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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광화문의 스타벅스를 간 적이 있었다. 그렇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첨단기기들, 그리고 모든 아름다운 IT기기들의 박람회장이라고 할 수 있는 바로 그 스타벅스 말이다. 그곳에서, 나는 참으로 진귀한 풍경을 목도했다. 모두가 최신형의, 예쁜 노트북을 펼쳐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남자가 구석자리에 앉아 상판이 거의 벗겨진 채 간신히 '델'이라는 상표만 확인 가능한, 원래의 형태조차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의 낡은 노트북 한대를 펼쳐놓고, 역시나 평범해 보이는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어떤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정말로 인상깊었다. 그 노트북은, 마치 여기저기 헤진 낡은 가죽가방을 보는 것 같았다. 빈티지(Vintage)란 진정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지, 라고 품위있게 과시하는 듯 보였다. 정말로 멋졌다, 고 밖에는 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고백하건데, 내게는 디지털 결벽증이 있나보다. 씽크패드 노트북을 쓸 때나, 2G 휴대폰을 쓸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모든 유형의 물건들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흠집'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언제부터 나는 내가 쓰는 제품들에 흠집이나 생채기가 생기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파우치를 씌우고, 백팩의 노트북 수납칸에 고이 모셔둔 채 다녔다. 내 몸에 난 흉터는 거슬리지 않는데, 내 손에 쥐어져 있는 이 공산품들이 상처가 나면 왜 그리도 신경이 쓰일까. 이쯤 되면 디지털 결벽증에 걸렸다고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어여쁜 IT 기기들에 생채기가 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외로 사회적 이해관계와 심리상태가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발전한 문화는 '중고거래'이다. 특히 IT, 그것도 모바일 분야에서 중고거래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약정'이라는 무형의 감옥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중고거래는 더욱 더 활기를 띠게 된다. 그리고 중고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외관'이다. '외관'이 얼마나 깨끗한지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는 것이다. 새것은 부담스럽고, 그런데 다른 사람이 사용했던 흔적들은 보고 싶지 않은 구매자들이 '외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편 중고거래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계를 판매하고, 그 돈으로 '새로운' 제품을 구입한다. 그들은 최신 디지털 트랜드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혹은 다양한 제품들을 경험해보고 싶어하는 경험주의자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디지털 제품을 구매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다음에 중고로 파는 경우'이다. 당연히 최대한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서는 '외관'에 신경을 써야 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애플에서 '리퍼비시'라는 생소한 서비스 방식을 들고 왔을 때, 유저들은 이런 방식의 서비스가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마치 '새로운 제품'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런 방식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쪽은 고장 난 부분만 수리를 해주는 것이 깔끔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두 의견 모두 맞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 '리퍼비시' 방식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외관'이 무척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에 있다. '외관'에 찍힌 자국이라던가, 떨어뜨려 생긴 생채기들이 있으면, 서비스 센터에서는 고장의 원인을 소비자 과실로 여길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엄격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는 어느 정도 융통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폰이 휘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서비스 센터에 갔다가, 휘어졌기 때문에 서비스를 해 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휜 부분을 폈다는 에피소드들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그것이 결국 제품상의 초기 불량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초기불량인지, 혹은 소비자의 과실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제품의 '외관에 문제가 생기면' 1차적인 책임과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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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쯤에서 내가 디지털 결벽증에 걸리기 전의 순간으로 돌아가보자. 휴대폰이 떨어진다 한들, 노트북의 모서리가 벗겨지고, 키보드가 번들거려도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왜냐하면 사용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새로운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구입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장이나서, 회복 불능 상태가 아닌 다음에야, 표면에 보이는 상처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부터 아이폰을 바꿈질하기 시작하고, 맥북의 외관에 손톱만큼의 스크래치라도 날까봐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아이폰이나 맥북을 활용하는데 투자하는 시간보다, 이들을 보호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 된 상황이 아닐까. 

이미 현대의 디지털 기술은 폭주하고 있는 중이다. 과거처럼 '속도'에 연연하던 시절은 지났다. 지금 시대는 '기능'의 시대이다. 어떤 종류의 '기능'을 지원해 주느냐, 혹은 그렇지 못 하느냐로 나눠지는 것이다.  

내 씽크패드 노트북은 2011년에 구입했다. 액정을 한 번 교환하고, SSD를 달아주고, 메모리를 업그레이드 해주었다. 4년차를 맞이한 이 노트북은 여전히 (게임을 제외하고) 발군의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교체주기가 빨라졌다고 하지만, 반면에 어느 시점에서는 더 이상 '최신형' 기기들이 극적인 진보를 한 것도 아니다. 몇 년 쯤 전 제품들이어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결벽증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너무 쓸데 없는 것들에 우리의 시간을 낭비한다. 아이폰이나 맥북의 외관을 원래의 상태로 유지시키기 위해, 우리는 그 좋은 기기들을 '즐기는' 시간들을 제물로 바쳐야 했다. 그것은 마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외모에 투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조금 벗겨지고, 조금 찌그러지더라도, 이 디지털 제품들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늘 중고로 판매할 것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결국 남의 것을 '대여' 한 것과 느낌상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언젠가 팔아야 할 물건, 혹은 너무도 아꼈는데 흠집 하나로 인해 마치 내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내가 소유한 제품들의 생채기들 조차도 '내 것'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바꿔서 생각해보자.

모르긴 몰라도 조금 더 생산적이고, 조금 더 내 IT기기들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볼 수 있을 것이다.  

