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on EOS 6D


1. 한방에 가라


흔히 처음 카메라에 입문하면 '한방에 가라'는 말을 자주 들을 것이다. 입문자라고 해서 입문기를 쓴 뒤에 나중에 사진 좀 알게 되면 기기적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 애초부터 고급기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일게다. 

나는 '한방에 가라'는 이야기를 일렉기타를 구입할 때 처음 들었다. '비싼 돈 주고 샀기 때문에 돈이 아까워서라도' 기타 연습을 할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느 정도 납득은 되는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적어도 '디지털 제품'에서 만큼은 이 '한방에 가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플래그십'이라는 용어는 이제 무의미해진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오늘 구입한 플래그십 제품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일 년 정도면 '과거의'라는 수식어를 마치 훈장처럼 달게 된다. 그만큼 눈부신 기술의 속도 때문이리라. 카메라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디지털' 카메라를 쓴다. 그리고 디지털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 물론 금전적인 여유가 있다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요즘 시대는 풍요속의 빈곤이 아니던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그 풍요로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적 상황'에 맞춰 취미생활을 하는데, 거기에 '무리'라는 단어가 붙으면 일단 힘들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1~2년이 지나면 우리가 '고급기종'이라고 구입했던 장비들의 가격이 마치 스펀지가 오그라들듯, 처참하게 내려가게 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물론 그 1~2년 사이에 충분히 본전을 뽑았다면 그 또한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대체로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처음부터 '무리'를 하게 되면 결국 남는 것은 후회 뿐이다. 고급기종은 언제건 구입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해가 바뀔 수록 고급기종은 계속 튀어나오게 마련이니까. 


둘째는 보급기나 입문기로도 어느정도 노력이 수반되면 원하는 사진들을 찍을 수 있다. 풀프레임과 크롭바디의 차이점, 즉 '심도'에 관한 문제도 그렇다. 누구는 사진을 찍을 때 심도에 목숨을 거는 이가 있는 반면, 또 누구는 그것과는 별개로 추구하는 사진의 세계가 있을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풀프레임 카메라보다는 크롭바디가 현실적으로 더 많이 이용되고 있음을 여러분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풀프레임 카메라가 정말로 필요한 시점이 언젠가는 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런데 동호회 사람들이 풀프레임 카메라가 좋다고 한다해도 무리해서 풀프레임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한 장이라도 더 사진을 찍는 것이 시간적으로는 효율적이고, 금전적으로 절약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여러분들은 카메라를 왜 구입했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사진을 찍으려고 구입한 것이 아닌가.


2. 장비자랑


참으로 허무한 짓거리라고 볼 수 있다. 한 때 플래그십이었던 캐논의 1D 시리즈들의 중고가격을 본다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신형 플래그십을 구입해서, 그것을 다른 이에게 자랑한들 몇 년이 지나면 그 또한 구닥다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결국 "나는 이만큼 돈이 있어"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것인데 왜 그런 돈자랑을 다른이에게 하는지 나는 개인적으로 그 심리를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비싼 장비를 구입하고, 그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남이 무슨 카메라로 무엇을 찍든, 자신은 자신의 사진만을 찍으면 되는 것이다. 다른이에게 장비를 자랑할 시간에 그 좋은 장비로 더 좋은 사진을 찍어보자. 왜 비싼 장비를 구입했는지 생각해보면 역시 답은 쉽게 나온다. 

더 편하고, 더 좋은 사진을 찍어보려고. 그렇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3. 사고팔기


카메라를 구입했다고 해서 모두가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카메라 그 자체가 좋은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논외로 하자. 

이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어떤 이들은 장비를 사고파는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애초부터 '필요한' 장비를 샀다면 결코 다시 팔 일은 없는 것이다.(물론 생계라던가 극히 개인적인 사정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어떤 장비가 더 좋다던데?'라는 말에 혹해서 기껏 모아놓은 장비들을 손해봐가면서 팔고, 그리고 새로운 장비를 다시 구입하기까지 소비되는 돈과 시간을 계산해보자. 그 차액으로 더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갈 수 있고, 그 시간으로 더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정말로 여러분들이 '사진을 찍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장비를 바꿈질하기 보다는 더 생산적인 일들이 있다. 예컨대 괜찮은 출사지라던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만의 포인트를 발견해 내는 작업 같은 것들 말이다.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거나 다른 장비로 교체했을 때의 만족감은 '순간'일 뿐이지만, 정말로 괜찮은 곳에 여행을 가서 나만의 출사지를 찾아냈을 때의 만족감은 영원하다. 


4. 신제품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써봐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두고 '얼리아답터'라고 한다. 이런 분들은 3번의 '그냥 카메라 그 자체를 좋아하는' 분들의 범주에 속해있기 때문에 역시 예외로 두겠다. 

