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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사 값비싼 컴퓨터로 무엇을 하든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이 포스팅 자체가 순전히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값비싼 IT기기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묻는 것은, 아마도 내가 나 자신에게 묻는 것이리라. 이런 이야기들이 솔직히 이 포스팅을 읽고 있는 그대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하더라도, 나는 오늘 밤에 내 자신이 내게 질문했던 문제에 대한 대답을 할 의무감 같은 것이 생겼다.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인 것이다. 


나는 국문학을


전공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이과생'이었지만, 정작 내가 컴퓨터를 직접적으로 대학이라는 곳에서 배운 것은 2000년 한 학기가 전부였다. 그 전에는 일본어를 일 년 전공했고, 그 이후에는 법학을, 그리고 국문학을 전공했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생'인 셈이다. 

그런 내가 컴퓨터에 취미를 갖게 된 것은, 중학교 무렵이었다. 애플 II+ 짭퉁을 어머니와 함께 세운상가에서 사왔다. 나는 본체, 어머니는 모니터를 힘겹게 끌고 왔다. 그나마도 모니터는 지하철 역에서 누가 발로 차서 조금 고장이 나 있던 상태였다. 그 시절 내가 흑백 애플 II+ 짭퉁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친구와 함께 5.25인치 디스켓 한 박스를 들고 세운상가에 가서 게임을 잔뜩 복사해 오는 것 뿐이었다. 고백하건데 정품이라던가 불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5.25인치 디스켓'에 잔뜩 게임을 복사하고, 메탈리카 백판 하나를 사서 집으로 돌아와 음악을 틀어놓고, 복사해 온 게임들을 하나하나 실행시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게임들은 전부 영어였고,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영어를 무척 싫어했다. 그 뿐인가. 다른 친구들은 재밌다고 즐기던 게임들이 나는 도대체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너무 복잡했고,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게임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갈 무렵, 나는 286 PC를 마련했다. 그 겨울,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앞둔 겨울 방학에 나는 모뎀이라는 것이 내 PC에 장착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동네 컴퓨터 가게에서 Medicomm 이라는 통신접속 프로그램을 구해왔다. 운이 좋게 전화선을 연결했고, 비로소 PC통신이라는 것을 접해보았다. 전화통화가 되지 않아 어머니에게 죽도록 혼이 난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 세계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ID를 만들라는 말이 뭔지 몰라서, 통신 프로그램이었던 Medicomm을 입력했다. 그 때 이후로, 나는 대부분의 PC통신에 Medicomm이라는 아이디를 썼다. 

그 무렵, 다양한 컴퓨터 잡지들이 있었는데, 나는 '마이컴'이라는 잡지를 가장 즐겨보았다. 그 잡지에 나오는 '미래의 컴퓨터들'을 보면서, 나는 결심했다. 내가 나중에 커서 성인이 되면, 정말로 좋은 컴퓨터를 살 것이라고. 하나도 아니고 석 대, 넉 대는 살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지금 


넉 대의 PC를 가지고 있다. 한 대는 서울에 있는 집에 갔을 때 쓰는 데스크탑 PC다. 내가 지금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는 3대의 PC를 이용하고 있다. 맥미니 한 대, 13인치 레티나 맥북 프로 한 대, 그리고 ThinkPad X201i 노트북 한 대. 누군가는 내게 묻는다. 

"도대체 국문과를 전공하는 사람이 무슨 컴퓨터를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소?"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여유만 된다면 더 많이 갖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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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참으로


미친 짓 같다. 아무리 어린시절 꿈이었다지만, 내게 과연 석 대의 PC가 필요한지 자문하게 된다. 맥미니는 일반적으로 사진작업, 블로그 작성, 기타 '큰 화면을 필요로 하는 작업들'과 더불어 Mac OS X Server를 설치해서 이런저런 용도로 이용하고 있다. 보통 글을 쓸 때는 씽크패드와 맥북을 번갈아가면서 쓴다. 씽크패드와는 달리 맥북은 조용해서 소설작업을 할 때 많이 이용한다. 논문을 쓸 때는 특수문자를 많이 써야 해서 윈도우 기반인 씽크패드가 더 효율적이다. 그렇다 한들, 이 PC들이 내게 과분한 것은 사실이다. 어디 그뿐이랴. 손목이 아프다고 인체 공학 마우스를 두 개나 구입했다. 안정적인 인터넷 환경을 만든답시고 값비싼 ASUS 공유기를 구입했다. 자료를 관리 및 백업을 한다며 WD의 4테라 짜리 마이 클라우드를 구입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명필은 아니었는지 좋은 글을 쓰려면 키보드의 타이핑 감촉이 중요하다며 기계식 키보드를 들였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쓰면서 블로그에 사용기도 올렸다. 나름대로 스트레스 해소도 됐다. 

