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hone 6




  며칠 전, 델(Dell)의 27인치 모니터(U2715H)를 한 대 구입했다. 기존에 쓰던 24인치 LG모니터 하나로는 뭐랄까, 무척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예전 조교시절에 썼던 듀얼 모니터에 대한 편리함 때문에, 내 작업실에는 언젠가 꼭 듀얼 모니터를 설치해보고자 하는 로망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 로망을 실현시킨 것이다. 

  문제는 공간이었다. 책상이 작아 가끔 노트북으로 동시에 작업을 하고 싶을 때 공간이 부족하여 책상 옆에 작은 보조 책상 하나를 마트에서 (비교적 비싼 값에) 구입해 놓은 터였다. 그런데 여기에 27인치짜리 모니터 한 대가 더 들어가려니 난감했다. 그래서 책상 왼쪽 부분에 1단짜리 책꽂이를 놓고 그 위에 LG 모니터를 올려두었다. 델 모니터는 높낮이가 조절이 되므로, LG 모니터의 높이와 맞춰두었더니 제법 그럴듯 하게 보였다. 

  나는 책상에 집착한다. 늘 잠들기 전에 인스타그램이나 구글로 다른 사람들의 책상이나 작업공간을 구경한다. 모두가 제각각인 그러나 기발한 작업공간들을 보고 있자면 내 책상을 다시 꾸미고픈 충동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배치도 달리해보는 등 책상을 다시 꾸며 놓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책상은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이 책상에서 미지의 세계를 창조해 낸다. 그러면 때로, 책상은 그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자동차처럼 느껴지고, 나는 운전석에 안전하게 앉아 마음 놓고 이런저런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책상을 그저 책상으로만 여기는 것 같다. 책상은 하루 중에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책상은 가장 개인적인 공간임과 동시에 가장 가치있는 공간이다. 그동안 당신은 책상에서 얼마나 많은 가치있는 일들을 해냈는가, 라고 생각해 본다면, 책상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 

  공부도 못하는 사람들이 책상정리만 한다는 옛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러나 어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책상을 깨끗이 닦고 연필이나 수첩들을 정리하는 일들은 중요하다. 작업공간이 산만하면 어쨌든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 자신의 감정은 차치하더라도 창작으로 인한 나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책상은 충분히 대접 받을 가치가 있지 않을까.



  1. Favicon of http://ohmyisland.tistory.com BlogIcon 마쿠로스케 2016.04.08 15:00 신고

    남편이 꿈꾸는 풍경이네요 ㅎㅎ 책상이 좁아서 필사적으로 막고 있죠.
    잘 보고 갑니다~~~

  2. Favicon of http://simglorious.tistory.com BlogIcon 도플파란 2016.04.09 16:56 신고

    저도 책상을 가장 중요시 하고 있어요..ㅎㅎ 왠지 책상이 친구같은 존재가 되어간다고 할까요..ㅎㅎ

    • Favicon of https://heejune.net BlogIcon Heejune 2016.04.09 17:03 신고

      맞습니다. 좋은 책상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지요. 꼭 좋은 책상이 아니더라도, 내가 마음에 드는 책상, 그리고 공간이 꾸며지지 않으면 일이 재미가 없습니다. ^^




1. 우리는 늘 고민을


한다. 삶 자체가 고민의 연속인 것이다. 짬뽕이냐 짜장이냐, 캐논이냐 니콘이냐, 아이폰이냐 안드로이드 폰이냐, 진라면이냐 신라면이냐,와 같은 고민들은 항상 우리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렇게 고민의 끝에서 어떤 한 가지를 선택하면, 내 선택이 과연 옳았던가, 다시 자문하게 된다. 때로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리다 못해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아이패드가 등장하고, 맥북에어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등장하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고민거리를 떠 안게 되었다. 아이패드와 맥북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물론 두 제품을 모두 쓰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모든 애플의 제품들은 각자의 용도가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 예를 들어 맥북 에어의 경우, 일반적인 랩탑 환경, 즉 웹서핑을 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문서작업을 하며, 간단한 게임을 즐기는 등의 환경에 적합하다. 이동이 많은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이 필요한 것은 아마도 맥북 에어일 것이다. 11인치는 이동성을 극대화 시켰고, 13인치 맥북에어는 이동성과 성능을 적절하게 타협했다. 맥북 프로 제품 군도 마찬가지다. 맥북 에어에서 부족한 전문성을 맥북 프로가 충족시켜준다. 맥미니는 합리적이고 저렴한 가정용 PC의 용도로, 아이맥은 올인원의 간편함을, 맥프로는 이 두 제품보다 훨씬 더 전문적인 작업을 요구하는 유저들을 대상으로 했다. 