그러나 지금 잘 쓰고 있는 장비를 소위 말하는 '장비병' 때문에 바꾸는 분들이 계시다. 특히 신제품이 등장하면 참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3번의 '사고팔기'를 무리해서 반복한다. 그리고 신제품을 구입하지만, 앞서도 이야기했듯 디지털의 시대는 '순간'과 같아서 금새 '구형'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신제품'의 등장을 그저 구경해야만 한다. 

카메라 같은 경우, '신제품'이 깡패라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사진을 찍기에 조금은 더 쉽고 편해지고 화질이 더 나아질지언정, 그간의 고생들(사고팔고 무리해서 또 사고)을 보상해주지는 못한다. 

이쯤에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은것이 있다.

그대들은 본인의 카메라에 셔터박스가 아작이 나도록 써 본적이 있는가? 만약 아직도 자신의 셔터박스가 쌩쌩하고, 어디하나 고장난 곳이 없다면 그 카메라를 조금 더 혹사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내 손에 익숙한 카메라가 가장 좋은 카메라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그 말이 더 없이 훌륭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5. 나만의 장비


우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샀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카메라 업그레이드나 다른 렌즈들을 추가하기 위해 중고장터를 검색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사진은 언제 찍는다는 말인가?'

나만의 장비를 구축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시행착오도 분명 생긴다. 그래서 카메라 제조사들은 '번들 렌즈'라는 싸구려 줌 렌즈를 끼워서 판다. 광각부터 준 망원까지 다양한 화각을 경험해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번들렌즈를 이용하면 본인들이 어떤 화각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가를 알 수 있다. 풍경을 찍는다면 광각렌즈를, 스냅이나 인물이 주가 된다면 표준 단렌즈나 번들렌즈보다 좀 더 밝은 표준 줌렌즈를, 새나 동물을 찍기 좋아한다면 망원렌즈를 구입하면 된다. 그렇게 나만의 장비가 마련되면 그 때부터는 다른 더 좋은 장비를 살펴보는 대신에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전되고 검색하기 좋은 시대에,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자신에게 맞는 '좋은'장비를 충분히 구입할 수 있고, 그렇게 한 번 구입한 장비들은 최소한 본전을 뽑을 때까지, 아니 특별한 일이 없는 한은 자신의 메인 도구가 되어야 할 것인데, 그 메인 도구를 늘 바꿈질을 하게 되면 결국 내 취미생활은 '사진'이 아닌 '카메라 바꿈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부분을 명심해야 한다. 언젠가 여러분들은 최고급기종의 카메라를 한 번은 써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 돈과 시간을 아껴서 여행을 다니거나 더 좋은 출사지를 찾아 사진을 찍는 것에 투자해야한다. 결국에는 그것이 '사진'이라는 취미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그것을 담는 것. 그러면서 삶을 알아가는 것이 사진이 아닐까. 


  1. 안녕하세요. 공감가는 글 잘읽었습니다. 하하

    저도 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고 2007년에 구입한 d200을 아직도 쓰면서 만족하고 있지요.ㅋㅋ 아주 가끔 기변생각도 있지만 글처럼 셔트박스 나갈때까지 한번 쓰보려고 합니다. 하하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CUPLEONLY BlogIcon CHOI 2018.10.03 22:38 신고

    장비병에 걸린 저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소중한 글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쓰신 글이지만 지금에서도 저에게 울림을 주는 좋은 글입니다.
    사진을 취미로 했는데 사진기가 취미가 되어버리는 현재 제 상황이 참 역설적입니다.
    지금 제 장비가 별로라는 말에 혹해서 다른 장비를 중고장터에서 마구 마구 알아보는 병적인 집착이 도진 시점에 이 글이 저에게 "지금 그 장비로도 충분해,
    더 좋은 장비를 알아보기 보다 지금 장비를 계속 써봐, 그리고 더 좋은 출사지, 더 좋은 풍경과 피사체를 찾아 다니고, 그 과정에서 내가 성장하는 모습을 훈훈하게 지켜봐, 더 좋은 장비는 나중에 더 좋은 사회적 위치에 도달하면 그때 구입하자"라는 마음의 다짐을 주었습니다.
    정말 일에 집중도 안되고, 그 일이 힘드니 사진기를 알아보는 집착 같은게 생겼나 봅니다.
    이 사진기를 알아보는 과정속에서 현실을 외면 할 수 있고, 좋은 가격에 중고 카메라를 손에 넣었을 때 그 안도감이 마약처럼 저를 위로해 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사진의 본질인데 저는 그것을 외면 하고 있었네요.
    내가 무엇을 담으려고 하는가, 왜 나는 사진을 취미로 했는가. 이 사진이 내 일의 생산성에 도움을 주는가 하는 것들을 다 무시하고 오로지 장비에만 집착했으니
    정말 바보 같았네요~
    사람이라는 게....
    한 없이 어리석고 또 이런 좋은 글을 보고 나면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 가네요.
    이글은 제 사진이란 취미에서 전환점이 되어준 글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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