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on EOS 6D


기계, 인간과 접촉하다


지금 이 시대에, 그러니까 하이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우리를 열광시키는 것들이 있다. 스마트폰, 태블릿, 클라우드, 고성능 PC. 기술의 발전은 정점에 이르렀고, 기술의 정상에 서서, 우리는 문득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우리를 거쳐왔던 그 모든 것들을 다시금 돌이켜본다. 기술의 시작, 비닐 레코드, 카세트 테이프, 흑백 TV, 비디오, 만년필, 모뎀, PC통신, 브라운관 모니터, 그리고 여러분들은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처음으로 컴퓨터라는 것을 마주했을 때, 여러분들이 최초로 컴퓨터 키보드라는 것을 타이핑 했을 때의 그 순간을.

우리가 처음 키보드를 누르던 그 순간을 기억해보자. 키 하나를 누를 때마다, 키보드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소리와 함께, 모니터에는 내가 선택한 키에 인쇄된 문자가 새겨졌다. 누군가에게 그런 기억은, 어린 시절 미지의 세계와 소통하는 첫번째 접촉이었다. 그렇지. 우리가 그 미지의 세계와 처음으로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키보드'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저렴한 부품


키보드는 컴퓨터를 구성하고 있는 부품중에 가장 저렴하고, 또 가장 무시당하는 주변기기에 불과했다. 기계식 키보드가 비교적 흔하던 시절에는, 키보드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다. 키보드에서 소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키보드라는 주변기기는 소리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제대로 입력만 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은 차츰 키보드에서 사라진 소리들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펀지를 누르는 것 같은 멤브레인 형태의 키보드나, 노트북에서나 흔히 쓰이던 펜타그래프 방식의 키보드에 싫증을 내거나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옛날, 기계식 키보드에서 들려오던 그 경쾌한 타이핑 소리, 그리고 손가락에서 느껴지던 그 감촉은 컴퓨터로 하는 작업들을 보다 더 신나게 만들어주었다. 키보드에서 울려퍼지던 그 경쾌한 소리는, 돌이켜보면 아마도 음악같은 것이었나보다.

그러나 지금의 키보드는, 더 이상 작업의 능률을 높여주지 않는다. 키보드는 컴퓨터를 구성하는 부품중에 마우스와 더불어 가장 저렴한 부품으로 전락했다. 아무도 키보드에서 나는 소리라던가, 타이핑의 감촉 등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입력이 잘되고, 버려도 별로 돈이 아깝지 않을 그런 키보드를 원했다. 


기계식 키보드


IBM의 모델 M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기계식 키보드 중에서도 '버클링 방식'이라고 불리던 키보드였다. 타이핑 할 때, 스프링 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질 정도로 소음도 컸고, 손가락에 힘도 많이 들어갔다. 그래서 '아론'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키보드를 구입했다. '아론 기계식 키보드'는 추억할 만 한 키보드였지만 그렇게 좋은 느낌을 주지 못했다. 세월이 흘렀다. 전부 옛날 이야기들이다. 청계천에서, 용산에서 낡은 키보드들을 구하러 다니던 적이 있었다. 멤브레인 방식의 키보드였지만, 타이핑 감이 괜찮았던 키보드들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내 시들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그냥 키보드는 키보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맥을 쓰면서 애플 무선 키보드와 유선 키보드를 구입해서 썼다. 그러나 가끔, 기계식 키보드에 대한 미련들이 생겼다. 행여라도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키보드를 치는 장면이 나오면, 그 소리를 유심히 들었다. 마치 담배를 끊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 내뱉는 담배연기를 맡는 것과 비슷했다. 그러다가 레폴드에서 나온 기계식 키보드를 얻었다. 체리 청축을 쓴 키보드였다. 딸깍딸깍.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기계식 키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건 너무 완벽했다. 완벽한 타이핑 소리. 키를 누를 때 완벽하게 걸리는 느낌. 그 소리는, 그러니까 체리 청축은 너무도 완벽해서 인위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게다가 너무 시끄러웠다. 


갈축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기계식 키보드를 구성하는 '스위치'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회사는 '체리'라는 회사다. 체리에서 나오는 스위치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청축, 갈축, 적축. 그 외에 백축과 흑축도 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는 청축과 갈축, 그리고 적축이 많이 쓰인다. 청축은 타이핑 할 때 소리가 나서 '클릭'이라 부르며, 갈축은 상대적으로 소음이 적으나 타이핑 느낌은 청축과 유사하여 '넌클릭' 방식이라 부른다. 적축은 리니어 방식이다. 소리도, 타이핑할 때 걸리는 듯한 그런 느낌도 거의 없다. 리니어(Linear)의 사전적 의미는 '직선'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타이핑해보면 키보드가 쑥쑥 들어가는 느낌이다. 

어느 날 필자는 작정을 하고 용산을 갔다. 그리고 키보드들을 전시해 놓은 곳을 찾아 청축, 적축, 갈축, 백축, 흑축을 전부 타이핑 해보았다. 그래서 결국 필자에게 가장 어울리는 축은 갈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청축만큼 요란하지도 않고, 적축만큼 정숙하지도 않다. 쫀득쫀득한 느낌에, 적당히 요란하다. 사람으로 치면 청축은 말이 많고 유쾌한 사람, 적축은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으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갈축은 약간의 비밀을 간직한 채 적당히 말을 받아주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농담을 던질 줄 아는, 마치 단골 술집의 바텐더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갈축을 구입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면서도 적축과 적잖이 갈등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언젠가는, 적축 키보드를 하나 더 구입할지도. 