2. 아이패드는


그렇다면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태블릿의 용도는 어디에 적합한 것일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이패드는 철저히 소비지향성을 추구하고 있다. 아이패드로 생산적인 작업을 한다는 것은 '도시주행에 적합한 승용차가 오프로드 길을 달릴 수는 있는 정도'의 기능 밖에는 없다. 필자는 아이패드와 맥북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해보자면 아이패드로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한 때 아이패드용 한글 워드를 활용해보겠다고 로지텍의 블루투스 키보드 커버까지 구입했던 적이 있지만, 아이패드로 200자 원고지 80매에 해당하는 단편소설 한 편을 완성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기에는 일단 화면이 너무 작았다. 키보드도 편하지 않았다. 차라리 200자 원고지를 사서, 펜으로 글을 쓰는 것이 훨씬 더 편할정도였다. 

물론 하기에 따라 아이패드를 수업 용도로 잘 활용하는 학생들도 있다. PDF어플을 이용하여 형광펜 기능으로 밑줄을 긋고, 클라우드에 저장을 하고,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과 공유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기능들은, 위에도 언급했던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기능 중에 하나일 뿐이다. 노트북에서 쓸 수 있는 일부 역할을 '아이패드도 할 수는 있다' 정도일 뿐이다. 

그렇다고 아이패드가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장비냐하면 그렇지는 않다. 다만 생산성을 추구하는 방향이 노트북이나 일반 PC들과 다를 뿐이다. 

올레 대리점에서는 아이패드로 요금제를 설명해주고 모든 가입절차를 해결한다. 엔지니어들은 아이패드에 PDF로 저장된 설계도라던가 메뉴얼을 참고한다. 어느 대학에서는 아이패드로 교과서를 대신한다. 영업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이패드를 통해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한다. 사진을 찍고, 카메라 킷을 이용하여 아이패드에 사진을 저장하고, 커다란 화면으로 사진을 리뷰한다. 때로는 클라이언트 들에게 아이패드를 통해서 사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아이패드의 생산적 기능에 어떤 공통점이 하나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뷰어' 기능이다. 아이패드는 '보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다. '보는 것'으로 인해 파생되는 '생산성'에는 아이패드 보다 더 훌륭한 장비가 없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아이패드가 '보는 것', 즉 '뷰어'기능에 충실하고 최적화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 맥북


은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그 용도가 제한적이었다. 쇼핑몰에 결제도 되지 않았고, 한글 워드도 없었으며, 제대로 돌아가는 게임도 없었다. 액티브 X라는 합법적인 바이러스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 맥북은 그냥 허세용 예쁜 쓰레기에 불과했다. 

사실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노트북의 용도를 보자면 참으로 단순하기 그지 없다. SNS, 웹서핑, 워드, 엑셀, 쇼핑, 금융거래, 간단한 게임이 전부인 것이다. 노트북을 구입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기왕이면 맥북이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용도로 쓸거면 차라리 아이패드가 더 나을 수도 있다. 오히려 요즘에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발전하고 있고, 금융거래도 모바일이 훨씬 편하다. 아이패드나 아이폰으로 계좌이체를 하던가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이용한 것이 훨씬 편하다. 아이패드용 워드는 불편하긴 하지만 편집이라던가 간단한 레포트 정도는 (마치 승용차가 오프로드를 달릴 수도 있듯) 작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편하지만 가능한 것과, 원래부터 그 기능에 최적화 되어있는 것은 다르다. 아이패드로 문서 작업을 할 수는 있지만, 맥북으로 하는 것보다는 불편하고, 맥북으로 뷰어기능을 할 수 있지만 아이패드 만큼 편리하지는 못한 것이다. 

