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hone 6s Plus




  영감이 떠오른다. 한 남자는 테이블에 앉아 냅킨 한 장에 펜으로 예언처럼 떠 오른 그 영감을 열심히 적는다. 미국 드라마 매드맨(Madmen)의 한 장면이다. 바(Bar)에 근사한 여인이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바텐더는 칵테일 한 잔과 메모지 한 장을 들고 여자의 테이블을 찾는다. "저쪽에 앉아 있는 남자분께서 사는 겁니다." 그날 처음 만난 남녀가 함께 밤을 보내고, 남자가 눈을 떴을 때, 여자는 화장실 거울에 립스틱으로 자신의 연락처를 남겨놓고 떠난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은, 어느 로맨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흔한 클리셰지만 우리는 이런 장면들에서 일종의 낭만을 경험한다. 메모지, 펜, 립스틱, 거울. 저물어가는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이 아니던가. 


  이제 우리는 영감이 떠 오르게 되면 더 이상 노트와 펜을 꺼내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다면 메신저의 아이디를 교환한다. 모든 것들은 클라우드 안에, 0과 1이라는 숫자의 조합으로 저장된다. 그리고 이 디지털 메모들은 스마트폰으로, 컴퓨터로, 태블릿으로 언제 어디서나 보고 지울 수 있다. 늘 깔끔한 상태로 메모들을 분류 및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스마트한 사람'이라는, 작위(爵位)를 부여한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에 종이와 펜은 구닥다리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아날로그적 감성을 계승한다며 스마트폰(혹은 태블릿)에 펜을 달고 노트의 기능을 추가했다. 그것은 마치 디지털 음원에 잡음을 집어 넣고 비닐 레코드의 감성을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그런 것들이 종이와 펜에 대한, 일종의 모욕이라 생각한다. 감성은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근래들어 고급 노트와, 고급 펜의 판매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다시 비닐 레코드가 유행하기 시작하고, 필름 카메라를 쓰는 사람들도 늘었다. 당장에는 기쁜 소식이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지친 현대인들의 아날로그로의 귀환이라. 그럴 듯하다. 아니, 오히려 반가워해야 할 상황인가. 


  종이와 펜은, 세상 그 어떤 디지털 매체 보다도 더 오랜시간 살아남아왔다. 아무리 최신 기술의 저장장치라 하더라도, 평생을 쓸 수는 없다. 이론상 광디스크는 거의 반편생 쓸 수 있지만, 지금 CD나 DVD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모든 것은 '파일(File)'화 되어있고, 필요가 없으면 언제나 지워버릴 수 있다. 그러나 종이나 펜은 사정이 다르다. 종이에 펜으로 쓴 메모들은 쉽게 없애버릴 수 없다. 종이에 펜으로 무엇인가를 적는 그 순간 글(text)은 생명력을 얻는다. 찢어버리거나, 지워버리려 해도 흔적은 남는다. 내 손의 감촉, 노트 뒷면에 희미하게 새겨진 자국들이 그렇다. 


  종이에 펜으로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일종의 예의를 갖춰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들은 우리보다 더 오랜시간 살아 남은, 그리고 살아 남을 종(種)이 아니던가. 종이와 펜은, 디지털 라이프에서 지친 인간들의 도피처나 다름없다. 우리는 아날로그를 단순히 호기심, 혹은 유행의 한 부분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실상 아날로그 적 삶은 지금 이 시대에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당장이라도 우리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없으면 마치 질식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하지만, 아날로그, 특히 종이와 펜에는 우리가 얕봐서는 안될, 어떤 아우라 같은 것이 존재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이 종이와 펜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감성을 지는 아날로그 필기구들에게서 깊은 존경심 같은 것을 갖게 된다. 그러니 잠깐 디지털 기기들을 손에서 놓고, 조금은 경건하고, 약간은 예의를 갖추며 종이와 펜을 맞이해보자. 그리고 무엇이든 좋으니 첫 문장을 적어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도 여러분들은 그 문장을 컴퓨터의 파일 지우듯 지우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1. Favicon of https://zoahaza.net BlogIcon 조아하자 2016.04.24 21:53 신고

    저도 메모를 디지털로 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그래도 스케줄러는 아날로그식으로 씁니다. 감성적이라서가 아니라 그게 더 빠르고 효율적이더군요.