Vortex


내가 이 회사를 알게 된 것은 클리앙에 체리 키보드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였다. 기왕이면 체리 스위치만 쓴 서드파티 업체가 아닌, 아예 체리에서 만든 키보드를 써보자고 마음먹고는 3497모델과 1867모델간의 차이에 대해 질문을 올렸다. 그런데 어느 분께서 vortex사의 키보드를 고려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주셨고, 나는 즉시 검색에 들어갔다. 

vortex사는, 아마도 얼마 전까지는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Vortex라는 회사 자체가 생겨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각주:1] 

그러나 Vortex는 키보드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는 회사였다. 




<출처 : Vortex 국내 공식 홈페이지 (www.vortexgear.co.kr)>


Vortex 키보드는 다양한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맥북처럼 키보드에 불도 들어온다. 그러나 내가 vortex 키보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디자인이다. 하얀색의 풀배열을 가진 Type F 키보드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다른 키보드들을 봤지만, 이 키보드만큼 마음에 드는 디자인은 없었다. 문제는 키감촉이나 타이핑 소리였다. 같은 체리사 갈축이라도 제조사들에 따라 소리, 키감촉들이 전부 틀렸다. Vortex의 갈축을 타이핑해보고 싶었지만 용산에는 청축 밖에는 타이핑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일단은 믿고 써보는 것이었다. 


Vortex와의 첫 만남


Canon EOS 6D


실제로 받은 Vortex 키보드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약간 달랐다. 뭐랄까, 뭔가 기묘한 느낌이랄까. 키보드에 들어오는 불빛은 무척 밝았지만, 밝기 조절이 가능했다. 게다가 이 키보드에는 '숨쉬기 모드'가 있다. 실제로 설명서에도 'Breathing Mode'라고 나와있다. 이 숨쉬기 모드를 설정하면 좌측 윈도우 키를 제외하고 전체 키보드가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한다. 왜 이름을 '숨쉬기 모드'라고 했을까. 마치 빛이 숨을 쉬는 듯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인 듯 한데, 개인적으로 이 '숨쉬기 모드'라는 네이밍 센스가 마음에 들었다. 마치 살아 숨쉬는 '무엇'과 함께하는 기분이다. 


Canon EOS 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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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면 제법 분위기가 있다. 밝기를 최대로 하면 너무 밝아서 눈이 부실정도지만 밝기를 '2'나 '3'정도로 하면 나름대로 은은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키보드 감촉은 예상과 다르게 '훨씬' 더 좋았다. 



타이핑 소리는 생각보다 컸지만, 요란스럽지는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중후하고 묵직한 느낌이다. 손가락에 적당히 '걸리는' 느낌도 있다. 엔터키의 소리가 다른 키들과는 달랐지만, 아마도 키캡의 길이 때문일 것이다. 적당히 쫀득거리는 느낌이 계속 뭔가를 타이핑하고 싶게 만든다. 

그렇다고해서 구입한지 몇 시간 만에 완전히 적응했다고는 할 수 없다. 어딘가모르게 아직도 어색한 감이 남아있어서 적응하는 시기가 필요할 듯 싶다. 


더 많은 글을 쓰기 위하여


키보드에 투자를 했다. 몇 백 원짜리 모나미 볼펜으로도 글은 쓸 수 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만년필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컴퓨터로 대부분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키보드는 사실 컴퓨터의 그 어느 부품보다도 중요하다. 키보드가 작업의 능률을 과연 올려줄까? 이 블로그가 바로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타이핑을 하는 재미가 있다면, 여러분들은 아무리 긴 글이라도 피로감없이 즐겁게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도구가 바로 키보드인 것이다. 

필자는 이 키보드를 맥에 물렸다. 맥에서만 쓸 수 있는 몇 가지 단축키들의 위치가 다르지만 쉽게 적응할 수 있다. karabiner라는 맥전용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키보드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 

일반적인 키보드들이 캔커피라면, 기계식 키보드는 로스팅이 잘 된 고급 커피와도 같다. 깊은 맛이 있다고나 할까. vortex는 최상급으로 로스팅된 커피라고 할 수 있다. 


  1. (Vortex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쿨앤조이의 쿨앤조이막귀님 글 참고 : http://www.coolenjoy.net/bbs/cboard.php?board=review&no=21581) [본문으로]
  1. Favicon of http://simglorious.tistory.com BlogIcon 도플파란 2014.12.24 08:25 신고

    맥용 기계식키보드가 다양하게 나왔으면 좋겠는데... 수요가 적다보니.. 정말 없네요.ㅠㅠ 있으면 가격대가 너무 높고..ㅠㅠ

  2. Favicon of http://freaking.tistory.com BlogIcon 지식전당포 2015.03.10 15:07 신고

    안녕하세요, 지식전당포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잉이라는 사이트에서 블로거 님의 좋은 글과 사진을 불법 수집한것 같습니다..

    해당 사이트는 구글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님의 트래픽을 빼앗아갈 수 있습니다.


    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w6jUsK56iKYJ:www.5ing.co.kr/1130731+&cd=2&hl=ko&ct=clnk&gl=kr

    • Favicon of http://heejune.net BlogIcon Heejune 2015.03.19 16:27 신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그 사이트에 연락을 해서 글삭제를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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