문제는 돈이었다. 돈이 없어서 이런 '하드웨어들'을 구비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는 계속 쌓이게 되고 블로그에 올릴 아이템도 사라지게 된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사실 노트북 한 대면 충분했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석 대의 PC가 존재하고 있었다. 내 취미가 컴퓨터라고는 해도, 늘 새로운 하드웨어들을 구입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 취미는 컴퓨터가 아닌, '컴퓨터 장비 수집'이라고.


내 컴퓨터 사용 용도를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먼저 소설을 쓰고, 논문을 쓴다. 인터넷으로 웹서핑을 하고, 사진 편집도 하며, 블로그도 한다. 나름 Mac-Fi를 저렴하게 구축해서 음악도 감상하고, 영화도 본다. 노트북이 있으니 아무래도 여행을 다닐 때 편리하다. 맥으로 외부에서 사진을 편집하던가, 카페에서 일을 할 때도 있다. 이만하면, 이만하면 나름 잘 활용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보다는 더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했다. 적어도 내 '취미가 컴퓨터 장비가 아닌 컴퓨터'라면, 이보다는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껏 어린 시절의 꿈이랍시고 구축해 놓은 시스템인데, 최소한 본전은 아니더라도 뭔가 성취감 같은 것을 느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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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왕이면, '컴퓨터 장비'가 아닌 '컴퓨터 자체'를 취미로 갖고 싶었다. 내게 도움이 된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도대체 무엇이 나를 즐겁게 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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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생각한 것이 '소프트웨어'였다. 지금까지 장비는 잔뜩 사들여놓고, 정작 소프트웨어에는 문외한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컴퓨터의 재미는, 최신 기술의 하드웨어를 만져보는 것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것도 그 일부분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컴퓨터라는 재미있는 도구의 절반 만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래서 컴퓨터의 '나머지 절반의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리눅스를 배워보자고 생각했다. 두 권의 리눅스 관련 책을 구입했다. 가장 많이 쓰이는 우분투와, 조금 전문적인 CentOS와 관련된 서적이었다. 맥에 가상머신을 돌릴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서 설치하고 우분투와 CentOS 두 배포판을 밤새 설치했다. 파티션의 개념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리눅스에 무료 클라우드 시스템인 OwnCloud도 설치해보았다. 그렇게 리눅스를 설치하면, 통째로 지워버리고 다시 설치했다. 아무래도 익숙해지려면 그 방법 밖에는 없었다. 이런 작업을 하루 날 잡아서 끊임없이 반복했다. 리눅스는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다. 명령어를 입력하는 재미. 윈도우나 맥 OS만큼이나 활용도가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다음에는 프로그래밍을 배워보고 싶었다. 내 손으로 뭔가를 창조하는 재미를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Hello, World!'를 모니터에 출력해보고 싶었다. 그냥 취미로 배워보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나중에 내게 도움이 될 수도 있어야 했다. 그래서 서점에 달려가 JAVA 관련 서적 한 권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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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업에 태블릿이 좋다고 해서 (비교적) 저렴한 와컴 타블렛을 하나 구입(빌어먹을, 장비는 늘 이런 식으로 늘어나는 법이다)했다. 사진 작업 뿐만이 아니라 웹툰 같은 것도 배워보고 싶었다. 나는 소설을 쓰지만, 한편으로는 웹툰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겸사겸사 구입했고, 이전에 구독하던 Adobe CC를 연장구독했다. 포토샵이나 라이트룸 뿐만이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까지 설치했다. 조만간 관련 책들도 구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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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심지어 나는 아이패드 에어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이패드 에어는 내게 활용도가 제법 높았다. 논문을 읽는데 곧잘 유용했다. 작업하던 것들이 집에 있는 PC에 있는데, 급하게 그 결과물을 이메일로 보내야 할 때 아이패드와 Microsoft Remote Desktop 어플리케이션이나 VNC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맥이나 씽크패드에 원격접속해서 일처리를 마무리 한 적도 있었다. 아이패드는 그 활용도가 '소비적'인 면이 높지만, 사실 아이패드는 사용하기에 따라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언젠가 아이패드 활용과 관련된 글을 블로그에 한 번 제대로 포스팅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장비를 가지고 있다. 오로지 게임만을 위해서 컴퓨터를 구입하는 사람도 있다. 누구는 단순히 인터넷이라던가, 간단한 작업들을 위해 컴퓨터를 구입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용도를 평가절하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3백만원짜리 PC를 오로지 게임으로만 즐기기 위해 구입했다해도 그것은 개인의 가치 기준에 따른 선택이기 때문에 나는 충분히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은 값비싼 장비를 가지고 고작 게임이나 워드, 인터넷 쇼핑이나 하십니까? 저 처럼 다양하게 활용해보세요."라고 강요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이 포스팅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여러분들은 가지고 있는 컴퓨터로 충분히 즐기고 있지만, 조금 더 다가가면 컴퓨터는 더 많은 즐거움과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컴퓨터 라이프에 만족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내가 어느 날 문득, 게임도 지겨워지고, 웹서핑은 시시한데다가, 인터넷 쇼핑을 하기엔 통장의 잔고가 턱없이 줄어들어 있음을 깨달았을 때, 그냥 컴퓨터의 전원을 꺼버리지 말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라고 제안을 하는 것이다. 컴퓨터의 세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아마 콜럼버스가 존재하던 시대에 지금과 같은 PC가 존재했다면,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대신 웹 서핑을하고 있던가, 아니면 코딩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컴퓨터란, 파고들수록 더 많은 것들이 튀어나온다. 단순히 워드작업이나, 영화감상, 게임을 즐기는 것 이외에도 컴퓨터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지금 결코 저렴하지 않은 여러분들의 컴퓨터를 이용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SNS를 활용해 보다 적극적인 소통을 할 수도 있으며, 혹은 마음에 두고 있는 이성에게 보내 줄 멋진 사진 한 장을 편집 할 수도 있다. 평소 이런 프로그램이 있으면 얼마나 편리할까? 라고 생각했던 것을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웹서핑을 하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한 곳에 모아 나만의 시사 분석을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 이제 여러분들은 이 쓸모없는 포스팅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했다. 이제 이 창을 닫고, 본연의 기능에 단지 몇 퍼센트만 이용되고 있는 여러분들의 PC에 대한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커피 한 잔을 끓여 놓고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컴퓨터는 커피를 싫어하니,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주의를 기울여서, 여러분들의 앞에 놓여 있는 컴퓨터에 대고 (마음 속으로) 물어보도록 하자. 