우리의 딜레마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패드인가 맥북인가. 


4. 그렇다고 아이패드가 저렴하지는 


않다. 새로 나온 아이패드 에어의 64기가 LTE버전 가격은 무려 99만 9천원이다. 128기가는 백만 원이 넘는다. 11인치 맥북 에어가 120만원 대에 팔린 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물론 레티나 액정, 휴대성, 활용성의 가치들을 고려해보자면 그렇게 비싼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이패드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함께 구입하면 거의 맥북 에어 가격이 나온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것은 내가 어떤 용도로 PC를 활용하는가에 따라 다르다. 


1) 만약 당신이 직장인이고, 출장이 잦은데, 이미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이 있다면 과감히 아이패드를 질러보는 것이 좋다. 아이패드는 위에도 언급했듯이 '뷰어' 기능에 충실하기 때문에 이동하는 동안의 지루함을 충분히 보상해 줄 수 있다. 대한민국의 이북 시스템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새로 나오는 책들은 이북과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독서를 하는 습관을 들이기에는 아이패드가 적합하다. 웹서핑이라던가, SNS도 아이패드가 훨씬 편리하다. 


2) 만약 당신이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라면, 그리고 기존에 노트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고민은 더 커질 것이다.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둘 다 구입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맥북 에어를 고려하는 것이 어떨까. 일단 맥북 에어는 가볍다. 여러분들이 대학에 입학해보면 알겠지만 전공책들은 쓸데 없이 두껍다. 심지어 하드커버로 만들어져 있어서 그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다면 가볍디 가벼운 맥북 에어에 패러럴즈를 이용해서 윈도우용 프로그램(주로 워드라던가, 오피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극단적인 이동성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13인치 맥북 에어가 배터리 시간이 더 길다. 아이패드가 대학생들에게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스마트 폰은 하나씩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패드는 계륵이 될 공산이 크다. 신입생이 교수님 앞에서 아이패드로 과제를 보여주는 행동은 진보적인 대학이 아니라면 그냥 건방진 행동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윈도우 기반의 노트북을 구입할 것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맥북과 아이패드 중에 고민하고 있다면 맥북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3) 만약 당신이 직장인인데, 출퇴근을 제외한 사무직이라면 아이패드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아이패드는 시간때우기에 정말로 좋다. 어차피 주변에 PC는 널렸다. 사무실에도 PC가 있을 것이고, 집에도 PC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 이런 분들은 출퇴근 길에 들고 다니는 가방조차도 무거워서 노트북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아이패드가 최선이다. 


4) 당신이 뭔가 창조적인 일, 그러니까 '아티스트'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냥 맥북을 구입하는 것이 옳다. 아이패드는 '옵션'이다. 메인은 맥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자신이 사진이나 영상쪽에 관심이 있다면 레티나 맥북 프로가 니즈를 충분히 충족시켜 줄 것이다. 아이패드로 사진을 간단하게 편집 할 수는 있는 포토샵 터치 어플리케이션이 있지만, PC용 포토샵과는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사진이나 영상쪽으로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동이 잦기 때문에 가볍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13인치 제품으로 권하고 싶다. 그 외에도 맥용 로직(음악)이라던가, 어퍼쳐(사진), 파이널 컷 프로(영상) 등이 포진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오글거리지만) 맥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창조하고 싶어지는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뭔가를 창조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기분마저 든다. 


5) 연구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면, 꼭 맥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차라리 아이패드가 훨씬 유용할 수 있다.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논문을 제출하려면 한글 워드나 MS워드를 필요로 한다. 맥용 한글이 최근 출시되긴 했지만 완벽하지 않다. 윈도우 기반 PC가 논문을 쓰기에는 훨씬 편하다. 물론 자료수집이라던가, 구성을 하는 측면에서 보자면 맥에도 유용한 프로그램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보수적인 대한민국 연구계에서는 여전히 윈도우 기반의 PC에서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 편리하다. 

아이패드는 연구자들에게는 아주 편리한 장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논문을 보는 것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부분의 대학 도서관은 아이패드로 접속이 가능할 것이다. 논문 사이트에서도 아이패드를 이용하여 논문을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런 것들을 전부 접어두더라도, 드롭박스와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에 논문들을 저장해두면 아이패드로 언제든 편리하게 볼 수 있다. 일단 논문을 프린트하는데 드는 A4용지와 잉크값을 절약한다는 것만해도 큰 장점인데 보관, 관리까지 편리한 것이다. 