  1. Favicon of http://ilogin.tistory.com BlogIcon 큄맹 2015.10.26 02:03 신고

    특히 제품들의 재질이 플라스틱에서 메탈로 넘어 간 이후 그런 경향들이 더 심해진거 같네요. 완전 공감하고 갑니다!! 좋은글 감사해요!!

  2. Favicon of http://medgongbu.tistory.com BlogIcon 김배당 2015.10.26 09:08 신고

    오래 전에 서랍에 모셔두었던 소니 바이오 노트북을 꺼내봐야겠네요... 8년 전쯤 사서 몇 년간 사용하고 데스크탑으로 갈아탄 뒤 사용하지 않았던 녀석인데 동작하려나..궁금합니다.

  3. Favicon of http://dusdjajrwk.tistory.com BlogIcon 마무리한타 2015.10.26 11:16 신고

    모르ㅜ는걸 이렇게 또 하나 알게되는거 같은기분이 즐거운걸요 ㅎㅎ

  4. Favicon of http://jisick-in.tistory.com BlogIcon ♠헤르메스♠ 2015.10.26 23:05 신고

    예전에는 흠집이 나면 자꾸 신경쓰이곤 했는데, 흠집이 계속 늘어갈수록 오히려 신경을 안쓰게 되네용.

  5. Favicon of http://zoahaza.net BlogIcon 조아하자 2015.10.26 23:10 신고

    저는 아직도 5년 전쯤에 50만원 주고 산 노트북 써요 게임할 때에는 애로사항이 있지만 블로그 하는 용도로 아니면 업무 처리할 용도 정도로는 아직도 쓸만합니다 앞으로도 심하게 고장만 안나면 계속 쓸려구요 ㅋㅋ


<사진출처 : APPLE 홈페이지>



애플이 새로운 '맥북'을 발표한지 제법 시간이 지났다. 이 완전히 새로운 맥북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 그리고 의구심이라는 두 가지의 상반된 감정을 느끼게끔 만들었다. 1kg이 채 되지 않는 무게. 이어폰 잭과 USB-C타입의 충전겸용 포트 한 개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포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응당 노트북이라면 있어야 할 팬이 없으며, 화면은 레티나 화면이고, 색은 무려 세 가지 색을 적용시켰다. 


얼핏보기에 이 새로운 '맥북'은 아이폰 -> 아이패드를 잇는, 캐주얼한 모바일 디바이스의 연장선상처럼 보인다. 아마도 골드, 스페이스 그레이의 색이 추가되어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고, 포트가 하나 밖에 없어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가격은 무척 애매하다. 우리나라 돈으로 159만원. 고급형은 199만원이다. 아이패드 에어2의 최고급형 가격이 99만 9천원임을 감안하면, 아이폰, 아이패드와 이어지는 '캐주얼한 모바일 디바이스'의 범주에 넣기엔 다소 비싼 가격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최근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이 새로운 '맥북'의 CPU성능에 의심을 갖는 유저들이 늘었다. 그러나 키노트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새로운 '맥북'에 들어가는 기술력들이나 만듦새를 고려해 본다면 누군가는 납득할만한 범주에 있는 가격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맥북'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제품일까. 우리는 이미 휴대성 = 맥북 에어, 성능 = 맥북 프로 라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분류에 익숙해져 있다. 그 안에, 맥북 에어보다 가벼우면서도, 더 성능이 좋은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새로운 제품군이 포함된 것이다. 이 포지션이 애매하다면 애매할수도 있고, 보다 구체적이라면 구체적일수도 있다. 


아마 다수의 아이패드 유저들은 아이패드에 별도의 키보드를 장착하여 문서작업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이패드로 문서작업을 함에 있어서 성능의 제약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문서작업이 고성능을 요구하지는 않으니까. 

아이패드에 별도의 블루투스 키보드를 장착해서 작업하는 것이 처음에는 간단하고, 편리해보이지만, 이내 "차라리 이럴 바에야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는 게 낫지!"라는 생각도 많이 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문서 작업을 위주로 하는 유저들에게 절실한 것은 아이패드만큼 가볍고, 키보드가 달려있는 그런 랩탑일 것이다. 그렇다면 맥북에어가 있다. 지금까지는 맥북에어가 이런 조건에 부합했지만, 맥북에어의 아쉬운 점이라면 역시 액정에 있지 않을까. 이미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접한 유저들은 그 깨끗한 화면이 아마도 계속 맴돌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새로 나온 '맥북'의 포지션은 좀 더 명확해진다. 이 제품은 '학생'들과 같이 가성비를 요구하는 집단에서는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이 제품은 출장을 자주 다니고, 문서작업을 위주로 하는 유저들, 그리고 CEO들을 위해 포지셔닝 된 것은 아닐까. 무게와 크기를 위해서라면 160만원 정도는 고민하지 않고 지불할 수 있는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디자이너, 사진작가 들에게는 성이 차지 않을 스펙이지만, 별도의 블루투스 키보드와 아이패드를 연결해서 작업을 하던 여행작가, 출장을 자주 다니는 직장인들과 CEO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매력적인 제품이 될 것이다. 부족한 USB포트에 대해서는 최근 거의 대세처럼 굳어진 클라우드 시스템들(드롭박스, 아이클라우드, 구글 드라이브, 원드라이브 등)을 이용하면 그럭저럭 해결될 것이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싸다고 느껴지는 가격, 그리고 함께 출시된 액세서리들을 보고 있자면 쉽게 지갑을 열기가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이동성'이라던가 '휴대성'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매력적인 제품이다. "아이패드에 키보드가 있었으면..."이라고 생각했던 유저들에게는 특히나 더할 나위 없는 제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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