    • Favicon of https://heejune.net BlogIcon Heejune 2016.04.25 07:34 신고

      저도 급할 땐 디지털로 메모를 하지만, 결국에는 수첩에 전부 옮겨 적습니다. 펜을 꺼내서 바로 적는 것이 사실은 가장 빠른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수첩과 펜을 가지고 다닙니다. 좋은 덧글 감사드려요 ^^

  2. Favicon of https://sequestered.tistory.com BlogIcon 이리오시 2016.04.24 23:05 신고

    추억일 뿐, 그 도구만의 감성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날로그 -> 감성으로 이어가는 종류의 글을 볼 때마다 느끼는거죠. 생각해보세요. 종이와 펜 이전의 수단이 있었겠고, 그럼 그 이전에 더 어렵게 기록하고 혹은 외웠었던(예를 들자면) 그 방식이 아날로그이고 종이와 펜이 디지털이라고는 할 순 없는거잖나요. 일부는 공감하지만 처음에 썼다시피 그저 추억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 Favicon of https://heejune.net BlogIcon Heejune 2016.04.25 07:33 신고

      감성이라는 표현은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실 펜이나 종이도 개발되어가는 과정에서 '과학'적인 방법들이 동원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리오시님 말씀대로 '디지털'이라고 말하지는 않지요. '디지털'은 개념이 다릅니다. 그리고 디지털나름의 감성도 존재하고 있지요. 당장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영화 '접속'이나 '후 아 유' 같은 것들이 있겠습니다. 어쨌든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3. Favicon of https://doolytubbies.tistory.com BlogIcon 둘리토비 2016.04.25 00:23 신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로운 설정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구분을 하게 되거든요. 각각의 영역별로 그러기에 종이와 펜도 적절하게 활용하고
    디지털 기기로도 활용하고 그 가운데서 계속적인 영감을 얻고 창의성을 기르면 되겠지요~^^

    • Favicon of https://heejune.net BlogIcon Heejune 2016.04.25 07:30 신고

      시대의 흐름을 거부할 수도 없으니 적절하게 조화를 하면 좋겠지요. 저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적절하게 구분하여 이용하려고 노력중입니다. 다만, 간혹 종이와 펜을 이용할 때, 이들에게 대한 어떤 경외심 같은 것이 느껴져서요. ^^

  4. Favicon of https://booklikedream.tistory.com BlogIcon 다재다능르코 2016.04.25 23:43 신고

    전자책이 나와도 여전히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듯, 알파고가 나와도 여전히 '사람'이 더 가치를 갖듯 ㅎ 아무리 디지털기술이 발달해도 '아날로그'특유의 특성들은 따라오기 힘든것 같아요 ㅎ


오랜만에 서점을 가봤더니


'자기계발' 코너에 '스마트 워킹'과 관련된 책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모바일 시장이 발달하면서 함께 변화한 것이 '자기계발', '업무'와 관련된 분야이다. 이른바 '스마트 워킹'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들은 연말(혹은 연초가 되면) 그 해의 다이어리를 구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새해의 다이어리를 장만하는 것이 일종의 연례행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가방에는 각자의 개성으로 잔뜩 꾸며진 다이어리와 펜이 들어있었다. 전부 과거 일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다이어리'를 이용하는 이들은 차츰 감소하기 시작했다. 뭔가 메모할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수첩 대신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메모를 다른 이들과 손쉽게 공유했다. 그 뿐인가, 업무, 일정등도 손쉽게 공유가 가능했고, 이런 일들은 스마트폰의 발전이 가져온 순기능들이었다.


편리함을 얻은 대신 개성이 사라진 시대


사실 갤럭시 노트가 성공한 이유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절묘한 결합 때문이라 여겨진다. 뭔가를 필기하는 손맛을 느끼고 싶은데 스마트폰의 편리함은 버리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절충안이 노트 형태의 스마트폰인 것이다. 

갤럭시 노트의 성공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근래들어 우리는 무조건 적인 편리함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피로감의 이면에는 스마트폰의 작은 액정, 가독성, 그리고 분단위로 스마트폰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강박 같은 것들이 자리잡고 있다. 

