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피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그만큼 삶은 더 지루해지고 재미가 없어졌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요즘같이 재미없는 시대가 또 있을까. 치약 이름 같다며 우리끼리 히히덕 거리던 '펜티엄 프로세서'가 등장한 이후로,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해왔고, 그에 반비례하여 시대는 점점 재미없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컴퓨터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전원 스위치를 넣고, 컴퓨터가 완전히 부팅 될 때까지 기다린 후에, 플로피 디스크를 드라이브에 삽입한 후에, 커서만 깜빡거리던 도스창에 행여 오타라도 날까봐 공을 들여 명령어를 입력하던 시절은 이제 우리에게는 없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침대에 편한하게 기대어서 랩탑의 덮개를 열면 고해상도의 배경화면이 보이고, 그 위로 예쁘장한 아이콘들이 잘 정렬되어 놓여있다. 오타를 낼까봐 조심스럽게 키보드를 타이핑 할 일도 없다. 그냥 마우스나 터치패드로 아이콘만 클릭하면 모든 것들이 해결된다. 영화도, 게임도, 음악감상도. 


PC통신에 접속할 때 나는 비프음이 안방에까지 들리지 않게 하려고 컴퓨터에 이불을 뒤집어 씌울 필요도 없다. 컴퓨터를 끄기 위해 명령어를 입력할 필요도 없으며, 새로운 장치를 컴퓨터에 장착시키기 위해 컴퓨터를 힘들게 분해하고, ISA 슬롯에 부품을 꼽아야 할 일도 없다. 이제는 메인모드에 모든 장치들이 집적되어 있고, USB에 필요한 장비들을 간편하게 연결시킬 수 있다. 아무런 불편이 없어서 오히려 내 자신이 병신처럼 느껴질 정도다. 



ISA 슬롯에 꼽아 쓰던 모뎀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더 이상 사진 한 장을 내려받기 위해 전화세를 낭비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집에 전화가 없는 집들도 있다. 아니 집에 전화기가 있으면 오히려 구닥다리가 된 기분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하기 위해 전화선에 접속할 필요도 없다. 어떤 장소에서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몇 메가 짜리 사진은 1초 남짓한 시간에 내려받을 수 있다. 참 재미없는 시대가 아닐 수 없다. 


PC통신에 접속하여 미지의 낯선 타인과 공통된 주제로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종말을 맞이했다. 대신에 우리는 SNS를 이용한다. 스마트 폰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웹은 개방되었고, 우리는 소통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순이 하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낯모르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기타 SNS 서비스들, 메시지 서비스들은 내가 원하는 사람하고만 소통을 나눌 수 있다. 오히려 더 폐쇄적으로 변해버렸다고 해야 할까. 

정말로 '졸라' 재미없는 시대인 것이다. 


과거에는 최신 기술을 접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잡지를 구입해 읽거나 용산 전자상가 같은 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잠깐만. 컴퓨터 잡지라고? 종이로 만들어진? 요즘 우리가 어디서 컴퓨터 잡지를 볼 수 있을까? 그것이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최신 정보들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용산을 돌아다녀도, 우리는 최신 부품들을 전부 구경할 수 없던 시대가 있었다. 단돈 천 원을 깎기 위해 용산 전체를 헤집고 다니는 데 하루를 소비해야 하는 시대도 다 옛말이다. 이제는 최신형 컴퓨터라던가, 부품들을 구입하는데 단 5분만 투자하면 된다. 땀을 흘리며, 혹은 추위에 떨며 용산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간단하게 검색하고,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아 결제를 하면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우리는 최신 기술을 접할 수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비디오 있어요 학생." 이라는 말을 뒤로 하고 세운상가를 돌아다니며 백판을 구입하던 시대도 끝이 났다. 집에서 편히 앉아 단돈 몇 백 원에 내가 원하는 음악들을 전부 감상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편리하고, 신기한 기술들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기술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은 아닐까? 낯선 사람이 내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도 딱히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지금의 시대를 대변해준다. 그런데 문득 내 블로그의 글들에 낯선 이들이 덧글을 달아주면, 언젠가부터 그런 것들이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놓으면,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내 사진을 보고 '좋아요'를 클릭해준다. 마치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이러한 일련의 소통들이, 나는 언젠가부터 신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예전같은 흥분도, 재미도 없다. 처음에는 "이거 참 신기한데? 덴마크 사람이 내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주다니" 라고 생각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신기함에 무뎌지는 것이다. 


기술은 너무도 빨리 발전하고 있어서, 최신기술에 놀라기도 전에 더 최신기술이 튀어나오고 있다. 마치 초고속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 슬로모션 처럼 보이듯, 초고속으로 발전하는 기술로 인해 우리의 삶은 슬로모션처럼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문득 1995년에 등장한 <해커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보았다. 문득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재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분명, 처리속도가 오래 걸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어 있을지언정, 지금보다는 더 재미가 있지 않을까?


  1. BlogIcon badride 2014.12.29 16:32 신고

    저도 평소에 항상 비슷한 생각을 해왔습니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을 하는데 인간이 그 속도를 못따라가는게 아쉬울 따름이네요. 문득 하이텔과 용산견이 그리워집니다.

  2. BlogIcon 크리슈나 2015.01.14 11:17 신고

    더럽게 공감합니다.^^
    노력이나 시행착오가 많을수록 기쁨이나 재미가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도 편리한 시대가 되었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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