"너는 나를 얼마나 더 즐겁게 해 줄 수 있니?"


  1. Favicon of http://simglorious.tistory.com BlogIcon 도플파란 2014.12.26 03:18 신고

    저도 아직 제가 갖고 있는 맥북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ㅠ ㅠ 논문이랑 블로그 용으로 사용하고 사진편집정도 ㅎㅎ 게임을 한다면 심시티 정도인데.. 그건 하지 않으니 패스하겠습니다. 좀더 더 많이 활용할수 있는 것을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저도 새로운 os는 설치하고 보는 편인데... 리눅스도 이리저리 해보니 재미있더군요 ㅎㅎ 윈도우는 이제 쓰지 않으려 노력중입니다. 사무실에서만 쓰려구요 어떻게든지 ....

  2. 씽크패드 2015.04.21 16:15 신고

    000님 안녕하세요, 씽크패드 마케팅팀입니다! 씽크패드에 대란 리뷰를 찾아보다가 이렇게 댓글 남깁니다.
    현재, 페이스북과 레노버클럽에서 씽크패드 유저들만을 위한 혜택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30만원 상당의 씽크패드 패키지도 선물부터, 트위스트 마웃, 페이퍼 토이까지 선물 드리고 있으니, 한번 방문하셔서 참여 부탁드릴께요!
    씽크패드 매니아 3호를 찾아라! url
    http://www.lenovoclub.co.kr/event/2015/thinkpadmania4
    그럼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고, 저희 씽크패드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 정새롬 2015.07.18 10:53 신고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국문과 출신이셔서 더 그런것 같네요.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


플로피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그만큼 삶은 더 지루해지고 재미가 없어졌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요즘같이 재미없는 시대가 또 있을까. 치약 이름 같다며 우리끼리 히히덕 거리던 '펜티엄 프로세서'가 등장한 이후로,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해왔고, 그에 반비례하여 시대는 점점 재미없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컴퓨터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전원 스위치를 넣고, 컴퓨터가 완전히 부팅 될 때까지 기다린 후에, 플로피 디스크를 드라이브에 삽입한 후에, 커서만 깜빡거리던 도스창에 행여 오타라도 날까봐 공을 들여 명령어를 입력하던 시절은 이제 우리에게는 없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침대에 편한하게 기대어서 랩탑의 덮개를 열면 고해상도의 배경화면이 보이고, 그 위로 예쁘장한 아이콘들이 잘 정렬되어 놓여있다. 오타를 낼까봐 조심스럽게 키보드를 타이핑 할 일도 없다. 그냥 마우스나 터치패드로 아이콘만 클릭하면 모든 것들이 해결된다. 영화도, 게임도, 음악감상도. 