분명 스마트폰을 이용한 업무나 시간관리는 간편하고 효율적이며 편리하다. 예전 '자기계발', '시간관리', '업무'와 관련된 책들에서는 수첩과 펜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도구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모든 디지털 기기들이 유기적으로 연동되고, 집, 회사, 외부 어디에서든 인터넷과 전원이 남아 있다면 편리하게 내 업무를 이어서 진행하거나 시간관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으로 인터넷과 전원이 있는 곳에서까지 일을 연장해야 하고,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따라온 것도 사실이다. 때로는 일정이 빼곡이 적혀 있는 수첩이나 다이어리를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실제로도 수첩을 이용하면 그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쉴새 없이 울려대는 알람, 전원을 꺼버려도 언제 부재중 연락이 올지 모르는 불안감 같은 것들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편리하게 시간을 관리하고 업무를 하고자 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극심한 피로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마치 24시간 내내 일을 해야만 하는 로봇과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도 스마트폰으로 이용하는 수첩 어플리케이션이나 다이어리들은 자신의 취향대로 꾸미기 어렵다는 단점들이 있다. 다이어리나 수첩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개성을 대변했다. 다른 사람들이 유니크하게 꾸며놓은 다이어리나 수첩들을 펼쳐볼 때면 자극을 받거나, 혹은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되는 계기가 되곤 했지만, 스마트폰용 어플은 그런 소소한 재미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유지비용


스마트폰 어플의 장점은 매년 새로운 다이어리나 수첩을 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냥 처음 구입한 어플을 꾸준히 이어서 쓰면 되는 것이다. 펜의 잉크를 교환할 필요도, 속지를 교체할 필요도 없다. 

공간절약이라는 측면에서 이점도 있다. 지난 수첩이나 메모들을 별도의 공간을 할애하여 보관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과연 종이로 된 수첩이나 다이어리, 펜이 비효율적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취향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위에 적어놓은 내용 전부가 취향의 문제이다. 기분에 따라 다양한 질감의 종이를 쓴 수첩이나 노트로 교환을 해보고, 다양한 필기감의 펜을 써보는 것은 자기관리나 업무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아날로그 적인 면이 업무나 자기계발 적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듯, 꾸민다는 측면에서 시각적인 만족감(혹은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우리는 효율적으로 살고 있는가, 구속되어 살고 있는가


자기관리나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중요한 일을 하면서 스스로를 '효율성'이라는 틀 안에 너무 구속시키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노트와 펜의 미덕은 자율성이다. 배터리의 잔량이나 무료 와이파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훨씬 더 창의적인 사고를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손끝에서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 잉크의 흐름, 펜의 필기감 같은 것들은 작은 화면의 키보드를 터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쾌적한 느낌을 제공한다. 아시다시피, 능률은 쾌적함에서 나온다. 물론 디지털의 편의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적절히 절충한다면 훨씬 '즐거운' 자기관리(혹은 자기계발)과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절충방법은 후에 다시 포스팅해보기로 하겠다. 



아이폰을 구입하고 기존에 사용하던 몰스킨 다이어리를 책상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아이폰에서 모든 일정관리가 다 되기 때문이다. 다음이나 구글 캘린더와 동기화를 시키면, (다음이나 구글이 망하지 않는 이상) 거의 영구적으로 일정들을 보관할 수 있다. 참으로 신기한 세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서랍속의 몰스킨 다이어리를 다시 꺼내게 되었다.
뭔가를 찾기 위해서 꺼냈는데 역시나 내가 적어 둔 메모가 보여 반가웠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스마트 폰으로 일정을 관리 한다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일 수 있을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아무리 다양한 기능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결국 메인은 종이와 펜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나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보조기구'로서의 역할일 뿐이다. 배터리가 없거나, 스마트 폰을 잃어버렸을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펜으로 종이에 적은 메모를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안심이 된다. 굳이 동기화를 시킬 필요도 없고, 그냥 꺼내서 적으면 그만인 것이다. 디지털 기기의 한계란 그런 것이다. 아날로그를 이겨 낼 수가 없다. 우리는 디지털이 만능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그 디지털 기기를 만들어 낸 것은 인간이 아니던가. 인간의 손으로 디자인을 하고, 설계를 한 것이 디지털 기기인 것이다. 

