 법인데
    그러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라는 생각이 드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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