PC통신에 접속할 때 나는 비프음이 안방에까지 들리지 않게 하려고 컴퓨터에 이불을 뒤집어 씌울 필요도 없다. 컴퓨터를 끄기 위해 명령어를 입력할 필요도 없으며, 새로운 장치를 컴퓨터에 장착시키기 위해 컴퓨터를 힘들게 분해하고, ISA 슬롯에 부품을 꼽아야 할 일도 없다. 이제는 메인모드에 모든 장치들이 집적되어 있고, USB에 필요한 장비들을 간편하게 연결시킬 수 있다. 아무런 불편이 없어서 오히려 내 자신이 병신처럼 느껴질 정도다. 



ISA 슬롯에 꼽아 쓰던 모뎀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더 이상 사진 한 장을 내려받기 위해 전화세를 낭비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집에 전화가 없는 집들도 있다. 아니 집에 전화기가 있으면 오히려 구닥다리가 된 기분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하기 위해 전화선에 접속할 필요도 없다. 어떤 장소에서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몇 메가 짜리 사진은 1초 남짓한 시간에 내려받을 수 있다. 참 재미없는 시대가 아닐 수 없다. 


PC통신에 접속하여 미지의 낯선 타인과 공통된 주제로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종말을 맞이했다. 대신에 우리는 SNS를 이용한다. 스마트 폰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웹은 개방되었고, 우리는 소통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순이 하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낯모르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기타 SNS 서비스들, 메시지 서비스들은 내가 원하는 사람하고만 소통을 나눌 수 있다. 오히려 더 폐쇄적으로 변해버렸다고 해야 할까. 

정말로 '졸라' 재미없는 시대인 것이다. 


과거에는 최신 기술을 접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잡지를 구입해 읽거나 용산 전자상가 같은 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잠깐만. 컴퓨터 잡지라고? 종이로 만들어진? 요즘 우리가 어디서 컴퓨터 잡지를 볼 수 있을까? 그것이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최신 정보들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용산을 돌아다녀도, 우리는 최신 부품들을 전부 구경할 수 없던 시대가 있었다. 단돈 천 원을 깎기 위해 용산 전체를 헤집고 다니는 데 하루를 소비해야 하는 시대도 다 옛말이다. 이제는 최신형 컴퓨터라던가, 부품들을 구입하는데 단 5분만 투자하면 된다. 땀을 흘리며, 혹은 추위에 떨며 용산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간단하게 검색하고,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아 결제를 하면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우리는 최신 기술을 접할 수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비디오 있어요 학생." 이라는 말을 뒤로 하고 세운상가를 돌아다니며 백판을 구입하던 시대도 끝이 났다. 집에서 편히 앉아 단돈 몇 백 원에 내가 원하는 음악들을 전부 감상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편리하고, 신기한 기술들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기술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은 아닐까? 낯선 사람이 내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도 딱히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지금의 시대를 대변해준다. 그런데 문득 내 블로그의 글들에 낯선 이들이 덧글을 달아주면, 언젠가부터 그런 것들이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놓으면,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내 사진을 보고 '좋아요'를 클릭해준다. 마치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이러한 일련의 소통들이, 나는 언젠가부터 신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예전같은 흥분도, 재미도 없다. 처음에는 "이거 참 신기한데? 덴마크 사람이 내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주다니" 라고 생각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신기함에 무뎌지는 것이다. 


기술은 너무도 빨리 발전하고 있어서, 최신기술에 놀라기도 전에 더 최신기술이 튀어나오고 있다. 마치 초고속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 슬로모션 처럼 보이듯, 초고속으로 발전하는 기술로 인해 우리의 삶은 슬로모션처럼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문득 1995년에 등장한 <해커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보았다. 문득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재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분명, 처리속도가 오래 걸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어 있을지언정, 지금보다는 더 재미가 있지 않을까?


  1. BlogIcon badride 2014.12.29 16:32 신고

    저도 평소에 항상 비슷한 생각을 해왔습니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을 하는데 인간이 그 속도를 못따라가는게 아쉬울 따름이네요. 문득 하이텔과 용산견이 그리워집니다.

  2. BlogIcon 크리슈나 2015.01.14 11:17 신고

    더럽게 공감합니다.^^
    노력이나 시행착오가 많을수록 기쁨이나 재미가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도 편리한 시대가 되었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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