펜과 종이에는 낭만도 있다. 내가 예전에 적어 둔 글들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 좁고 답답한 스마트 폰 키보드로 열심히 뭔가를 끄적거려봐야 능률이 오르기는 커녕 오히려 더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펜과 종이가 있다면, 메모의 재미가 배로 증가한다. 예컨대 기분에 따라 펜을 고를 수가 있고, 노트나 메모지도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가격은 스마트 폰에 비해 저렴하다. 컴퓨터가 발명되었어도, 꾸준히 종이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 김훈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아직까지는 종이책이 전자책보다 더 많이 애용된다. 장담컨대 종이책이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PDF가 종이를 대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어쨌든 나는 스마트 폰을 메인으로 일정관리 하는 짓은 그만두었다. 그래서 몰스킨 다이어리를 다시 꺼내서 일정들을 쭉 적어두고, 그에 대한 보조수단으로 스마트 폰을 이용하기로 했다. 일이 두배가 되어 다소 번거롭기는 하다. 다이어리에 한 번 적고 그걸 스마트 폰으로 옮겨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스마트 폰이 간편한 것은 있어서 간단하게 일정을 살펴보는데는 유용하다. 그러니까 스마트 폰은 그런 용도인 것이다. 간단하게 일정을 보는 정도. 그 이외에는 차분하게 책상에 앉아 노트에 그 날이나 그 달의 일정들을 적어두는 것이 꽤나 합리적이고 재미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의미에서 오늘은 펜과 노트를 정리하고, 오랜만에 커피를 마시며 뭔가를 열심히 필기해 봐야 겠다, 고 생각했다. 역시 종이에 뭔가를 펜으로 끄적일 때는 커피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스마트 폰으로 뭔가를 정리하다가 커피를 쏟게되면, 그것만큼 난감하고 거추장 스러운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오늘은 처박아둔 펜과 종이를 꺼내 하루를 계획해보자. 뭔가 신선한 기분이 들 것이다. 내가 장담한다.

 
과거에 편지를 보내던 시절을 기억한다.
낡은 모나미 볼펜으로, 혹은 좀 살았던 애들은 파커 볼펜으로 우리는 하얀 백짓장에 글을 쓰고, 우체통에 편지를 보내고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기다린다.
지금 생각해보니 꼭 택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제를 하고,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하루를 기다리고, 물건을 받고.

어쨌든

이제는 디지털 시대이고, 인터넷 시대. 우리는 스마트 폰을 손에들고 과거에는 종이와 펜으로 했던 일을 전화기 하나로 끝낸다. 편지?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이 있는데 왜 편지를 쓰겠으며 메모장과 캘린더가 있는데 왜 다이어리가 필요하겠는가.
과거의 소통은 온가족이 함께 쓰는 유선전화기와 문방구에서 백원이면 한 묶음을 살 수 있었던 편지지가 전부였다. '펜팔'이라는 것이 있어서 모르는 외국 사람과 편지를 주고 받을 수도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편지를 한 통 써서 감동을 시킬 수도 있었다.

감동이라는 단어가 나오니 내가 감동을 받아본게 언제였더라? 하는 생각이 든다.
수첩으로 빼곡히 집주소와 전화번호, 생일을 적어두었던 기억이 있지만 이제는 스마트 폰 주소록에 달랑 전화번호와 이메일만이 적혀있다. 메신저는 내 주변 사람들의 생일을 알아서 알려주고, 단축 번호만 누르면 바로바로 연결이 되니 우리는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도 없다.

