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애플의 '아이폰'을 처음 구입했던 것이 아마도 2010년 9월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우연치고는 참 웃겼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아이팟터치 1세대 모델을 가지고 있던 나는, 당시만해도 모토로라에서 나온 '모토로이'를 거의 7개월 정도 쓰고 있었다. 아이폰 3GS가 국내에 발매되었고, 그 아이폰의 열풍이 뭐랄까, 어느 정도의 반감 같은 것을 불러 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모토로이를 선택했고, 곧 그 선택을 후회하고 있던 중이었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동네 휴대폰 가게에 들러 아이폰이 혹시 있느냐고 물었고, 예약자들 모델 밖에 없다는 말에 그냥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 안에서 마침 예약 취소 물량이 하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다시 버스에서 내려 바로 구입했던 것이다. 




<필자의 첫사랑이나 다름없는 아이폰4. 사진 출처는 위키피디아>


어쨌든 아이폰4를 구입했던 그 순간부터, 필자의 '아이폰'에 대한 첫사랑이 시작된 모양이다. 애플이 좋았다기보다는 '아이폰'이 좋았다. 끊김없이 부드러운 스크롤. 아이폰에서만 쓸 수 있었던 갖가지 어플리케이션. 무엇보다도 음악감상을 하는 맛이 있었다. 한동안은 아이폰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어팟을 내내 귀에 꼽고 다녔다. 그 뒤로 필자는 소위 말하는 애빠가 되어 여기저기에 아이폰 자랑을 늘어놓고 다녔다. 


매년 새로운 아이폰이 나올 때마다, 2년의 약정을 전부 채우지 않고 신형 아이폰으로 갈아치웠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리퍼'를 받았고, 그러면 마치 새 아이폰을 구입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폰을 쓰고 나니 내게는 별 쓸모가 없어보였던 아이패드까지 욕심이 생겼다. 아이패드2를 구입하던 날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냥 아이폰의 화면을 키워 놓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아이패드가 실제로 내 손에 들어왔을 때, 진정 애플은 대단한 회사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애빠들이 나와 비슷한 식으로 테크트리를 탔으리라. 아이패드를 갖고 나니 맥에 관심이 생기고, 그래서 우선은 저렴한 맥미니부터 시작했다. 이제는 맥미니에 레티나 맥북 프로까지 가지고 있다. 아이폰으로 시작된 나의 애플 사랑은, 점점 '애플이라는 회사' 자체의 사랑으로 변해갔다. 아이폰은 어느새 6+가 내 손에 쥐어져 있었고, 아이패드 에어까지 가지고 있게 되었다. 나름대로 용도도 정해두었다. 맥미니는 일반적인 웹서핑이라던가, 서버, 자료 검색용으로 이용하고, 글을 쓸 때는 맥북프로로, 논문이라던가 이북을 볼 때는 아이패드를 이용한다. 나름 성실하게 애플 제품을 이용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나의 애플'이 조금 이상해진 것을 느꼈다. 


스티브 잡스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의 애플은, 어딘가 모르게 예전같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하나의 트랜드처럼 인식되어왔던 애플은 왠지 다른 평범한 IT회사와 별반 다를 바 없게 느껴졌던 것이다. 새로운 제품들이 매년 꼬박꼬박 나오지만, 나올 때마다 어딘가 중요한 하자들이 보였다. 아이폰 5때는 코스메틱 이슈들이 있었고, 아이폰이 휘어지는 현상도 있었다. 아이폰의 매력 중에 하나였던 부드러운 스크롤은 언제부터인가 버벅거리기 시작했고, 애플의 자랑이었던 iOS는 늘 버그에 시달렸다. 


국내에 애플 스토어가 들어오지 않은 것도 이상했다. 그렇게나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열광한 애플인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제대로 된 정식 애플 스토어 하나가 없는 것이다. 그 뿐인가. 여전히 itunes로 음악을 구입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애플이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폰 6/6+가 국내에 출시되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나는 마치 연례행사처럼 아이폰 6+를 구입했다. 그런데 이번 아이폰은 해도해도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아이폰이 휘어진다는 제보들이 들어왔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SSD가 64기가 부터는 TLC와 MLC가 혼용이 되고, 128기가는 전량 TLC가 들어간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성능이나 수명이 MLC가 훨씬 뛰어남에도, 아이폰 64기가 부터는 MLC와 TLC가 혼용되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었다. 같은 제품인데, 어떻게 다른 부품을 넣을 생각을 했을까? 차라리 전부 TLC를 넣던가. 성능이나 수명을 떠나서, '장삿속'이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이폰이 휘는 문제도 그렇다. 처음 구입했을 때부터 휘어져 온 아이폰을 인증하는 유저들이 커뮤니티에 하나 둘 늘어나고 있었다. 손으로 눌러서 폈다, 센터에 가져가봐야 고객과실이라는 말만 들을 뿐이다, 라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한 개인이 문제가 있는 아이폰을 센터에 가져갔더니 동의도 없이 무조건 유상리퍼를 진행하고, 비용을 청구했다는 뉴스는 이미 알만한 사람은 전부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문득 내 자신이 애플과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 그냥 혼자만의 '짝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라는 회의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그렇게 애플에 열광을 했는데, 애플은 여전히 우리나라를 홀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던 그 시절을 회상한다. 애플의 키노트를, 자막도 없이, 단지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을 한다는 이유로 밤을 꼬박 새어가며 보던 그 시절을 말이다. 그때는 키노트 장소에서 누가 몰래 촬영하는 화질도 좋지 않은 화면을 보던가, 아니면 트위터나, 관련 커뮤니티의 소식들을 '새로고침'해가면서 감상했다. 그리고 다음 날, 팟캐스트에 키노트가 올라오면 다시 한 번 좋은 화질로 감상했다. 지금도 그 시절의 키노트들을 가끔 돌려 볼 때가 있다. 여전히 심장이 뛰고, 잡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열광하게 된다. 

그때가 좋았지, 그러니까 요즈음의 애플은, 그냥 불친절한 거대 IT기업 중에 하나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애플의 제품들을 구입한다. 그리고 구입할 때마다 늘 흥분이 되지만, 예전처럼 그 흥분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이제는 불평불만들이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작업환경을 맥의 OS X과 iOS에 맞춰 놓았는데, 점점 불평불만만이 늘어난다. 그렇다고 다른 회사 제품을 구입해서 쓰자니 그들도 애플과 별반 다를 바 없어보인다. 그러니 울며겨자먹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미 익숙해진 플랫폼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많은 않은 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우리나라에서 애플 제품을 쓰는 환경이 조금 더 나아지겠지, 싶은 기대감도 이제 차츰 사라져간다. 팀 쿡의 애플은, 이름만 같을 뿐, 지난 시절의 애플과는 전혀 다른 회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다음에도 나는 물론 새로운 아이폰이 나오면 늘 그래왔듯이 또 바꿈질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무렵이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애플의 제품이 좋아서 바꾼다기보다는, 기존의 아이폰이 '구리기 때문에' 바꾸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