5. 마치며


노트북과 아이패드 둘 다 들고 다니는 것은 부담스럽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아이패드를 구매하자니 어떤 용도로는 맥북이 더 효율적일 것 같고, 맥북을 구입하자니 아이패드의 뷰어 기능과 이동성, 편리함등이 눈에 밟힌다. 물론 둘 다 구입하면 그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최대한 합리적인 구매를 해야한다. 내가 어떤 용도를 더 많이 쓰는가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단순히 '맥을 경험하고 싶어서' 맥북을 구입할 예정이라면 필자는 그러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맥북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제한적이다. 물론 과거보다는 훨씬 사용하기 편해졌지만, 윈도우 기반의 PC보다 제약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학생들에게 맥북이 사치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맥북이 사치라면, 노트북 자체가 사치가 될 수도 있다. 맥북과 윈도우 기반 노트북의 차이점은 OS밖에 없다. 맥북이 뭐나 된다고 사치니, 허세니, 학생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면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다. 가격이 다른 노트북들 보다 비싸다고는 하지만, 맥북의 만듦새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맥북의 가격이 오히려 합리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맥북을 무슨 사치품, 명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애플 맹신자들에게도 문제는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맥북 또한 다른 윈도우 기반 노트북과 같이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러나 그 도구를 선택함에 있어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는 보수적이고, 윈도우 기반 PC들이 사용하기 더 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을 고려해서 최선의 선택을 한다면, 짬뽕을 먹은 뒤 차라리 짜장면을 먹을 걸, 하는 식의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1. 2014.01.22 02:22 신고

    아이패드1,2,에어 까지 거진 3년간 패드만 사용하다가 맥북은 어떤 면에서 좋은지 구글 검색으로 들어와 봤는데 매우 마음에 드는 글을 발견하고 말았다. 담백하면서도 절제된 글, 적절한 비유에 오탈자 없는 깔끔함까지 훌륭합니다.

  2. 2R 2014.01.25 11:05 신고

    현재 아이패드를 사용중인 대학생입니다. 현 사용 중인 아이패드를 처분한 후 맥북구입을 고려하고 있는데 결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3. 최지훈 2014.03.18 17:19 신고

    글을 참 잘쓰시네요^^
    도움 받고 갑니다!

아이패드2를 구입하고 내가 활용(?)했던 부분은 '웹서핑', '이북', '일정관리' 정도였다. 그러나, 이 비싼 아이패드2를 이런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아이패드2 활용에 관련된 포스팅을 해보고자 한다. 문제는, 아이패드를 활용하는 팁에 대한 블로그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내 포스팅은 다른 블로거들의 포스팅에 비해 별 메리트가 없다. 그러나 많은 블로거들이 PC를 대체하는 용도로 아이패드2를 활용하는 모험에 도전했고, 나도 동참할 예정이다. 하지만 명심하자. 아이패드, 아이폰은 어디까지나 '스페어', 즉 보조 활용도구일 뿐이다.

소설가들은 늘 글을 쓴다. 혹은 그럴 것이라 일반적인 사람들은 믿는다. 소설가는 딱히 '일정관리' 같은 것도 필요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영혼'들이 작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상상하는 소설가들이란 골방에 처박혀 담배빵이 난 키보드를 두들기는, 혹은 카페에 앉아 전공서적 두께만한 노트북을 열심히 두들기고 있는, 보헤미안적인 삶을 사는 그런 존재들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한때는 '소설가로 돈 벌어먹고 사는 것이 힘든' 세상이었고, 사실 작가들이 그렇게 돈에 집착하지 않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작가들도 최소한 밥벌이는 할 수 있는 직업군으로 떠올랐다. 물론 다른 직업에 비해 '궁핍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약간은 나아진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글을 써서 돈을 벌겠다면, 실은 소설가보다는 다른 '자기계발서'나 혹은 요즘의 트랜드를 책으로 쓰면 소설가들보다는 더 낫다고 본다. 여전히 소설가란 배고픈 직업이고, 설령 한동안 배가 불러도 언제 다시 고파질지 모르는 신세이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사족이 길었는데 하여튼 소설가도 이제는 좀 편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펜과 종이가 여전히 내게는 메인이지만, 대부분의 도구들이 디지털로 변화된 이 시점에, 아이패드 같은 '도구'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아이패드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러면 PC나 종이, 펜등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글쎄...'다.