그런시대에 트위터가 등장했다. 이른바 인터넷으로 나누는 잡담들이다. 쉬는 시간 교실에서, 사내 흡연실에서 자판기 커피 한 잔 들고 노닥거리던 것을 인터넷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트위터는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구석이 있다.
밤을 새워가며 정치에 대해 토론을 하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최신 IT를 이야기하지만, 결국에는 혼자서 떠들고 있음을 우리는 언제부턴가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딘가 모여서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를 생각해보자. 커피나 따뜻한 차(혹은 소주나 막걸리)를 앞에 두고, 어쩌다 있는 외박의 시간들. 모두가 둘러 앉아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웃고, 화를 내고, 자리를 떠나 잠시 조용한 밤공기를 마시던 어떤 순간들 말이다.
트위터에는 그런 것들이 부재되어 있다. 그저 읽고 쓸 뿐이다. 상대방의 의견에 동참하지 못하겠으면 그냥 접속을 종료해버리면 그만이다.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볼 수 없으니 그 사람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알 수 없다. 저 사람은 그저 진실'처럼' 말하나 보다, 저 사람은 그냥 화가 났나 보다, 라고 생각할 뿐인 것이다. 그게 인터넷이고, 디지털이며 트위터인 것이다.

오늘 논문을 쓰기 위해 참조문헌 목록을 적으려다가 문득 내가 펜과 종이를 찾고 있음을 알았다. 스마트 폰에 입력해 놓으면 끝인데...라고 생각하니 나는 지금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나보다고 생각했다.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사람들과, 말하자면 이 시대의 '소통'을 준비하고 있음에도, 나는 그들과 정말로 잡담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사람인가? 아니면 트위터인가? 이 가상의 공간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오늘, 나는 모토로이 때문에 잠시 내버려두었던 몰스킨 노트와 몽블랑을 꺼냈다. A4 용지로 출력한 논문에 뭔가를 적으면서, 만년필의 서걱거림을 느끼면서, 사람들이 스마트 폰의 가상 키보드 보다 블랙베리의 키보드를 더 선호하면서도, 왜 키보드보다는 만년필이나 펜을 더 선호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과거의 어떤 것에 대해 향수를 가지고 있지만 애써 그 향수를 지우려고 하는 건 아닐까?
기계는 만능이 아니고, 그렇다면 종이와 펜이 만능이냐하면 그것은 아니지만, 결국 종이와 펜이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최소한 그것들이 소실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결국 시대가 지나 먼지 쌓인 종이에 적힌 과거의 텍스트를 읽으면서 기분좋은 향수에 빠질 수 있도록은 해주는 것이 종이와 펜이 아닐까 싶다.

더 많이, 더 자주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것이 진정한 '소통'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결국은 사람들이 모여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혹은 힘들게 펜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기다리는 며칠의 기다림이 지금보다는 최소한 '인간적인' 소통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어쩌면, 거짓 소통에 속아 정말로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주말 오후의 어느날이다.

  1. BlogIcon ^0^ 2014.04.20 17:08 신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네요

  2. BlogIcon ^0^ 2014.04.20 17:08 신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네요

나는 어린 시절 부터 펜과 종이를 좋아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는 아이의 펜과 지우개를 산 적도 있었다. 당시에 모닝글로리에서 새로 공책들이 나왔는데 종이가 약간 누런 색이었다. 지금은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데 어쨌든 그 노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트였다. 하얀 색의 다른 노트들 보다 더 잘 써지는 기분이었고 무엇보다 특별해 보였다.

펜과 종이는, 디지털 시대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아날로그이다.

사실, 나는 어떤 물건을 사든 처음에는 약간 후회를 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 전자제품들이다.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닌 이상, 단지 이 제품이 내게 꼭 필요한 것인가를 되묻게 된다. 그 대표적인 제품이 바로 얼마 전에 환불한 27인치 LCD 모니터이다. 분명 내게 필요한 물건인데 막상 사놓고 나면 괜히 샀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문제라도 생기게 되면 정말 골치아파 진다. 사용하다가도 혹시 고장나지는 않을까. AS는 어떻게 받아야 하나. 신제품이 나오면 아까워서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이다. 정말 필요해서 사야하는 노트북이라던가 MP3, 휴대 전화기 같은 것들은 아예 3년 정도의 수명을 예상하고 사용하게 된다. 언젠가는 수명이 다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물건을 쓴다는 것은 참 슬픈일이다. 디지털은 편리하기는 하나 '영원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서 왠지 디지털 기기들을 보자면 쓸쓸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펜은 그렇지 않다. 몇백 원 밖에 하지 않는 싸구려 볼펜조차도 몇 년, 길게는 십 년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펜은 AS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물론 만년필 같은 정교한 제품 같은 경우 AS가 필요할수도 있지만 전자제품 같지는 않다. 전자제품은 비에 젖어도 안되고 언제나 조심조심 써야 하지만 펜은 그렇지 않다. 그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것이 펜이다.

