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hone 4S

 

1. 장비가 좋으면 훌륭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들을 한 번쯤 해본적이 있을 것이다. 출사를 나갔을 때, 근육질의 바디와 한껏 발기한 듯 우뚝 튀어나와 있는 육중한 렌즈들을 보며 한 번씩은 쫄아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메이저급 카메라가 아니면 '무시'를 당하고, 심지어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토이 카메라만도 못하다는 식의 시선들.

카메라가 BMW나 벤츠, 페라리같은 외제차라면 강남역에서 여자라도 꼬실 수 있겠지만, 1:1 플래그십 카메라에 최고급 렌즈를 달고 강남에 간다한들, 잘해야 사진기자, 보통은 몰카나 찍는 파파라치쯤으로 오해나 받을 것이 뻔한데 우리는 왜 그리도 장비에 목숨을 거는가.

 

장비가 좋으면 훌륭한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이 있다. 예컨대 카메라를 처음 살때 딸려오는 '번들'렌즈 보다는, 빨간띠가 둘러진 값비싼 L렌즈가 훨씬 더 섬세하고 작품성있는 사진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래서 '작품'하나 찍으셨냐고.

 

몇몇 '사진작가'님들은 좋은 사진을 결정하는 구체적인 요소가 장비에 있다고 거의 신앙처럼 믿는 분들이 있다. 카메라와 렌즈의 기계적 요인이 사진의 전체적인 퀄리티를 좌우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카메라 매커닉에 대한 과도한 맹신은 한편으로는 사진을 찍는 주체가 카메라를 조작하는 사진가가 아닌 카메라 그 자체로 전도되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진을 찍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시선'과 '인내심', 그리고 '떨리지 않는 손'이다. 아무리 몇 백만 원짜리 렌즈를 그 좋은 카메라에 장착하고 사진을 찍는다 한들, 결국 피사체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 눈이며 셔터를 누르는 것은 내 손이다. 싸구려 일회용 똑딱이 필름 카메라로도 '작품'은 뽑아낼 수 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이들은 '프로 사진작가'나 하는 일이라고? 그렇다면 당신은 '프로 사진작가'도 아니면서 왜 '프로들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장비'를 가지고 다니는가.

 

2. 찍을 것이 없다며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다. 비가와서 못 나간다, 날씨가 흐려서 못 나간다, 더워서 못 나간다. 핑계들도 많다. 경차 한 대 값에 맞먹는 장비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사진을 찍으러 나가지 않는 이들을 보자면 경악을 금치 못할때가 있다. 그것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 조상 영정을 모셔두듯 카메라를 모셔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 당신들은 사진을 찍으러 나가지 않는가. 비맞는게 싫어서 데이트도 못하겠다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어쨌든 우산하나 챙겨서 밖으로 나가면, 밝은 날에 볼 수 없었던 더 다양한 세계들이 펼쳐져 있다. 날씨 좋은 날은 똑딱이로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어떤 환경에서든, 그 환경이 아무리 사진을 찍기 힘든 상황이어도 카메라만 있다면 색다른 피사체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3. 피사체

 

를 고른다며 마치 밥상에서 반찬 투정하듯 골라서 사진찍는 이들이 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그 비싼 카메라로 스튜디오 안에서 반쯤 벌거벗은 채 교태를 부리고 있는 여자모델들만 찍고 카메라 커뮤니티에 올려 추천수에만 만족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만들어진 장소, 만들어진 모델을 두고 사진을 찍는 것을 두고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사진을 찍어서 과연 여러분들의 사진생활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낯선 장소, 정해지지 않은 피사체,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 이런 요소들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널려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이런 요소들을 찾아내는 시선을 연마하는 일이다. 남들이 찾지 못한 피사체를 찾았을 때의 쾌감은 그 어떤 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하다. 그런 짜릿함이 아닌, 그저 누구나 다 찍을 수 있는 피사체를 찍는다면, 언젠가는 사진생활에 있어 권태기를 맞을 위험이 있다. 늘 새로운 것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둘러보라. 새로운 것은 저 멀리 아프리카 오지나 이라크 전쟁터, 인형의 집처럼 아름다운 집들과 풍경이 즐비한 유럽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대문을 열고 나가는 그 순간부터 새로움이 펼쳐져 있다. 더 새로운 것을 원한다면? 버스만 타면 된다.

 

4. 사진에 대한 감상을

 

게을리하는 것은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 음악도 열심히 듣지 않은 채 작곡부터 하겠다고 난리치는 것과 같다. 여러분들은 기백만 원을 넘어서는 값비싼 장비들은 잔뜩 살 돈이 있으면서, 몇 만 원도 채 하지 않는 사진집은 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우리의 눈은 그저 카메라 커뮤니티 1면에 올라있는 여자모델들에 익숙해져있어서 정말로 잘찍은 사진은 어떤 사진인가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있다. 다양한 음악을 들어보지 않고는 작곡을 할 수 없듯, 다양한 사진을 감상하지 않고는 개뿔. 아무것도 없다.

흔히들 해외여행을 하면 시야가 넓어진다고들 한다. 사진에서 시야를 넓히려면 꼭 외국까지 갈 필요도 없다. 해외의 다양한 사진사이트들, 그리고 사진집들만 구입해서 봐도 여러분들의 시야는 금새 넓어질 것이다.