우리는 답답한 집에서 빠져나와 노트북을 바리바리 챙겨 인근 카페로 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의 '착각'을 하게 되는데 바로 '카페에서 작품 하나를 완성' 시킬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카페에서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는 커녕, 챕터 하나 쓰기도 힘들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 귀에 이어폰을 꼽은 채 음악을 듣는 행위를 무척 꺼려하는데, 글에 집중이 안되고 음악에 집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카페는 사실 최악의 장소나 다름없다.
게다가 들고다녀야 하는 노트북의 무게도 만만찮다. 근처 카페를 가는데 차를 가지고 나가기도 그렇고, 노트북의 무게도 고려해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아이패드'다. 아이패드는 가볍고, 부담이 없다. 그런데 아이패드로 글을 쓴다고 하면, '아이패드로 소설 한 편을 다 써야지' 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아이패드는 어디까지나 보조글쓰기 수단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버스 안이나, 카페등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축내고 싶지 않을때(하릴없이 시간을 축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아이패드는 그 효과를 발휘한다.

블루투스 키보드가 있다면 그 효과는 배로 뛰어오른다. 워드 입력기는 아이패드의 Pages를 추천한다. 4.99달러의 다소 비싼 가격이지만 카라멜 마끼아또 한 잔 값이라 생각하면 감수 할 수 있다. 아이패드의 Pages로 작성된 문서는 iCloud.com에서 MS Word 파일로 내려 받을 수 있다. MS 워드로 소설을 쓰는 분들에게는 더 없이 편리하고 한컴의 한글을 이용하시는 분들에게는 MS워드 상에서 복사 붙여넣기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옮겨적는 것 보다는 편리하다.
잠깐잠깐의 아이디어를 적을 때는 에버노트가 유용하다. 에버노트에는 사진을 첨부할 수 있는 기능과 에버노트 사이트와의 실시간 동기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잠깐 떠오른 아이디어를 저장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창작 업종에 계신 분들은 여행을 자주가는데 시간이나 금전의 제약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구글지도나 다음, 네이버 지도등을 이용한다. 실제 가는 것 만큼의 효과는 없지만 어느정도 여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원하는 지역을 아이패드의 '스크린 샷' 기능으로 저장해두고 사진파일로 만들어서 자료로 이용해도 좋다. 아이폰이나 스마트 폰이 있다면 사진을 틈틈히 찍어 에버노트에 저장, 아이디어와 함께 저장해두면 좋다. 이렇게 모아놓은 자료를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집으로 돌아가 한 편의 소설을 온전히 작성할 수 있다.

다음 편에서는 이러한 도구들을 이용하는 보다 자세한 포스팅을 할 것이다. Pages를 이용해 글을 작성하고 그것을 MS 워드로 불러오는 과정들을 그림과 함께 보여드릴 것이다. 창작, 더 나아가 작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든 뭔가를 기록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메인은 자신의 정든 노트북이나 원고지, 펜이겠지만, 이러한 메인을 보조해줄 보조 수단으로서의 아이패드는 충분히 제 값을 한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의 의지, 언제 어디서든 창작을 하겠다는 의지임을 잊지 말자.
오늘 머리를 다듬으러 미용실을 갔는데, 내 머리를 봐주던 남자 미용사가 내게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 직업이 '작가'라고 대답했다.