나는 그래서 펜을 더 좋아한다.
펜은 잡고 있기만 해도 행복하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배신하지 않고 고장나지도 않으며 내 곁에서 나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기 때문이다. 펜을 보고 있노라면 항상 무엇인가를 쓰고 싶게 만든다. 게다가 펜은 일상생활에서 항상 쓰이기 때문에 아무리 값비싼 펜이라도 흔히 말하는 '돈값'은 충분히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비싼 전자제품은 돈이 아까워도 비싼 펜은 돈이 아깝지 않다.
펜은 악세사리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일전에 은행에서 사인할 일이 있어 크로스의 크롬도금 된 볼펜으로 사인을 하니 직원과 점장이 펜이 참 좋네요. 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요즘 세상에 좋은 펜을 쓰는 사람들은 드물기 때문에, 그리고 보통 은행에 비치된 펜을 이용하기 때문에 직접 자신의 펜으로 사인하는 모습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그 은행 직원과 점장은 펜을 직접 꺼내 사인 하는 내 모습이 흔하지 않은 특별한 모습이었으리라.

펜에는 로맨스도 있다.
자고로 옛부터 순수했던 사랑의 선물 중에는 언제나 '만년필'이 오고갔다. 종류는 조금 다르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에도 잠깐 등장하는 것이 만년필이다. 카페에서 낯선 여인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냅킨에 적어주는 역할도 물론 펜의 몫이다. 누군가는 구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찍어주는 방법 보다는 품격이 있어보인다. 여자에게는 립스틱이 특별한 소품이듯, 남자에게는 펜이 그렇다.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캐치해주는 것도 펜이다. 그 어떤 수단도, 펜 보다 신속하게 아이디어를 기록해주지 못한다. 펜은 내 머릿속의 모든 생각들에 즉각 반응한다. 물론, 그 아이디어를 수정하게 도와주는 것도 펜이다. 미국 드라마 메드맨의 첫장면은 주인공이 식당에서 냅킨에 메모를 하는 장면이다.

펜은 곧 기억이다. 책을 읽을 때 펜과 메모지를 옆에 두고 기억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문구들이나 멋진 문구들을 적어두면 책을 읽는 재미가 배로 증가한다. 연예편지를 이메일로 보내는 것은 매너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편지의 몫은 펜이다.

펜은 나의 페르소나이다.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이다. 펜은 그러한 외로움을, 그리고 고통스러움을 나와 공유하는 유일한 친구이자 파트너이다. 그래서 내게 펜은 특별한 존재이다. 일단 내 손에 들어온 펜이 다른 사람에게 잠깐이라도 넘어가기라도 하면 나는 안절부절 못한다. 질투가 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교보문고에 가서 펜을 한 자루 사왔다. 만년필보다는 사용빈도가 높은 볼펜을 구입했다. 워터맨의 엑스퍼트 디럭스 CT 모델이다. 볼펜치고는 비싼 21만원이라는 가격이지만 디자인이나 필기감을 보자면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항상 내 손에 있을 것이 때문이다. 워터맨의 볼펜은 하나 있긴 하지만 이런 묵직해 보이는 볼펜이 하나 가지고 싶었다. 멋진 수트를 입은 듯한 디자인은 세련되어 보인다. 나는 이 볼펜을 조금도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LP도, 필름도 디지털에 밀려 몰락해버렸다. 아날로그의 메신저와도 같았던 라디오 조차도 디지털화 되었다. 살아 남은 아날로그는 이제 몇 안 된다. 기껏해야 악기들 정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펜의 존재가치는 의미심장하다. 최근 들어서 고급 펜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모습은 그래서 고무적이다.

멋진 아르마니 수트를 입고, 값비싼 휴대전화기로 시간을 보며 아무 펜이나 집어서 사인을 하는 모습 보다는, 와이셔츠에 살짝 가려진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안주머니에서 멋진 펜을 꺼내 사인하는 모습이 진정한 남자의 멋이라고 생각하는, 그리고 그런 남자들이 더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나만의 생각이 아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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