그들처럼 사진을 찍어보려 노력해본 적이 있는가. 자존심이 강해 나만의 작품을 찍어야겠다고 고집하고 있는가. 유명 뮤지션들도 다 고전을 카피하면서 성장해왔다. 예술은 과거 선배들의 작품을 공부하고 감상하며 따라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진도 다를바 없다. 더 많은, 더 좋은 장비를 위해 중고장터를 눈팅하는 시간에 차라리 사진집 한 권을 더 감상하던가 관심있는 포토그래퍼의 웹사이트를 방문해서 그들의 사진을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몇 백만 원짜리 장비를 사서 얻은 결과물보다, 그들의 사진을 감상하고, 그들을 따라해서 얻은 결과물이 더 만족스러울 것이다. 이것은 내가 장담할 수 있다.

 

5.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 본적 있는가. 기왕찍는 사진. 나 혼자만 감상할 것이라면 상관없다. 다만, 이 사진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면 그 사진에는 '의미'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성장할 때까지를 매일 하루씩 사진으로 찍었다면, 그 사진은 나중에 성장한 자녀에게 그 무엇보다도 큰 선물이 될 것이다.

내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어떤 감정을 줄 수 있는가. 내 사진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가. 한 장의 사진속에 방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아마 놀랄 것이다. 늘 어떤 것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동반되어야 한다. 내 사진 한장이 세계를 바꾸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내 주변의 작은 부분은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결국 그 변화는 '나'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필름 시절에는 한 컷 한 컷이 소중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필름은 많아봐야 36컷이었기 때문이다. 셔터를 누를 수 있는 기회는 단 36번 밖에 없었다.

이제는 메모리의 용량이 다 할 때까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만큼 셔터는 가벼워졌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면 된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 한 장만 우연히 걸리면 된다. 이러한 생각이 과연 우리의 사진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비록 디지털 카메라라 할지라도, 단 한 컷을 얻기위해 고민하고, 노력한다면 그 사진은 사진 이상의 가치, 즉 작품으로써의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장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남이 훌륭한 장비를 갖고 있다해서 그들이 '프로'는 아니다. 내 기준에 '프로'는 사진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연구하는 이들이다. 검도의 고수가 젓가락만 쥐어줘도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듯, 내 손에 똑딱이 하나만 있어도 누구나 감탄할 만한 한 컷을 찍는 사람. 그것이 프로 아닐까.

  1. 2012.11.12 13:35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heejune.net BlogIcon Heejune 2012.11.12 13:57 신고

      아주 불쾌한 경험을 하신 모양이네요. 제가 봐도 기분이 나빴을 것 같습니다. 사실, 합리적인 카메라 선택에 있어서 정말 필요한 것은 내게 필요한 장비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허세들, 장비에 대한 자부심과, 그래서 스스로가 '프로'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보자면 한편으로는 딱하기까지 합니다. 프로는 장비가 아니라 결과물과 마음가짐. 즉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실력이 뒷받침 되지 않은 장비는 그저 돼지목에 진주목걸이일 뿐이죠. 덧글 감사드립니다.

  2. Favicon of http://pm08.tistory.com BlogIcon pm08 2012.11.12 15:55 신고

    오랜만에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즐기려 사용하는 카메라와 일할때 쓰는 카메라를 분리해서 사용하긴 합니다. ㅎㅎ

    아무래도 물리적인 화질에 대한 보장이 되는 카메라가 필요해서일까요.. ㅎㅎ

    하지만 즐기는 사진에는 아무 제약이 없는 듯 합니다.^^

    • Favicon of https://heejune.net BlogIcon Heejune 2012.11.12 16:34 신고

      덧글 감사드립니다. 카메라가 직업수단이라면야 당연히 구분이 되겠으며 가급적 좋은 장비를 쓰시는 것이 낫겠지요. 저는 그것보다는 사진을 즐기는데 '장비우선주의자'들을 겨냥한 것입니다. 고가의 장비를 가지고 거들먹거리는 그런 부류들이 있습니다. 사진 작가랍시고 아마추어들을 무시하는 분들도 계시죠. 그런 분들은 보통 '장비'가지고 무시를 하더군요.
      아무튼 올림푸스 e-p2 쓰시는 것 같은데 블로그 들려서 좋은 사진 감상하고 갑니다. 최근 미러리스에 관심이 좀 갑니다.

    • 2012.11.12 16:55

      비밀댓글입니다

  3. Favicon of http://blog.daum.net/emylife BlogIcon 프리맨 2012.11.13 11:20 신고

    참 좋은 글 가슴 깊이 잘 읽어 보았습니다..
    잠시 반성도 해 보고요..
    블로그에 참 오래간만에 이런 댓글을 다는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4. Favicon of http://ghbj.tistory.com BlogIcon Byeong-jun 2012.11.13 17:20 신고

    가슴에 와닿는 글이네요. 이번엔 어디 가지? 하면서 고민하기보다 내가 있는 곳에서 무엇을 더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더 현명한 거 같아요. 피사체 하나를 두고도 사람마다 중요하게 보는 데가 다르니까요.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