미용사에게 내 직업을 '작가'라고 말을 한 이후, 나는 무척 창피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미용사가 머리 괜찮으세요? 라고 물을 때도 그냥 건성건성 대답했을 뿐이다. 미용사가 '어디 가세요?' 라고 물었을 때, 그냥 '데이트요.'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내가 왜 생전 모르는 사람에게 내 직업을 '작가'라고 이야기 했을까? 라는 경솔한 내 발언에 대한 후회 뿐이었다. 대학원생도 있고, 그냥 백수라고 해도 되는데 굳이 '작가' 라고 이야기 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내 첫 출간작품은 상하로 나뉘어진 두 편짜리 SF 소설이었다. 물론 이 소설은 실패했다. 영화 2012의 주인공처럼, 내 소설은 1천부도 채 팔리지 않았다. 출판사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다.
그 이후에 나는 '창비' 신인상에 도전했고, 결과는 본심에서 끝났다. 한동안 나는 내가 '작가'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어느 헌책방 귀퉁이에 내가 쓴 책의, 그것도 '상' 권만 꼽혀 있는 모습을 보고, 내 작가 인생은 청계천의 어느 헌책방에서 끝나는 구나, 라고 체념했다.

우리나라에는 '등단' 제도가 있어서, 어디가서 함부로 '나는 작가요' 라는 말을 하기가 꺼려진다. 그러면 '등단 하셨습니까?' 라는 질문이 돌아오게 마련인 것이다. 일반인들조차 작가란(혹은 '문학'을 하는 작가란) '등단' 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 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지만, 나는 그 책을 내 마음속에서만 기억하고 싶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누구나' 등단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여기에는 여러 주석들이 달려있긴 하지만 어쨌든 마음만 먹으면 '나는 작가요' 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등단제도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듯 해서, 그냥 글을 쓰면 '작가' 라는 직함을 내걸 수 있는 모양이다. 영화 '리미트리스' 의 주인공도 책을 한 권도 내지 못했는데 자신을 작가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는가. 등단이라는 말보다는 그저 '데뷔'라고 이야기하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나 일본의 사정은 좀 다르다. 등단이란 아마추어와 프로를 구분하는 하나의 시험과 같다. 그러니까 비로소 등단이 되었을 때, 우리는 프로작가가 된다. 등단을 하지 못한 작가는, 마치 사법고시생이 '나 변호사요' 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오늘의 경험으로 비추어봤을 때, 나는 내 자신을 분명히 '작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법고시하고는 사정이 약간 다른 것이다. 컴퓨터를 켜고, 하얀색 워드프로세스를 맞이하여 첫 단어를 찍는 순간 우리는 모두 작가가 되는 것이다. 자기합리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자기합리화가 존재하는가? 분명히 단어들과 문장들로 뭔가를 생산해 낸다면, 그것이 팔리든 안팔리든 그 사람은 작가인 것이다. 자동차 영업사원이 자동차를 한 대도 못팔지언정, 그의 직업은 자동차 영업사원인 것이다.

작가란 내 재주를 '파는' 직업이다. 그러니 어쩌면 '작가'라는 직업은 영업사원과도 비슷하다. 능력제인 것이다. 작가란 대중에게 '이야기'를 판다. 얼마나 재밌는 이야기를 파는가는 작가의 능력이다. 그러니 당장에는 돈이 안들어오고, 내 글이 대중들 앞에 나오지 않더라도 나는 '작가'다. 다만, 이야기를 파는 내 능력이 신통치 않을 뿐이다.

나는 등단을 하기위해 글을 쓴다. 이것은 내 고집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글을 쓰는 것이 내 삶이다. 나는 일곱살 때 첫 동시를 지어서 한정된 '대중'에게 보여주었고, 나름의 평가를 받았다. 나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사 줄 때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생산해 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등단'을 해야 한다. 서양이 어떠니 해도, 대한민국에서 내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보여지려면, 등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글을 쓴다.
나는 '작가'다.
  1. 나기 2012.04.15 06:24 신고

    화이팅

몇 년 전, 처음으로 소설을 출간했을 때 일이다.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럴 듯한 SF소설 한 권 쯤은 있어야겠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외국 작품처럼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쨌든 출판제의가 들어왔고 계약금은 정말로 적었지만 나는 수락했다. 그때의 들뜬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제목을 정하고 글을 쓰고 책표지를 막 상상할 무렵, 출판사 담당직원이 내게 책 제목을 바꾸자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서태지도 처음에는 쇼프로그램에서 춤췄어요.

누구나 처음부터 자신의 뜻대로 뭔가를 이루기란 힘들다는 뜻인것 같았다. 어쨌든 책은 망했고(그래도 2012년 주인공보다는 많이 팔렸으리라 생각한다. 영화를 본 분들은 무슨 뜻인지 알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후부터 나는 내 소설의 근본을 뜯어고치는 작업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소설을 쓴다고 하면 내게 다양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꼭 하는 말이있다.

소설가들은 다 그러잖아요.

사실, 소설가들의 편견이란 대한민국의 정치와도 같아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바로 잡을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이 포스팅을 통해서,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 자신이 생각하는 소설가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싶다. 덧붙여서 시멘트 못 처럼 강하게 박혀있는 소설가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눈꼽만큼이라도 흔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소설가는 언제나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소설가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속에 많이 집어 넣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전에도 포스팅했던 이상일 것이다. 이상의 소설을 보면 알겠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메인테마로 삼는다.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만을 쓰다보면 글에서 삼고자 하는 주제가 한 방향으로 치우치기 십상이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만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정치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그 소설에는 분명히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잘 드러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쓴 정치소설을 한 쪽만 읽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 소설을 읽고 서로 상반된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수긍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으리라.
그래서 소설가는 객관성을 유지하는 시선. 즉 건축가가 조감도를 보듯, 사회전반을 아울러서 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이 내 소설을 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소설가가 가져야할 가장 큰 미덕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이렇나 객관석이 없다면 내가 쓴 글은 어느 한 쪽에서는 환영받을지 몰라도 다른 한 쪽에서는 환영받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일에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일이다. 그렇기에 소설가들만 할 수 있는 일, 즉 소설 안에 장치를 넣어두는 방법도 있다.  겉보기에는 객관성을 유지하는 듯 싶어도 행간에 자신의 의견을 살짝넣어두는 것이다. 너무 이중적이라고? 그럴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소설가들처럼 이중적인 인간들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들은 조금은 이중적인 성향이 필요하다. 허구의 세계를 창조해야하기 때문이다. 내 삶이나 이념, 사상을 그대로 소설화시킨다면 그것이 일기와 뭐가 다르겠는가?

어쨌든 객관적인 척 하려고 해도 객관적인 시각을 기본적으로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힘들다. 그러니 소설가들은 언제나 객관적이 되려고 최소한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2. 완벽함을 추구해야 한다.

이 소제목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데?
물론이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란 없다.
그러나 소설가들은 자신의 글이 완벽해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비록 완벽함에 도달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을지라도, 그 완벽함을 향해 나아갈수는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내 소설도 처음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글을 계속해서 쓴다는 것은, 보다 완벽한 글을 쓰기위한 과정이다. 그렇게 쓰다보면 어느새 차츰차츰 완벽에 가까워지는 나의 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심하자.
그렇다고 해도 완벽한 소설이란 있을 수 없다. 설령 그런 소설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저 내 글이 완벽하다고 느껴지는 것 뿐이다.

3. 나는 소설가다.

헤더 리치 & 로버트 그레이엄의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해보자.

작가가 하는 일이란 사실 단순하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채 종이나 화면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단어는 차례로 등장한다. 그 중에 몇 단어는 지우고, 때로는 이미 써놓은 단어를 쳐다보기도 하면서 한 줄 한 줄 써나간다. 작가는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각주:1]

마지막 문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가는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굳이 책을 출판하지 않았더라도, 글을 쓴다고 마음먹고 실제로 글을 쓰고 있다면 우리는 모두 작가다. 일반적으로 작가라고 하면 책도 몇 권 쓰고 어느정도 이름도 있는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위의 책은 이런 것이 그저 하나의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누구라도 작가가 될 수 있다. 다만 대중에 발표되지 않았을 뿐.

내가 경험해봐서 아는데 계속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는 길이 생기게 마련이다.

4. 계속해서 글을 쓰자.

나는 소설을 18년간 꾸준히 써왔다. 누가 봐주던 안봐주던 PC통신 게시판이나 인터넷 게시판에 꾸준히 소설을 올렸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게임스토리 작가도 해봤고 컨텐츠 업체에서 의뢰도 들어오고 책도 낼 수 있었다.
글을 계속해서 쓴다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당신이 소설가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야구에서 벤치에 앉아있는 백업선수가 끊임없이 배트를 휘두르며 기다리는 것과 같다. 그렇게 연습하고 있다보면 언젠가는 대타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고 연습의 결과로 홈런이나 멋진 안타를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주전도 할 수 있다.
소설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벤치멤버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만일 앞으로 다가올 기회를 무시한 채 손을 놓고 있다가 정작 기회가 다가왔을 때 내 놓을 글이 없다면 그것 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다.

5. 소설가는 여자를 좋아한다?

사실 과거의 우리나라 문학계에 대한 루머들을 보면 어느정도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 글쓰기에 열중하는 사람들은 보통 가정적인 사람들이 많다. 만일, 당신의 남자친구가 소설가인데 지나가는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면 뺨을 날리기 전에 왜 봤는지 물어보기나 해보자. 어쩌면 그 남자친구는 지나가는 여자를 여자가 아닌 소설에 써먹을 대상으로 보고 관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간혹가다가 소설가들은 경험을 해야 한답시고 여러 불건전한 사고들을 치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꼭 직접적인 경험만이 소설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에 대해서는 다음에서 다시 살펴보자.

6. 경험

경험은 많이하면 많이 할 수록 좋다. 그러나 안좋은 경험을 일부러 할 필요까지는 없다. 예를 들어 나는 노점장사를 3년을 했다. 본의아니게 하게 됐지만 내게는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노점장사를 할 필요가 없음에도 단지 소설가는 경험을 많이 해야하기 때문에 노점일을 할 것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오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만 그 고생의 대상이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거나 혹은 자신에게 상처로 돌아올 것 같으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나는 노점일을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고 이 상처는 아직도 치유중이다. 이러다 죽는거 아냐? 싶을 때도 몇 번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했기에 내가 약이 되었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작가라고 모든 경험을 다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경험은 잊지 말도록 하자. 그 경험이 당신과 당신의 글을 바꿔 놓을 것이다.

7. 소설가들은 술을 많이 마신다?

나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한다. 술이 들어가야 글 좀 쓸 수 있다는 작가도 있는데 이것은 사람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간혹가다가 소설가라면 술 좀 마시고 췻기에 좋은 문장이 나오는 법 아냐? 라고 생각하고 일부러 술을 마시면서 글을 쓰라고 권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별로 좋은 방법은 되지 못한다.
그래도 작가들마다 습관은 있는 것 같은데 내 경우에는 그 습관이 바로 담배와 커피다.
나는 평소에는 담배를 그리 많이 피우지는 않는데 꼭 글만 쓰려고 앉으면 담배를 한 갑은 피우는 것 같다. 지도 교수님 말씀으로는 처음에만 그렇고 막상 끊고나면 담배는 글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그래서 최근에는 담배의 힘을 빌려보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다.
커피는 좀 다르다.
커피나 차 종류는 글을 쓸 때 확실히 도움을 준다. 이런 따뜻한 음료는 나를 안락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기분은 심적인 요소가 많이 반영이 되지만 어차피 소설이란 마음과 정신을 옮겨적는 행위이기 때문에 따뜻한 차 종류는 도움이 많이 된다.


소설가들 처럼 핑계가 많은 사람들도 없다. 그리고 소설가들처럼 자기합리화가 강한 사람들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 조차도 편견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핑계나 자기합리화는 나쁘다기 보다는 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때로는 노동에 버금가는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7번에도 언급했듯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안락하고 편안한 기분으로 즐기며 글을 쓴다면, 이보다도 즐거운 일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사실, 이 포스팅을 하면서 내 자신에게도 보다 더 좋은 글을 써보자고 다짐을 하게 된다. 내 자신이 슬럼프에 빠졌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일종의 슬럼프 상태라면, 이 포스팅이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1.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 헤더 리치 & 로버트 그레이엄, 베이직 북스, 361면. [본문으로]
  1. 으아 2011.03.20 16:05 신고

    수고하십니다.
    이런 비주류 소설가들이 많다는건 알고 있었습니다.
    저도 비주류 전선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오늘이 죽기 마지막 날에 할 그 일을 하려고 합니다.
    줄리안님도 그런 일을 하고 계신 거겠죠?

  2. 2014.02.11 03:33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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